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처용과 창무신의 짧고 강렬했던 충돌이 끝나자.
[이야! 저 친구 대단하구만!]
[창무신의 찌르기를 피해낼 줄이야!]
대련을 지켜보는 이들에게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심지어 일부는.
[저 창무신의 환륜창을 막아냈다고?]
[그냥 막은 게 아니야! 창으로 막아냈어!]
경악과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었다.
무신전의 성좌들은 항상 서로 대련을 하며 단련하는 이들.
그렇기에 창무신이 다루는 창술이 얼마나 위험하고 날카로운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창무신은 무신전의 성좌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기본기가 아주 출중한 성좌였다.
서로의 권능과 신력을 봉하고 기본기로만 맞섰을 때, 창무신을 이길 수 있는 무신들은 별로 없었다.
같은 무신들조차도 쉽게 막기 힘든 창무신의 창술을 처용이 막아낸 상황.
“방금 그거…… 스킬이 아닌 겁니까?”
태무신의 뒤에서 무신의 시험을 지켜보던 하오찬이 궁금한 듯 물었다.
눈으로도 쫓기 힘든 창무신의 창날을 쳐낸 처용의 검은 그림자 창날.
특이한 스킬로 보였지만, 이곳은 무신의 시험장이었다.
순수히 마나와 육체만을 이용한 기본기를 겨루는 대련.
무신의 시험장에 오른 시험자와 시험관은 스킬과 권능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처용의 공격은 아무리 봐도 스킬처럼 보였다.
[스킬이 아니다.]
태무신이 하오찬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마나로 육체와 무기를 강화시켜 다루는 독특한 무술처럼 보이는구나.]
“스킬 없이…… 그게 가능한 겁니까?”
하오찬이 의문과 경악을 담아 물었다.
스킬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마나만을 정교하게 다뤄 스킬처럼 공격하는 것.
그건 고레벨의 헌터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나를 정교하게 다루는 고레벨의 마법사 클래스들도 스킬 없이는 작은 화염구를 만드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처용은 스킬 없이 마나만을 다뤄 스킬보다도 정교해 보이는 공격 기술을 사용했다.
[저 아이가 보여주는 투쟁을 잘 봐두거라.]
운장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 아이가 보이는 투쟁이, 우리가 너희들에게 원하는 이상향에 가깝구나.]
“알겠습니다. 태무신 님.”
하오찬이 태무신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스킬과 시스템으로 주어진 힘에 온전히 의존하려 하지 마라.
태무신을 포함한 모든 무신들이 동방불패 길드 신관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었다.
물론,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헌터는 시스템의 힘으로 각성하여 싸우는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처용은.
-차캉! 차카캉!
창무신이 내지른 날카로운 일격을 스킬 없이 막아내고 있었다.
[이것 참, 환륜창을 아무 피해 없이 막아낼 줄이야.]
창무신이 한 번 더 내지른 공격을 막은 처용을 보며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동방불패 길드의 S급 헌터들이 무신의 시험에 수도 없이 도전했지만.
-단 한 번조차 막지 못하는 것인가?
그들 중에서 창무신의 환륜창을 온전하게 막아낸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신기하고도 강인한 젊은이는 막아내었다.
심지어 창무신을 상대로 ‘창’을 들고 막아낸 상황.
“아슬아슬했습니다.”
처용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는 창무신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그 말은 나름 사실이었다.
창무신을 상대로 창을 사용하여 맞서는 것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했으니까.
하지만 충분히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눈앞에 있는 창무신에게 직접 창술의 기본기를 배웠었으니까.
거기에 이어.
-창은 어떤 면에선 검보다 날카롭고 신속함을 자랑하는 무기이니라.
처용에게는 회귀 전 천마가 전수해 준 창술의 정수까지 있었다.
창무신의 환륜창에도 능히 맞설 수 있는 천마의 독문무공.
그리고 그 무공 중 하나인 영격(影格).
[허허, 이것 참 황당한 노릇이군.]
-스릉! 탓!
창무신이 헛웃음을 지으며 잠시 뒤로 물러나고는.
[네게 창술을 하사한 이가 있느냐?]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었다.
처용은 무신의 시험을 치르는 시험자, 즉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은 모두 스스로 연마한 무술이라는 것.
하지만 처용은 고작 삼십 년도 살지 못한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단순히 혼자의 힘으로 이 정도 경지의 창술을 구사할 리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알지 못하는 창술의 달인이 처용에게 창에 대해 알려줬으리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맞다는 듯.
“있습니다.”
처용이 창무신을 응시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만나볼 수 있겠는가?]
창무신이 흥미로운 듯한 목소리로 묻자.
“그분들은…… 전사(戰死)하셨습니다.”
짧게 침묵한 처용이 회귀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가? 참으로 안타깝군.]
창무신이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 말하고는.
[이걸로 마지막 시험을 내리겠노라.]
-콰아아!
격렬한 투기를 뿜으며 강하게 말했다.
동시에 오른쪽 다리를 앞으로 뻗고 왼쪽 다리를 뒤로 뺀 다음 자세를 조금 낮추었다.
창술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찌르기 자세를 취한 창무신은.
[파공창(破孔槍)!]
-쐐에에엑!
창을 쥔 손에 힘을 가득 주고는 그대로 힘을 실어 창을 내질렀다.
목표를 꿰뚫어 구멍을 내버리는, 가장 공격력이 강한 창술.
그 강렬한 일격이 처용에게 향했다.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창무신이 내지르는 창술, 파공창은 범위와 파괴력을 둘 다 갖춘 창술이었다.
피한다고 하여 온전히 피할 순 없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피한다면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결국.
‘천마신창.’
-스릉! 우우웅!
처용이 선택한 것은 ‘반격’이었다.
강기를 끌어모은 처용이 창끝에 온전히 힘을 집중하자.
-크화아아!
처용의 창에 일렁이는 강기가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악어 머리의 형상을 취했다.
‘악귀반진(惡鬼反鎭)!’
창무신의 창이 지척에 다가온 순간.
-캬아아!
처용의 강기가 만들어 낸 악어의 형상이 입을 크게 벌리고는.
-콰드드득!
창무신의 창날을 강하게 물었다.
-쿠구! 쿠구구!
상대를 꿰뚫어버리는 날카로운 창격과 다가오는 공격을 물어 부수고 반격하는 창격이 서로 충돌했다.
“하아-압!”
처용이 기합을 지르며 창에 힘을 주고는 강기를 더 끌어올렸다.
창무신의 창을 물어뜯는 악어의 형상이 더 커지며 창무신을 밀어내는 듯 보였지만.
-쩌적! 쩌저저적!
이내 창무신의 창격을 버티지 못하고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런.”
-파차차-창!
악어의 형상이 무참히 깨져나감과 동시에 처용의 창이 산산조각 났다.
-차캉!
처용의 창이 박살 난 것과 동시에 창무신의 창끝이 처용의 목을 겨누었다.
“……졌습니다. 창무신 님.”
처용이 손에 쥐고 있던 부러진 창을 밑으로 내리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렇게 무신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듯 보였으나.
[나 창무신은 시험자 한처용을 인정하노라!]
창무신이 손에 쥔 창을 내리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동시에.
[창무신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시스템의 알림이 울려 퍼졌다.
무신의 시험은 시험자가 시험관을 상대하여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시험관으로 나온 무신에게 투쟁을 증명하고 ‘인정’받는 게 목적이었다.
시스템의 알림이 울리며 처용의 시험 통과가 확정되자.
[저 친구 정말 대단하구만! 하하하!]
[혹시나 했지만, 정말로 창무신의 인정을 받을 줄이야.]
시험을 지켜보던 무신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껏 단 한 명의 인간도 통과하지 못한 무신의 시험을 처용이 통과했다.
심지어 처용은 동방불패 길드의 헌터가 아닌, 외부의 인물.
그럼에도 처용이 무신의 시험을 통과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처용의 투쟁을 직접 지켜봤었으니까.
그리고 시험을 지켜본 이들 중, 각 무신들의 신관들은.
“…….”
“……말도 안 돼.”
멍한 표정을 짓거나 경악하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내 시험에 대한 보상은 모든 시험이 끝난 뒤에 전하겠다.]
-파아아…….
처용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 창무신이 빛무리가 되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한 수 배웠습니다. 창무신 님.”
처용이 고개를 숙이며 점점 사라지는 창무신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하하하.]
창무신이 기분 좋게 웃어 보이고는 시험장에서 사라졌다.
그는 관중석으로 돌아가 남은 시험을 지켜볼 것이다.
창무신이 퇴장하자.
[두 번째 시험을 바로 시작하겠는가?]
태무신이 처용을 바라보며 바로 다음 시험을 치를 것인지 물었다.
“네.”
처용이 전혀 문제없다는 듯, 강하게 말했다.
[두 번째 시험관을 선별하겠다.]
-우우웅.
태무신이 신력을 뿜으며 말하자.
-스스스.
처용에게 생겼던 자잘한 상처들이 치유되었다.
동시에.
-화아아!
처용의 앞에 빛무리가 모이며 새로 뽑힌 두 번째 시험관이 점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아이고!]
[하필이면…….]
[여기서 끝날 수도 있겠군.]
점점 나타나는 실루엣을 본 무신들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처용 역시 새로 모습을 드러내는 무신을 보며 표정이 굳어졌다.
방금 사라진 창무신보다 거대하고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는 무신이 나타나자.
[두 번째 시험관은 ‘강완의 무신’이니라.]
운장이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번째 시험관으로 나타난 무신은 다름 아닌 강완.
태무신의 의동생이자 무신전의 성좌들 중 두 번째로 강한 성좌였다.
[내가 뽑힐 줄을 몰랐는데…….]
강완이 어깨를 풀며 굵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지금껏 내가 시험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는 정말로 무신들 중, 자신이 시험관으로 뽑힐 줄은 몰랐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강완의 말대로 그가 무신의 시험에 시험관으로 뽑힌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강완은, 무신의 시험에 시험관으로 선택된 이상, 맡은 바를 다할 생각이었다.
[운이 나빴구나.]
-쿠구구!
강완이 강렬한 투기를 내뿜으며 말하자.
“문제없습니다. 강완 님.”
-쿠구구!
처용이 작은 미소를 띠며 대답하고는 강완의 투기에 맞서 강기를 내뿜었다.
[허허!]
강완이 처용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이 내뿜는 강렬한 기백에도 처용은 물러서는 듯한 모습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단련된 느낌이 가득한 마나를 내뿜으며 투지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창무신처럼 현란한 방법으로 시험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강완이 등 뒤에 매여 있던, 천에 감긴 창을 꺼내며 말하고는.
-콰쾅!
손에 쥔 창을 등 뒤로 내던졌다.
창의 무게가 상당한 듯, 마치 바위가 추락해 떨어진 듯한 소리가 울렸다.
강완이 무기를 뒤로 내던짐과 동시에 오른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단 한 번, 나의 공격을 막아 보거라.]
-우드드득!
강완의 오른팔 근육이 꿈틀거리며 힘줄이 불거졌다.
그러자.
[처음 마주하는 시험자한테 너무 가혹하군, 하하.]
[지금의 인간이 강완의 ‘힘’을 감당해낼 리가 없잖나.]
시험을 지켜보는 무신들이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무신전의 성좌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강완의 힘에는 절대 정면으로 맞설 수 없다.
그는 단순 ‘힘’으로만 따지자면 태무신보다 우위에 있는 무신이었다.
말 그대로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무신.
심지어 그가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오른팔에 힘을 모으고 있었다.
같은 무신들조차 막아낼 수 없는 강완의 일격을 일개 인간이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스윽. 탓!
처용은 다리의 간격을 벌리고 몸을 낮추며 자세를 잡았다.
마치, 강완의 공격을 대비하는 듯 보였다.
문제는.
[방패조차도 꺼내지 않는 것인가!]
강완이 처용을 향해 경고하듯 소리쳤다.
지금 처용은 강완처럼 아무 무구도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이전의 시험관, 창무신을 창으로 상대할 때처럼.
“공교롭게도…… 제겐 방패가 없습니다.”
맨손인 강완을 상대로 맨손으로 맞서려는 듯 보였다.
[강완의 주먹을 맨몸으로 맞설 생각을 하다니!]
[무모하군.]
그 모습을 본 관중석의 무신들이 처용을 무모하다 생각하며 말했다.
같은 무신들이 무기를 든다 해도, 강완의 오른손만큼은 막기가 버겁다.
그런 강완의 힘을 시험자가 맨손으로 맞선다?
당연히 무모하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알겠죠!”
-콰아아아!
처용이 강렬한 강기를 내뿜으며 호기롭게 외쳤다.
[기백만큼은 훌륭하구나!]
-쿠구구!
강완이 주먹을 쥔 오른팔을 접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강기를 끌어모으고는.
‘천마신공 - 천마강림.’
-화아아아!
천마의 의지를 불러내어 갑옷처럼 몸에 덧씌웠다.
그리고.
‘절권(絶拳) - 강격(强格)!’
오른손 주먹을 들어 올려 강하게 쥐고는 강기를 끌어모았다.
오로지 적을 쳐부수는데 특화된 권법인 절권.
이 기술은 다름 아닌 수련탑의 금강역사, 소룡의 권법이었다.
처용이 오른손 주먹에 강기를 모음과 동시에.
-우우웅!
왼손에도 강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다만, 주먹을 쥔 오른손과는 다르게 손바닥을 펴고 있었다.
‘반탄장.’
처용이 왼손 손바닥에 강기를 모아 발현하는 기술은 다름 아닌 반야의 반탄장이었다.
최강의 공격을 자랑하는 금강역사와 최강의 방어를 구사하는 금강역사.
그 둘의 기술이 처용의 양손에 구현된 순간.
[어디 한 번! 받아내 보거라!]
-우드드드!!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지를 듯, 한계치까지 힘을 모은 강완이 처용에게 경고하듯 소리치고는.
-쐐에에에엑!!
처용을 향해 오른손 주먹을 뻗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강완의 공격에 대비하여.
-탁!
왼손을 들어 오른손 손목을 감싸듯 잡았다.
그러자.
-스르르. 화아아!
오른손 주먹에 일렁이는 강기, 절권에 반탄장이 덧씌워졌다.
회귀 전, 태룡전이 악신들에게 습격당할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었던 소룡과 반야의 합격기(合格技).
“반탄절권(反彈絶拳)!”
그 합격기를 재현한 처용의 주먹이 내질러오는 강완의 주먹에 맞서 나아갔다.
이윽고 강렬한 힘이 응축된 두 주먹이 충돌했고.
-쿠콰콰콰콰!
시험장 전체를 휩쓸 정도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