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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46화 (346/726)

#346화

악의 종주가 추구하는 종말은 우주를 구하는 방법이 맞다.

처용은 미륵의 마지막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악의 종주가 만드는 종말이 우주를 구하는 진짜 방법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종말을 막기 위한 그 모든 노력들은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 희생된 사람들이 흘린 피와 노력은 뭐란 말인가?

종말을 막기 위해 발버둥 친 그 모든 것들은…… 뭐란 말인가!

처용이 거칠게 반응하자.

[아직, 가설에 불과하니 벌써 확정 지을 필요는 없다.]

미륵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을 알아내신 겁니까?”

흥분을 가라앉힌 처용이 침착하게 물었다.

악의 종주는 어째서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것인가?

-내가 진정한 구원이다.

그는 마주칠 때마다 자신이 진정한 구원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심복들인 대악마들과 순혈자들조차도 그 진의를 알 수 없었다.

‘바알이라면 알지도 모르겠지만…….’

처용은 악의 종주를 떠올리며 속으로 읊조리고는 미륵의 말을 기다렸다.

미륵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짧게 침묵하고는.

[……우주가 어떻게 순환되는지부터 말해주는 게 먼저겠군.]

생각을 마친 듯, 입을 열었다.

“순환…… 그러고 보니, 아까 마녀가 ‘순환의 포식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처용이 미륵의 말에 조금 전 마녀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회귀 전에도 보지 못했던 미륵이 크게 당황한 모습.

크타니드와 직접 마주쳤을 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미륵이었다.

그런 그가…… 평정심을 잃고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순환의 포식자는-.]

미륵이 처용의 말에 대답하려는 순간.

-쿠구구!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미륵을 강하게 내리치는 듯,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삐비빅! 삐빅!

[■■■……!]

[■■……!]

.

.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나열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건 무리인가?]

하던 말이 끊긴 미륵이 고개를 들고 위를 올려다보며 읊조렸다.

그때.

“마녀가 말한 프로토가 순환의 포식자입니까?”

처용이 굳은 표정으로 확인하듯 입을 열었다.

동시에 곧 다가올 압박을 준비했다.

태초신의 이름처럼, 대신들조차도 함부로 언급하면 안 될 존재.

그런 존재를 언급한 이상, 미륵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테니까.

그러나.

“……?”

처용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미륵 역시 의아한 듯, 의문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생각한 처용은.

“프로토, 야드.”

순환의 포식자로 추정되는 이의 이름과 태초신의 이름을 번갈아 언급했다.

그러나.

-…….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침묵한 처용은.

“왜 나한테는 반응 안 하냐?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허공을 향해 도발하듯, 욕을 담아 강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처용에게 다가오는 반응은 없었다.

이후에도 프로토와 야드의 이름을 담아 몇 번 더 외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용이 미륵을 응시하자.

[……나도 모르겠구나.]

미륵은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네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하자면…… 맞다.]

조금 전, 처용이 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말했다.

“하……!”

처용의 입에서 답답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녀가 제약을 풀어, 그간 말하지 못한 말들을 한 미륵이었지만.

‘하긴, 일부만 해제했다고 했으니…….’

그중에서도 더 높은 제약이 걸린 정보는 언급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우주의 순환, 아까 했던 말을 이어서 하는 게 좋겠구나.]

답답한 모습을 보이는 처용을 본 미륵은 조금 전, 하려던 말을 계속 이었다.

[우주는 같은 모습으로 무한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수명이 있지.]

“……수명이 다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처용의 질문에 미륵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과거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아주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수명이 다 된 우주는 산산이 분해되어 순수한 에너지로 돌아가고 다시 모여 재창조된다.]

미륵이 입을 열었다.

우주의 수명이 끝나면, 그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산산이 분해된다.

분해된 우주는 다시 순수한 에너지로 돌아가고 그 에너지가 모여 새로운 우주가 창조된다.

미륵에게서 나온 말은 무한히 순환하는 우주의 비밀이었다.

[우주가 분해되어 만들어진 순수한 에너지, 그것이 에테르(ether)다.]

“우주가 분해되어 만들어진 순수한 에너지라…….”

-우웅.

처용이 태초의 조각을 들어 보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태초의 그릇에서 흘러나온 에너지, 에테르(ether).

이 에테르의 정체는 우주가 재창조되고 남은 순수한 에너지였다.

“수명이 다한 우주는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분해되어 사라지는 겁니까?”

이야기를 듣던 처용이 궁금한 듯, 미륵에게 묻자.

[아니다.]

미륵이 고개를 저으며 짧게 답했다.

처용은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지만, 미륵은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생각하던 처용은.

“……제약이 있군요.”

미륵의 상황을 눈치챈 듯,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에 미륵이 고개를 끄덕이자.

‘순환의 포식자와 연관이 있군.’

처용은 어느 정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다면 크타니드가 이겼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가장 중요한 본론을 이야기했다.

애초에 미륵이 우주의 순환을 이야기한 이유가, 이 말 때문이었으니까.

[……내 생각이 맞다면.]

짧게 침묵하며 생각을 정리한 미륵이 입을 열었다.

[놈이 저지르는 이 모든 행동은, 순환을 막기 위함인 것 같구나.]

“우주의 법칙을요?”

[그래.]

미륵이 처용의 말에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우주를 태초의 상태로 되돌려 무한의 순환을 거부하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한 가설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처용이 미륵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이 우주를 멸망시켜 태초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

이 말은 크타니드 본인에게서 처용이 직접 들은 말이었다.

그 목적이 순환을 거부하기 위한 목적임은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둘 다 똑같은 거 아닙니까?”

우주가 수명이 다하고 순환에 들기 위해 산산이 분해되는 것.

우주를 멸망시켜 태초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

처용은 둘 다 똑같이 느껴졌다.

그런 처용의 의문에.

[순환에 들어간 우주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 이 우주 자체가 소멸하는 것이지.]

미륵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하지만, 태초로 돌아간 우주는 태초의 상태로 돌아갈 뿐이다.]

“…….”

처용이 미륵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침묵했다.

그때.

[태초의 우주…… 초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군요.]

지금껏 침묵하고 이야기를 듣던 여래가 입을 열었다.

[바로 이해했군.]

여래의 말이 맞다는 듯 미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초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여래의 말을 들은 처용이 생각을 정리하듯 중얼거리며 말했다.

“즉, 처음의 모습으로 우주가 돌아갈 뿐, 이 우주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로군요?”

생각을 정리한 처용이 자신의 말이 맞는지 미륵을 보며 말하자.

[그래,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미륵이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주가 순환에 들어서면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러나 악의 종주가 이 우주를 종말로 이끌어 태초의 모습으로 되돌린다면?

이 우주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당시의 나는, 놈의 계획을 파악했을 것이다.]

미륵이 말하는 그 당시는 회귀 전, 악의 종주를 막아섰을 때를 의미했다.

그리고 크타니드에게서 진실을 들은 그 당시의 미륵은 그가 틀리지 않았다 판단했다.

[하지만 의문이군. 이 우주는 아직 순환에 접어들 때가 안 되었어.]

말을 흐리던 미륵이 의문을 표했다.

우주의 수명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그 시간은 광활하다.

미륵이 판단할 때, 아직 이 우주는 순환에 접어들기엔 너무 일렀다.

미륵이 의문을 표할 때.

“왜 악의 종주가 ‘옳았다’가 아닌 ‘이겼다’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처용이 미륵에게 의문을 담아 물었다.

우주가 곧 순환에 접어들어 완전히 사라질 위기이다.

악의 종주는 이 우주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처용은 미륵이 말한 가설이 모두 사실이라 가정하고 생각해 보았다.

관리자인 미륵의 입장에서 그가 옳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륵은 그가 옳았다가 아닌 이겼다고 말했다.

[그 당시의 나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 것 같구나.]

미륵은 과거 자신이 왜 순순히 안식을 받아들였는지를 추측하며 말했다.

미륵이 소멸했을 당시는 전쟁의 거의 막바지쯤이었다.

악의 종주가 불러오는 종말에 저항하던 저항군은 세력이 확 줄어든 반면, 악의 종주를 따르는 무리들은 아직 강성했었다.

모두가 멸절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미륵이 다른 이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악의 종주와 맞섰다.

그리고 악의 종주가 미륵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놈은 아마도, 내게 순환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자신이 불러오는 종말은 순환을 저지하고 이 우주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우주가 곧 순환에 접어들 것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더는 방법이 없다. 그래 네놈이 이겼다. 나는 이렇게 판단한 것 같구나.]

악의 종주와 짧은 대화가 오간 결과, 미륵은 순순히 안식에 드는 것을 선택했다.

이것이 미륵이 말한 가설이었다.

과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 미륵은.

[정녕…… 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인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기 자신에게 묻듯 읊조렸다.

[왜 그리 쉽게 포기해 버렸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이 사실을 미리 파악했더라면……!]

미륵이 자기 자신을 질책하듯,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다른 방법이 없었는지.

어째서 우주가 종말로 치달을 때까지 방치했는지.

왜, 더 나은 방향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지.

[왜 모두가 실패하도록, 나는 방치하고 있었단 말인가?]

미륵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후회와 자책을 담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답을 구할 순 없었다.

아무리 처용이 과거로 돌아왔다 한들, 미래의 일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었다.

회귀 전, 정확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기에, 모든 정황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다.

미륵이 답답한 한숨을 내쉴 때.

[굳이 미륵 님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여래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저 역시 마찬가지니까요.]

처용이 전해 준, 절망적인 미래.

여래는 그 비극적인 일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되짚어 보며 말을 이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을 왜 나는 막지 못했는가? 나는 어째서 그리 안일하게 대처했는가?]

여래의 입에서 미륵이 했었던 자책과 같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조금 더 빨리 행동했다면,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막을 수 있었던 회귀 전의 비극들.

특히.

[왜 나는 천교에게 전장의 등 뒤를 맡겼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처용에게서 전해진 트라우마.

그 기억 속 여래는 후방에 있던 보살과는 반대로 최전방에 있었다.

여래는 그 기억을 되짚어 보며 왜 자신이 최전방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왜 자신과 원한이 깊은 이들을 함부로 믿은 것인가?

아무리 전장의 상황이 급박하다고 해도, 그들을 함부로 믿어서는 아니 되었다.

그런 안일한 선택이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로군요.]

여래의 말에 표정이 어두워진 보살이 읊조리듯 말했다.

[중요한 건, 지금은 때가 늦지 않았다는 겁니다.]

안색이 어두워진 보살을 잠시 바라본 여래가 말을 이었다.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자네의 말이 맞군.]

여래의 진지한 말에 미륵이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과거의 내가 한 행동을 후회해 봐야, 지금에 와서는 의미가 없지.]

미륵의 말이 끝나자.

“아직, 알 수 없는 것들투성이지만, 이것만큼은 확신합니다.”

생각을 마친 처용이 입을 열었다.

“전 그놈을 막을 겁니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악의 종주가 불러일으키는 종말이 우주를 구하는 일이다?

그 가정이 사실이라고 해도 처용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종말을 맞이하면 어차피 다 끝장이니까.

처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의 종주를 막을 생각이었다.

이것만큼은, 변함없는 마음가짐이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니라.]

미륵이 처용의 말에 작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그리고.

[제약이 조금 풀렸으니, 이번 일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군.]

차후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태초의 그릇을 지닌 마녀 덕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미륵은 이번 일을 가벼이 넘길 생각이 결코 없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순환의 시기가 빨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최악의 가정.

이 가정대로라면, 왜 스스로가 포기하고 안식에 들었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포기해 버린 자신의 행동을 인정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되돌아와 두 번째 기회가 생겼다.

미륵은 이전의 자신처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제약을 언급하는 미륵의 말이 울리자.

“혹시 계승자에 대해서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처용이 미륵을 향해 의문을 담아 물었다.

회귀 전부터 계속 가지고 있었던 의문.

계승자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전 성운 재판에서 갑작스럽게 마주친 악의 종주 역시.

-네가 ‘이번 우주의 계승자’로군

처음 마주하는 처용을 향해 ‘계승자’라고 불렀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인 처용의 클래스.

처용의 말이 울리자.

[여전히 전부 말할 수는 없느니라. 허나…… 요약해 말할 순 있겠구나.]

미륵이 눈을 감고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며 읊조렸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계승자는…… 태초신 후보다.]

미륵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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