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310화 (310/726)

#310화

-우우웅.

일을 마치고 처용은 우선 성역, 태룡전으로 돌아왔다.

[왔구나.]

성역에 있던 여래가 처용을 반겼다.

“다녀왔습니다.”

처용이 고개를 숙이며 말하고는.

“아직, 의식이 깨어나지는 않았군요.”

여래의 옆에 누워있는 소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처용이 있는 장소는 성역에 자리한 의료전이었다.

지금 이 장소에 머무는 환자는 총 둘이었다.

며칠 전, 큰 부상을 당하고 치료를 받았었던 패웅무신.

그리고.

“…….”

마치 죽은 듯 고요하게, 조용히 잠들어 있는 소녀, 에블린이었다.

처용이 잠시 에블린을 살펴보고는.

“그런데, 왜 다 여기 모여 계신 겁니까?”

에블린의 주변에 모여든 신격들을 보며 궁금한 듯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여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뭐긴, 이 아이 때문에 왔지.]

에블린을 바라보며 대답하는 세계수와 몸집을 크게 줄인 채 부유하고 있는 청룡.

게다가.

[이렇게 특이한 체질의 인간은 아주 오랜만에 보거든.]

카투라와 그녀에게 안겨 있는 도마뱀, 크루마까지 와 있었다.

“특이한 체질이요?”

처용이 카투라의 말에 의문을 표하자.

[그래,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조차도 이 아이를 포함해서 딱 두 명 보네.]

카투라가 에블린을 향해 미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특이한 체질이라…… 그렇다면 첫 번째로 본 사람은 누구입니까?”

처용이 카투라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고는 질문했다.

그러자.

[누구긴, 보현이지.]

카투라의 입에서 나온 인물은 다름 아닌 보살이었다.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투라의 말에 처용이 놀람을 표했다.

놀람을 표하는 사람은 처용만이 아니었다.

[설마…… 선천적 선인?]

여래가 에블린을 바라보며 놀란 듯한 분위기로 중얼거렸다.

[맞아. 선천적 선인이야.]

세계수가 여래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천적 선인이 무엇입니까?”

이야기를 듣던 처용이 궁금한 듯 질문을 던졌다.

[음…….]

[뭐라고 해야 하나?]

세계수와 카투라가 처용의 질문에 고민하는 듯 잠시 침음을 흘리더니.

[신수가 뭔지는 정확히 알고 있지?]

세계수가 처용에게 신수에 대해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처용이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회귀 전에는 신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일부 드래곤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었고, 또 무엇보다 지금 자신에게는 신수의 격이 있었다.

자연의 생명체가 수련을 통해 선기(仙氣)를 쌓고 진화한 생명체가 바로 신수였다.

처용이 신수에 대해 쭉 읊자.

[후천적 신수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는 잘 알고 있네, 그렇다면 선천적 신수들은?]

세계수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번엔 ‘선천적 신수’에 대해 물었다.

“드래곤들처럼 태고부터 살아온 신수 일족이 해당됩니다.”

처용은 이번에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혹시…… 선천적 선인이?”

말을 하던 도중 무언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신수들이 선기를 쌓아 수련하여 상위의 존재로 진화하는 과정.

선인의 수련은 이런 신수들의 수행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수행법이었다.

그만큼 신수와 선인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렇다면 선천적 선인은 선천적 신수들과 연관이 있을 수 있었다.

이를 떠올린 처용이 선천적 선인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아니, 세계수는 이 아이만 특별하다 말했다. 나머지는 아니었어.’

처용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때.

[인간의 경우는 조금 달라.]

카투라가 그런 처용의 고민을 알아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정말 보기 드문 경우이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신수의 자격을 지닌 인간이 있어.]

“개념은 알겠습니다만, 그게 가능합니까?”

처용이 카투라의 말에 의문을 품으며 말했다.

인간들 중에서도 ‘타고난 이들’이라 불리며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역사에 기록된, 세기의 천재라 불리며 이름을 남긴 이들이 대부분 그런 이들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아무 연관 없이 선천적으로 신수의 자격을 타고납니까?”

아무 특별함도 없는 평범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인간이 선천적 신수가 된다?

이게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잘 몰라, 알아보고 싶어도 기록이 너무 적어.]

[우리가 알고 있던 선천적 선인은 자비의 대신 하나뿐이었으니까.]

카투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세계수가 동감한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인간들의 표현으로는…… 그래, 그냥 운명처럼 타고나는 거지, 이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네.]

“보살님과 같은 선천적 선인이라…….”

처용이 카투라의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며 중얼거리고는.

‘그래서 신수의 격이 반응한 건가?’

며칠 전, 에블린을 해방했을 때를 떠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통을 호소하며 죽여달라는 에블린의 말속에 담긴, 살려달라는 진심.

처용에게 그 진심이 전해진 이유가 에블린이 선천적으로 신수의 자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보살과 같은 선천적 선인.

처용은 잠들어있는 에블린을 보면서.

‘안타깝군.’

동시에 안쓰러운 감정도 들었다.

평범하게 자랐거나, 좋은 성좌를 만나 잘 성장했다면.

분명 그녀는 인류에 큰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하필이면 색욕악신의 눈에 띄어 버렸고.

제 욕심밖에 채울 줄 모르던 어느 한심한 성좌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에블린을 악신에게 팔아넘겼다.

“깨어날 수는 있는 겁니까?”

처용이 에블린을 관찰하며 묻자.

[보살님께서 다른 이들과 방법을 찾고 있다.]

여래가 조금 전까지 에블린을 살피던 보살을 생각하며 말했다.

그녀는 지금 성지에 잠시 거주하고 있는 의학의 신과 신의에게 도움을 청하고 의논 중이었다.

“……에블린이 일어난다면 제게 즉시 알려 주십시오.”

처용이 여래를 향해 부탁을 건넸다.

에블린에게서 반드시 들어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

그녀의 성좌가 누구인지.

그녀를 팔아먹은 빌어먹을 신격이 누구인지.

재앙의 나무를 탄생시키는데 일조한 빌어먹을 순혈자가 누구인지를!

반드시 알아낸 다음에 그놈을 짓밟아 버려야 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처용의 생각을 알아차린 여래가 진지하게 말했다.

***

천교의 성역.

그 중심에 있는 가장 거대한 건물이자 주신이 거주하는 하늘궁.

“…….”

하늘궁 내부 가장 드높은 옥좌에 앉은 옥황상제가 눈을 감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입을 열지 않았기에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지만.

-쿠구구구!

하늘궁 내부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 진동은 일으키는 원인은 다름 아닌 옥황상제.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치 분노한 듯 이마와 눈썹이 세차게 일그러져 있었다.

아니, 단순히 분노한 정도가 아니라.

-파직! 파지직!

내면 깊이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격한 분노를 가까스로 인내하고 있었다.

하늘궁 내부에 흐르는 옥황상제의 신력이 스파크를 튀기며 거칠게 날뛰고 있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내뿜는 옥황상제에 의해.

“…….”

“…….”

천교의 휘하 성좌들 역시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흠, 알겠습니다.”

옥황상제가 침묵을 깨고 마치 누군가에게 대답한 듯, 중얼거리며 말했다.

이어서.

“천교의 신하들을 모두 들으라.”

감았던 눈을 부릅뜨고 휘하 성좌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예! 상제!”

“예! 상제!”

하늘궁에 모인 천교 소속 성좌들이 고개를 깊이 숙이며 옥황상제의 말에 대답했다.

“지금부터 ‘하늘 관문’을 열 것이다.”

옥황상제가 손을 들고 위로 한 번 크게 휘저으며 말하자.

-스스스. 화아악!

하늘궁 천장에 구름이 모이더니 네모난 형태의 진법이 나타났다.

동시에.

-쿠구구-!

마치 문이 열리듯, 네모난 진법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양옆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태상노군.”

옥황상제가 태상노군을 부르자.

“다른 성운 모르게 은밀히 진행하겠사옵니다. 상제.”

태상노군이 옥황상제가 내릴 명령을 알아채고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분께서…… 철수하라 명하셨으니, 따라야 하느니라.”

태상노군에게서 눈을 돌린 옥황상제가 휘하 성좌들을 쭉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허나!”

-콰쾅!

말을 잇던 옥황상제가 화가 치민 듯, 옥좌의 팔걸이를 강하게 내리쳐 부숴 버렸다.

“절대로 그냥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분노가 가득 담긴 옥황상제의 말이 울리자.

“하명하시옵소서. 상제시여.”

태상노군이 옥황상제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조제군, 검은 별들을 불러 모아라.”

옥황상제의 시선이 휘하 성좌들 중, 조제군에게 닿았다.

본래 지옥의 형벌을 받던 영혼이었으나, ‘그분’의 은총으로 검은 별이 된 어두운 성좌.

다른 검은 별들을 이끄는 지휘관, 조제군을 향해 옥황상제가 명령을 내리자.

“그분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도 불러 모읍니까?”

조제군이 검은 별들에게 하달된 임무들을 떠올리며 옥황상제에게 물었다.

“가장 중요한 일을 맡은 자들을 제외하고 전부.”

“알겠습니다.”

옥황상제의 말에 조제군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혈선, 그 건방진 하계종 놈까지……!”

-쿠구구!

분노가 일렁이는 신력을 내뿜는 옥황상제가 중얼거리듯 읊조렸다.

옥황상제가 격렬한 분노를 내뿜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한 인간 때문이었다.

인간, 아니 하찮은 하계종이라면 마땅히 드높은 신에게 고개를 숙인다.

심지어 그 대상이 하늘을 다스리는 천황, 옥황상제라면 인간들은 모두 그 앞에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그러나.

-사고를 쳤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왜 나대고 지랄이야?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하계종이 하나 있었다.

다른 하계종들이 모두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숙일 때.

-이것에 대해 똑바로 해명하는 게 좋을 거야.

단 한 명의 하계종은 하늘을 똑바로 응시하며 드높은 신에게 감히 ‘해명’을 요구했다.

인간이 신에게 거스르고 신에게 맞서려 하는 모습.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아니 될!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신법재판소를 제공하겠소.

과거, 천교의 ‘권리’를 강탈해간 하계종은 감히 그 권리를 이용해 하늘을 심판하려 하고 있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혈선! 그놈의 신관! 그 하계종들의 핏덩이들까지!”

옥황상제가 점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감히!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버러지 같은 미물 놈들 모두!”

천교의 전 주신이자 천황의 형제, 천존을 살해하고 신법재판소를 강탈한 여래.

그런 그의 제자이자 신관, 하늘과 우주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처용.

그리고 그들과 연관이 깊은 인간들까지.

“절대로! 곱게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옥황상제는 그들 모두가 우주의 법칙을 무너뜨리는 이들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천교가 우주의 법칙을 좌지우지할 권한을 되찾게 된다면.

‘가장 먼저! 버러지 같은 하계종들에게 낙인(烙印)부터 채워 버릴 것이다!’

먼 과거 파괴되었었던, 인간들에게 걸린 제약을 부활시킬 생각이었다.

본래 인간은 신에게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제약에 묶여 있었었다.

하지만 그런 절대적인 우주의 법칙이.

-지금부터, 네놈들만을 위한 ‘신법’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신으로 승천한 한 인간의 손에 파괴되었다.

우주의 법칙이 무너진 상황.

본래라면 태초신이 이를 바로잡아야 했다.

그러나.

‘그때, 당신은 여래를 소멸시키고 우리에게 권리를 되찾아 주었어야 했다!’

태초신은 우주의 법칙을 파괴하고 신계를 멸망시키려던 하계종의 편을 들어주었다.

옥황상제는 작금 일어난 이 모든 일이 태초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태초신이 잘못된 모든 일을 바로잡고 신들의 권위를 바로 세웠다면 문제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완전한 태초신이 아니었다.

불완전한 존재였기에 그런 그릇된 판단을 한 것.

그렇기에.

-천교가 지녔어야 할 권리를 되찾아 주마.

옥황상제는 불완전한 태초신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를 섬기는 한, 승리는 우리 것이다.’

더 완전한 존재라 믿는 이를 따르기로 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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