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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44화 (344/726)

#344화

마녀의 말이 울리자.

‘어떻게 할까요?’

처용은 즉시 미륵에게 전음을 보냈다.

[제 발로 오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미륵에게서 즉답이 들려왔다.

-산 채로 잡아 오너라, 그러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보겠느니라.

처용이 막 악몽에서 빠져나왔을 때.

태초의 그릇에 대해 들은 미륵이 처용에게 했었던 말이었다.

마녀의 안에 있는 태초의 그릇을 회수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녀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처용은 마녀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었다.

태초의 그릇이 아주 중요한 물건이고 미륵이 그것을 회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미륵과의 대화를 목적으로 제 발로 태룡전으로 간다?

그 영악한 마녀가 아무런 조치 없이 이렇게 행동할 리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의심이 많은 건 여전하군.”

마녀가 그런 처용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예상대로 나를 보호할 ‘보험’이 있긴 해.”

처용의 예상대로 마녀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그걸로 신의 성역이 무너질 걱정을 하고 앉았나?”

마녀가 처용을 도발하듯,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리 마녀가 무서운 적이라지만, 지금은 전성기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다.

지금 그녀가 다루는 육체가 과거의 자신의 것이었으니까.

그런 상태에서는 무슨 수를 쓰든, 단신으로 신의 성역을 무너뜨릴 방법은 결코 없었다.

“왜 굳이 미륵 님을 만나야겠다는 거냐?”

처용이 마녀에게 의도를 물었다.

그녀는 다른 이들도 아닌, 관철의 대신, 미륵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으니까.

“바알이 이 녀석에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나?”

-탁. 탁.

마녀가 손을 들고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낙인이 새겨지기 전이라고-.”

처용이 마녀의 말에 반박하듯 말했다.

바알은 마녀를 조종하고 그녀 안에 있는 힘을 다루기 위해, 낙인을 새겼었다.

하지만 그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 지구가 무너지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런 처용의 말에 끝나기 전에.

“낙인은 아직 없지만, 추적이 새겨져 있지.”

마녀가 그 이유를 이야기했다.

“바알…… 그 새끼가 그릇에 새긴 추적을 없애려면, 태초의 힘이 필요하니까.”

“태초의 힘?”

“관리자의 권한을 말하는 거다.”

처용의 물음에 마녀가 답하며 말을 이었다.

“대리자인 야훼는 협력해줄 리가 절대 없고 남은 선택지는 관리자뿐이니까.”

지금 시기에 태초의 힘을 다루는 성좌는 둘.

태초신의 대리자인 야훼와 관리자인 미륵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혹시나 내가 악의 종주에게 잡힐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함이다.”

의회주 잭이 마녀의 위치를 단번에 알아차린 이유.

마녀 안에 있는 태초의 그릇이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이유.

마녀는 그 이유를 바알이 그릇에 새긴 추적 때문이라는 사실을 덧붙였다.

이것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관리자인 미륵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협력을 약속했으니 네게 협력한다. 약속은 지킨다. 한처용.”

마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가지.”

처용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

로스차일드 가주와의 제대로 된 만남은 차후를 기약하고.

-우우웅.

처용은 우선 성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뒤에는.

-탁.

마녀가 처용을 따라 들어왔다.

본래라면, 태룡전에 흐르는 신성한 기운이 마기를 가진 그녀를 짓눌러야 했지만.

“흐음.”

성역에 들어온 그녀는 잠시 눈을 감은 채, 침음을 흘렸다.

태룡전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 보였지만, 제지를 받지 않는 듯 보였다.

이곳에 발을 들인, 어둠을 지닌 존재들.

뱀파이어들과는 확연히 다른, 여유와 긴장감이 반반 섞인 모습이었다.

마녀가 태룡전에 들어서자.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미륵이 마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뒤에는 여래와 보살 또한 함께 있었다.

모두 자발적으로 이곳에 발을 들인 마녀를 경계하는 듯 보였다.

마녀는 미륵을 잠시 바라보고는.

“오랜만입니다…… 라고 말해 봐야, 지금의 당신은 모르겠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오랜만?”

처용이 마녀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마녀는 미륵을 직접 마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회귀 전에도 마찬가지.

그런데 마녀의 입에서 마치 미륵을 마주한 적이 있는 듯한 말이 나왔다.

[난 네놈을 모른다.]

미륵 역시 처용과 같은 생각인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모를 수밖에요…… 다 뒤진 이후 크타니드의 뱃속에서 만났으니까.”

마녀가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그 말에.

“넌 악몽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죽음 이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반박하듯 말했다.

지금의 마녀를 지배하는 전성기의 마녀.

그녀는 악몽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인격에 가까운 존재였다.

즉, 진짜가 아닌 가짜.

그런 그녀가 사망 이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지금 마녀가 하는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

처용의 경계와 의심 어린 말이 울리자.

“네 덕분이지. 태초의 그릇에 나를 집어넣은 덕에 내 데이터가 완전해졌거든.”

마녀가 작은 미소를 띠며 처용을 향해 말했다.

동시에.

“기억이 완전해진 덕분에, 당신을 만나 협상할 수 있게 됐고.”

미륵을 바라보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감히 나를 상대로 협상이라?]

-쿠구구!

마녀의 말에 미륵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차갑게 말하고는.

[내가 응해 줄 것 같았느냐?]

-화아아!

마녀를 향해 잿빛 신력을 분출했다.

잿빛 신력이 마녀를 옭아매듯, 휘감기 시작했고.

[태초의 그릇을 회수하겠다.]

태초의 그릇을 회수하기 위해, 잿빛 신력이 마녀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미륵의 신력이 주변을 감싸며 권능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마녀는 가만히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위험한 상황임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을 해 보였다.

그렇게 5초 정도 시간이 흐르자.

[……이런.]

미륵의 인상이 일그러지며 침음이 흘러나왔고.

-파아아!

마녀를 압박하던 잿빛 신력이 사방으로 튕겨 나오며 흩어졌다.

“악의 종주조차도 나에게서 이걸 완전히 떼어내지 못했는데, 당신이 가능할 리가.”

마녀가 예상했다는 듯, 작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차라리 당신이 이걸 회수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오히려 미륵이 태초의 그릇을 회수하지 못한 것에 아쉽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처용이 미륵을 바라보며 물었다.

분위기나 상황을 봐서는 미륵이 태초의 그릇 회수에 실패한 듯 보였다.

[완전히 융합되었군, 따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륵이 신력을 회수하며 처용의 의문에 답했다.

마녀의 육체에 자리한 태초의 그릇.

그 태초의 그릇이 마녀의 육체와 완전히 일체화가 되어 버렸다고 미륵이 설명을 덧붙였다.

“레나라는 존재 자체가 태초의 그릇이 되어 버린 셈이지.”

마녀가 자기 자신을 언급하며 처용에게 말하고는.

“이제 좀 대화할 마음이 생깁니까? 관철의 대신.”

미륵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

붉은 눈동자를 일렁이던 미륵이 마녀를 바라보며 침묵하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여래가 미륵의 옆에 서며 말했다.

마녀가 여래를 잠시 바라보고는 다시 눈을 돌려 미륵을 응시했다.

그리고.

“수호신…… 이 녀석이 과거로 되돌아온 이유. 그것이.”

이곳에 제 발로 온 목적.

미륵을 향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처용의 회귀, 심지어 그 이유를 언급하자 모두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마녀는 하던 말을 잠시 멈추고는.

“그것이…… ‘순환의 포식자’가 계획한 일입니까?”

미륵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순환의 포식자?”

마녀의 말이 울리자 처용이 의문을 드러냈고.

[…….]

여래와 보살 역시 잘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드러내며 침묵했다.

그러나.

[……!!]

미륵은 안대에 가려지지 않은 오른쪽 눈동자를 크게 뜨며 경악을 드러냈다.

“미륵 님?”

가장 먼저 미륵의 반응을 확인한 처용이 의문을 담아 묻자, 다른 두 대신도 미륵을 바라봤다.

미륵이 경악을 지우지 못한 채 계속 침묵하자.

“다시 한번 직접적으로 묻죠.”

마녀가 미륵을 향해 재차 질문했다.

“시간을 되돌린 자는 ‘프로토’입니까?”

마녀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온 순간.

-쿠구구. 쿠구.

태룡전이 옅게 떨리며 울음을 토했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미륵이 계속 침묵에 잠겨 있자.

“내 말에 대답해. 이름 없는 크타니드! 아니.”

마녀가 인상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대 우주의 생존자!”

마녀의 말이 끝난 순간.

-스르릉.

그녀의 목에 칼날이 겨누어졌다.

“설명해, 이게 무슨 상황이냐?”

역천의 절을 마녀에게 겨눈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녀는 처용은 쳐다도 보지 않고 미륵을 응시한 채 답을 기다렸다.

그때.

[혹여-.]

침묵하던 미륵의 입이 열렸다.

[나는 조크-크타니드에게 저항하지 않고 안식을 받아들였느냐?]

회귀 전, 미륵은.

-악의 종주를 막아섰던 미륵 님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홀로 악의 종주를 막아선 이후 소멸했었다.

이것이 처용에게 전해 받은 정보였다.

미륵이 그 정보를 떠올리며 마녀에게 묻자.

“…….”

마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미륵이 마녀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에 잠긴 듯, 짧게 침묵했다.

그리고.

[네년이 생각한 가설이…… 맞을 가능성은?]

마녀를 향해 다시 물었다.

그러자.

“……50%”

짧게 침묵한 마녀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반 정도는 확신한다는 뜻.

그 말에.

[제…… 길……!]

미륵이 오른손을 들고 거칠게 일그러진 얼굴을 쓸며 침음을 흘렸다.

처음 보는 미륵의 거친 반응에 다른 이들이 침묵할 때.

“후, 거래를 제안합니다. 관철의 대신.”

마녀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곳에 발을 들인 진짜 목적을 이야기했다.

얼굴에 손을 엎은 미륵이 붉은 눈동자를 치켜뜨며 마녀를 바라보고는.

[하아, 칼을 내리거라.]

마녀의 목에 역천의 절을 겨눈 처용에게 말했다.

처용은 그 말에 군말 없이 칼날을 내렸다.

그러자.

“태초의 그릇에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가 새긴 추적 낙인이 있습니다. 그걸 없애 주십시오.”

마녀가 자신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다.

뒤이어.

“추적 낙인을 없애주면…….”

그 요구에 대한 대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태초의 그릇을 이용해 당신에게 걸린 제약을 일부 해제해 드리죠.”

마녀의 말이 끝나자, 미륵이 눈을 감으며 침묵에 잠겼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쾅! 우우웅!

미륵이 자신의 신물, 관철의 조정자를 소환하며 잿빛 신력을 내뿜었다.

그 모습을 본 마녀는.

-우우웅.

마기가 아닌 반투명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가슴께로 두 손을 모았다.

중지와 검지를 맞대 손으로 삼각형 모양을 그려낸 순간.

-화아아!

마녀에게서 뿜어져 나온 반투명한 에너지들이 앞에 뭉치더니.

-화아아!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색과 백색이 섞여 일렁이는 타조알 크기의 타원형 물체.

검은색이 일렁이는 부분은 새하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백색이 일렁이는 부분에는 검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하얀 우주와 검은 우주가 작은 원 안에 담겨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치이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선명한 빛을 발하는 붉은 문자가 떠올라 있었다.

[사라져라.]

미륵이 마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 태초의 그릇을 향해 관철의 조정자를 겨누며 말하자.

-차랑. 차라랑.

관철의 조정자에 달린 고리들이 맑은 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아아!

잿빛 신력들이 태초의 그릇을 감싸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치이이!

태초의 그릇에 새겨진 붉은 문자가, 마치 발악하듯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까가가각! 까각!

미륵의 잿빛 신력이 휘몰아치며 붉은 문자를 외부에서부터 깎아내리고 있었다.

“윽…….”

마녀가 무언가에 영향을 받았는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침음을 흘렸다.

[버텨라. 정신을 놓으면 죽을 것이다.]

미륵이 경고하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약 5분 정도 흐르자.

-파아아……!

빛을 발하며 발광하던 붉은 문자가 가루처럼 흩날리며 모두 사라졌다.

바알이 새긴 추적 낙인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열쇠를 꺼내. 한처용.”

마녀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용이 미륵을 응시하자, 미륵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우우웅.

처용이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들자.

-우웅!

태초의 그릇이 옅은 파동을 내뿜었다.

이에 공명하듯.

-우웅. 우우웅!

태룡전의 열쇠 역시 금빛 파동을 내뿜었다.

그리고.

-!

서로 공명하며 떨림을 토하던 태초의 그릇과 태룡전의 열쇠가 동시에 떨림을 멈추었다.

그 순간.

[태초의 에테르(ether)를 일부 계승합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이 울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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