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여래가 태상노군과 조제군을 가두고 오딘을 포함한 여러 성좌들이 하늘 관문을 파괴하려 나섰을 때.
[죽어라!]
-파지지직!
옥황상제가 처용을 향해 더욱 강하고 매서운 천벌을 쏘아 보냈다.
처용은 이전처럼 옥황상제의 천벌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뢰신보.”
-파지직!
보법을 사용하여 회피했다.
천류관으로 인해 옥황상제의 천벌이 적어도 두 배에서, 세 배는 강해졌다.
그리고.
-파직!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처용의 보법, 뢰신보로 옥황상제의 천벌을 피했음에도.
“칫.”
-파사삭!
온전히 피하지 못하고 천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본래라면 순조롭게 피했어야 했었다.
그러나.
‘……성가시군.’
처용이 옥황상제를 바라보며 작게 인상을 쓰며 속으로 읊조렸다.
정확히는 옥황상제의 머리, 천류관을 응시했다.
지금 이 일대에 옥황상제의 권능, 하늘의 은혜가 펼쳐진 탓에 속성의 힘이 크게 약해졌다.
특히 하늘과 연관된 뢰 속성과 풍 속성은 다른 속성보다 위력이 더 크게 약해진 상황.
처용이 주로 사용하는 보법, 질풍신뢰는 번개와 바람을 다루는 보법이었다.
그것이 옥황상제의 권능, 하늘의 은혜로 인해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찮은 것! 당장 하늘 앞에 머리를 조아려라!!]
-쿠르릉! 쿠릉!
옥황상제가 공격을 제대로 회피하지 못하는 처용을 향해 재차 천벌을 쏘아 보냈다.
이번엔 전에 쏘았던 천벌이 스친 탓에 처용이 주춤거린 찰나를 노린 공격.
막기에는 버겁고 피하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탓! 스르릉!
처용은 빠르게 주춤거리는 자세를 고치고 역천의 절을 앞으로 세웠다.
동시에.
-탁!
땅을 박차며 앞으로 쇄도했다.
처용의 선택은 방어도 회피도 아닌, ‘공격’이었다.
[멍청한 하계종-!]
옥황상제가 처용의 행동을 비웃는 찰나.
“백염부 – 백염의 칼날!”
-화르르륵!
처용이 칼날에 백염부를 붙여 새하얀 화염을 일으켰다.
동시에.
‘검성류 - 천둥베기!’
-사각! 화르륵!
역천의 절을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내리그었다.
-파지지직! 화륵!
새하얀 번개와 새하얀 화염이 서로 충돌했다.
격렬한 힘 싸움을 이어간 끝에.
-파츠츠-츠측! 파직…….
옥황상제의 천벌이 가로로 갈라지며 흩어졌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화르륵!
백염을 머금은 강기가 옥황상제를 향해 나아갔다.
[어딜!]
-파지지직!
옥황상제가 오른손에 천벌을 응축하여 앞으로 내뻗었다.
-파지직! 파직! 화르르!
재차 백염과 천벌이 충돌했고 서로 상쇄되며 사그라졌다.
[감히! 짐에게 버려진 쓰레기들의 힘을 보이다니!]
옥황상제가 처용의 백염을 알아보고는 혐오스러움을 드러내며 말하자.
“성좌라는 새끼가 감히 하늘 같은 선배한테 말하는 꼬라지 봐라?”
처용이 그런 옥황상제를 향해 비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태초의 신수들이 만든 하늘을 물려받기만 한 무능한 새끼가. 크크.”
진심과 조롱이 반반 섞인 비웃음이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옥황상제가 끓어오르는 분노에 몸을 떨고는 이를 강하게 물어 으득거렸다.
당장이라도 처용을 백 갈래, 천 갈래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처용은 하계종 시절의 여래와 버금가는 이단자.
아니, 그 이상의 능력을 보이는 괴물이었다.
심지어 태초신에게 버려진 최초의 신격들.
태초의 마수들이 지닌 힘까지 다루고 있었다.
당장 처용을 죽이고 싶어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
결국.
[하늘의 옥새(玉璽).]
옥황상제는 천류관에 이어 또 다른 주신의 신물을 소환했다.
-콰르르릉!
천류관이 나타날 때처럼 하늘에서 새하얀 번개가 내리쳤고.
-파지지직!
옥황상제의 왼손에 번개가 모여들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거북이와 용 등 다양한 생물들이 조각된 도장.
마치, 동양의 황제가 쓸 법한 금색의 도장이었다.
천교의 주신만이 다룰 수 있는 또 하나의 신물인 하늘의 옥새.
옥황상제가 손에 옥새를 쥐고는.
[나 천황이 하늘의 칙령을 내리니! 적들을 모조리 쓸어 버려라!]
옥새를 앞으로 내밀며 도장을 찍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쿠구구구!
천교 소속의 성좌들과 검은 별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더 강해졌다.
옥새를 쥔 옥황상제 역시 더 강렬한 신력을 내뿜기 시작했다.
동시에.
[오너라.]
왼손을 옆으로 뻗으며 낮게 읊조렸다.
그러자.
-캬아아아!
헌터들, 성좌들과 전투를 치르던 디파일리스크 중 한 마리가 옥황상제를 향해 쇄도했다.
[짐의 병기로 움직일지어다!]
-탓.
하늘의 옥새를 쥔 옥황상제의 손에 디파일리스크의 촉수가 닿은 순간.
-파지지직!
검고 칙칙하던 디파일리스크가 빛을 내뿜더니, 새하얀 전류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마치, 천벌로 만들어진 갑옷에 덧씌워진 듯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늘의 지배인가…….’
처용이 옥황상제의 옥새로 인해 변모한 디파일리스크를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옥황상제의 권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바로 통제(統制)와 지배(支配).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칙령을 내리는 통제.
다만 아군에게는 유리한 통제를, 적들에게는 불리한 통제를 내린다.
옥황상제가 천류관의 권능으로 내린 칙령, 속성 약화가 바로 통제 능력이었다.
그리고 휘하에 소속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배.
작금의 상황처럼, 지배하에 있는 이들을 더 강하게 만들거나, 힘을 부여하여 변이시킬 수 있었다.
가히 하늘을 지배하는 천황(天皇)이라고 불릴 만한 권능이었다.
하지만.
“나도 ‘지배’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거든.”
처용은 옥황상제의 권능을 보고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장! 저 하찮은 하계종을 죽여라!]
옥황상제가 미소를 짓고 있는 처용을 보며 분노를 담아 소리치자.
-캬아아아!
옥새의 능력으로 변이된 디파일리스크가 처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지직! 파직!
천벌이 흐르는 디파일리스크의 앞다리가 처용을 향할 때.
-콰콰쾅! 콰르릉!
처용의 앞, 지면이 크게 갈라지며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왔다.
-캬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온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디파일리스크였다.
아니, 옥새로 인해 변이된 디파일리스크처럼, 평범한 디파일리스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금빛을 띠는 색상에 검은색과 붉은색의 무늬가 자리한 모습.
일반적인 디파일리스크가 거미와 전갈이 합쳐진 새까만 곤충의 집합체 같은 모습이라면.
처용 앞에 나타난 디파일리스크는 화려한 무늬의 타란툴라와 같은 모습이었다.
“네놈 성지에 나타났었던 디파일리스크, 내가 그놈을 좀 길들여 봤거든.”
처용이 눈앞에 나타난 디파일리스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디바우러(Devourer)]
[등급 : ?]
[특징 : 부정의 덩어리가 특수한 방법으로 가공되어 새롭게 변이된 생명체.]
[숙주가 성장함에 따라,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특정 조건을 가진 에너지에 핵으로 자리 잡아 기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팔괘봉마진 – 파마의 성지’에 기생 중입니다.
[스킬 : 근원의 핵, 에너지 포확…….]
눈앞에 나타난 디바우러는 이전 검은 대지가 퍼졌던 천교의 성지에서 잡아 온 디파일리스크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디파일리스크였던 생명체였다.
천교의 성지에서 탈취해 온 두 채의 스킬석 추출 장치.
처용은 뤼장첸을 추출하기 전.
-이놈으로 먼저 실험을 해 봐야겠군.
시험 삼아 추출 기계를 하나 사용했었다.
대상은 다름 아닌 검은 대지에서 잡아 온 디파일리스크.
본래 헌터를 추출해 스킬석을 만들어내는 장치였지만, 산 채로 헌터를 잡아 실험할 수는 없었던 노릇이었다.
그리고 굳이 헌터를 잡아다가 실험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었다.
처용이 알아보고자 한 바는, 기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원리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으니까.
때문에, 산 채로 잡아 온 디파일리스크로 실험한 것이었다.
추출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사전 실험 결과 나온 것이.
-끼릭? 끼리릭!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디파일리스크였다.
아니, 디파일리스크로 만들어진 새로운 생명체, 디바우러였다.
-캬아아!
디바우러가 디파일리스크를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쿠구구! 쿠궁!
거대한 덩치를 가진 두 괴수가 서로 충돌했다.
서로 다리를 뻗어 붙잡으며 몸싸움을 하는 두 괴수.
-파지직! 파직!
디파일리스크가 온몸으로 새하얀 번개, 천벌을 내뿜기 시작했다.
옥새의 힘으로 다른 디파일리스크보다 더 강력해진 상태.
평범한 디파일리스크로는 옥새의 힘으로 강해진 디파일리스크를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우우웅!
디바우러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의 기운이 천벌을 모두 튕겨내었다.
동시에.
-캬아아!
디바우러가 입을 크게 벌리며 디파일리스크의 앞다리 하나를 물고는 뜯어내었다.
-쿠구! 쿠구구!
짧게 충돌한 두 괴수가 서로 물러서며 떨어졌다.
디바우러가 우세를 보였다고 볼 수 있었지만.
-스르르륵.
뜯어져 나간 디파일리스크의 다리가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양측 다 피해가 없다고 볼 수 있는 상황.
그러나.
-파츠즈즉! 으득!
디바우러가 적한테서 뜯어낸, 천벌이 일렁이는 디파일리스크의 앞다리를 씹어 먹으며 흡수했다.
그러자.
-파지지직!
디바우러에게서 미세하게 새하얀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상대가 가진 에너지를 빼앗아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기술.
에너지 포확이었다.
[어떻게 검은 근원의 부정체를……!?]
옥황상제가 처용의 옆에 나타난 디파일리스크, 아니 디바우러를 보며 경악하듯 읊조렸다.
다파일리스크는 검은 신력이 폭주하여 만들어진, 검은 대지를 근원으로 둔 불사의 생명체.
자신조차도 온전히 지배하여 다루는 것이 까다로운 존재였다.
그러나 처용은 그런 디파일리스크를 새로운 존재로 변이시켜 지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우우웅.
디바우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의 기운.
그것은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천년한철 진법과 같은 기운이었다.
옥황상제가 당황스러움을 표할 때.
“내가 공들여 준비한 녀석인데, 평범할 리가 없잖아?”
처용이 자신감 어린 미소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디바우러는 평범한 디파일리스크가 아닌, 처용에 의해 새로 태어난 괴수이니만큼.
절대 평범할 리가 없었다.
디파일리스크는 본래 검은 대지의 핵을 근원으로 둔 오염된 생명체.
핵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는 한, 불사에 가까운 존재였다.
심지어 검은 대지의 핵이 강하고 거대할수록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디바우러 역시 디파일리스크와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디바우러가 자리 잡은 근원은 다름 아닌.
-화아아!
땅속에서 파마의 힘을 분출하고 있는 천년한철 진법이었다.
처용과 루돌프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팔괘봉마진 – 파마의 성지.
강렬한 파마의 힘을 내뿜는 진법을 디바우러가 근원으로 삼은 결과.
-화아아!
그 진법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디바우러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파마의 빛에 의해 검은 대지가 더 빠르게 약해지고 점점 줄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케에에!
-크르르!
다른 디파일리스크를 더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내가 만든 이 녀석이 더 우수한 거 같은데? 안 그래?”
처용이 옥황상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캬아아!
디바우러가 처용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짧은 괴성을 토했다.
[네…… 이…… 놈!!]
도저히 처용을 압도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옥황상제가 분노를 토했다.
가진 수단을 하나씩 드러낼 때마다 모두 막히고 있었다.
마치, 미리 모든 것을 파악하고 철저하게 준비한 듯한 느낌이었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질 때.
-파창! 차차창!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왔다.
[하늘 관문을 파괴했다!]
오딘의 외침과 동시에 하늘 위에 열려 있던 거대한 진법에 금이 가며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하늘 관문이 무너진 결과.
-슈르르…….
검은 대지와 마수들을 쏟아내던 게이트도 사그라지며 닫히기 시작했다.
동시에.
-쩌저적! 파창!
여래가 천교의 성좌들과 검은 별들을 가두었던 결계도 깨졌다.
여래는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모습.
반면에.
[이런…… 괴물 같은!]
중상을 입은 듯 보이는 조제군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여래와 충돌했던 이들은 대부분이 사라지고 태상노군과 조제군을 포함한 소수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하늘 관문이 무너짐에 따라 전세가 확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놈들이 약해졌다! 밀어붙여!
-검은 대지가 퍼지지 않는다!
마수들에 이어 디파일리스크까지 헌터들과 성좌들에 의해 점차 정리되고 있는 상황.
[허허허…….]
옥황상제의 입에서 분노와 허탈감이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네놈이 졌어. 옥황상제.”
처용이 승리에 쐐기를 박듯, 옥황상제를 향해 칼날을 겨누며 말했다.
[……!]
옥황상제가 ‘패배했다’라는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준비한 것들이 모두 막힌 상황.
너무나도 분하고 수치스러웠지만, 차후를 위해 지금은 물러날 때였다.
[이 일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옥황상제가 복수를 다짐하며 물러서기로 마음먹은 순간.
-쿠구구!
주변 일대에 불길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또 남은 수단이 있는 것인가?’
처용이 옥황상제를 주시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그러나.
[어찌……!?]
옥황상제 역시 크게 당황한 듯 보이는 눈치였다.
처용이 그런 옥황상제를 보며 의문을 드러낼 때.
-슈화아아아아아!!
주변에 퍼져 있던 검은 대지의 잔재들이 옥황상제의 뒤쪽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캬아아!
-샤아아!
헌터들, 성좌들과 전투를 치르던 모든 마수들이 한 곳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크웨에에!
디파일리스크들 역시 마찬가지.
검은 대지, 마수, 디파일리스크까지 한 지점으로 뭉치며 검고 작은 점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쩌저적!
검은 점을 중심으로 허공이 갈라지듯, 세로로 길게 균열이 일어나더니.
-콰콰쾅!
강제로 찢어 벌린 듯한 모양으로 균열이 좌·우로 벌어졌다.
그러자 균열 속에서 빛 한점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나타났다.
“……이 기운은!?”
처용이 검은 균열 속에서 전해지는 극도로 불길한 기운에 경악을 드러냈다.
대악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불길하고 사악한 기운.
이런 기운을 가진 존재는 이 우주 전체에 단 하나밖에 없었다.
속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자 바람을 품었지만.
-스스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점점 드러나는 형체를 보며, 그 바람이 무너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