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강렬한 폭발이 일어나며 굉음이 울렸고 거센 흙먼지가 솟구쳤다.
동시에.
-슈우웅! 콰쾅!!
폭발의 흙먼지 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튕겨 나와 무신의 시험장 결계에 부딪혔다.
“커-헉!?”
튕겨 나온 이는 다름 아닌 처용이었다.
‘손가락에 팔뼈…… 어깨까지 박살 났군.’
-후두두-둑.
벽에 부딪힌 처용이 가까스로 일어서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뼈가 부러진 듯, 오른손 손가락과 팔뼈가 뒤틀리며 꺾여 있었다.
왼팔 역시 뼈가 부러지고 금이 간 듯, 여기저기 보랏빛으로 멍이 들어 있었다.
처용이 쓰러진 몸을 일으키자.
[그래도 용케 살아남았군.]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볼 수 있소.]
관중석에서 놀라움 가득한 반응이 나타났다.
무신의 시험장 안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면 자동으로 탈락 처리되며 결계 밖으로 튕겨 나간다.
그러나 처용은 강완의 힘을 정면으로 받았음에도 결계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았다.
즉, 강완의 공격을 공격으로 버텨낸 것.
충분히 놀라울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군.]
[아쉽군, 아쉬워……!]
관중석의 무신들에게서 놀라움이 사라지고 진한 아쉬움이 드러났다.
무신의 시험은 시험자가 시험관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합격 처리된다.
처용이 강완의 힘을 버티고 살아남은 것은 놀라우나, 그게 끝이었다.
이것이 전부라면 강완이 처용을 인정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처용의 탈락을 아쉬워할 때.
[강완의 발을 보시오.]
처용을 시험했었던 첫 번째 시험관.
창무신이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킨 채, 놀람이 일렁이는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창무신의 시선은 강완의 발이 딛고 있는 지면을 향하고 있었다.
창무신의 말과 동시에.
-스스스.
흙먼지가 완전히 걷히고 강완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용에게 주먹을 뻗은 그 자세 그대로 서 있는 강완.
그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자.
[……이럴 수가!?]
[허허허! 참으로 놀랍구려!]
관중석의 무신들이 다시 한번 놀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허…….]
강완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는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처용과 강완이 서로 충돌한 지점은 시험장의 정중앙이었다.
둘이 충돌하고 처용은 뒤로 날아가 결계 벽에 처박혔다.
강완이 압도적인 힘으로 처용을 밀어 버린 것.
그러나.
[내가 반 장이나 밀려났다고?]
강완 역시 정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발이 딛고 있는 지면에는 뒤로 밀려 끌린 듯한 자국이 있었다.
그 길이가 대략 1미터가 조금 넘는 정도.
포탄이 발사된 듯, 뒤로 날아가 처박힌 처용에 비해서 미미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믿기지가 않는군!]
[나조차도 강완은 힘으로 밀어낼 수 없거늘!]
강완은 무신전의 성좌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성좌.
같은 무신들도차도 오로지 ‘힘’ 대결에서는 강완을 밀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자인 처용이 강완의 오른손 주먹에 정면으로 달려들어 그를 반 장이나 밀어냈다.
게다가.
[이거 보입니까? 형님.]
놀라운 사실은 또 있었다.
강완이 자신의 오른 주먹을 펴고 손등을 들어 보이며 태무신에게 말하자.
[허허허…….]
태무신이 강완의 오른손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처용에게 주먹을 내질렀던 강완의 오른손에는 옅은 상처 자국이 나 있었다.
지금껏 무신의 시험 중 시험관인 무신이 피해를 받은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최초로 시험관인 무신이 시험자인 인간에게 피해를 받았다.
심지어 그는 무신전의 성좌들 중 두 번째로 강한 무신.
그런 그가 인간 시험자를 상대로 상처를 입었다.
물론, 상처라고 말하기 민망한, 옅은 상처에 불과했지만.
처용이 시험관인 ‘무신에게 상처를 입혔다’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모두가 놀람을 표할 때.
“하아, 제가 무모했군요.”
팔을 늘어뜨린 채 숨을 고른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처용 역시 강완이 얼마나 강한 성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을 가지며 강완에게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수준.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은 잡혔지만.
‘아쉽지만, 여기까지인가?’
이번 무신의 시험장에서 강완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었다.
처용이 속으로 아쉬움을 삼킬 때.
[이거, 이거!]
강완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큰 목소리로 외치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니 그런가? 하하하!]
처용의 투쟁을 인정했다.
“제가 부족하지 않았습니까?”
강완의 인정에 처용이 궁금한 듯 묻자.
[무신들 중, 후기지수(後起之秀)들에게 상처를 입은 자는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강완이 관중석에 앉은 이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후기지수들은 지금껏 무신의 시험을 치른 신관들을 뜻했다.
[설마, 내가 최초가 될 줄이야. 하하하!]
강완이 옅게 상처가 나 있는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처용이 선보인 반탄절권의 결과였다.
소룡의 절권과 반야의 반탄장을 한 곳에 집중시킨 합격기.
상대의 공격을 받아치고 거기에 절권의 힘까지 더해 반격하는 기술이었다.
비록 압도적인 강완의 힘을 온전히 받아쳐 되돌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강완은.
[나 강완의 무신은 시험자 한처용을 인정하노라!]
시험자가 ‘힘’의 무신인 자신을 ‘힘’으로 상대해 밀어내고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했다.
[이곳의 무신들 중, 네가 나에게 받은 인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강완의 말이 사실이라는 듯, 관중석의 무신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처용을 인정했다.
[네 기백과 투지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화아아.
마지막 말을 전한 강완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사라졌다.
[마지막 시험만이 남았군.]
운장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말하고는.
[시험을 계속할 것인가?]
처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계속하겠습니다.”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즉시 대답했다.
일정 주기마다 신청할 수 있는 무신의 시험.
이 시험은 한 번의 시험에 총 세 명의 무신을 시험관으로 마주한다.
첫 번째는 창무신, 두 번째는 강완.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세 번째 무신을 마주하는 시험이었다.
처용의 대답이 울리자.
[마지막 시험관을 선별하겠다.]
-우우웅.
태무신이 옅은 신력을 분출하며 말했다.
이전처럼 처용의 상처가 모두 치료되었고 시험장 중앙에 새로운 성좌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강완보다는 작지만, 창무신보다는 큰, 단단하고 거대한 느낌의 실루엣.
-화아아!
빛무리가 걷어지며 마지막 시험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
처용이 바로 전, 강완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더 긴장감을 보이며 표정을 굳혔다.
붉은 용과 독각귀(獨脚鬼)의 모습이 합쳐진 듯한 느낌의 갑주.
투구 위로 보이는 길고 화려한 문양의 붉은 공작깃 두 개.
창무신처럼 강인한 느낌이 가득한 인상이었지만.
무언가 화난 듯, 살짝 일그러진 눈썹이 돋보이는 표정.
마지막 시험관이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자.
[하필이면, 강완에 이어서…….]
[아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오?]
관중석의 성좌들이 떠들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태무신에게 작은 불만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었다.
[무신의 시험에 선출되는 시험관은, 내 의지로 뽑는 것이 아니오.]
태무신이 긴 수염을 쓸며 말을 이었다.
[이것이, 저 아이가 거쳐야 할 시험이라는 뜻이겠지요.]
[그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형님, 헌데 하필이면…… 허허.]
관중석으로 돌아온 강완이 태무신의 말에 답하며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필이면, 저 녀석이 시험관으로 뽑힐 줄이야.]
마지막 시험관으로 선출된 무신을 보며 강완이 중얼거리듯 말할 때.
[마지막 시험관은 ‘적무신(赤武神)’이니라.]
태무신이 마지막 시험관의 이명을 언급하며 말했다.
‘봉선(奉先)…… 설마 마지막 시험에 당신이 나올 줄이야.’
처용이 눈앞에 나타난 마지막 시험관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적무신(赤武神), 혹은 적귀무신(赤鬼武神)이라 불리는 성좌.
무신전의 성좌들 중, 세 번째로 강한 무력을 자랑하는 무신.
생전, 전장의 붉은 귀신이라 불리며 전쟁터에서 공포의 상징으로 군림했던 자.
[허, 내심 바라긴 했지만-.]
적무신이 눈앞에 있는 처용을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 역시 관중석에서 처용의 시험을 모두 지켜봤었다.
무신들을 상대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처용을 보며 내심 시험관에 뽑히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그러나 자신은 강완처럼 지금까지 시험관으로 선출된 적이 없던 무신.
강완이 운 좋게 이번 시험관으로 선출되었다지만, 자신까지 될 가능성은 너무 적었다.
해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처용의 마지막 시험을 눈여겨 지켜볼 생각이었지만.
[정말로 내가 시험관으로 선출될 줄은 몰랐군.]
강완에 이어 적무신까지 처용의 시험관으로 선출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적무신 님.”
처용이 시험관으로 선출된 적무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흠.]
짧게 침음을 낸 적무신이 눈을 돌려 관중석 중 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
살짝 일그러진 듯, 아닌 듯,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적무신의 신관인 초하였다.
이전, 이자나기 성운의 일로 처용이 동방불패 길드 성지에 방문했을 때 마주했었던 S급 헌터였다.
적무신과 그의 신관인 초하가 서로 시선을 마주한 순간.
“…….”
초하가 입을 움직이며, 소리 없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알겠다.]
적무신이 그에 답하듯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하고는.
-스르릉!
붉은 천에 휘감긴 채, 등에 매여 있던 자신의 무구를 꺼내 쥐었다.
날카로운 창날의 양옆에 초승달 모양의 칼날이 부착된 장병기.
흔히 방천극(方天戟), 혹은 방천화극(方天畵戟)이라 불리는 무구였다.
적무신이 방천극을 손에 쥐자.
[아니, 신물을 사용할 생각인가?]
[무신의 시험장에서 신물을 쓸 수 있었나?]
관중석의 무신들이 떠들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지금껏 무신의 시험을 치르는 시험자를 상대로 무신이 신물을 꺼내 든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내 신관이 지켜보는 앞이라…… 차마 대충할 수는 없겠군.]
-차캉!
적무신이 처용에게 방천극을 겨누며 말하자.
‘……그런가?’
처용이 눈을 돌려 적무신의 신관, 초하를 바라보며 알았다는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신전의 성좌인 적무신과 그의 신관인 초하.
회귀 전, 초하는 지구 멸망에서 살아남아 저항군에 합류했던 헌터였고.
적무신 역시 처용과 함께 악신들과 맞서 싸우던 동료였다.
회귀 전, 동료였던 사이이니만큼, 나름 잘 알고 있는 이들.
그리고 둘이 다른 평범한 성좌와 신관 사이라기엔, 조금 더 특별한 사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스르릉.
처용은 신물을 꺼내 든 적무신에 대항하기 위해 역천의 절을 꺼내 들었다.
적무신이 방천극을 든 이상, 이전처럼 시험에 임할 순 없었으니까.
그때.
[태무신이여, 한 가지 제안이 있소.]
적무신이 태무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신물을 쓰는 만큼, 시험자에게 걸린 제약의 일부를 풀어줬으면 하오.]
[……무엇을 원하는가? 적무신.]
태무신이 적무신에게 진의(眞意)를 물었다.
그러자.
[모든 무기를 꺼내고 결전기를 사용해라.]
적무신이 처용을 바라보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자신이 신물을 사용하는 대가로 처용은 결전기를 보이는 것.
이것이 적무신이 원하는 의도였다.
[결전기라…….]
[허나, 무신의 시험장에서 스킬의 제약만큼은 풀 수 없는 것으로 압니다.]
적무신의 제안에 관중석의 무신들이 곤란하다는 듯한 분위기로 웅성거렸다.
제약이라는 건, 쉽게 풀거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단 하나의 무기만을 쓸 수 있다. 이 제약만 없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른 무신들의 우려를 들은 적무신이 처용을 향해 강하게 말했다.
[네 결전기는 스킬이 아니니까.]
확신이 가득 담긴 적무신의 말이 울리자.
[……허허, 설마?]
[그렇군! 그런 건가!?]
관중석의 무신들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처용은 지금껏, 마나만을 다뤄 스킬보다도 정교하고 날카로운 기술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무신전의 성좌들은 세계 헌터 회의 당시 처용의 결전기를 목격했었다.
모든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화려하고도 정교한 기술.
마나를 익숙하게 다루는 처용의 결전기가 평범한 스킬일 리가 없었다.
그들의 예상이 맞다는 듯.
“맞습니다.”
처용이 작은 미소를 보이며 적무신의 말에 시인했다.
[흐음…….]
태무신이 처용의 말에 수염을 쓸며 침음을 흘리고는 눈을 돌려 누군가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 정도 작은 조건은, 조율이 가능하지 않은가?]
시선을 받은 미륵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우웅.
태무신이 언월도를 쥐며 옅은 신력을 분출하고는 짧게 침묵했다.
그리고.
[시험관이 신물을 사용하는 조건에 맞춰, 시험자의 제약을 일부 해제하겠노라.]
-쾅.
언월도를 들어 땅을 가볍게 찍으며 말했다.
태무신의 말이 끝나자.
[날뛰어 보자꾸나. 적귀살(赤鬼殺)!]
-콰아아!
적무신이 쥔 신물, ‘방천극-적귀살’에 핏빛 기류가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이에 맞서는 처용 역시.
“결전기, 팔괘(八卦) – 태극천체진(太極天體陳).”
-스릉! 스르릉! 쿠궁-!
열두 개의 무구를 모두 꺼내 보이며 자신의 결전기를 발동했다.
처용과 적무신이 서로 거센 투기를 내뿜을 때.
[마지막 시험을 시작하라!]
태무신이 시험의 시작을 알렸고.
-!!
처용과 적무신이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