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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315화 (315/726)

#315화

-콰아아!

핏빛 폭풍이 시험장 전체를 휘감으며 시야를 가리자.

[……어찌 되었나?]

[적무신의 혈화난무 속에서는 우리도 버티기 힘들다고.]

관중석의 무신들이 결과를 궁금해하며 웅성거렸다.

이윽고.

-스스스.

핏빛 폭풍의 기류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조금씩 시야가 드러났다.

그러자.

[어떻게 된 건가?]

[……버텨낸 건가? 무슨 상황이지?]

점점 가라앉는 폭풍 속에서 미세하게 실루엣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커헉……!”

처용은 적무신의 혈화난무 속에서 반쯤 무릎을 꿇은 채, 살아남았다.

온몸에 날카로운 핏빛 꽃잎들이 박혀 치명상을 입은 듯 보였지만.

무려 적무신의 발휘한 핏빛 폭풍, 혈화난무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리고.

-철컥-철크럭!

부상을 입은 처용의 앞에는 붉은 갑주를 입은 누군가가 자세를 낮춘 채 서 있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갑주와 얼굴을 가린 치우 가면, 양팔에 부착된 날카로운 칼날.

-스르릉!

부상 당한 처용을 지키려는 듯, 칼날을 길게 빼내며 경계하고 있는 모습.

처용의 앞을 지킨 골렘은 놀랍게도 처용의 무구.

현신한 역천의 절이었다.

[평범한 도가 아니었구나.]

적무신이 역천의 절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전, 적무신과 처용의 주먹이 서로 충돌하고 동시에 뒤로 물러난 순간.

-콰아아!

주변을 휩쓸던 핏빛 폭풍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때.

-화아아!

바닥에 떨어진 처용의 무구, 역천의 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차카카카캉!

누군가가 나타나 처용의 앞을 가로막으며 쇄도해오는 핏빛 꽃잎들을 쳐내었다.

비록 전부 쳐내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처용이 시험장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이 정도 자아를 가진 무구가 선택한 주인이라…….]

-스릉.

적무신이 방천극을 들어 올리고 고쳐 쥐며 말하자.

-철컥! 스르릉!

골렘으로 현신한 역천의 절이 양손의 칼날을 교차하며 적무신을 경계했다.

그때.

-탁.

처용이 몸을 일으키고는 오른손을 들어 역천의 절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스르릉.

역천의 절이 주인의 의사를 알았다는 듯, 칼날을 내리고는.

-스르르.

다시 무구의 형태로 돌아와 처용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졌습니다.”

더는 전투를 지속할 상태가 아님을 깨달은 처용이 패배를 시인했다.

처용의 패배 선언이 울리자.

[하하하…….]

적무신이 작은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작게 말을 흘리고는.

[강완의 말대로, 이건 인정할 수 밖에 없구나.]

이전, 강완이 했었던 말과 같은 말을 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무신의 말이 끝나자.

[적무신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알림이 떠올랐고.

[하하하! 정말로 단번에 모두 통과할 줄이야!]

[드디어 첫 번째 통과자가 나왔군!]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근 10년간 아무도 통과하지 못한 무신의 시험에 최초로 통과한 자가 나타났다.

무신의 시험 첫 번째 통과자.

이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처용이 거머쥐었다.

‘조금, 미안하군.’

처용이 관중석에 앉아 있는 하오찬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회귀 전에는 하오찬이 최초 통과자였으니까.

하지만, 이름만 ‘최초’일 뿐, 다른 통과자들과는 다른, 특별히 뭔가를 더 받는 건 없었다.

되려 하오찬에게 도움이 될 부분이 많았다.

애초에 무신의 시험을 치른 이유 중 하나가 하오찬을 포함한 무신들의 신관들 때문이었으니까.

지금 처용이 무신의 시험을 치르며 보여준 ‘무위(武威)’.

무신들에게 무(武)를 배우는 동방불패 길드의 S급 헌터들이 그냥 구경만 했을 리가 없었다.

이미 몇몇은 진지한 표정으로 상념에 빠진 모습들을 보였다.

동방불패 길드 역시 지금의 올림포스처럼 동맹이 확실시된 이들.

이들이 더 성장해야 앞으로 닥칠 위협에 더 큰 힘을 보태줄 것이다.

“많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적무신 님.”

처용이 적무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시험관으로서 맡은 바를 다 했을 뿐이다.]

적무신은 처용의 감사에 작은 미소를 띠며 말하고는 관중석의 한 곳을 응시했다.

그 시선이 닿은 곳에는.

“…….”

무언가 불만인 듯, 한숨을 내쉬고 있는 적무신의 신관, 초하가 있었다.

“신관이 무언가 불만이 있어 보입니다만…….”

처용이 초하의 반응을 살피고는 적무신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부탁이라도 받았던 겁니까?”

[……네 전력을 보고 싶었다는구나.]

적무신이 시험이 시작되기 전, 초하가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저자의 전력을 보고 싶습니다.

초하가 소리 없이 전한 말은 다름 아닌 처용의 전력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적무신은 초하의 바램을 들어 주고 싶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무신의 시험장.

시험자와 시험관 모두가 제약이 걸린 상태에서 무(武)를 시험하는 장소였다.

짧게 고민한 적무신은 신물 사용을 조건으로 태무신에게 제약의 일부를 해제할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저 아이는 만족하지 못한 것 같지만.]

적무신이 초하를 바라보며 말하자.

“신관의 부탁도 흔쾌히 들어주고, 친절하신 성좌님을 잘 만났군요.”

처용이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맞다. 아주…… 잘 만났지.]

적무신이 처용의 말에 짧게 침묵하고는 작게 읊조렸다.

‘……훨씬 이전부터 그랬던 건가?’

적무신의 작은 말소리를 들은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말했다.

방금 적무신의 말, ‘잘 만났다’라는 말은 초하를 대상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신관이 성좌를 잘 만난 것이 아닌, 성좌가 신관을 잘 만났다고 말한 것.

무언가 좀 이상했지만, 처용은 그런 적무신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회귀 전, 크타니드와의 싸움 도중 초하가 파멸의 권능에 휘말려 사망했을 때.

-전부! 죽여 버릴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적무신이 격노를 내지르며 크타니드를 향해 무모한 돌진을 감행했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공격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크타니드를 향해 공격을 멈추지 않았었다.

적무신은 파멸의 권능에 직격으로 맞아 소멸해가는 와중에도.

-감히……! 감히! 초하를-!

스스로를 희생해 다섯의 대악마를 소멸시키고 크타니드의 왼팔을 뜯어내었다.

그 당시에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분노하도록 만들었는지 잘 몰랐지만.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서로가 다시 만났거늘…… 하늘도 참 무심하군.

전투가 끝난 후, 태무신이 한탄을 내뱉으며 처용에게 말해 주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적무신과 초하는 특별한 인연으로 엮여 있었다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특별한 인연들이 있는 것처럼, 성좌와 인간 사이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처용이 인간이 아닌 이종족, 성좌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것처럼…….

‘같은 비극을 맞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봉선…….’

과거의 일을 떠올린 처용이 적무신을 향해 작은 기도를 올리듯 속으로 말했다.

처용이 회귀 전 일들을 생각할 때.

[오랜만에 즐거운 투쟁을 느낄 수 있었다.]

적무신이 처용을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시험자 한처용은! 투쟁을 증명했노라!]

-쾅!

태무신이 언월도를 들어 땅을 강하게 찍으며 크게 소리쳤다.

[무신의 시험이 완료되었습니다.]

[모든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시험자가 모든 무신들에게 진심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업적이 추가로 정산됩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동시에.

-화아아!

적무신의 양옆으로 빛이 모이더니 창무신과 강완이 나타났다.

이전 처용을 시험했던 시험관들.

[다루던 창이 부서졌더구나.]

가장 먼저 창무신이 처용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처용을 시험할 때 쓰던 낡은 창이 아닌, 새로운 창을 들고 있었다.

일자로 깔끔하게 뻗은 창이 아닌, 각이 지며 직각으로 네 번 꺾여 있는 창날.

흑청색의 용이 창날 아랫부분을 휘감은 듯한 창 자루 장식.

공격적인 느낌이 강하게 전해지는 창이었다.

[너라면 이 녀석의 좋은 주인이 될 것이다.]

창무신이 들고 있던 창을 처용에게 내밀며 말했다.

창을 두 손으로 받은 처용이 손에 쥐어진 창을 받아 살펴보았다.

[맹룡(猛龍)의 송곳니 / 성물(聖物)]

[등급 : 신화(神話)]

[고대의 전장에서 크게 용맹을 떨친 영웅이 다루던 창.]

[창에 새겨진 영웅의 투지가 사용자에게 깃들어 추가 효과를 부여합니다.]

-사용자의 창술이 크게 상승합니다.

-‘찌르기’ 사용 시, 상대의 방어를 관통합니다.

“감사합니다. 창무신 님.”

창을 살펴본 처용이 창무신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창무신이 보상으로 내린 창은 생전의 장군이었던 그가 전장에서 다루던 창이었다.

그의 기억과 투쟁이 온전히 담겨 있는 무구.

모든 무기를 다루는 처용에게는 아주 좋은 보상이었다.

처용이 창무신이 내민 창을 받자.

[나는 이것이다.]

강완이 앞으로 나와 처용에게 오른손을 뻗으며 신력을 내뿜었다.

강렬한 느낌이 전해지는 신력이 처용에게 닿자.

[선인의 육체가 외부에서 전해지는 새로운 힘을 받아들입니다.]

[선인의 육체에 ‘축력(畜力)’이 추가됩니다.]

선인의 육체에 새로운 능력이 추가되었다.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힘’이지 않느냐? 하하!]

처용에게 자신의 권능 중 일부를 보상으로 내린 강완이 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축력(畜力)]

[공격을 하기 전, 힘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더 오래, 더 강하게 힘을 모을수록, 더 강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 능력은 사용자의 ‘힘’ 스텟에 비례해 성장합니다.]

강완이 전해 준 보상, 축력(畜力)은 말 그대로 힘 그 자체였다.

이전, 처용이 사용하던 스킬, 충전 강타와 비슷한 원리였지만.

‘스킬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

보다 강력하고 유용했다.

벌써 처용은 축력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상황이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완 님.”

처용이 유용한 보상을 준 강완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이제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았다.

[흠…….]

적무신이 짧게 침음을 내뱉고는.

[혹, 원하는 것이 있느냐?]

처용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지금 이 자리는 시험의 통과자인 처용에게 시험관들이 보상을 내리는 자리였다.

앞서 두 무신은 처용에게 필요할 법한 것들을 주었지만.

‘고민이군.’

적무신은 자신이 내줄 수 있는 것들 중, 처용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해서 처용에게 물은 것이었다.

“으음…….”

처용이 침음을 흘리며 짧게 고민하고는.

‘혹시 이런 것도 가능할까요?’

적무신을 향해 전음을 보내며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처용의 전음을 들은 적무신이 조금 놀란 듯, 눈이 조금 커졌다.

[태무신.]

적무신이 고개를 돌려 태무신을 바라보고는 무언가를 조용히 말했다.

방금 처용에게 들은 말을 이야기한 듯 보였다.

그러자.

[……허허, 가능하오.]

태무신이 처용을 바라보며 잠시 웃고는 적무신을 향해 말했다.

적무신이 태무신의 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참 놀라울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강욕이 없구나.]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그럴 리가요.”

적무신의 말에 처용이 작은 미소를 띠며 부정하고는.

“저는 필요한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처용이 요청한 마지막 보상은 다름 아닌.

-제 성지에 머무는 헌터들도 무신의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태룡사에 머무는 헌터들에게 무신의 시험을 치를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본래, 무신의 시험은 무신전에 소속된, 즉 동방불패 길드 헌터들만이 치를 자격이 있었다.

지금 처용이 무신의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이유는 태무신과 거래를 했기 때문이었다.

처용은 마지막 시험의 보상으로 무신의 시험을 치를 자격을 다른 헌터들에게도 달라 요청한 것이었다.

이것이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태무신과 적무신의 반응을 보니 가능한 듯 보였다.

처용이 이를 원한 것은 별것 없었다.

완전하게 아군이 된 이들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

이는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겐 이 무신의 시험을 치른 것 자체가 큰 보상이었습니다.”

처용이 앞에 있는 무신들을 향해 나름 진심을 이야기했다.

무신의 시험을 모두 통과한 것으로 얻는 것은 무신들이 내리는 보상이 끝이 아니었으니까.

“정말 많은 배움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용이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하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그 모습을 본 세 명 무신, 처용을 시험했던 시험관들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서.

[무신의 시험을 종료한다!]

-쾅!

운장이 언월도를 들어 땅을 찍으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무신전은 무신의 시험을 최초로 통과한 한처용을 언제든 반길 것이다!]

운장의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관중석에서 환호가 들려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무신전을 흥겹게 해준 네게 감사를 전하노라.]

운장이 처용을 언월도를 살짝 내밀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네가 마주할 시련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우우웅.

언월도에 휘감긴 용에게서 금빛이 흘러나오더니, 처용에게 스며들었다.

[태무신-운장의 힘을 계승합니다.]

[선인의 육체가 성장합니다.]

[모든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최대 체력이 500 증가합니다.]

[무신의 시험 결과의 업적이 추가로 정산됩니다.]

이전, 카투라와 크루마에게서 힘을 계승 받았을 때처럼,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동시에 새로운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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