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이틀의 시간이 더 지나고 다시 한번 호주 시드니로 헌터들이 모였다.
“일 년에 세계 헌터 회의가 두 번 열리는 건 처음 보네.”
커맨더의 함선에서 내린 이진호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굳이 말하자면, 세계 헌터 회의가 아니잖아?”
커맨더가 작은 미소를 띠며 말하고는.
“성운 재판이지.”
미소를 싹 지우고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 살다 살다, 신 하나도 아니고 성운 전체가 재판을 받는 걸 보는구만.”
“그러게요. 참…… 와 닿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백호의 말에 샬럿이 지금껏 일어난 일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말했다.
그 일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 사람, 처용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처용 헌터는?”
막 처용을 떠올린 샬럿이 궁금한 듯 말하자.
“후배는 하루 전에 이미 와 있었어.”
커맨더가 이틀 전, 처용이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토목 공사가 필요해서요.
처용은 난데없이 토목 공사(?)가 필요하다며 준비한 재료들을 들고 먼저 이곳에 왔다.
아직, 정확히 처용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커맨더도 잘 모르고 있었다.
다만.
‘무엇을 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군.’
그간 처용이 보여준 모습들 덕분인지, 이곳에서 처용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나 확실한 건.
-옥황상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천교, 즉 적들이 벌이는 개수작을 막기 위함이라는 것.
커맨더 역시 처용에게 미리 들은 말이 있었기에 짐작할 수 있었다.
‘여신님.’
생각을 마친 커맨더가 고개를 들고는 마키나 호를 바라보며 속으로 말하자.
[준비는 진작에 끝났다.]
그의 성좌,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동시에.
-후우우.
성지, 마키나 호가 고도를 높이며 구름을 뚫고 하늘로 사라졌다.
커맨더를 시작으로 각국의 주요 헌터들이, 세계 헌터 회의장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딱 맞춰서 오셨군요.”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처용이 커맨더를 보며 반가움을 표했다.
커맨더와 그 일행들이 처용에게 마주 반가움을 표하고는.
“뭔가 구조가 좀 바뀌었는데?”
내부를 둘러보던 백호가 의문을 가지며 말했다.
본래 세계 헌터 회의를 진행하던 성운들의 공용 성지.
이곳의 내부 구조가 조금 바뀐 상태였다.
본래는 모두가 서로를 볼 수 있도록 넓은 원형의 경기장과 같은 형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리처럼 쭉 이어져 있던 외곽 좌석들의 일부분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마치 한 입 베어 물은 도넛처럼 텅 비어버린 일부 공간.
그곳은 다른 좌석보다 낮은 높이의 좌석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가 서로를 볼 수 있는 구조에 더해, 모두가 그 낮은 좌석 부분을 볼 수 있게 만든 듯 보였다.
“아, 저건 ‘피고’석이군.”
내부 구조를 둘러보던 백호가 알았다는 듯 말했다.
다른 좌석과 동떨어져 있는 낮은 높이의 좌석들.
그 좌석들은 다름 아닌, 이번 재판을 받는 천교 성운의 병사들.
천교 소속 헌터들의 대표들이 자리한 장소였다.
천교는 뤼장첸에 의해 부길드장인 타친핑과 주요 S급 헌터 여덟이 사망한 상황.
지금 피고인석에는 그나마 남아 있는 천교의 고위직 헌터와 S급 헌터의 대표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들은 재앙의 나무 사태 이후, WHU에 의해 지금까지 수감되었었던 이들이었다.
“쯧, 불쌍한 놈들…….”
이진호가 피고인석을 보고 혀를 차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피고인석에 자리한 천교 소속 헌터들은 모두.
-부길드장이…… S급 헌터가 그런 용도였다니…….
-도대체 우린 무엇을 위해…….
깊은 절망과 한탄, 피로, 배신감, 자괴감 등 어두운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스미스가 그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그들에게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매가리가 빠져 있는 걸 보면, 저놈들이 사고 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백호가 피고인석을 응시하며 진지하게 말하자.
“사고를 친다면 저놈들이 아니라, 그 위에 있는 놈들이겠죠.”
처용이 피고인석 위를 바라보며 읊조리듯 답했다.
그때.
“이렇게 다시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피고인석과 반대되는 위치에 자리한 단상 위로 스미스가 자리하며 말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자리는 세계 헌터 회의가 아니라 신들의 재판입니다. 모두 주의해 주십시오.”
스미스는 간략하게 작금의 자리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며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화아아!
손에 끼워진 아티팩트를 들어 보이며 세계 헌터 회의, 아니 성운 재판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화아아!
-화아!
이전 세계 헌터 회의처럼 각 헌터들이 자리한 장소 위층에 화신체들이 강림했다.
-화아아!
피고인석에 자리한 천교의 헌터들 위에도 화신체들이 나타났다.
이번에 재판을 받을 천교의 성좌들이었다.
대부분 성운들의 성좌들이 강림하고.
-화아아!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여래가 나타나며 성좌들을 둘러보고는 질문을 던졌다.
그 말에 옥황상제를 제외한 각 성운의 주신들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신법 재판을 시작한다.]
-화아아!
주변의 환경이 금빛으로 일렁였다.
여래가 신법재판소를 사용하자.
[……!]
순간, 옥황상제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인상이 일그러졌다.
본래 신법재판소는 천교의 권리이자 상징이었던 고귀한 권능.
그 권능을 하등한 하계종이 강탈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니, 참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본래 신법재판소의 주인들을 ‘피고’로 세우기까지 한 상황.
점점 인내심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옥황상제가 여래를 노려보며 인상을 일그러뜨리자.
[쓸데없는 수작은 부리지 마라, 옥황상제.]
그 모습을 본 메타트론이 적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옥황상제를 향해 말했다.
[네놈이 허튼짓을 하는 순간! 곧장 네놈 성역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릴 것이다.]
메타트론의 말이 울리자, 다른 성운의 주신들 역시 옥황상제를 노려봤다.
지금 천교의 성역, 하늘궁의 외곽에는 각 성운에서 모인 병력들이 집결해 포위하고 있었다.
옥황상제가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 순간, 곧장 공격할 목적이었다.
[허…… 허허허…….]
주변의 싸늘한 반응에 옥황상제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
당장이라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제 곧…… 시간이 되느니라.’
아직은 때를 기다릴 때였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내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소.]
옥황상제가 침착한 목소리로 다른 성운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고는.
[태초의 조각이…… 어째서 혈선의 신관 손에 들어간 것인가?]
손을 들어 처용을 가리키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중히 보관되어야 할 태초의 조각이 어째서, ‘하계종’의 손에 있느냔 말이오?]
옥황상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처용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태초의 조각이…… 혈선의 신관에게 있다고?]
[그게 사실인가!?]
성좌들에게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태초의 조각은 태초신의 힘이 담긴 지고(至高)하고 위험한 물건.
인간의 손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큭, 이딴 식으로 시선을 돌려 보시겠다?’
처용이 옥황상제를 바라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묻겠다. 정녕 태초의 조각을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야훼가 처용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태초신의 대리자.
하계종의 손에 태초의 조각이 쥐어진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이었다.
야훼의 말과 함께 모두가 처용의 대답을 기다린 순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우우웅.
처용이 태초의 조각을 들어 보이며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감히! 태초의 조각을 하계종이 함부로 소유하느냐!]
에덴의 대천사들이 있는 장소에서 질책 가득한 고함이 울려왔다.
처용을 향해 소리친 이는 정화의 대천사 우리엘이었다.
우리엘이 처용을 향해 고함을 지른 순간.
“그럼 가져가시든가.”
처용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태초의 조각을 쥐며 말하고는.
-휙!
마치 야구공을 토스하듯, 우리엘을 향해 정확하고 빠르게 던졌다.
[이게 무슨 짓-!]
화들짝 놀란 우리엘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 태초의 조각을 받으려 했다.
-탁!
우리엘이 처용이 던진 태초의 조각을 정확하게 받았고 손을 다시 편 순간.
[……어?]
손바닥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는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분명, 처용이 던진 태초의 조각을 받은 감각이 있었다.
헌데 태초의 조각을 잡아채고 손을 다시 편 순간 사라졌다.
우리엘이 당황할 때.
“흠…… 역시 이렇게 되어 버리는군.”
-화아아.
처용이 다시 오른손에 쥐어진 태초의 조각을 들어 보이며 읊조렸다.
그리고.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들을 못 하신 것 같으니…… 다시 보여드리죠.”
다시 태초의 조각을 던지려는 듯, 투척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휙!
이번에 던진 방향은 다름 아닌 태초신의 대리자, 야훼가 있는 방향.
[허튼 수작질은 통하지 않는다!]
-화아아!
야훼가 신력을 내뿜어 빛의 손을 만들어내고는.
-탁!
날아오는 태초의 조각을 강하게 쥐며 가져왔다.
그러나.
[이것은 태초신의 대리자인 내가-.]
태초의 조각을 ‘분명하게’ 손에 쥔 야훼가 손을 다시 편 순간.
[……?]
분명하게 손에 쥐었던 태초의 조각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이게 무슨……?]
야훼가 빈손을 내려다보며 당황하자.
“보시는 바와 같이…….”
처용이 다시 손에 쥐어진 태초의 조각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듯, 처용의 손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손에 쥐어진 순간 되돌아온 듯 보였다.
“이놈이 내게서…… 안 떨어집니다!”
-투! 콰앙!
태초의 조각을 강하게 쥔 처용이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거세게 던졌다.
마치 투포환을 던진 듯 파공음을 내며 날아가는 태초의 조각.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하늘로 날아가는 태초의 조각을 똑똑히 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처용이 던진 태초의 조각으로 향했고.
“다시 돌아왔네요.”
처용의 말과 동시에 다시 모두의 시선이 처용에게로 향했다.
역시나 처용의 오른손에 방금 전 강하게 던졌던 태초의 조각이 들려 있었다.
[내 눈이 이상한 것인가?]
[아니, 분명 저 아이의 손을 벗어났다. 헌데…….]
성좌들이 작금의 상황에 혼란스러움을 표할 때.
[어쩔 수 없었다네.]
미륵이 작은 미소를 띠고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관리자’의 권한까지 사용해 봤지만, 도저히 저 아이에게서 떨어지지 않더군.]
태초의 조각을 처용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미륵이 손을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내가 조치를 취해 놓긴 했네.]
미륵이 처용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태초의 조각을 보며 말했다.
결론은, ‘관리자’인 자신조차 어쩔 수 없으니 이대로 둬야 한다는 것.
거기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추가로 조치를 취했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설명했다.
미륵의 말이 끝나자.
“뭐, 이 정도면 이것에 대한 해명은 끝난 것 같고….”
처용이 조각을 아공간 속으로 집어넣으며 입을 열고는.
“왜 이번 재판이 열렸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다시들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성좌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다시금 모두의 시선이 옥황상제에게로 향했다.
[…….]
상황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은 듯, 옥황상제가 미세하게 눈썹을 꿈틀거리며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쓸데없이 이번 일의 논점을 흐리지 마라 ‘피고’ 옥. 황. 상. 제.”
옥황상제를 향해 ‘피고’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자.
[네……! 놈이……!]
가까스로 평정을 유지하려던 옥황상제의 표정이 세차게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화산처럼, 분노가 인내심을 뚫고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옥황상제가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읊조리듯 분노를 표하자.
‘고작, 이게 전부라면, 내가 정말 실망할 거야. 옥황상제.’
처용이 분노에 몸부림치는 옥황상제를 즐겁게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