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운장이 감사를 전하며 자신의 신력을 처용에게 전하자.
[태무신-운장의 힘을 계승합니다.]
놀랍게도 이전, 카투라와 크루마 등, 성좌에게서 신력을 전달받았을 때와 같은 시스템이 나타났다.
‘성좌가 자신의 의지로 힘을 전달한 경우, 계승되는 것인가?’
처용이 시스템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직도 이 ‘계승’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성좌의 힘을 전달받는 조건이 무엇인지, 어떤 원리로 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떠오르는 이 의문을 미륵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지만.
-말할 수 없다.
그는 이전 여래가 그랬던 것처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용이 계승자에 대해 계속 생각할 때.
[통찰의 눈에 관철안(貫徹眼)이 추가됩니다.]
[선인의 육체에 ‘육감(六感)’이 추가됩니다.]
운장의 신력을 계승받고 성장한 선인의 육체에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었다.
[관철안(貫徹眼)]
[주시 대상을 가리는 모든 장막을 꿰뚫고 내면과 진의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신력 스텟이 높을수록 효과가 더 강해집니다.]
[대상의 격이 높으면 관철이 불가능합니다.]
관철안은 간단하게 말해서 통찰의 눈을 더 강화시키는 힘이었다.
대악마의 가호나 특수한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등.
강력한 보호 장막이 있으면 처용도 대상을 통찰할 수 없었다.
처용은 관철안의 능력을 확인하자마자.
‘닥터…….’
바로 닥터를 떠올렸다.
의도와 목적을 알 수 없는 의회주, 닥터 화이트.
다시 만난다면 닥터를 통찰하여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 얻은 것.
[육감(六感)]
[선인의 육체에 초감각(超感覺)이 활성화됩니다.]
[사용자의 체력 스텟이 높을수록 효과가 더 강해집니다.]
[예상치 못한 적의 공격이나 불길함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육감 역시 아주 유용한 능력이었다.
처용이 새로 생긴 능력들을 확인할 때.
[업적 정산이 끝났습니다.]
[모든 스텟이 50 상승합니다.]
[레벨이 크게 상승합니다.]
타이밍 좋게 무신의 시험 결과가 나타났다.
모든 스텟이 추가로 상승했고 무엇보다 처용이 원한 것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레벨 : 199]
레벨의 대폭 상승이었다.
무신의 시험을 통과하면 성적에 따라 레벨이 평균 10개 정도 오른다.
처용은 무신의 시험을 ‘뛰어난 성적’으로 수료한 상태였다.
불과 방금 전 처용의 레벨은 187, 시험 결과 처용의 레벨이 199가 되었다.
1개의 레벨도 올리기 힘든 지금 시기에 무려 12개의 레벨이 상승한 것.
엄청난 상승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200레벨에는 도달하지 못한 건가…….’
처용이 속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무신의 시험을 치른 목표 중 하나가 바로 200레벨의 달성이었으니까.
헌터들 중 최초로 200레벨에 달성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곧 있을 세계 헌터 회의 전에 200레벨은 올려놓고 싶었지만, 단 하나의 문턱에서 막혀 버렸다.
‘어쩔 수 없군.’
처용은 아쉬움을 뒤로하며 상념을 털어 버렸다.
이제 세계 헌터 회의 때 벌어질 난장판을 준비해야 하니까.
[더 볼일이 있느냐?]
미륵이 처용에게 다가오며 말하자.
“이제 없습니다. 돌아가죠.”
처용이 대답했다.
조금 아쉽긴 해도, 이번 시험을 통해 얻은 것은 많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무신전은 언제든 너를 환영할 것이다.]
운장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처용에게 말했다.
무신전의 성좌들에게 받은 인정.
처용이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것이 가장 값진 보상이었다.
“영광입니다. 태무신 님.”
처용이 태무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전하고는 무신들의 환호를 받으며 돌아갔다.
***
중앙의 푸른 화로가 일렁이며 어두운 주변을 밝히는 공간.
-화아아.
화로의 불길이 커지자, 화로를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진 좌석들이 드러났다.
등받이가 긴 좌석의 위에는 각기 다른 룬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로마의 숫자 기호와 비슷한 모습의 룬 문자들.
그 중.
-화아아.
Ⅰ, 숫자 ‘1’을 가리키는 룬 문자가 적힌 좌석에 안개가 모이며 사람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금색 문양이 새겨진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누군가.
로브 아래에는 어둠만이 가득했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샥. 화아아-!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이가 손을 크게 휘젓자.
-화아아! 화아! 화아!
빈 좌석들에 하얀 안개가 뭉치며, 서로 다른 색상의 로브를 쓴 이들이 나타났다.
비어 있던 자리들이 모두 채워진 순간.
-화르륵!
푸른 불이 타오르던 화로가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왜 우리들을 부른 겁니까? 의장(議長).”
하늘색 로브를 뒤집어쓴, Ⅴ라는 룬 문자가 새겨진 좌석에 앉은 이가 입을 열었다.
여성인 듯, 잔잔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울렸다.
하늘색 로브의 여성이 Ⅰ에게 말하자.
“의회를 모집한 건 제가 아닙니다.”
금색 문양이 새겨진 붉은 로브, Ⅰ가 Ⅴ를 향해 입을 열고는.
“이번 의회를 모집한 건, Ⅱ입니다.”
바로 옆자리인 Ⅱ, 즉 ‘2’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자리에는 짙은 청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이가 허리를 펴고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Ⅰ, 즉 의장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Ⅱ에게 쏠렸다.
그러자 Ⅱ가 고개를 살짝 들고는.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그 하계종을 이대로 둘 건가?”
분노가 서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엄이 서린 중후한 목소리를 내뱉는 Ⅱ.
짙은 청색 로브를 뒤집어쓴 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옥황상제였다.
지금 이 자리는 다름 아닌 순혈자들의 대표들이 모이는 의회.
순혈자의 대표 중 하나인 옥황상제가 의장에게 요청하여 이번 의회를 요청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버러지 같은 미물이 감히 신의 위엄과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보고만 있을 텐가!”
처용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용과 연관된 모든 이들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우주의 법칙을 관리하는 신성한 신법재판소를 하계종의 손에 놀아나게 계속 둘 것인가!”
천교의 위신을 크게 하락시킨 인간 출신의 신, 여래가 있었다.
Ⅱ, 옥황상제가 격노 어린 목소리로 외치자.
“크흐흐, 보아하니 Ⅱ가 누구인지 바로 알겠는데?”
Ⅵ, 숫자 6을 의미하는 의자에 앉은 녹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로브 아래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짙게 깔렸기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많이 열받았나 봐? 늙다리?”
목소리와 분위기만으로도 그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Ⅵ가 도발하듯 얼굴을 쭉 내밀며 말하자.
“이 시건방진 애새끼가! 감히!”
-쾅!
Ⅱ, 옥황상제가 팔걸이를 강하게 내려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정녕 죽고 싶은 것인가? 로키!”
-쿠우우!
격렬한 분노를 내뿜으며 옥황상제가 Ⅵ의 진짜 정체를 언급했다.
Ⅵ, 순혈자 의회에서 숫자 ‘6’의 좌석에 앉은 자.
그는 아스가르드 소속 장난과 기만의 신 로키(Loki)였다.
“이 자리에서? 할 수 있으면 해 보든가? 크흐흐.”
옥황상제의 격렬한 분노에도 로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흘리며 도발했다.
그때.
“순혈의회에서 서로의 정체를 언급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Ⅳ, 숫자 ‘4’라는 문자가 새겨진 좌석.
그 위에 앉은 붉은 문양이 새겨진검은 로브를 입은 이가 옥황상제와 로키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지금 이 자리는 순혈자들의 대표들이 모이는 자리.
이곳에서는 서로의 정체를 직접 언급하거나 말하는 것이 금지였다.
이미 로키를 포함한 몇몇은 알려져 있다고 해도, 규칙은 규칙.
“경고하지, 규칙은 지켜라. Ⅱ.”
Ⅳ가 옥황상제를 향해 경고하듯 말하자.
“이 빌어먹을 놈들……!”
옥황상제가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듯, 침음을 흘리고는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네놈 역시 장난은 적당히 해라, Ⅵ.”
“예, 예, 알았다고~.”
로키가 Ⅳ의 말에 손을 휘젓고는 팔짱을 끼며 가볍게 말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될 때.
“Ⅱ의 말대로 그 하계종에 대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어.”
Ⅶ, 7의 숫자가 적힌 좌석에 앉은, 은색 로브를 입은 이가 입을 열었다.
여신인 듯, 톤이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
“그 건방진 벌레 새끼가 감히 내 신전을……! 놈이 더 날뛰게 놔둘 수 없다.”
그녀는 다름 아닌 올림포스의 배신자,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였다.
처용의 대한 적대감이 강한 듯, 아르테미스가 분노를 곱씹으며 말하자.
“당장 뭘 할 수 있는 건 없어.”
Ⅶ의 옆자리, 숫자 8을 의미하는 Ⅷ라는 문자가 적힌 좌석.
그 위에 앉은 옅은 노란빛의 로브를 쓴 여신이 입을 열었다.
“그 간악한 하계종이 우리에 대해 폭로하는 바람에, 여론이 좋지 않거든.”
“네가 진작 뭐라도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냐!?”
Ⅷ의 말에 Ⅶ가 질책하듯 소리쳤다.
“나는 너처럼 막 들이대는 타입이 아니거든, 신중한 편이지.”
Ⅶ의 말에 Ⅷ가 되려 핀잔하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고상한 척하지 마라, 이 빌어먹을 년아.”
Ⅶ가 낮게 일렁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하계종은 무색무취의 매료향 조차 통하지 않았어.”
분노가 서린 Ⅶ의 말에도 Ⅷ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 놈에게 잘못 수작을 부렸다간 일을 그르쳤을 거야.”
“그건 Ⅷ의 말이 맞다.”
Ⅷ의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숫자 9를 의미하는 Ⅸ라는 문자가 적힌 좌석.
“지금 함부로 나서기에는 좋지 않다.”
그 위에 앉은, 옅은 주황빛 로브를 쓴 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놈이 그르친 일의 수습을…… 우리에게 떠넘길 생각인가? Ⅱ.”
검은 로브, Ⅳ가 옥황상제를 노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이대로 구경만 할 것이다?”
옥황상제가 Ⅳ를 마주 노려보며 읊조리듯 묻자.
“난 ‘그분’의 지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Ⅳ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건방진 하계종을 처단해야 ‘그분’께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인가? Ⅳ!”
-우우웅!
옥황상제가 신력을 내뿜으며 Ⅳ를 향해 고함을 내지르자.
“감히 내게 명령하지 마라, 천황.”
Ⅳ가 검고 어두운 신력을 내뿜으며 경고하듯 답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갈 때.
“Ⅱ를 도와줄지 말지는 개인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의장의 자리에 앉은 Ⅰ이 상황을 중재하듯 입을 열었다.
“단, 그 책임도 각각 개인이 지셔야 할 겁니다.”
옥황상제를 도울 이들은 도와라.
단, 그 이후 벌어질 결과에 대해서는 각자 책임을 져야 한다.
Ⅰ는 이번 의회를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때.
“그 하계종이 그렇게나 위험한가?”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이가 입을 열었다.
숫자 3을 의미하는, Ⅲ라는 문자가 적힌 좌석에 앉은 자.
연갈색 로브를 뒤집어쓴 순혈자가 처용에 대해 묻자.
“하계종 시절의 혈선이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르테미스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짜증을 담아 말했다.
“흐음…… 그 정도라고?”
Ⅲ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작게 읊조렸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위험하군.”
“네 세계의 하계종들은 전부 네 성운에 ‘통제’되어 있으니 문제는 없겠지?”
처용의 대한 위험성을 인지한 Ⅲ에게 아르테미스가 말하자.
“혈선 같은 기질을 보이는 하계종이 나타난다면, 즉각 조치하고 있다.”
Ⅲ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Ⅱ를 도울 방법이 없군.”
고개를 저으며 옥황상제를 도울 수 없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는 애시당초 외세(外世)의 신격.
지구와는 다른 세계를 다스리는 성좌였다.
Ⅲ의 말이 울리자.
“나 역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어.”
Ⅵ, 로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형님이나 아버지가 내 정체를 안다면, 아마 내가 맞아 죽을걸?”
로키는 명백한 거절 의사를 밝힌 상황.
그리고.
“…….”
“…….”
다른 이들 역시, 선뜻 옥황상제에게 도와주겠다 말하는 이들은 없었다.
“네년도 빠지는 것인가?”
옥황상제가 Ⅶ, 아르테미스를 향해 물었다.
그녀 역시 처용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순혈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내 신관은 차원을 넘었고 그곳에서 신전을 재건하고 있거든.”
아르테미스는 사정이 있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네? 미안해서 어쩌나?”
당장 처용을 없애 버리고 싶은 건 아르테미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은밀하게 진행해오던 일들을 말아먹은 옥황상제가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았다.
굳이 무리해서 그를 도울 이유가 없었다.
옥황상제의 무모한 계획이 성공하면 그거대로 좋은 것이고.
그가 이번에도 망한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정녕 그분을 따르는 이들이 맞는지, 내 심히 의심이 되는군.”
옥황상제가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조만간, 네놈들의 충심이 진심인지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의장인 Ⅰ를 바라보며 적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머저리 같은 것들, 애초에 네놈들 도움 따윈 바라지도 않았느니라.”
-화아아!
옥황상제가 마지막 말을 마치고는 사라지자.
“저 늙다리가 성공할지 망할지 내기라도 해 볼까?”
로키가 남은 이들을 둘러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로키의 말에 다른 이들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재미없는 양반들 같으니라고.”
-화아아!
고개를 저으며 작게 말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옥황상제와 로키를 시작으로.
-화아! 화아아! 화아!
의회에 참석했던 순혈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Ⅱ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Ⅳ,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순혈자가 Ⅰ을 향해 경고하듯 말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대부분의 순혈자들이 사라지고 둘만이 남았다.
한 명은 의장인 Ⅰ, 그리고 또 다른 한 명.
“……이제, 어쩌실 겁니까?”
숫자 10을 의미하는 Ⅹ라는 문자가 적힌 좌석.
그 위에 앉은 황녹색 로브를 뒤집어쓴 순혈자가 Ⅰ를 향해 조심스럽게 묻자.
“우선, 이번 사태가 어떻게 될지 지켜본 이후에…… 판단을 해야겠다.”
Ⅰ가 Ⅹ를 향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