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328화 (328/726)

#328화

에블린은 세계수와 신수의 계약을 맺은 이후, 재활 치료 겸, 성지에서의 일을 시작했다.

에블린이 성지에서 맡은 일은 다름 아닌.

-쩌저적! 쩌적!

그녀의 특기인 나무를 생성하는 것.

간단하게 말하자면 성지의 조경공사를 도와주고 있었다.

“여긴 의자, 여긴 조명, 그리고 이쪽은 가로수들을 순서대로…….”

에블린과 함께 있는 아타가 몇몇 지점을 가리키며 말하자.

“이걸로 괜찮을까요?”

-촤라라락.

에블린이 책자를 펴고 몇몇 그림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책자는 가구들의 사진이 가득한 디자인 책자였다.

아타가 에블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쩌저저적.

에블린이 손을 뻗어 나무뿌리를 만들어냈다.

울퉁불퉁한 나무뿌리들이 여러 크기와 모양의 판자처럼 변하더니.

-착. 착. 착-!

마치, 장난감 부품이 조립되듯 서로 붙으며 가구로 변했다.

최종적으로 나타난 모습은, 에블린이 가리킨 디자인 책자에 그려진 가구와 같은 모습이었다.

에블린이 선천적으로 지닌 능력이 나무를 자라게 만들고 다루는 능력이니만큼.

“여기 호수에는…… 아, 이런 모양의 다리를-.”

-쩌저저적!

웬만한 물건들은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가진 힘을 조절하고 조율하여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에블린이 재활 치료를 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성지 내부의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나름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성지의 크기가 더 넓어진 만큼, 주변 조경이나 길 배치 등, 관리해야 할 부분이 꽤 있었으니까.

이렇듯 에블린은 당분간 성지에 머물며 재활 훈련 겸, 치료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성지에는 에블린과 같은 선천적 선인인 보살이 있었다.

[무리하게 기운을 끌어올리지 말고 낮고 잔잔한 느낌으로…….]

그녀가 에블린에게 가진 힘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돕는 중이었다.

보살이 직접 그녀를 도와주는 한, 처용 역시 문제는 없다 판단했다.

이제 에블린은 재활 치료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만 되찾으면 되었다.

에블린의 일이 일단락되었을 때.

[헬리오폴리스의 주신이 우리와 비밀리에 만남을 요청하더구나.]

여래에게서 전음이 들려왔다.

‘갑자기요?’

처용이 여래의 전음에 의문을 표하며 답했다.

무엇보다도 더 의문인 것은.

‘우리라면 스승님하고 저. 둘 다를 말하는 겁니까?’

라가 만나고자 하는 대상에 여래만이 아닌, 처용도 포함되었다는 것.

왜 갑자기 라가 여래와 자신을 만나고자 하는 것인가?

이것이 좀 의문이었다.

[그래, 무슨 용건인지는 당장 말할 수 없다더구나.]

여래의 말이 이어졌고.

‘……일단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우우웅.

잠시 생각한 처용은 게이트를 열고 여래가 있는 태룡전으로 향했다.

태룡전에 들어서자, 붉고 긴, 화려한 깃털을 쥐고 있는 여래와.

[흠…… 초대장인가?]

그 깃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미륵이 보였다.

“스승님.”

처용이 다가오며 말하자.

[같이 가보겠느냐?]

여래가 라의 초대에 응할 생각인 듯 처용에게 말했다.

“……왜 저희를 따로, 그것도 은밀히 불렀는지 궁금해서라도 가야겠네요.”

깃털을 보며 잠시 생각한 처용이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용의 수락에 여래가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는.

[초대에 응하지요.]

-우우웅.

쥐고 있던 깃털에 신력을 부여하며 말했다.

-스르르. 스륵.

여래의 신력에 반응하듯, 깃털에서 붉은 실처럼 얇은 신력의 실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실이 주변을 배회하며 나선을 그리기 시작했고.

-휘리리. 휘릭.

마치 처용과 여래를 둥글게 감싸는 듯, 움직이며 실타래를 형성했다.

이윽고 붉은 신력의 실이 처용과 여래를 완전히 휘감았을 때.

-파아아……!

붉은 화염이 짧게 터지며 처용과 여래를 감싼 실타래가 사라졌다.

***

헬리오폴리스의 주신, 태양신 라의 초대에 여래와 처용이 수락한 후.

-스르륵. 사아아…….

둘을 감쌌던 실타래가 스르륵 흩어지며 시야가 드러났다.

새로 드러난 환경은 황토색 바위로 지어진 듯한 제단 내부.

벽에는 고대 이집트를 연상케 하는 상형 문자와 헬리오폴리스 신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제단 중앙 벽에는 태양과 그 태양을 두 손으로 감싸는 듯한 여인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여긴…… 태양신의 신전?’

초대를 받고 도착한 장소는 다름 아닌, 태양신 라의 신전이었다.

처용이 의문을 가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초대에 응할 때만 해도, 헬리오폴리스 성운의 성지로 가는 것을 예상했다.

보통 성운에서 손님을 초대하면 성지로 안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러나 도착한 곳은 성지가 아닌, 태양신의 신전이었다.

심지어.

[흐음…….]

라가 신전에 어떤 조치를 했는지, 여래는 화신체가 아닌 본신으로 이곳에 도달한 상태였다.

처용과 여래가 태양의 신전에 도착하고 의문을 가질 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법의 대신님.”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태양의 신관, 라진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전했다.

라진의 양옆에는 아일라와 이리스도 자리해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역천군주.”

함께 검은 대지의 정화 작전에 나섰던 아일라가 처용에게 인사를 건넸다.

처용은 고개를 끄덕여 보는 것으로 인사를 짧게 받아주고는.

“한 사람도 아니고 셋이나 저희를 안내하는 겁니까?”

라진을 향해 물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야 한다. 이렇게 명을 받았으니까요.”

라진이 처용의 물음에 답하고는.

“문을 열겠습니다.”

옆에 있는 이리스와 아일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라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스르륵.

세 명의 신관들이 각각 성물을 꺼내 들었다.

“죽음의 열쇠.”

죽음의 신관 아일라는 앙크를 두 손으로 쥐었고.

풍요의 신관 이리스는.

“풍요의 링.”

음각으로 새겨진 녹색 눈의 링이 부착된 금색 목걸이가 목에 걸렸다.

그리고.

“태양의 눈.”

라진이 오른손을 들어 성물을 소환하자.

-화아아.

마치, 황금과 붉은 광석으로 제작된 듯 보이는 탁구공 크기의 구가 나타났다.

붉은 눈동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마치, 누군가의 눈처럼 보이는 성물이었다.

세 명의 신관이 각자의 성물을 소환하자.

-스르륵! 스륵! 화아!

성물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각각 다른 성물을 향해 길게 뿜어져 나왔다.

각 성물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이 다른 성물에 닿으며 서로 연결되었을 때.

-촤아아!

세 명의 신관들 뒤로 공간이 갈라지며 붉게 일렁이는 게이트가 열렸다.

“……헬리오폴리스 성역인가?”

처용이 붉은 게이트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하자.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라진이 놀라움을 표하듯, 눈이 조금 커지며 말했다.

“가시죠.”

-스르륵.

라진을 포함한 세 명의 신관들이 붉은 게이트를 향해 앞장서 나아갔다.

-저벅.

처용과 여래 역시 세 명의 신관들을 따라 붉은 게이트로 나아갔다.

‘신전에 이어서 성역이라…… 무슨 생각이지?’

처용은 순순히 따라가면서도 머릿속에서 의문을 되새겼다.

지금 라의 초대는 일반적인 초대와는 확연히 달랐으니까.

이윽고 붉은 게이트에 도달하자.

-쿠구구!

좌·우, 그리고 위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그 거대한 벽 중 입구로 보이는 문 앞에 일행들이 도달하자.

[초대를 받은 이들인가?]

문지기로 보이는 성좌가 라진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쪽 어깨 위에 씌워진, 녹색의 문양이 새겨진 금장식.

그 아래로 흘러내린 망토와 가슴을 감싸는 갑옷.

마치 로브와 갑옷이 반반 합쳐진 듯한 모습이었다.

성역의 문을 지키는 성좌.

“예, 태양신의 초대를 받은 손님입니다. 이모우시스 님.”

그는 피라미드를 설계하고 건설한 자로 알려진 성좌, 이모우시스였다.

라진의 말에 이모우시스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직할 통로를 열겠다.]

-탁. 탁. 탁…… 탁.

들고 있던 곤봉 형태의 지팡이로 문을 네 번 두드리자.

-드르르-드륵!

문이 좌·우로 갈라지며 열렸다.

이모우시스가 옆으로 비켜서고 일행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태양신이 거주하는 성역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들어서자.

-화르륵. 화륵.

화염이 이글거리는 기둥이 원형으로 나열된 공간이 나타났다.

각 기둥에는 라와 아누비스 등, 헬리오폴리스 신들의 모습이 음각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그 아래로는 계단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정중앙에는 원탁이 자리해 있었다.

원탁에 자리한 신은 총 네 명.

중앙에 자리한 이는 처용과 여래를 초대한 태양신 라였다.

그리고 라의 오른쪽에는 금색의 뱀이 휘감긴 검은 지팡이를 쥔 성좌.

금관을 쓴 검은 자칼의 모습을 한,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자리해 있었다.

그 반대쪽에는 이리스가 소환했던 성물, 풍요의 링을 목에 착용하고 있는 여인.

녹색의 문양이 그려진 새하얀 사제복에 대비되는 검은 머리와 그 위에 씌워진 얇은 링 형태의 금관.

진하고 길게 그려진 검은 아이라인이 돋보이는 여신.

‘풍요의 여신 이시스’였다.

그리고 이시스의 옆에는.

[…….]

눈을 감은 채 생각에 빠져 있는 듯 보이는 성좌가 자리해 있었다.

머리 위에 씌워진, 금색과 푸른색의 줄이 순서대로 나열된 왕관.

왕관 중앙에는 황금 뱀이 장식되어 더 고귀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이집트의 왕, 파라오를 연상케 하는 모습의 성좌.

그는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 ‘생사(生死)의 신 오시리스’였다.

네 명의 성좌 모두 헬리오폴리스를 대표하는 대신들이었다.

여래와 처용이 안으로 들어서자.

-저벅.

세 명의 신관들이 각각 자신이 모시는 성좌의 뒤에 섰다.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법의 대신.]

라가 여래를 향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하자.

[보통, 주신의 성역까지 손님을 들이는 경우는 드물지요.]

여래가 줄곧 품어왔던 의문을 드러내는 듯, 말했다.

‘역시…… 이곳은 주신의 성역이었나.’

처용이 눈동자를 빠르게 돌려 주변을 다시 둘러보고는 속으로 읊조렸다.

예상대로 초대를 받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도착한 이 장소는 평범한 장소가 아니었다.

성운의 성역 중, 주신의 허락을 받은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장소인 주신의 성역이었다.

처용의 성역, 태룡전으로 비유하자면 가장 중앙에 있는 전각.

성역의 이름과 같은 전각인 태룡전.

그곳 역시 허가를 받은 이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주신의 성역과 같은 장소였다.

[도대체 나눌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여래가 라를 바라보며 묻자.

[저 역시 궁금하군요.]

저승의 신, 아누비스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저들을 주신의 성역까지 들인 겁니까?]

아누비스가 라를 향해 묻자.

[동감입니다.]

이시스가 아누비스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라진을 포함한 세 명의 신관들 역시, 처용과 여래가 이곳에 온 연유는 모르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의문을 표하는 두 대신과 세 명의 신관들과는 다르게.

[…….]

오시리스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하고 있었다.

[이곳으로 은밀히 불러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본론을 이야기하기 전에-.]

두 대신의 의문에 라가 입을 열며 말하다 잠시 말을 끊었다.

짧은 침묵이 지나간 후.

[이곳에서 신법재판소를 사용해 주시겠습니까? 신법의 대신.]

라가 여래를 향해 신법재판소를 사용할 것을 요청했다.

[…….]

의도를 알 수 없는 라의 요청에 여래의 눈이 가늘어졌고.

‘왜 신법재판소를……?’

처용 역시 속으로 의문을 삼켰다.

그때.

[지금부터 해야 할 말씀에 무언가 제약이 있군요.]

여래가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듯, 라를 향해 말했다.

[…….]

라가 눈을 감으며 침묵하자.

[……신법 재판을 시작한다.]

짧게 고민한 여래가 신력을 내뿜으며 신법재판소를 소환했다.

-쿠구구! 화아아!

주신의 성역 주변에 금빛이 일렁이며 신법재판소가 활성화되었다.

신법재판소의 기운이 주변에 깔리자.

[의장의 권한으로-.]

라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순혈 의회를 시작한다.]

성좌들 중 자신만이 가진 권능을 발동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