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잭이 왼손 손아귀에 들어 보인 검붉은 구슬.
“내 명령에 따라 움직여라.”
-슈르르.
그 구슬에 마기를 주입하며 잭이 명령을 내리자.
-콰쾅! 쿠구궁!
거대한 덩치의 괴한이 천장을 뚫고 떨어져 내렸다.
3미터가 훌쩍 넘는 큰 키와 사람이라기보다는 오우거에 가까울 정도로 팽창된 근육.
그리고.
-후우욱! 후욱!
거친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입가에 씌워진 방독면.
무언가 개조를 당한 듯, 몸 여기저기에 박힌 검은 기계 장치들도 보였다.
게다가.
“……오거?”
괴한의 얼굴은 다름 아닌, 악몽 속에서 마주쳤었던 상급 마인, 오거의 것이었다.
게다가 변한 오거의 모습 또한 처용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마수화 개조? 벌써 저 기술이 실용화되었다고?’
육체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검은 기계 장치.
그것을 구성하는 광물은 다름 아닌, 판테라움이었다.
판테라움 기계 장치는 몬스터 마수화 실험으로 인해 나온 부산물들이었다.
그런 마기를 응축시킨 판테라움 기계 장치로 육체를 개조한 마인.
회귀 전, 저항군들이 ‘기갑 마인’이라고 부르던 병기들.
마인들을 베이스로 실험하여 탄생한 인간 병기였다.
“크워어어어!”
기갑 마인이 되어버린 오거가 거친 입김을 내뿜으며 포효했다.
‘……이성이 없군.’
처용이 오거를 유심히 관찰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하얗게 뒤집힌 눈, 제어가 되지 않는 듯,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마기.
기계 장치 주변으로 두드러진 핏줄들까지.
오거는 이성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런 이성이 없는 오거를 잭이 통제하는 듯했다.
‘그렇군. 프로토타입이었나?’
본래 육체가 개조된 기갑 마인들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남아있었다.
반면에 오거는 이성이 사라지고 잭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이 되어있었다.
아마도 첫 번째로 개조된 기갑 마인, 프로토타입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내 식사를 방해하면, 네놈부터 죽여 버리겠다.]
안드로말리우스가 잭을 향해 경고하듯 말하자.
“염려 마십시오. 방해꾼들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잭이 정중한 목소리로 안드로말리우스를 향해 답했다.
그리고.
“저 계집년을 죽여라!”
제시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우우웅.
열 명의 상급 마인들이 각자 마기를 모으기 시작함과 동시에.
“크워어어!”
기갑 마인이 된 오거가 제시카를 향해 돌진했다.
“어딜!”
빌리가 제시카의 앞에 서서 오거를 가로막았다.
-스스스.
빌리의 육체가 빠르게 변하더니 ‘남자’의 형상을 취했다.
이윽고.
-콰쾅!!
오거의 주먹과 빌리의 주먹이 서로 충돌하며 굉음을 자아냈다.
본래라면, 같은 성별을 상대함에 있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빌리가 오거를 압도해야 했지만.
“큭!?”
빌리는 오거를 즉시 밀어내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짧은 충돌 결과, 어느 한쪽이 밀려나지는 않고 둘이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그때.
-슈르륵. 슈륵!
허공에 마기들이 스멀스멀 뭉치며 검은 방울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더니.
“다크니스 그라비티.”
지팡이를 쥐며 마기를 집중하던 잭이 스킬을 발동했다.
-쿠구구!
허공에 생성된 검은 방울들이 진동하며 몸을 떨자, 주변 일대에 강력한 압박감이 울렸다.
-우드득! 우득!
마치, 중력이 수십 배 이상은 강해진 듯, 주변에 있던 장식들과 조명, 가구들이 찌그러지며 부서졌다.
“으음……!”
“윽!”
빌리와 메리가 중력에 영향을 받은 듯, 침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제이크!”
제시카 역시 거세진 중력에 저항하며 제이크를 향해 소리쳤다.
주변 일대의 중력을 조작하는 스킬.
의회주 잭이 발휘하는 주력 스킬이었다.
게다가, 광범위한 스킬임에도 불구하고 아군인 마인들과 안드로말리우스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화력을 쏟아부어라.”
스킬을 사용한 잭이 마인들을 향해 명령하듯 말하자.
-우우웅!
-파지지직!
상급 마인들이 일제히 마기를 끌어모으고는.
“데몬 저지먼트(Demon Judgment)!”
“데몬 저지먼트(Demon Judgment)!”
각자의 마기를 한 지점으로 모아 강력한 스킬을 발동했다.
-화아아!
모여든 마기가, 거대한 검은 악마의 상반신 모습을 취하더니.
-콰아아!!
입을 크게 벌리며 제시카와 빌리가 있는 방향으로 검은 광선을 토해냈다.
동시에.
[캬아아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안드로말리우스 또한, 힘을 모아 맹독의 브레스를 내뿜었다.
중력으로 발이 묶인 찰나 들어오는 강력한 광역 공격들.
“아테나 님……!”
제시카가 자신의 성좌를 부르며 각오를 다지고 방어를 준비할 때.
“다중 팔괘금강문!”
-쿠구구! 쿠구! 쿠구구-!!
처용과 제시카, 안드로말리우스와 마인들 사이로 거대한 벽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쿠콰콰!
처용이 소환한 여섯 개의 팔괘금강문과 마기가 충돌했고.
-치이! 치이이! 우드득!
팔괘금강문에 균열이 일어나고 녹아들며 하나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여섯 개의 팔괘금강문 중, 세 번째 문이 막 부서졌을 찰나.
“빙결부 – 설산의 해일!”
-쏴아아-!
부서진 팔괘금강문의 파편과 함께 강렬한 눈사태가 쏟아져 나왔다.
[소용없다!]
안드로말리우스가 양팔에 마기를 응축하여 크게 휘두르자.
-푸화아아! 치이-!
강렬한 기세로 쏟아지던 눈사태가 독을 머금은 마기에 오염되며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보랏빛으로 물든 눈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증발해 나갔다.
[이대로 전부 찢어주마!]
-쿠구구! 우드득!
눈사태를 갈라낸 안드로말리우스가 기세를 몰아 팔을 앞으로 뻗으며 팔괘금강문을 잡아챘다.
대악마의 힘을 견디지 못한 팔괘금강문이 일그러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콰드득! 쿠콰콰-!
네 번째 문이 완전히 부수어지고 다섯 번째 문에 안드로말리우스의 손톱이 닿은 찰나.
“빙결부.”
-촤라라락.
안드로말리우스의 주변으로 열여섯 개의 빙결부가 날아들었다.
날아든 빙결부들이 각각 여덟 개씩 짝을 짓고는.
-스스스륵.
안드로말리우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중심으로 두 개의 푸른 고리를 형성했다.
[하찮은 잡기술을-!]
안드로말리우스가 주변을 에워싼 푸른 고리를 향해 팔을 휘두르려는 순간.
“만년빙정(萬年氷精).”
-피이이!
두 개의 푸른 고리 중, 하반신 쪽에 있던 고리가 시린 빛을 내뿜더니.
-쩌저저적!
안드로말리우스의 화신체를 순식간에 뒤덮으며 얼음조각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동시에.
“절대영도(絶對零度) – 폭(爆).”
-화아아!
다른 하나의 고리가 찬란한 푸른 빛을 내뿜으며 터져 나갔다.
마인들과 오거, 잭이 그 빛을 마주한 순간.
-쩌저적! 쩌적!
그들도 안드로말리우스처럼 순식간에 얼음조각상이 된 채 굳어 버렸다.
반면에, 팔괘금강문 뒤에 있던 처용과 제시카, 빌리, 메리는 그 빛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해치-!”
제시카가 문밖의 상황을 가늠하며 입을 여는 순간.
“고작 이걸로 놈들을 처치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처용이 단호한 목소리로 제시카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눈앞에 나타난 적은 안드로말리우스의 화신체와 사이버 마인, 오거.
그리고 잭과 그를 따르는 고레벨의 상급 마인들이 전부인 듯 보였지만.
‘적어도 의회주가 하나 이상은 더 있다.’
처용은 주변에 은밀히 숨어 있는 기척을 읽고 있었다.
놈은 지금 자신의 마기를 억누르고 주변에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주변 상황을 잠시 파악한 처용은.
“메리, 네 역할이 중요하다.”
-휙!
메리를 향해 무언가를 던지며 말했다.
“나, 나!?”
처용이 던진 무언가를, 두 손으로 받은 메리가 당황스러움을 표하며 말했다.
헤르메스의 신관인 메리.
그녀는 S급 헌터였지만, 전투 클래스가 아니었다.
그녀가 가진 특기는 추적과 정보 수집 등, 전투를 보조하는 능력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처럼 힘 대 힘으로 격돌하는 전투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처용은 메리에게 나름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그녀가 얼마나 신속하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작금의 상황을 뒤집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처용이 짧게 말하자.
“성공만 한다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를 들은 제시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맡겨 줘.”
상황을 파악한 메리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은밀한 배달부.”
-스르르륵.
작은 참새로 변하며 어디론가 날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메리가 사라진 순간.
[같잖은 짓을!]
-파차-차창!
얼음 동상이 되었던 안드로말리우스가 얼음을 깨부수며 소리쳤다.
동시에.
“피학의 형상.”
-화르르르륵!
마인들 주변으로 검은 불꽃이 크게 퍼지듯 타오르며 얼음을 녹여 버렸다.
“나까지 순식간에 얼려 버릴 줄이야. 역시 위험하네.”
몰래 기회를 노리고 숨어 있던 릴이, 손아귀에 검은 불꽃을 피워내며 나타났다.
그리고.
“모든 속성을 이 정도 위력으로 다룬다라…… 확실히 위험하군.”
-우우웅.
잭이 주변에 펼쳤던 검은 마기의 장막을 거두며 말했다.
그때.
“철벽부 – 철갑탄환.”
-파자작! 파작!
남은 두 개의 팔괘금강문이 조각조각 부수어지며 허공에 떠올랐다.
부수어진 강철의 파편들이 서로 뭉쳐져 날카로운 탄환들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화염부.”
-화르르륵!
처용의 손아귀에서 화염이 퍼지더니, 주변으로 떠오른 강철 탄환들에 스며들었다.
-치이이!
화염을 머금은 강철 탄환들이 새빨갛게 달구어졌다.
이윽고.
“폭염(暴炎) 철갑탄.”
처용이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하자.
-피잉! 피잉! 피이이잉-!
화염 속성이 부여된 강철 탄환들이 적들을 향해 쏘아졌다.
[성가신 짓을!]
-푸화아아!
안드로말리우스가 자신 주변으로 맹독의 가스를 내뿜자.
-치이이!
빠르게 쇄도하던 강철 탄환들이 순식간에 부식되며 밑으로 떨어졌다.
“그라비티 월.”
-우우웅!
잭은 자신 주변으로 중력이 거세게 작용하는 무형의 벽을 만들어 세웠다.
-피이이……!
잭에게 쇄도하던 탄환들은 근처도 가지 못한 채,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안드로말리우스와 두 의회주, 그리고 사이버 마인인 오거까지는 처용의 공격을 나름 잘 막아 내었다.
그러나.
“젠장!”
상급 마인 중 하나가 자신에게 쇄도하는 탄환을 막기 위해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지팡이와 강철 탄환이 서로 맞닿은 순간.
-콰콰콰!
자그마한 강철 탄환이 맹렬한 폭발을 일으키며 화마를 퍼트렸다.
“큭!?”
급하게 몸에 마기를 두르며 뒤로 물러난 상급 마인이 침음을 흘렸다.
쳐내는 순간 폭발을 일으키는 탄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상급 마인의 손과 팔에 화상 자국이 일렁였다.
“모두 뭉쳐서 방어를 형성해라!”
잭이 상급 마인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자.
“다크 포스 아머.”
“다크니스 리플렉트.”
상급 마인들이 각각 다섯 명씩 짝을 짓고는 서로를 등지며 방어에 나섰다.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폭탄 세례에 마인들이 나름 잘 방어하고 있을 때.
-스르르르.
돌연, 서로 뭉쳐 있던 상급 마인들 중 한쪽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그들의 발밑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일렁이더니.
-쏴아아아!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루나가 나타났다.
“뭣?”
“뱀파이어!”
상급 마인들이 눈앞에 나타난 적, 루나를 알아보며 소리치고는 대비하려는 찰나.
“혈옥.”
-콰아아!
루나와 다섯의 상급 마인들을 중심으로 피의 격류가 쏟아져 나왔다.
솟구친 피의 파도가 나선을 그리며 회오리를 형성했고.
-슈르르르!
그들을 원형으로 감싸며 사라졌다.
루나가 깨우친 새로운 힘이자 고유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기술인 혈옥.
그 혈옥 속에 다섯의 상급 마인들이 빨려 들어갔다.
놈들은 루나를 처치하지 않는 한, 그 고유 결계 속에서 쉽게 빠져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뱀파이어? 도대체 언제!”
잭이 마인들과 루나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당황한 듯 소리쳤다.
처용을 따르는 뱀파이어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전투 능력과 기술에 대해서도 파악했었다.
그들이 어둠을 다루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그림자에 숨어 움직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처용이 이 저택에 처음 나타났을 때도, 가장 먼저 뱀파이어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었다.
하지만.
“분명, 로스를 통해 알아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거늘……!”
빼앗은 로스를 제어하여 처용을 확인했을 때에는, 그의 그림자에 아무 존재도 감지되지 않았었다.
은신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로스의 정밀한 스캔을 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크으음!”
잭이 미소를 짓고 있는 처용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침음을 흘렸다.
아무리 대악마가 이쪽에 있다지만, 처용을 상대로 쉽사리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천군주…… 도대체 네놈이 뭐길래 이 정도의 힘을……!’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잭이 속으로 읊조린 순간.
-스르륵.
잭의 뒤로 공기가 일렁이더니, 유령 같은 무언가가 나타났다.
-스릉!
마치, 영혼을 수거하는 저승사자처럼, 큰 대낫을 움켜쥔 채 나타난 유령.
“……네년!?”
잭이 자신의 뒤를 급습한 이를 확인하며 당황을 표했다.
처용을 상대하느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중요한 목표물.
“죽어라! 제이크 로스차일드!”
-스르릉!
잭의 뒤를 급습한 이는 다름 아닌 마녀, 레나 르블랑이었다.
처용에게 집중하느라 완전히 방심한 순간을 노린 기습.
“죽음의 선고!”
검은 대낫을 움켜쥔 마녀가 잭을 향해 칼날을 내리긋자.
-샤가각!
짧고 날카로운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잭의 정수리부터 아래로 쭉 이어지는 붉은 선이 이어졌고.
-쩌저적! 푸확!
잭의 몸이 사방으로 피를 뿜으며 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