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처용이 소유한 태초의 조각.
이것에 대한 상황이 일단락되자.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재판을 시작하지요.]
-샥.
미륵이 회의장, 아니 재판장 중앙에 나타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다시 임시 재판장을 맡겠습니다.]
[허가합니다.]
여래가 미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화아아!
미륵의 손에 금빛이 일렁이는 작은 망치, ‘신법의 존엄’이 생성되었다.
[우선, 이번 재판이 왜 열렸는지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겠지요?]
미륵이 성좌들을 쭉 둘러보며 말하고는.
[지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설명을 해 보거라.]
스미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제가 말해도…….”
지목을 받은 스미스가 땀을 한번 닦고는 말을 흐리자.
[긴장할 것 없다. 지상에서 벌어진 일이니, 네게 묻는 것일 뿐이다.]
미륵은 그저 벌어졌던 일에 대한 증언을 들을 뿐이라며 말했다.
“크흠……!”
스미스가 목을 가다듬는 듯, 기침을 한번 하고는.
“이번 사건의 시작은, 검은 대지 정화 작전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상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 축약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재판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
어떻게 영체석이 발견되었는지부터, 그 이후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이야기했다.
“역천군주 덕분에 영체석을 무사히 회수하여 각 성운에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를 전하노라.]
스미스의 말에 아테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처용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다른 성운들 역시, 그 부분은 인정했다.
처용이 영체석들을 수거한 덕분에 각 성운에 실종되었던 성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영체석이라는, 죽음보다도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무사히 성운으로 돌아온 것도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미…… 실험에 쓰여 소멸한 영체석은 수거가 불가능했지만요.”
처용이 옥황상제를 향해 싸늘한 눈빛을 던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뤼장첸에게 흡수당해 버린 영체석.
그것들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었다.
[감히…… 이런 짓을!]
[용서할 수 없다!]
처용의 말에 성좌들에게서 험악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옥황상제와 천교 성운을 향해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다.
[자자, 아직 증언은 끝나지 않았네.]
미륵이 성좌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며 말하고는 다시 스미스를 바라봤다.
“……크흠, 피해자는 성좌님들 뿐 아니라, 헌터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시선을 받은 스미스가 계속해서 증언을 이어 말했다.
“커맨더.”
스미스가 커맨더를 바라보며 말하자 커맨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희가 확보한 증거가 있습니다.”
커맨더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고는 왼손의 패널을 조작했다.
-위잉. 지이잉.
재판장 중앙에 네 개의 드론들이 날아와 홀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 위에 나타난 것은 처용이 사전에 전달했던, 천교의 실험과 관련된 문서들이었다.
모두의 시선의 중앙에 떠오른 홀로그램으로 향하자.
“프로젝트 : 이터…… 성좌와 헌터들을 희생시켜 만들려던, 천교의 인간병기와 관련된 문서입니다.”
스미스가 서류에 적힌 내용들을 짧게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
천교가 어떤 방식으로 이 실험을 진행했는지.
일 년에 어느 정도의 영체석과 스킬석을 소모했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이 모든 과정이.
“이런 끔찍하고도 불법적인 실험을 한 이유가-.”
성좌들과 헌터들을 희생시키고 실험한 이유.
“천교 길드장, 프로젝트 이터, 뤼장첸을 완성시키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이 모든 이유가 단 하나의 병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스미스가 증언을 끝내자.
[상제……!]
[제정신이 아니군.]
천교를 제외한 모든 성운의 성좌들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옥황상제가 개인의 욕망을 위해 다른 성운의 성좌들을 잡아 산 채로 실험했으니까.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었다.
모두가 분노를 표할 때.
[그렇다면 태양의 여신은 그런 옥황상제에게 협력한 것인가?]
이자나기 성운 측에서 목소리가 울려왔다.
입을 연 이는 다름 아닌 폭풍의 신 스사노오.
이자나기 성운에서 임시로 주신 자리를 맡은 성좌였다.
재앙의 나무가 발생하고 미륵에 의해 화신체가 무너졌었던 아마테라스.
그 이후 그녀는 스사노오와 다른 이자나기 성운 성좌들에게 붙잡혀 수감된 상태였다.
붙잡힌 아마테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황.
스사노오는 그런 아마테라스가 이번 일에 협력한 것인지를 물었다.
“그…… 그게…….”
스미스가 해야 할 말이 잘 정리되지 않은 듯, 말을 흐렸다.
그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좀 정리해 드리죠.”
태초의 조각을 해명할 때 이후로 침묵하고 있던 처용이 입을 열었다.
처용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처용에게 모였다.
“피고 옥황상제의 신관이, 저를 사냥하기 위해 함정을 팠었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큰 재앙이 벌어질 뻔한 일을, 잘 막아냈다고 들었다.]
아테나가 처용의 말에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다른 성운의 성좌들과 헌터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등, 알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처용이 분위기를 잠시 살피고는.
“재앙의 나무가 나타난 이유…… 아니, 애초에 이 사건 자체는 배후가 여럿입니다.”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배후가 여럿이라니?]
아테나가 의문을 표했고.
[옥황상제 말고도 이 일을 꾸민 자가 더 있다는 것인가?]
스사노오가 놀람을 표하며 말했다.
다른 성좌들 역시 처용의 말에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놀람을 표했다.
“제가 알아낸 배후만 셋입니다.”
처용이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고는.
“첫 번째는 이 자리에 피고로 올라온 옥황상제.”
그중 하나를 접으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대악마, 아스모데우스.”
또 하나의 손가락을 접은 처용이 아스모데우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용은 아스모데우스가 에블린을 감염시키고 옥황상제와 아마테라스를 도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마테라스는 배후라기보다는…… 멍청하게 이용당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아마테라스는 배후라기에는 무언가가 조금 부족했다.
그녀는 오로지 태초의 조각을 이용해 이자나기를 부활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아스모데우스와 옥황상제를 도운 마지막 배후 세력.”
마지막 손가락을 접은 처용이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순혈자들……!”
처용의 입에서 마지막 배후 세력이 거론되자.
[……순혈자?]
[그게 무엇인가?]
몇몇 성좌들은 ‘순혈자’ 자체를 모르는 듯한 분위기를 보이며 의문을 표했고.
[…….]
[……흐음.]
몇몇 성좌들은 ‘순혈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 침음을 흘리거나 침묵하고 있었다.
처용이 눈동자를 돌리며 성좌들의 반응을 쭉 지켜보고는.
“……보아하니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신 것 같아서, 설명해 드리지요.”
아주 작은 미소를 띠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순혈자는 각 성운에 숨어 있는 성좌들만의 비밀 세력입니다. 그리고…….”
처용이 하던 말을 멈추고 잠시 말을 흐리자.
[그리고?]
순혈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스사노오가 궁금한 듯 물었다.
잠시 침묵한 처용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는.
“대악마에게 충성을 맹세한 배신자들입니다.”
분노가 일렁이는 목소리로 싸늘하게 말했다.
각 성운에 기생충처럼 숨어들어 반역을 도모하는 자들.
대악마들을 도우며 성운의 중요한 정보들을 빼돌리는 간첩들.
처용은 순혈자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뭐라!?]
[감히! 우리 성운에 배신자라니!]
성좌들이 격한 반응들을 보였다.
그때.
[저 아이의 말이 맞습니다.]
아테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고는.
[올림포스에 대악마와 협력한 배신자가 있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아르테미스 등, 올림포스를 배신한 성좌들을 언급하며 말했다.
[그들이 순혈자란 말입니까? 올림포스 주신.]
스사노오가 아테나에게 묻자.
[맞습니다.]
아테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리고.
“그 순혈자들 덕분에 WHU에 수감된 천교의 S급 헌터들이 뤼장첸에게 살해당했죠.”
처용이 며칠 전 WHU에서 직접 잡아낸 배신자를 언급하며 말했다.
WHU 고위 임원이자 총괄 비서실장인 엠마.
그녀의 정체는 순혈자들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순혈신교였다.
“문제는 그 배신자가 신봉하는 순혈자, 놈은 올림포스의 배신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처용이 각 성운의 성좌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쭉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모르는 신력…… 다른 성운의 성좌였습니다.”
처용의 말이 울리자 각 성운의 성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 말을 어떻게 믿는가!]
[난데없이 배신자라니……!]
일부는 처용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정적인 반응을.
[……설마?]
[우리 성운에도?]
일부는 서로를 의심하는 듯한 반응 등을 보였다.
그리고.
“저기, 피고 옥황상제를 포함한 천교의 몇몇 성좌들도 순혈자입니다.”
처용이 손을 들어 옥황상제와 태상노군 등, 천교의 고위 성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네 이놈!]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지금껏 가까스로 분노를 참으며 침묵하고 있던 천교의 성좌들이 분노를 터트렸다.
[허…… 아무 증거도 없이 천교 전체를 배신자라 모는 것인가!]
실소를 터트린 옥황상제가 무겁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멍청한 놈들, 저 하계종의 말을 정녕 모두 믿는 것인가? 고귀한 신이라는 놈들이?]
옥황상제가 다른 성운의 성좌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성좌들이 작금의 상황을 생각하는 듯 다양한 반응을 보일 때.
“며칠 전에, 섀도우 헌터 하나가 제게 찾아왔었습니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게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주더군요.”
처용의 말이 울리자.
“섀도우 헌터가……?”
“역천군주를?”
이번엔 조용히 재판을 참관하던 헌터들이 반응을 보였다.
“……혹시, 조커가?”
생각을 하는 듯, 침묵하던 제시카가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입을 열며 말하자.
“정답, 조커의 명령을 받고 제게 접선해 온 것이었습니다.”
처용이 제시카를 향해 작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천교의 성지에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조커가 나타난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처용의 입에서 ‘조커’라는 말이 나오자, 성좌들도 처용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갑작스럽게 천교의 성지에 모습을 드러냈었던 조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다름 아닌.
-당장 이 짓거리를 멈춰라.
천교의 제례를 멈추기 위해서였다.
마치, 그 제례로 인해 재앙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제가 왜 양천에게 추적을 붙여 놨었는지 아십니까?”
처용이 스미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WHU 고위 임원중에 순혈신도가 있다. 이게 조커가 전해 준 정보였습니다.”
“사전에……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스미스가 놀란 듯, 눈이 커지며 처용에게 묻자.
“네, 설마 놈들이 그렇게 신속히 움직일 줄은 몰랐지만요.”
처용이 일부로 낭패감 어린 표정을 드러내며 답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천교의 제례, 성좌와 헌터를 산 채로 추출하는 끔찍한 실험…….”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사건들에 ‘조커’를 붙여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조커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조커는 천교가 벌이는 짓을 알아내고 막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홀로 거대한 성운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조커는.
“조커가 나를 끌어들인 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덕분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죠.”
거대 성운도 감당하기 힘든, 강력한 힘을 가진 헌터.
역천군주, 처용을 끌어들였다.
이것이 처용이 만들어낸 전체적인 그림이었다.
굳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선동을 한 목적이 있었다.
“덕분에 대악마, 천교, 순혈자들이 서로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파악했죠.”
각 성운들에게 순혈자들을 ‘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
순혈자들이 각 성운에 본격적으로 마수를 뻗으며 혼란을 일으키기 전에 그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든다.
이것이 처용의 진짜 목적이었다.
그리고 처용의 예상대로.
[감히! 기생충처럼 숨어서 암약하는 놈들이 대악마와 손을 잡다니!]
순혈자에게 분노를 드러내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이는 다름 아닌 에덴의 주신, 메타트론이었다.
순혈자가 ‘대악마와 손을 잡은 세력’이 확실해진 이상, 천사들에게는 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에덴을 시작으로.
[악마들과 손을 잡은 기생충들이 숨어 있다……? 이건 간과할 수가 없군.]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악마들을 혐오하는 야훼가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말했다.
다른 성좌들 역시, ‘순혈자’에 대해 적대감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
순혈자, 옥황상제의 눈썹을 꿈틀거렸다.
작금의 상황이 자꾸 처용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옥황상제가 처용을 무섭게 노려보며 다음 수를 생각할 때.
“크흐흐…….”
처용이 옥황상제를 마주 응시하며 실소를 지어 보이고는 입만을 움직여 메시지를 전했다.
-발악이라도 좀 해 보던가.
[……크으으으음!!]
소리 없는 처용의 말을 들은 옥황상제가, 격한 반응을 보이자.
“얼굴이 터지겠습니다. 피고 옥황상제.”
처용이 옥황상제의 벌게진 표정을 보며 싸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