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화
허공에 일어난 균열.
그 균열이 벌어지며 나타난 칠흑 같은 어둠.
그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샤샥!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검은 별들과 천교의 성좌들이 검은 균열 앞에 모여 고개를 숙이며 크게 외쳤다.
심지어 천교의 주신, 옥황상제마저도 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다른 성운의 성좌들과 헌터들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압도적인 불길함이 흘러나오는 검은 균열.
그 앞에 부복한 검은 별들과 천교의 성좌들.
심지어 가장 높은 격을 지닌 옥황상제마저도 그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때.
[옥황상제…….]
-쿠구구구!
검은 균열 속에서 불길함이 확 전해지는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작은 소리였음에도 주변이 진동하며 크게 울려 퍼졌다.
[분명, 돌아오라 명했거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쿠구구- 쿠구!
검은 균열 속에서 들려오는 압박감 가득한 낮은 목소리에.
[이, 이대로 곱게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옥황상제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긴장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하늘을 지배하는 천교의 주신이 검은 균열 속 존재에게 쩔쩔매고 있는 상황.
단순히 높은 정도가 아닌, 절대적인 존재를 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주변 일대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을 때.
[네놈은 누구냐!]
-화아아!
야훼의 화신체가 지상에 나타나며 소리쳤다.
[천황이 고개를 조아리는 것을 보니, 네놈이 그 위대한 존재로구나!]
적대감 가득한 야훼의 말에.
[크흐흐. 야드의 자손, 야훼인가?]
검은 균열 속 존재가 낮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본래의 야훼라면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한 것에 대해 분노를 드러내야 했지만.
[태초신의 이름을……!]
그는 검은 균열 속 존재가 언급한 태초신의 이름에 당황을 표했다.
태초신의 이름은 주신들조차도 함부로 말하기 힘든 단어.
그런데 검은 균열 속 존재는 태초신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고 있었다.
[그렇군, 그리된 것인가……?]
검은 균열 속 존재가 마치 상황을 파악한 듯한 느낌으로 읊조리고는.
-스스스.
오른손을 들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파지지지지직!!
검은 균열에서 스파크가 튀며 검은 손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쿠구구구!
단순히 손만 드러났음에도, 이 일대 주변에 불길한 기운이 퍼지며 사방을 짓눌렀다.
[큭!?]
[이 무슨!?]
확 전해져 오는 불길한 기운에 성좌들이 경악을 드러내며 뒤로 물러섰다.
지금껏 마주한 적 없는, 모든 것을 압도할 것처럼 거대한 기운.
그 불길하고도 거대한 기운이 크게 퍼지자.
“커헉!?”
“어…… 으! 몸이!?”
헌터들 중에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는 이들도 있었다.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모두 고레벨의 최상위 헌터들.
그들 대부분이 검은 기운에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자비의 축복.]
그 모습을 본 보살이 주변의 헌터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고.
[모두 일어나라!]
[병사들은 모두 뒤로 물러나거라!]
몇몇 성좌들 역시 신력을 내뿜어 헌터들을 축복해 주고는 뒤로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큭, 도대체 저게 무슨?”
보살의 축복을 받은 커맨더가 주저앉았던 몸을 일으키며 말할 때.
“커맨더, 무사합니까?”
제시카와 성자가 커맨더의 옆으로 다가왔다.
“대악마보다도 불길한 기운…… 저것이 도대체……?”
성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검은 균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전에 마주쳤었던 두 명의 대악마.
무한한 공포의 대악마 디아블로와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 바알.
그들은 삼천마라 불리는 가장 강력한 대악마들이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은 그런 삼천마의 기운보다도 더 불길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저것이…….”
성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릴 때.
“저게…… 한처용 헌터가 말한 ‘가장 위대한 자’일 겁니다.”
커맨더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검은 균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검은 균열 속에서 손을 뻗고 있는 존재를 응시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와 절망감이 강하게 전해져오는 압도적인 존재.
저런 존재에 대해서 처용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판데모니움의 대악마들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그들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고.
지금 검은 균열 속에서 튀어나오려는 자가 그 존재일 가능성이 컸다.
-파지지직!
검은 균열 속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검은 손이 점차 빠져나올 때.
[소용없느니라.]
-샥!
미륵이 야훼의 옆에 나타나며 말했다.
그러자.
-파직! 쿠구구!
거대한 진동이 울리며 균열을 빠져나오려던 검은 손이 멈칫했다.
마치, 무언가에 걸려 더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
[역시…… 아직인 것인가?]
검은 균열 속 존재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드의 가호가 짙게 펼쳐진 세계이니만큼, 생각보다 더 견고하군.]
-스르르르.
검은 균열 속 존재가 내뻗었던 손을 뒤로 조금 빼내자.
-쿠구구……!
주변을 압박하던 불길한 기운이 조금 옅어졌다.
[야드의 첫 번째 심복인가? 소멸한 줄 알았거늘…….]
검은 균열 속 존재가 미륵을 응시하며 읊조릴 때.
[네놈은 도대체 뭐냐!?]
야훼가 검은 균열 속 존재를 향해 다시 물었다.
방금 검은 균열 속에서 손이 빠져나오려 할 때 전해졌던 압도적인 기운.
야훼는 그 불길한 기운 속에서 ‘익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야훼의 말에.
[조크-크타니드.]
검은 균열 속 존재의 얼굴 부분, 정확히는 입으로 보이는 부분이 붉게 찢어지며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는 새로 태어난 태초신이다. 야훼-크타니드.]
[뭣……!?]
검은 균열 속 존재의 말에 야훼가 당황을 드러냄과 동시에.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속으로 인정하며 말했다.
거대하고 불길한 기운 속에는 놀랍게도 태초신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미친 소리! 태초신은 소멸했다!]
야훼가 눈앞의 존재를 부정하듯 소리쳤다.
태초신의 소멸.
야훼는 태초신이 소멸하는 모습을 직접 본 성좌 중 하나였다.
[네놈은 아무리 봐도 파멸 그 자체이니라!]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서 태초신의 기운이 느껴진다 한들, 그가 새로운 태초신일 리가 없었다.
[태초신의 잔재에 온갖 부정한 것들이 뒤섞여 있군.]
미륵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고는 검은 균열 속 존재를 응시하며 말했다.
[나를 온전히 간파하지 못했군. 이름 없는 크타니드.]
검은 균열 속 존재가 미륵을 향해 옅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하고는.
[네놈들이 구축한 야드의 시스템이 이 우주를 구원하리라 생각하는가?]
성좌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동시에 다시 손을 앞으로 뻗자.
-쿠구구구!
다시 사방을 짓누르는 불길한 기운이 퍼졌다.
[나야말로 진정한 구원-.]
검은 균열 속 존재에게서 말이 이어질 때.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처용의 목소리가 균열 속 존재, 크타니드의 말을 끊으며 울려 퍼졌다.
뒤에서 조용히 신력을 끌어모은 처용이 투창을 들고 투척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천마신공.’
-우우웅!
투창에 일렁이는 강렬한 신력이 용머리의 형상을 취한 순간.
‘극(極) - 용귀맹진(龍鬼盲進)!’
-투! 콰아앙!!
처용이 검은 균열을 향해 투창을 내던졌다.
-캬아아아!
용의 형상을 취하며 맹렬한 기세로 나아간 투창이 검은 균열 속에서 빠져나오려던 손에 충돌했다.
-쿠콰콰! 콰쾅!
그러자 파마의 신력이 응축된 힘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스르르.
투창의 공격에 충격을 받은 탓인지, 균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검은 손이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 누구도, 야훼조차도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작금의 상황.
처용은 그런 상황 속에서 검은 균열 속 존재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어디서 구원 같은 개소리야! 이 개새끼야!!”
투창을 내던진 처용이 검은 균열 속 존재를 향해 욕을 내뱉자.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처용의 행동력에 야훼를 포함한 성좌들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했다.
동시에.
[이, 이! 어리석은 하계종이-!]
옥황상제를 포함한 천교 측 성좌들과 검은 별들이 경악을 드러냈다.
그때.
[……재밌군.]
검은 균열 속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뭘 쳐 웃어 이 새끼야!”
-투! 콰아앙!
처용이 또 다른 투창을 꺼내 던지며 소리쳤다.
조금 전, 힘을 극한까지 모은 투창에 비해 위력이 떨어졌지만.
-쐐-에엑!
파마의 힘이 일렁이는 강기가 압축된 만큼, 상당한 위력이었다.
그러나 검은 균열 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타-아앙!
맹렬한 기세로 나아가던 투창이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천황을 이토록 애먹게 만든 인간이라…… 혹시나 했지만.]
처용의 공격을 가볍게 튕겨낸 크타니드가 작은 웃음을 섞어 말했다.
[네가 ‘이번 우주의 계승자’로군.]
-쩌저저적!
검은 균열 속에서 비치는 검은 인영의 입이 마치 웃는 듯, 크게 찢어지며 기괴함을 자아냄과 동시에.
-쿠구구!
다시 불길한 검은 신력이 퍼지며 주변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처용 역시 그에 맞서 신력을 내뿜으며 저항했다.
하지만.
“……이!”
마를 쳐부수는 파마의 신력조차도.
-쿠구! 쿠구구!
검은 균열 속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신력에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때.
-샥!
처용의 옆에 세 명의 인영이 나타나며 신력을 내뿜자.
-파아아……!
검은 신력이 뒤로 밀려나며 흩어졌다.
처용 옆에 나타난 이들은 다름 아닌.
[괜찮으냐?]
여래를 포함한 태룡전의 대신들이었다.
그들이 나타남과 동시에.
-스르륵! 샥!
청룡과 해전무신 등 태룡전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신격들이 추가로 나타났다.
[……재밌구나. 계승자.]
그 모습을 본 검은 균열 속의 존재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콰아아아!
검은 신력을 내뿜으며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 물러난다.]
옥황상제가 무언가의 명령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휘하 성좌들을 향해 말했다.
-스르륵. 스륵.
천교의 성좌들과 검은 별들이 검은 안개에 휩싸이며 검은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적들이 사라지고 검은 균열만이 남았을 때.
[발버둥 쳐 봐야 소용없다. 내가 진정한 구원이니…….]
-스르르.
검은 균열 속 존재가 낮게 읊조리고는 뻗었던 손을 느리게 뒤로 빼냈다.
그때.
“절대로! 네놈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촤아아아!
처용이 역천의 절에 강기를 응축하고는 검은 균열을 향해 쏘아 보내며 소리쳤다.
-차카! 캉!
반월처럼 쏘아져 나간 강기가 검은 균열과 충돌하여 사그라졌다.
그 모습을 본 균열 속 존재가 행동을 잠시 멈추고 침묵하고는.
[……네놈과 다시 마주할 날을 기대하마. 계승자.]
처용을 향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스스스.
균열 속에서 일렁이던 검은 실루엣이 점차 사라지더니.
-쩌저저저적! 파차창!
벌어졌던 균열이 깨지며 바닥으로 흩뿌려졌고 이내 사라졌다.
“젠장……!”
처용이 검은 균열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침음을 토했다.
설마, 크타니드가 직접 이 자리에 나타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도대체 무슨 의도였을까?
왜 직접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회귀 전에는 지구가 무너지기 직전.
-네놈들은 처음부터 이길 수 없었느니라.
생존자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주기 위해 나타났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싸움을 포기해버린 이들도 있었다.
지금조차도.
-저, 저런 것과 싸워야 한다고?
-무슨 수로…….
조금 전 마주했었던, 압도적인 기운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성좌들 중에서도 그 기운에 압도된 이들이 많았다.
‘이걸 노린 건가?’
크타니드가 이 자리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절망감을 주기 위함일 수도 있었다.
혹은.
-분명, 돌아오라 명했거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복종을 맹세한 옥황상제가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에, 직접 행동했을 수도 있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제기랄.”
처용에게 있어서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너무 이른 시기에 크타니드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항상 변수에 대비하는 처용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
이번 일이 앞으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크타니드가 시스템의 장막을 완전히 뚫고 나오지는 못했지만.
‘……혹시, 모른다.’
손을 뻗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기운을 흘려보낸 것에 불과했음에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힘에 압도당했다.
처용이 크타니드에 대해 생각할 때.
[방금 그놈은 도대체 뭐냐?]
야훼가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뭐겠습니까? 최종 보스지.”
생각에서 빠져나온 처용이 이를 갈며 말했다.
[가장 위대한 자…….]
[천교의 주신조차도 고개를 조아렸지…….]
다른 성좌들이 침묵을 깨고 읊조리듯 말했다.
대부분, 조금 전의 압도적인 기운을 다시 떠올리며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검은 균열 속 존재는 성좌들조차 ‘공포’를 느낄 정도로 불길하고 거대한 존재였다.
그러나.
“망할 새끼! 프로토타입 뉴 클리어를 아껴뒀다가 그 균열 속으로 던져 버렸어야 했는데…….”
처용만큼은 그 압도적인 존재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가 그 압도적인 기운에 사로잡혀 있을 때.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처용만큼은 강렬한 적의를 드러내며 균열 속 존재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성좌도 아닌, 단 한 명의 인간이 보인 용기였다.
[……다행히 신계의 성역을 습격하던 이들은 모두 퇴각했습니다.]
신계에서 보고를 받은 아테나가 입을 열며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해 나눌 말이 많습니다.]
아테나가 다른 성좌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을 때.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처용이 아테나를 향해 말했다.
“일단 주변 수습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군요.”
방금의 싸움으로 인해 주변이 황폐화된 상황.
다행히 공용 성지의 기능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성좌들의 화신체가 아직도 온전히 강림해 있었으니까.
그리고 검은 대지가 퍼졌음에도 성지의 기능이 온전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화아아.
지면 깊숙한 곳에 처용이 설치해 둔 천년한철 진법이 성지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일단 잔해부터 정리해라.”
처용이 디바우러를 향해 명령하듯 말하자.
-스르륵. 스륵.
디바우러가 촉수를 뻗어 주변 일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용이 행동을 개시하자.
“부상자를 옮겨라!”
“각각 구역을 나눠 정리를 시작해!”
헌터들이 정신을 차리고는 주변 수습을 시작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