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대악마인 안드로말리우스가 소환되고 처용 측과 마인 측이 막 충돌했을 때.
‘젠장,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원형 홀의 4층 난간에서 기척을 죽인 채 싸움을 지켜보던 붉은 머리의 여성.
마녀, 레나가 속으로 읊조리며 말했다.
그녀는 잭을 추적하던 도중,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은밀히 숨어 있는 중이었다.
지금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전장을 관찰하고 있었다.
전장을 빠르게 살피고는.
‘제이크…… 그리고 저건 로스차일드 가주인가?’
눈을 돌려 4층 건너편에 있는 잭을 응시했다.
로스차일드 가주로 보이는 이가 잭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듯 보였다.
아마도 잭은 로스차일드 가주를 세뇌하여 정보를 뽑아내고 가문을 차지할 생각인 듯했다.
그리고.
“이 괴물 자식이 사사건건 방해를!”
처용이 이곳에 나타난 것만큼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인상이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처용 역시 이 장소에서 잭을 마주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듯 보였다.
마녀는 지금의 상황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기회다.’
지금의 상황이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캬하하하하!]
대악마 안드로말리우스가 소환되고 육체를 개조당한 듯 보이는 오거에 이어 상급 마인들까지.
격렬한 싸움 속에서 도저히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다.
자칫 잘못 끼어들었다간, 아무런 이득도 취하지 못하고 낭패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신중하게 전장을 살피며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찰나.
“빙결부 – 만년빙정.”
-쩌저저저적!
처용이 안드로말리우스의 화신체를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그 순간.
[위험합니다.]
[신속한 방어를 권장해 드립니다.]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리며 시스템이 나타났다.
마치, 시스템의 알림과 비슷한 목소리.
얼마 전, 새로운 능력을 깨우침과 동시에 얻었던 능력이었다.
[태초의 그릇이 미세하게 깨어납니다.]
자신의 몸 안에 숨겨진 무언가, 태초의 그릇이라는 물건이 깨어나면서부터 생긴 능력.
불과 조금 전, 갑작스럽게 처용을 마주쳤을 때도.
[신속히 아티팩트에 빙의하십시오.]
[무사히 넘어갈 가능성은 75%입니다.]
태초의 그릇, 시스템과 흡사한 목소리가 알림을 보내며 처용을 피할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알림을 무시하지 않고 따른 덕분에 처용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위험한 상황에 닥치거나,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방법을 제시해 주는 시스템의 목소리.
잭을 추적하며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능력 때문이었다.
지금 역시도.
[위험합니다. 신속히 방어를 준비하십시오.]
처용이 무언가 위험한 기술을 사용하려 하자, 바로 시스템이 경고를 보냈다.
마녀가 전장을 빠르게 살피자.
-위이잉!
얼음조각상이 된 안드로말리우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푸른 고리.
그 고리가 당장이라도 터질 듯,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젠장! 일단 방법부터 말해.’
전장 상황을 확인한 마녀가 속으로 다급하게 말하자.
[공격 측정 중…….]
[강력한 빙 속성 광역 공격으로 추정.]
[빙결 속성의 악령으로 변해 공격을 상쇄시키십시오.]
시스템이 최선의 판단을 계산하고는 마녀에게 해답을 이야기했다.
‘헬 프로즌 팬텀!’
마녀는 군말하지 않고 시스템의 말에 따라 스킬을 발동했다.
-스스스.
마기로 만들어진 검푸른 서리 안개가 마녀의 주변에 둘러졌다.
이윽고 서리 안개가 마녀를 완전히 뒤덮자.
-캬아아.
마녀가 검푸른 악령으로 변함과 동시에 벽으로 스며들 듯 사라졌다.
그 순간.
“절대영도(絶對零度) – 폭(爆).”
-화아아!
처용이 만들어낸 푸른 고리가 터져 나가며 환한 빛을 내뿜었다.
-쩌저적! 쩌적!
터져 나간 빛을 마주한 모든 이들이 순식간에 얼음 동상이 되어 버렸다.
마녀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빙결 속성 악령으로 변해 벽에 스며든 탓에 얼음조각상이 되는 일은 면했다.
하지만.
-쩌저적!
마녀가 스며든 벽에 강렬한 빙결 속성이 응축된 서리가 내려앉았다.
처용의 공격에 의해 몸이 구속되어버린 상황.
‘이런, 빠져나가야-.’
마녀가 마기를 끌어 올리고는 얼음을 부수기 위해 스킬을 준비하는 순간.
[천천히 은밀하게 빠져나오십시오.]
[급하게 구속을 풀었다간, 들통날 겁니다.]
시스템이 경고하듯 메시지를 전해왔다.
‘젠장, 어영부영 있다가는 제이크를 놓칠 수도 있다고!’
마녀가 메시지를 보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자.
[……당신의 목표는 제이크 로스차일드의 ‘사살’입니다.]
[본 시스템은 ‘레나’의 목표 수행을 위해 조언할 뿐입니다.]
[급하게 구속을 풀었다간, 일을 그르칠 확률이 80%입니다.]
시스템이 즉각 대답했다.
마치, 레나의 행동을 진심으로 만류하려는 듯, 경고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이 빌어먹을 깡통이-!’
마녀가 시스템을 향해 불만 어린 목소리로 읊조렸다.
누군가에 의해 행동이 강제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스르르.
마녀는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시스템의 말에 따라 조심스럽게, 천천히 구속을 풀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시스템의 말이 현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캬아아아!]
안드로말리우스가 자신을 얼린 얼음들을 깨부수며 구속을 풀었고.
“피학의 형상.”
-화르르륵.
의회주 릴이 검은 화염을 광범위하게 퍼트리며 나타났다.
‘……그래, 저 늙은 여우가 혼자 움직일 리가 없었지.’
마녀가 릴을 보며 굳은 표정으로 읊조렸다.
근처에 릴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숨어 있는 릴의 기척이나 마기를 읽어내지 못했었다.
만약, 시스템의 말을 무시하고 섣불리 행동했다면?
‘위험했어.’
숨어 있던 릴에 의해 위치가 발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의 말을 잘 이행한 덕분인지, 릴에게 들통나는 일은 없었고.
-화르륵.
릴의 스킬 덕분에 구속을 더 빨리 풀 수 있었다.
“철벽부 – 폭염 철갑탄!”
-쿠구구! 쿠구!
처용의 공격을 시작으로 다시 전장이 활발하게 타올랐다.
마인들과 대악마, 처용 측이 격렬한 싸움을 이어갈 때.
“혈옥.”
갑작스럽게 나타난 뱀파이어, 루나가 다섯의 상급 마인들을 피로 휘감으며 사라졌다.
예상 못 한 상황에 제이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순간.
[지금입니다.]
[은폐 스킬과 아티팩트의 힘을 합쳐 접근해야 합니다.]
시스템의 알림이 울렸다.
[성공 확률은 90%입니다.]
지금 움직인다면, 제이크를 죽일 수 있다.
시스템이 확신하듯 말하자.
‘클로킹 팬텀.’
마녀의 곧장 시스템이 권장해 준 스킬을 발동했다.
-스르르.
클로킹 팬텀은 기척과 모습을 완전히 지우는 유령으로 변하는 스킬이었다.
마녀는 스킬을 은폐 스킬을 발동함과 동시에.
-스르륵.
몸에 두르고 있던 로브의 모자를 들어 머리를 가렸다.
그러자 몸을 숨긴 마녀의 은폐가 더 정교해졌다.
그녀가 입고 있는 로브는 다름 아닌.
[클로킹 로브 / 아티팩트]
악몽 속에서 처용이 레나에게 건네주었던 투명 망토였다.
처용은 레나에게 주었던 투명 망토를 회수하지 않았다.
아니, 긴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차마 회수하지 못했었다.
그 투명 망토는 아직도 레나에게, 마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요긴하게 쓰고는 있지만…… 마음에 안 들어.’
마녀는 처용이 준 이 아티팩트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은 활용하는 것이 현명했다.
-스르르륵.
준비를 마친 마녀가 은밀하게, 그리고 아주 신중하게 제이크를 향해 이동했다.
“역천군주……!”
제이크는 마녀가 점점 다가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애초에 주변을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처용은 성좌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변수.
마인들이 완전한 대악마의 화신체를 소환했음에도, 처용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소환된 대악마는 대인전에서 가장 강력한 베놈 엠퍼러, 안드로말리우스.
처용은 의회주들도 감당할 수 없는 강력한 독에 정면으로 맞서는 중이었다.
심지어 대악마가 만들어내는 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
제이크는 어떻게든 처용의 발을 묶고 뒤에 있는 헌터들부터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는지,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게 제이크가 전장에 생각을 집중하고 있을 때.
-샤락.
드디어 마녀가 제이크의 뒤를 점했다.
‘팬텀 사이드.’
-스르르릉!
기회를 잡은 마녀가 마기를 모아 대낫을 만들어 내었다.
“……네년!?”
뒤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살기에 잭이 당황을 표했다.
“죽어라! 제이크 로스차일드!”
마녀가 검녹색의 불길이 타오르는 대낫을 치켜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죽음의 선고!”
-사가가각!
짧고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대낫의 칼날이 잭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이윽고.
-쩌저적! 푸확!
잭의 몸이 피를 튀기며 반으로 쪼개졌다.
“해치웠다……!”
마녀가 반으로 갈라진 제이크를 보며 읊조리자.
“뭐?”
“이런!”
릴을 포함한 마인들이 당황을 표했다.
“마녀?”
처용 역시 갑작스럽게 나타나 잭을 죽인 마녀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싸움을 이어가던 전장 속에 혼란이 찾아왔을 때.
[사살에 실패했습니다.]
[당장 도망치는 것을 권장합니다.]
마녀에게서 시스템이 울려왔다.
“무슨 소리야? 저 새끼 반 토막 난 거 안 보여?”
시스템의 알림에 마녀가 의문을 드러내며 말한 순간.
“이런 건방진 애새끼가-!”
-스르르륵.
피를 뿜으며 반으로 갈라진 잭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슈륵! 슈르르.
마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린 듯, 반으로 갈라 베어지기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반으로 갈라졌던 잭의 몸이 일어나 다시 붙은 순간.
-파사삭! 파직!
그가 왼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에 금이 가며 부수어졌다.
“네년이 나를 노리는 것을, 내 모를 줄 알았더냐?”
잭이 항상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모시는 성좌에게서 받은 대악마의 성물이었다.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다른 성물과는 다르게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권능만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 일회성 능력은 다름 아닌.
“네년을 잡기 위해 ‘사망 무효’까지 쓰는 건 아까웠지만, 그분께서 허락해 주셨으니…….”
신관이 죽음에 달하는 순간을 무효화시키고 다시 되돌리는 권능이었다.
“제기랄!”
암살에 실패했음을 깨달은 마녀가 뒤로 물러나며 도주하려 했다.
그 순간.
“다크니스 기가 그라비티.”
-쿠구구구!
마녀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 강력한 중력이 내려앉았다.
“고스트 워크.”
-스르르.
마녀가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악령으로 만들며 빠져나가려 했지만.
“검은 족쇄.”
-스르릉! 철컥!
뒤에서 검은 사슬에 묶인 족쇄가 날아와 마녀의 팔에 채워졌다.
“잡았구만.”
족쇄와 연결된 사슬을 쥔 남자는 잭과 같은 의회주, 솔저였다.
“젠장!”
솔저의 모습을 본 마녀가 낭패감 어린 표정을 짓고는 족쇄를 풀기 위해 낫으로 사슬을 내리쳤다.
그러나.
-까가강!
강한 힘으로 내리쳤음에도 사슬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판테라움!”
검은 사슬은 다름 아닌 판테라움으로 제작된 사슬이었다.
마녀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슈우우…….
몸에서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팔다리 하나쯤은 날려도 문제없갔디?”
-스릉!
왼손으로 사슬을 굳게 쥔 솔저가 오른손에 단검을 역수로 쥐며 말하자.
“상관없다. 잠시 붙들어놓기만 하면 된다.”
잭이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르릉!
솔저가 사슬을 강하게 쥐며 당기자.
“큭!?”
마녀가 솔저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갔다.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악령으로 변화시키기도 해봤지만.
-화아아! 스르륵……!
악령화를 시도할 때마다 판테라움 족쇄가 빛을 발했고 악령화가 즉시 해제되었다.
“젠장!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며!?”
마녀가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씀과 동시에 소리치듯 말하자.
[실패할 확률이 10%였습니다.]
그런 마녀의 말에 대답하듯, 시스템의 알림이 울려왔다.
“이 쓸모없는 깡통 바가지가-! 빨리 대책부터 말해!”
[전투 시뮬레이션 계산 중…….]
마녀가 시스템을 향해 거칠게 말할 때.
“태초의 그릇이 완전히 깨어났군!”
그 모습을 본 잭의 얼굴에 환희의 미소가 피어났다.
“네년을 그분께 바치면…… 그 힘은 우리의 것이 되리라.”
잭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페이탈 워커.”
-스르륵!
솔저가 상대의 뒤로 빠르게 이동하는 스킬을 사용하며 마녀의 뒤에 나타났다.
“그라비티 마운트.”
-쿠구구!
잭 역시 마녀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더 강한 중력을 가중시켰다.
그때.
“……블러디아.”
마녀가 거친 마기를 내뿜으며 자신의 가디언을 소환했다.
-캬아아!
여섯 개의 팔에 각각 대낫을 쥔 거대한 유령이 마녀를 감싸며 나타났다.
“발악을-!”
솔저가 가디언이 휘두르는 대낫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마녀가 두 의회주를 상대로 발악할 때.
‘좋지 않군…….’
4층의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작게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숨어 있던 마녀가 잭을 노린 듯 보였다.
하지만 실패했고 역으로 당하고 있었다.
게다가 잭과 솔저는 마녀에게 태초의 그릇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 보였다.
마녀가 놈들의 손에 넘어가면 좋을 게 없는 상황.
[어딜 한눈을 파는 것이냐!]
-콰아아아!
안드로말리우스가 4층을 신경 쓰는 처용을 향해 소리치며 강렬한 맹독의 브레스를 내뿜었다.
“칫, 독류태극권-.”
생각을 멈춘 처용이 안드로말리우스의 브레스를 방어하려는 그 순간.
-피이이이!
처용을 중심으로 검은 파동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스르륵. 스륵.
순식간에 주변 일대가 회색빛으로 변하며 멈추었다.
다가오는 안드로말리우스의 브레스도.
4층에서 격렬히 충돌하는 잭, 솔저, 마녀도.
주변에서 전투를 치르는 제시카와 빌리, 마인들까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모든 이들이 제자리에 멈추었다.
게다가.
‘……뭐야?’
회색빛으로 변하며 멈춘 대상은 처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처용이 당황할 때.
“한처용.”
-스르르.
처용의 앞에 공간이 일렁이더니 마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4층에 있는 마녀가 아닌.
“학살의 마녀?”
악몽 속에서 마주쳤었던, 전성기의 마녀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