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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43화 (343/726)

#343화

“크허……억.”

역천의 절에 가슴이 꿰뚫린 상급 마인이 피를 뿜으며 괴성을 토해내고는.

-탁.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의회주들은 이미 도주했고 저택은 백염에 둘러싸여 퇴로가 차단된 상태.

그 와중에 로스와 디바우러가 마기를 흩어버리는 전류를 끊임없이 내뿜고 있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은 상급 마인들이라해도,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빠져나간 이는 단 한 명도 없이 전멸.

아니, 살아남은 마인이 한 명 있긴 했었다.

“이 간악한 배신자 년이…… 네년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마기로 만들어진 쇠사슬에 살점이 꿰뚫리고 육체가 구속된 상급 마인이 소리쳤다.

그러자.

“네놈이 굳이 힘들게 입을 열 필요는 없다. 멍청한 녀석.”

구속된 상급 마인 앞에 선 마녀가 작은 미소를 띠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상급 마인들이 정보를 내뱉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용이 마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회귀 전, 처용은 마인들을 붙잡아 그들에게 정보를 얻은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상급 마인들은 예외였다.

상급 마인 중에는 사로잡혔음에도 정보를 뱉은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 모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고문을 버티다가 죽었다.

“후환을 남기는 건 좋지 않아.”

-스르릉.

처용이 역천의 절을 쥐며 말하자.

“네가 지식이 많다고는 해도, 흑마법에 대해 전부 아는 건 아니겠지.”

마녀가 고개를 돌려 처용을 바라보고는 진지하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굳이 이놈이 입을 열 필요는 없어, 뇌를 해킹하든, 머리 뚜껑을 따든 방법은 많으니까.”

마녀의 싸늘하고도 살기 어린 목소리에, 상급 마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흐음.”

처용이 상급 마인과 마녀를 번갈아 보며 고민하듯 침음을 흘릴 때.

“역천군주.”

제시카가 처용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뒤에는 메리와 월리엄을 부축한 빌리가 함께 있었다.

월리엄을 구속하고 괴롭게 만들던 악령은 릴이 사라지며 함께 사라진 상태였다.

지금은 정신을 차린 상태.

“……가주를 구해서 다행이네.”

처용이 월리엄을 보며 말하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시카가 처용이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만약 처용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로스차일드는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것이다.

아니,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로스차일드의 모든 것들이 적들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컸다.

지금껏 이룬 기술들, 정보, 인력, 자원 등, 모든 것들이 적들의 손아귀에 쥐어졌을 것이다.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그런 끔찍한 상황을 처용이 도와준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다.

“오늘 일은 제 가문의 이름을 걸고 보답하겠습니다.”

제시카가 처용에게 한 번 더 감사를 전하고는.

“그보다도…… 저자는?”

상급 마인 하나를 붙잡은 마녀를 보며 경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느껴지는 기운은 틀림없는 마기, 게다가 농도가 아주 짙은 마기였다.

눈앞에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은 상급 마인, 그것도 ‘마녀’라는 이명을 가진 상급 마인이었다.

하지만.

‘네임드 상급 마인이…… 의회주들하고 격돌했다?’

제시카는 조금 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급 마인들은 모두 의회주들의 명령을 따르는 정예 마인들.

그런 그녀가 잭을 암살하려 했고 처용을 도와주었다.

게다가 마인이라면 강렬한 적대감을 가진 처용이 가만히 있었다.

“적은 아닙니까?”

제시카가 궁금한 듯 묻자.

“……일단은.”

처용이 마녀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마녀는 처용을 돕겠다 약속했지만, 아직 확신은 없었으니까.

그때.

“월리엄 로스차일드.”

마녀가 월리엄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자 제시카와 빌리가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녀는 그런 그들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나를…… 기억하고 있나?”

로스차일드 가주, 월리엄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마녀의 말이 울리자, 월리엄이 마녀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레나.”

마녀, 레나를 알아본 듯 착잡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레나 르블랑…… 르블랑 가에 생존한 아이가 있었을 줄이야.”

월리엄의 말이 울리자.

“……데미갓 프로젝트의 생존자?”

메리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듯 말했다.

그 말에, 제시카와 빌리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과거 비도덕적인 짓을 저질러 가문 연합에서 숙청되었던 르블랑 가.

그러나 사실 그들은 연합이 저지른 잔혹한 실험에 희생당한 것이었다.

입막음으로 인한 몰살.

이것이 르블랑 가가 사라진 진짜 이유였다.

“마인이 된 건…… 우리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나?”

월리엄이 마녀, 레나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묻자.

“…….”

레나의 눈가가 살짝 일그러지며 짧게 침묵했다.

동시에.

-우웅.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한순간 요동치듯 흔들렸다.

마치 분노를 참는 듯한 모습.

그 모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상태였다.

-슈우우.

마녀가 진정하려는 듯, 짧은 심호흡을 내뱉으며 마기를 억눌렀다.

정확히는 정신이 조금 깨어난 또 다른 자기 자신.

현재의 마녀가 보이는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지금 네가 나와 봤자 좋을 게 없다.’

마녀는 자기 자신을 향해 진정하라는 듯, 속으로 말하고는.

“처음에는…… 그랬었지.”

과거의 자신을,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안에 있는 레나의 심정을 생각하며 월리엄의 말에 답했다.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월리엄이 마녀를 바라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

레나에게는 충분히 복수심을 가지고도 남을 만한 명분이 있었으니까.

그런 월리엄의 말에 마녀가 잠시 침묵하고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생각인가?”

월리엄의 질문에 질문으로 받아쳤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여부에 따라 월리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달리하겠다는 뜻이었다.

월리엄 역시 그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전대 가주와 제이크가 저지른 짓에 대한 가문의 책임을 회피할 생각 따윈 없다.”

마녀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다.

그러자.

“……그거면 됐어.”

마녀가 월리엄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흑관(黑棺).”

사로잡힌 상급 마인 앞에 선 마녀가 손을 들어 흑마법을 발현하자.

-쩌저저적.

짙은 마기가 상급 마인을 상자처럼 감싸며 직각의 관을 형성했다.

-끼이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검은 관의 관뚜껑이 닫혔고.

-스르르.

마치, 무덤 속에 묻히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녀가 월리엄에게서 멀어지자.

“7년 전, 데미갓 프로젝트를 진행한 건, 당신이 아니었습니까?”

방금의 대화를 들은 처용이 궁금한 듯, 월리엄에게 물었다.

월리엄은 처용을 잠시 바라보고는.

“우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처용을 향해 감사부터 전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가문의 모든 것이 제이크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후계자인 제시카 또한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여러모로 눈앞의 젊은 동양인은 은인이었다.

처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침묵하자.

“제가 가주 자리를 이어받은 건 5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월리엄이 처용의 질문에 대해 답했다.

즉, 데미갓 프로젝트를 총괄한 이 중 하나로 의심되던 로스차일드 가주.

월리엄은 그 당시의 로스차일드 가주가 아니었다.

“데미갓 프로젝트를 진행한 전대 가주는요?”

처용이 월리엄을 향해 전대 가주의 행방을 묻자.

“전대 가주는…….”

월리엄이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말을 흐렸다.

그때.

“그놈은 섀도우 헌터들에게 심판을 받았다.”

뒤돌아 있던 마녀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 말에.

“그게 무슨!?”

제시카와 메리, 빌리가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전대 로스차일드 가주는 살해당했다.

이 사실은 가문 내에서도 극비로 다뤄지던 정보 중 하나였다.

누가 가주를 살해했는지도 밝혀내지 못한 상황.

때문에 월리엄이 처용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지 못하던 진실이 마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월리엄 역시 눈이 커지며 놀람을 표하고는.

“……그런가, 그들의 짓이었나?”

이내 곧,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군, 그걸로 복수를 끝낸 건가?”

처용 역시 대략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읊조렸다.

섀도우 헌터들은 7년 전, 연합이 진행하던 실험의 피해자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데미갓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주요 가문의 가주들은 척살 대상이었다.

“아무리 섀도우 헌터라 해도, 도대체 누가…….”

제시카가 의문을 담아 읊조렸다.

비록 로스도 없을 때라고 해도, 무려 로스차일드 저택이었다.

그 삼엄한 보안을 뚫고 도대체 어떻게 로스차일드 가주를 암살했단 말인가?

“한 명밖에 없지.”

처용이 제시카의 의문에 답하듯, 단호한 목소리로 말함과 동시에 마녀를 응시했다.

“뭐, 당연할 걸 확인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한처용.”

마녀가 처용의 예상이 맞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조커.”

“조커.”

제시카와 메리가 동시에 알아차린 듯, 범인의 이름을 말했다.

오랜 시간 수사했음에도 찾지 못한 범인.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섀도우 헌터들의 수장, 조커였다.

제시카가 이 일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고민할 때.

“업보를 짊어진 셈이지요.”

월리엄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대 가주가 살해당했음에도, 원한이나 분노는 전혀 없는 듯 보였다.

“보복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처용이 월리엄을 향해 물었다.

막대한 세력의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 살해당했다.

복수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상황.

그러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는 의미가 없습니다.”

월리엄은 진심으로 섀도우 헌터들에게 보복할 생각이 없는 듯 말했다.

“과거에 시작된 잘못이 세대를 이어 반복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겠지요.”

말을 마친 월리엄이, 조금 떨어져 있는 마녀, 레나를 응시했다.

레나는 잔혹한 과거를 가진 만큼, 가문에 대한 원한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가주를 보고도 복수를 행하지 않았다.

월리엄 역시 그녀와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군요.”

처용은 월리엄의 생각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

“으어? 으…… 으어. 어흐, 어?”

우두커니 선 채, 멍하니 서 있던 오거가 머리를 이리저리 까닥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흐음…… 이게, 아닌가? 아니, 이건가?”

오거의 앞에는 마녀가 검은 구슬을 움켜쥔 채 마기를 불어넣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쥔 검은 구슬은, 잭이 오거를 조종할 때 사용하던 아티팩트였다.

“그놈을 조종할 생각인가?”

처용이 마녀를 향해 묻자.

“까다롭긴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 같거든.”

마녀가 검은 구슬을 계속 조작하며 말을 이었다.

“적들의 기술로 적들을 쳐부순다……. 이 말이 마음에 들더라고.”

이전, 처용이 검은 대지에 잠입할 때, 여래에게 했었던 말.

처용이 했었던 말을 마녀가 언급하자, 처용이 어이없는 듯 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제대로 완성된 기갑 마인은, 웬만한 헌터의 스킬과 아티팩트의 효력을 무효화시켜 버리니까.”

“그래서 내 스킬이…….”

마녀의 말에 빌리가 오거를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같은 성별을 상대로는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빌리의 특성.

그러나 오거는 그 특성이 통하지 않는 듯, 빌리를 힘으로 밀어냈었다.

판테라움 기계 장치와 마수 실험을 결합한 인간병기, 기갑 마인.

B급 마인이 기갑 마인화가 되면, A급 마인에 버금가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헌터의 스킬을 무효화시키는 능력까지.

그들은 마수만큼이나 위협적인 적이었다.

“이 무식한 놈이 기갑 마인이 된 건 좀 의외지만…… 차라리 잘 되었군.”

마녀가 오거를 향해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같은 편이지만, 남보다도 못한 아군이었던 존재.

그런 오거가 병기가 되어 손에 쥐어진 상태였다.

“골수까지 발라서 알뜰하게 써먹어 주마.”

-쩌저저적.

마녀가 조금 전, 상급 마인을 가둔 흑마법, 흑관을 사용해 오거를 어둠 속에 가두었다.

마녀가 미소를 지으며 오거를 챙길 때.

“초대를 한 건 저인데…… 대접은커녕, 오히려 도움만 받았군요.”

월리엄이 처용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곳을 수습하는 대로, 제가 직접 한국에 찾아가죠.”

마인들의 습격과 대악마의 난동으로 난장판이 된 저택 상황.

더 이야기를 하려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죠.”

처용 역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월리엄의 말에 동의했다.

-위이잉. 위잉.

원래대로 복구된 로스가 청소 로봇들을 활성화시켜 엉망이 된 저택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택의 수리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안드로말리우스가 사방에 흩뿌린 독.

그 독들을 치우는 것이 가장 성가신 일이었지만.

[그 시커먼 도마뱀이 뱉어낸 오물들은 다 태워 버렸다.]

그 일은 아직 시간이 남아 지상에 머물고 있던 크루마가 해결했다.

진심으로 안드로말리우스의 독이 보기 싫다는 듯, 모조리 태워 없애 버렸다.

“그……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시카가 무너진 저택 천장 너머, 크루마의 거대한 분신체를 향해 감사를 전하자.

[그 지저분한 것의 흔적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크루마는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미세하게 남은 독들마저 태워 버렸다.

그때.

“네 성역으로 돌아갈 건가?”

오거를 회수한 마녀가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왜?”

처용이 많은 의미가 함축된 물음을 던졌다.

마녀는 협력을 약속했지만, 그녀가 차후 어떻게 행동할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과 같은 미래의 지식이 있는 자.

자칫 잘못하면, 정말 위협적인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변수였다.

처용이 마녀를 보며 고민을 계속할 때.

“같이 가지.”

마녀가 처용을 따라 태룡전으로 가겠다 말했다.

“무슨 생각이냐?”

처용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묻자.

“관철의 대신을 만나야겠어.”

마녀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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