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옥황상제가 공들여 만든 병기 뤼장첸.
폭식마를 처용이 역으로 잡아먹은 결과.
[이름 : 한처용]
[레벨 : 187]
[칭호 : 반신]
[클래스 : 계승자–징벌자]
[생명력 : 18750]
[마나 : 9680]
[근력 : 786]
[민첩 : 556]
[체력 : 824]
[마력 : 568]
[신력 : 360]
디아블로에게서 겨우 승리하여 강기를 막 되찾았을 때보다도 더욱 능력치가 상승했다.
이런 결과에 이바지한 것은 최종 목표였던 폭식마를 잡은 것만이 아니었다.
계획을 실행해 오면서 수많은 적들을 사살했고 이겨왔다.
그 모든 시련을 극복해 왔기에 빠른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처용은 바로 새로 얻은 능력들부터 확인했다.
[포확(捕攫)]
[대상의 에너지를 강탈합니다.]
[대상과 격의 차이가 클 경우, 효과가 더 강해집니다.]
선인의 육체에 새로 추가된 능력.
포확은 뤼장첸의 악식이 처용에게 맞도록 조정된 능력이었다.
대상의 에너지를 빼앗는 능력.
처용으로서는 최종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지만.
‘생각보다 수확이 많다.’
이번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끈 데 대한 보상은 ‘악식’만이 아니었다.
[팔괘축기(八卦蓄氣)]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저장하고 방출할 수 있습니다.]
[총 여덟 가지 종류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저장한 에너지의 특성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폭식마를 잡아먹어 포확을 얻은 영향으로 새로 얻은 권능이었다.
시스템 창을 확인한 처용이 곧장 권능을 시험해 보았다.
-스르릉!
처용이 아공간을 열고 꺼낸 것은 다름 아닌 차륜 도끼.
“포확.”
처용이 포확을 이용해 차륜 도끼에 저장된 에너지를 흡수해 보았다.
-스르르.
차륜 도끼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처용이 흡수하자.
[팔괘축기가 발동합니다.]
-스르르륵!
처용의 앞에 내부가 비어 있는 팔괘의 진법이 나타나며 권능이 발동되었다.
[공포의 차륜 도끼에 내재된 스킬, ‘차륜격’을 저장합니다.]
[팔괘축기의 첫 번째 괘(卦)에 ‘차륜격’이 저장되었습니다.]
시스템의 알림과 동시에.
-화아아.
눈앞에 떠오른 팔괘의 진법 중 첫 번째 자리가 검붉은색으로 차올랐다.
비어 있던 칸을 차지한 검붉은 에너지는 다름 아닌 차륜격의 정수였다.
차륜격은 본래 디아블로가 사용하던 기술.
처용이 사용하는 공포의 차륜 도끼는 디아블로의 화신체를 처치하고 얻은 아티팩트였다.
그 영향인지 디아블로가 사용하는 기술이 아티팩트에 스킬로 저장되어 있었다.
즉, 처용은 차륜 도끼 없이는 온전한 차륜격을 사용할 수 없었다.
원리를 이해하고 흉내 낼 수는 있었지만, 온전한 위력은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차륜 도끼에 저장되어 있던 스킬, ‘차륜격’을 포확으로 흡수하고 팔괘축기에 저장한 결과.
“차륜격.”
-화르르르륵!
처용의 왼손 위에 격렬히 회전하는 화염이 생성되며 불꽃을 퍼트렸다.
다른 무구로도, 혹은 지금처럼 맨손으로도 차륜격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팔괘축기의 능력은 ‘저장’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진의 일격을 저장한다.”
처용이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스킬, 지진의 일격을 저장하자.
[팔괘축기의 두 번째 괘(卦)에 ‘지진의 일격’이 저장되었습니다.]
-화아아.
팔괘의 두 번째 칸이 황토색으로 차올랐다.
스킬, 지진의 일격이 팔괘 안에 저장된 것,
처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우웅.
아공간에서 투창 하나를 꺼냈다.
동시에.
“지진의 일격을 이식한다.”
팔괘축기 진법 안에 저장된 스킬의 정수를 투창에 부여했다.
그러자.
-스르륵.
진법 안에 있던 정수가 흘러나와 투창으로 스며들었다.
그 결과.
[아티팩트 ‘파괴의 송곳’에 지진의 일격이 부여되었습니다.]
처용이 든 투창에 지진의 일격이 추가되었다.
아티팩트에 스킬을 부여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권능.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잠재된 권능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가진 스킬을 소모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팔괘 안에 저장되는 것은 스킬, 즉 기술의 정수가 저장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처용은 스킬과 권능을 시스템이 표기한 그대로 활용하는 자가 아니었다.
권능과 기술을 연구하고 연마하여 부각되는 장점을 찾고 더 강력하게 활용하는 무인(武人)이었다.
투쟁의 증명 당시 아마테라스의 신성력을 강탈해 그녀보다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 보이기까지 했었으니까.
처용은 가진 것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아티팩트든, 스킬이든, 권능이든, 그 어떤 기술이든, 최적의 활용 방법을 찾는다.
예시로 파쇄격과 차륜격 등, 서로 시너지가 좋은 스킬을 섞어 사용한다거나.
혹은 속성 간의 상성을 고려하여 자연부의 술법을 쓰는 등.
가진 모든 수단을 최적으로,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이것이 바로, 처용이 언제나 최고의 결과를 내는 방법이었다.
새로 얻은 권능을 탐구하는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새로 얻은 권능에 대해 이것저것 시험한 결과.
“……알았다.”
처용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정도가 아니라-.’
흥미로운 표정으로 권능에 대해 계속 알아보자, 입가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어차피 밖은 현장을 수습하는 데만 하루 정도 걸릴 것이다.
처용은 오늘 하루만큼은, 새로 얻은 힘을 계속 탐구하고 조사할 생각이었다.
***
재앙의 나무가 토벌되고 사흘이 지났을 무렵.
-저희 길드가 맡은 구역은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이곳 역시 무사히 끝났소.
다시 한번 WHU 사무국에서 각국의 대표 헌터들이 모였다.
그들이 모인 이유는 처용이 고안한 토벌 작전의 결과 때문이었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대부분 큰 피해 없이 토벌이 마무리되었다.
애초에 양측의 전력 차이도 너무나 컸다.
처용과 커맨더 등이 맡은 구역을 제외한 두 장소.
그곳에는 남은 거대 길드들이 모두 연합하여 총공세를 펼쳤으니까.
아무리 마인들이 강하다 해도, 숫자와 세력에서 맞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 놈들은 이미 철수 준비를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파라오 길드의 길드장, 라진의 홀로그램이 토벌 당시 상황을 언급하며 말했다.
처용이 맡은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장소.
그곳에 자리한 마인들은 마치 헌터들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 보였다.
빠르게 진형과 병력을 갖추고 공격을 감행했음에도, 이미 놈들은 짐을 싸서 도주하고 있었다.
-덕분에 마인들의 아지트를 손쉽게 토벌할 수 있었지만…… 찝찝하더군요.
라진이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하자.
“아무래도…… 정보가 새어 나갔다고밖에 볼 수 없겠는데?”
처용이 좌중을 둘러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설마-.
처용의 말이 헌터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쑥덕이기 시작했다.
마인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한 이번 작전은 정말 신속하게 이루어졌었다.
거대 길드들도 예정된 일정들을 모두 미루고 만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에 모여 공격을 감행했으니까.
그러나 마인들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급하게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단 한 곳.
바로 뤼장첸과 아마테라스, 마인들이 연합하여 준비한 함정만을 제외하고.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 중에 스파이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로군요.”
이야기를 듣던 제시카가 입을 열어 말했다.
다른 지역으로 토벌을 하러 갔었던 이들은 모두 화상 홀로그램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지만.
처용과 함께 한 올림포스와 동방불패 길드는 직접 이 자리에 와 있었다.
제시카의 말이 울리자.
-그럴 리가-!?
-우리는 아니야!
일부 헌터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소리쳤다.
-순혈신교를 말하는 겁니까? 올림포스 길드장.
토르의 신관, 루이스가 제시카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놈들이 미리 알아챈 것처럼 행동했으니까요.”
제시카가 합리적인 의심의 이유를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들, 혹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측근들 중에…… 배신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으음…….
메타트론의 신관 라리네가 제시카의 말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침음을 흘렸다.
-적어도 이곳에 모여 있는 길드장 여러분들 중에 변절자는 없을 겁니다.
라리네의 홀로그램이 고개를 돌려 다른 길드장들을 응시하며 말하자.
“스킬의 능력을 맹신하는 건 좋지 않아.”
처용의 라리네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오로지 제 눈을 맹신하기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역천군주.
라리네는 고개를 저으며 처용의 말에 반박했다.
-이곳에 계신 길드장들은 항상 정의를 위해, 세계를 위해 싸워오신 분들입니다.
그동안 함께 싸워온 이들에 대한 믿음.
라리네가 이 자리에 모인 길드장들을 신뢰하는 이유였다.
“그런가?”
처용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라리네의 말에 완전히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처용은 종말을 마주하고 시간을 되돌아온 회귀자.
즉, 미래에 누가 배신을 하는 이들인지 처용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길드장들, 라진, 루이스, 제시카, 성자 등등.
이들 중에는 미래에 배신하는 자는 없었다.
대부분은 배신자들에게 살해당하는 이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이곳에 있는 길드장들만큼은 배신자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처용은 배신자가 이번 작전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리가 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모인 길드 성운의 ‘주신들’도 아니겠죠. 그들이 배신자라면 이번 작전을 방해했을 테니까.”
옥황상제와 주신의 자격을 박탈당한 아마테라스를 제외한 나머지 주신들.
그들 역시 배신자가 아니었다.
“하아, 놈들을 쉽게 검거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시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올림포스는 내부의 배신자를 검거하고 그들에게 당했던 이력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배신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들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심지어 성좌들조차 내부에 숨어 있던 네일로스, 아니 대악마 안드라스를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배신자에 대한 부분은 삼 일 뒤에 있을 세계 헌터 회의에서 다시 언급하죠.”
처용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찾는다고 노력한다 해서 찾을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니까요.”
“흠, 일단 알겠습니다.”
스미스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그보다도 역천군주…… 에블린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습니다만.”
나름 중요한 문제를 언급했다.
아마테라스와 마인들의 실험체.
과거, 몬스터로 변질하여 사람들을 공격했었던 각성자.
이번에 재앙의 나무라는 위험한 존재로 변모했었던 소녀.
“‘다크 트리’를 당신이 데려갔다고-.”
코드네임 다크 트리(Dark Tree).
과거 에블린이 폭주하여 S급 몬스터가 되었을 때, WHU에서 지정한 이명이었다.
스미스의 말에 다른 길드장들 역시 궁금한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들 역시 에블린의 폭주를 막기 위해 나섰던 이들이었으니까.
“문제 있습니까?”
처용이 스미스의 말에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당시 피해가 컸었으니까요.”
스미스가 처용의 반응을 살피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당시 에블린이 일으킨 일로 인해 피해가 생각보다 컸었다.
S급 몬스터 다크 트리는 위험한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위험한 존재를 왜 처용이 거둔 것인지가 의외였다.
처용의 성향대로라면…… 위험성이 있는 존재는 사전에 없애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으니까.
“커맨더, 아직 이 사람들은……?”
스미스의 말을 듣던 처용이 커맨더를 바라보며 묻듯이 말하자.
“아직 말을 못 했어, 나조차도 에블린에 대해 정리가 안 됐으니까.”
커맨더가 옅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렇군요. 일단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부터 말해주는 게 먼저겠군요.”
처용이 커맨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그 꼬마가 몬스터가 되어 버린 이유는 한 악신의 잔혹한 실험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재앙의 나무와 관련된 정보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이야기했다.
과거 왜 에블린이 S급 몬스터가 되어 버렸는지.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번에 재앙의 나무가 왜 나타났는지.
에블린이 그간 어떤 일을 당했는지 등.
그간의 일들을 쭉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사고를 당한 피해자를 웬만해선 건들지 않아. 그 사고를 만든 새끼를 조지는 편이지.”
명심하라는 듯, 처용의 낮고 강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고가 발생하면 서로 책임을 논하기보다는 수습부터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수습이 끝난 다음에는 그 사고를 만든 원인 제공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것이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처용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처용의 말을 들은 스미스가 납득이 되었다는 듯 대답했다.
“이제 위험성은 없는 겁니까?”
스미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에블린이 신들의 실험체였던 것은 가슴 아프지만, 그녀가 위험한 것과는 별개였다.
“성역에 계신 분들과 내 스승님께서 ‘직접’ 살펴보고 있습니다.”
처용이 자신의 성좌, 여래를 언급하며 말했다.
태룡전의 성좌들과 신법의 대신이 에블린을 직접 살펴보고 있다.
“……알겠습니다.”
스미스는 그 말의 무게감을 깨닫고 더는 에블린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천교는 지금, 다른 움직임은 없는 겁니까?”
길드장들을 둘러보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게…….”
제시카가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겁니까?”
스미스가 제시카의 반응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천교 길드장, 뤼장첸이 마인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처용을 제거할 함정을 준비했다.
이는 천교 성운이 배신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 성운인 천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아테나 님께서-.”
제시카가 불과 조금 전, 아테나가 해준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옥황상제가 자신의 신관을 함부로 죽인 것에 대해 책임을 묻더구나.
아테나가 했었던 말을 제시카가 그대로 읊자.
“크크, 책임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 정신 나간 노인네가.”
처용이 옥황상제를 향해 비웃음을 흘리고는 욕을 내뱉었다.
“……무슨 의도일까요?”
제시카가 궁금한 듯 물었다.
처용은 아무리 한 성운의 주신이 화를 낸다고 해서 움츠러들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처럼.
“큭, 오만한 거죠. 나는 위대한 선천적 신격이고 네놈들은 쓰레기 같은 하계종이다. 이겁니다.”
그는 신이 내지르는 분노에 대놓고 반박하며 오히려 비웃고 조롱하는 이였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시카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왜 굳이 우리가 배려합니까? 죄를 저지른 건 그쪽인데.”
처용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잘못한 것은 마인들과 그에 협력한 성좌들이었다.
그중 가장 큰 죄를 저지른 것은 다름 아닌, 천교 성운과 배신자 아마테라스.
“신이라고 해서 죄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미소를 지운 처용이 진지하게 말하자.
“동감이야. 이번 일에 대한 잘못은 전적으로 그들 탓이니까.”
커맨더가 화를 감추는 듯,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
에블린이 당한 비극과 그녀가 그간 고통을 받은 이유.
그 모든 것이 한 악신의 수작이자, 그녀를 팔아넘긴 성좌가 원인임을 알았다.
커맨더는 그로 인해 마인들을 돕는 성좌들에게 반감이 더 심해진 상태였다.
“에블린을 대악마에게 팔아넘긴 성좌가 누구인지 찾는다면, 내가 그놈 신전에 뉴 클리어를 쏴 버릴 거야.”
커맨더가 혼잣말을 하듯, 분노를 담아 읊조렸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평소대로라면 다른 헌터들에게서 커맨더를 향해 경솔하다는 등 거부 반응이 나와야 했지만.
-확실히, 이번에 일어난 일은 그냥 넘기기 힘듭니다.
-저희 성운 역시 천교에 대해…….
이 자리에 있는 헌터들 역시 신들이 벌인 짓에 나름 피해를 받은 이들.
점점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신’이라는 대한 거대한 이미지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데에는, 유일하게 성좌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인간, 처용의 영향이 컸다.
아직 그 변화를 제대로 자각한 이들은 별로 없었지만.
헌터들은 무의식중에 처용을 ‘의지’하고 있었다.
아직, 인간인 그들이 신에게 대놓고 맞서거나 항의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천군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신들이 불합리한 짓을 저지른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응징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있었으니까.
역천군주(逆天君主).
하늘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괴물 같은 인간.
헌터들은 그런 처용의 강렬한 모습에 조금씩 감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성운에 제 말을 전해주십시오.”
그런 처용이 각 길드를 대표하는 헌터들을 둘러보며 말하자 시선이 집중되었다.
“굳이 순혈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같은 성운의 성좌들끼리 불화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말이죠.”
-네? 그게 무슨……?
-??
처용의 말에 헌터들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배신자를 집중적으로 색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시카 역시 의문을 표했다.
커맨더도 한쪽 눈썹을 올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보통 알려진 처용의 이미지대로라면 배신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수색을 독촉해야 했다.
하지만 처용은 분노가 아닌.
“배신자들 때문에 동료들끼리 서로 의심하고 배척하지 말자는 의미였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진지한 눈빛을 띠며 말하고 있었다.
처용이 배신자, 즉 순혈자 수색을 독촉하지 않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회귀 전, 한참 배신자들이 날뛸 때.
-나를 의심하는 것인가!?
-네놈도! 성운을 배신하는 것이냐?
-감히 나에게 배신을 논하다니!
배신자들로 인해 성운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처참했었다.
모두가 서로를 배신자로 의심하고 동료를 적대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오랜 세월 쌓아 온 성좌들의 신뢰가 처참히 무너졌었다.
그리고 지금, 순혈자라는 이름의 배신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상.
‘놈들이 이런 상황을 역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회귀 전처럼, 성운들 내부에 좋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서로 간의 견고했던 믿음에 균열을 내고 의심하게 만드는 것.
비열한 순혈자들이라면 충분히 이런 여론을 만들고도 남았다.
그리고 철저하게 모습을 감춘 그들을 쉽게 색출할 수도 없었다.
각 성운의 주신들이 수색에 집중한다 해도 검거될 확률은 낮았다.
“굳이 지금 당장 일을 크게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처용의 말이 끝나자.
-……뭔가 생각이 있구나?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메리에게서 귓속말이 들려왔다.
메리는 처용이 배신자를 절대로 그냥 방치할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처용이 메리의 귓속말에 작은 미소를 짓고는.
‘일을 크게 만드는 건, 전문가인 내가 할 일이니까.’
메리의 귓속말에 전음을 보내 답해 주었다.
추가로.
“다음 세계 헌터 회의 전까지, 나름대로 준비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처용이 헌터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이 엎어진 이상, 천교와 순혈자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추후 있을 일들을 나름대로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