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도대체, 어떻게 잡은 것이냐?]
미륵이 태초의 조각을 쥐고 있는 처용을 보며 놀람과 의문을 표하자.
“……잡으면 안 되는 겁니까?”
처용이 역으로 미륵에게 의문을 표했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네놈이 지금 그걸 잡고 있으니 내가 묻는 것이 아니냐!?]
미륵이 처용의 질문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고는.
[이런 황당한 녀석! 일단 잘했느니라!]
처용의 쥐고 있는 태초의 조각을 향해 신력을 내뿜었다.
-우우웅!
미륵의 잿빛 신력이 태초의 조각을 코팅하듯 주변에 둘러졌다.
[다행히, 폭주가 더 발생할 조짐은 없는 것 같구나.]
태초의 조각을 응시하며 상태를 살핀 미륵이 안도를 표하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그럼 이걸-.”
처용이 미륵의 말에 대답하고는 태초의 조각을 미륵에게 넘기려 했다.
태초의 조각이 처용의 손아귀에서 미륵에게 넘어가려는 때.
-휘릭. 탁.
태초의 조각이 저절로 움직이며 처용의 손아귀로 돌아왔다.
“……?”
처용이 다시 손에 돌아온 태초의 조각을 보며 의문을 표하고는 다시 미륵에게 넘기려 했다.
그러나 태초의 조각을 미륵에게 다시 넘긴 순간.
-샥.
이번엔 반대 손인 왼손에 태초의 조각이 쥐어졌다.
눈에 보이게 이동한 것이 아니었다.
처용의 손을 벗어나는 순간 다시 손아귀에 나타난 상황이었다.
“이게 뭔-?”
처용이 왼손에 쥐어진 태초의 조각을 들어 보이며 의문을 표하자.
[……일단 네가 가지고 있거라.]
미륵이 태초의 조각을 응시하며 잠시 생각하고는 처용에게 말했다.
“으음…….”
처용이 손에 들린 태초의 조각을 바라보며 잠시 침음을 흘리고는.
-우우웅.
조심스럽게 아공간으로 집어넣었다.
‘……다행히 여긴 들어가는군.’
조금 전과는 다르게, 태초의 조각은 다시 처용의 손에 돌아오지 않고 아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태초의 조각 회수가 무사히 끝나고.
“주변 정리부터 시작하죠. 놈들이 급하게 도망치면서 정리하지 못한 증거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처용이 제시카와 커맨더 등, 헌터들의 대표들을 향해 말했다.
제시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각 조를 짜 움직인다!”
휘하 헌터들을 지휘하며 주변 수색을 명했다.
하오찬 역시 인원을 나눠 주변 수색을 실시했다.
그리고.
“에블린은?”
커맨더는 우선 처용에게 에블린에 대해 물었다.
꽤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지만.
“우선, 더 이상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처용은 커맨더의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천천히 에블린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에블린을 조종하던 페러사이트 디맨터도 소멸시켰고 뤼장첸도 죽었으니까요.”
처용이 페러사이트 디멘터와 뤼장첸이 죽었다고 말하자.
“그런가? 다행이야…….”
커맨더가 처용의 말이 안도를 표하며 말했다.
그 역시 멀리서 처용의 싸움을 조금 지켜봤었다.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정말 고맙구만.”
백호가 에블린을 보며 읊조리고는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때 구해주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같은 커맨더의 파티원인 이진호와 샬럿 역시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때.
[나는 슬슬 가 보아야겠군.]
-키이이…….
미륵이 점점 회전 속도가 느려지는 천부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신물의 권능이 이제 효과를 다해가는 듯 보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도와주신 덕분에 이번 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처용이 진심을 담아 미륵에게 감사를 전했다.
전투의 대부분은 처용이 도맡았지만, 미륵의 공이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미륵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재앙의 나무가 가진 위험한 능력들을 봉인하고 약화시킨 것만 따져도 엄청난 도움이 되었으니까.
만약 미륵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재앙의 나무를 이렇게 쉽게 막지 못했을 것이다.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고 최악의 상황으로는 재앙의 나무가 중국 전역을 덮었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한반도 역시 무사할 수 없었으리라.
[하하하, 네놈이야말로 고생 많았느니라.]
미륵이 미소를 지으며 웃어 보이고는.
[가는 김에 이 아이도 내가 데려다 놓지.]
바닥에 누워있는 에블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탁. 찰랑.
미륵이 석장을 들고 바닥을 가볍게 내리치자.
-스스스.
에블린의 몸이 잿빛 신력에 감싸이며 가볍게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처용이 미륵에게 감사를 전함과 동시에.
-우우웅.
미륵이 게이트를 타고 에블린과 함께 사라졌다.
게이트를 타고 사라지는 에블린을 바라본 백호는.
“유진아, 에블린이 저렇게 된 게 악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라이언이 알고 있을까?”
커맨더를 향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커맨더가 백호의 말에 복잡한 표정을 자아내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커맨더의 전 파티원이자 에블린의 아버지인 라이언.
그는 딸을 죽게 만든 인간들과 WHU 헌터들, 커맨더의 파티원들에게 증오를 품은 듯 보였었다.
그러나, 대악마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진 처용에 의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 상황.
“에블린이 살아난 건 다행이지만…… 라이언 씨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커맨더가 착잡한 목소리로 얼굴을 쓸며 말했다.
“저를 막으려다가 치명상을 입고 도망치긴 했습니다만…….”
처용이 뤼장첸과 마주하기 전, 자신을 필사적으로 가로막던 라이언을 떠올리며 말했다.
동시에.
‘도대체 목적이 뭐냐…… 아니-.’
죽어가던 라이언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진 닥터를 떠올렸다.
‘정체가 뭐냐!’
그 당시 상황을 다시 떠올려 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닥터는 회귀 전에는 제대로 마주치거나 싸운 적이 한 번도 없는 인물이었다.
즉, 처용은 닥터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유일하게…… 닥터가 따르는 악신이 누구인지 모르는군.’
처용은 의회주들이 각각 어떤 대악마들을 모시는 신관인지 대략적이라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닥터만은, 그가 어떤 악신을 섬기는지 알지 못했다.
모든 정보가 베일에 싸인, 말 그대로 수수께끼 그 자체인 마인.
그나마 정황상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닥터는 마인들과는 다른, 개인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나중에 다시 마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여전히 마인의 편에 선다면 제 적입니다.”
닥터에 대한 생각을 그만둔 처용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라이언은 이미 마인이 되어 버렸지.”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착잡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선, 이쪽 지역은 정리가 되었다고 WHU에 전해주십시오.”
닥터와 라이언에 대한 생각을 털어낸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말하자.
“그래, 이번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내가 전달할게.”
커맨더가 주변을 둘러보며 처용의 말에 대답했다.
“저는 일단…… 이번 일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우우웅.
처용이 성지와 이어지는 게이트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뤼장첸을 사냥하고 아스모데우스의 계획을 막은 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직,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천교와 순혈자들이 남아있었다.
지구에 닥칠 위협이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 역시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배신자 새끼들아.’
그것은 천교와 순혈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용이 적들을 완전히 박살 내기 위해 세운 계획과 준비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게이트를 타고 성지에 돌아온 처용이 분노를 억누르며 다음 계획을 준비했다.
***
새하얀 개인 병실과 같은 공간.
“으…… 으으!”
병상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있던 라이언이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아, 아-안-!”
마치, 악몽을 꾸는 듯 짧게 말하며 조금씩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그가 보는 환상 속에 나타난 처용이 에블린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이윽고.
-스르릉!
처용이 내지른 칼날이 에블린의 목을 날라기 직전.
“아-안! 돼-에에!!”
라이언이 핏발 가득한 눈동자를 번쩍 뜨고는 고함을 내질렀다.
정신을 차리며 상체를 일으키자 환상이 사라지고 새하얀 병실이 드러났다.
“……여긴.”
정신을 차리고 시야에 보이는 병실은 라이언에게도 익숙한 장소.
다름 아닌 닥터의 백병원 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이잉.
병실의 문이 열리고는.
“참 요란스럽게도 일어나시는군요.”
-저벅.
라이언의 고함을 듣고 찾아왔다는 듯, 닥터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닥- 으윽!?”
라이언이 닥터를 부르려다가,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으로 인해 말이 끊겼다.
“하아, 이번엔 정말 죽을 뻔한 것 아십니까?”
닥터가 라이언을 향해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위급 상황에서 사용하라고 드린 것을 그 자리에서 전부 쓰면 어찌합니까?”
핀잔을 하는 듯한 닥터의 말이 울리자.
“에, 에블린! 에블린은 어떻게 된-!?”
라이언은 닥터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다급하게 에블린부터 찾았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 시간을 번 이유는 다름 아닌 에블린의 치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에블린을 노리는 상대는 그 악명 높은 역천군주였다.
지상에 강림한 성좌조차도, 심지어 한 성운의 주신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괴물.
그런 괴물을 상대로 시간을 벌어야 했다.
닥터의 경고까지 무시하며 무리하게 도핑 포션을 전부 쓰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필사적인 각오와 의지에도 불구하고 처용을 상대로 고작 10분밖에 버티지 못했다.
“에, 에블린! 에블린은 어, 어디에 있나? 의식은? 치료는!?”
라이언이 혼란스러운 머리를 움켜쥐며 횡설수설하듯 말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 에블린에게 달려가고 싶은 듯했다.
그러나.
“크-크으윽!”
라이언의 몸 상태는 상체를 일으키는 것이 고작일 정도로 최악이었다.
양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고 손아귀에 힘이 잘 쥐어지지 않았다.
다리 또한 감각만 조금씩 남아있을 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닥터의 말대로 정말 죽다 살아난 듯, 뼈를 찌르는 고통의 계속 전해졌다.
피부를 가르고 뼈가 부수어지는 고통, 거기에 머리가 세차게 울릴 정도로 강렬한 두통까지.
너무나도 정신이 없는 상태였지만.
“에, 에블린!”
그런 와중에도 라이언은 계속 딸인 에블린을 찾았다.
“……우선, 그 싸움이 결과부터 말씀드리죠.”
닥터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
라이언이 조금 진정한 듯, 닥터를 보며 떨리는 몸을 바로잡았다.
에블린의 병이 완전히 치료되었다는 말을 기대하며 닥터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역천군주가 뤼장첸과 아마테라스를 쳐부수고 승리했습니다.”
닥터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인들의 ‘패배’였다.
에블린을 치료함과 동시에 처용을 사냥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 함정.
그러나 하늘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강력한 괴물은 자신을 노리는 함정을 모두 짓밟아버리고 파괴해 버렸다.
당연히.
“아, 아…….”
그 과정에서 에블린이 살아남았을 리가 없었다.
라이언이 고개를 떨구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에블린 양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닥터가 라이언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라이언이 힘없는 목소리로 의문을 담아 묻자.
“정말, 신기하게도…….”
닥터가 손을 들어 안경을 고쳐 쓰고는
“역천군주가 에블린 양을 살려서 데려갔습니다.”
진심으로 의문이라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
라이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닥터를 바라보며 침묵했다.
처용은 자신과 마주했을 때조차도 에블린을 죽이겠다 말한 이었다.
그런 그가 에블린을 살렸다?
라이언이 의문에 잠겨있을 때.
“당신의 상태가 조금 더 나아지면 말하려 했는데…… 잘 알아 두세요.”
닥터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띠며 라이언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애초에 에블린 양을 감염시키고 변이시킨 범인은…… 릴과 그녀가 따르는 대악마, 아스모데우스입니다.”
닥터의 입에서 ‘진실’이 흘러나오자.
“무슨 개소리냐……!”
라이언이 닥터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강하게 말했다.
색욕악신과 그녀의 신관인 릴은 죽어가는 에블린을 살려준 은인이었다.
그런 은인들이 에블린에게 병을 심은 범인들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이었다.
게다가.
“대악마의 진명을 함부로 언급하다니……! 경솔하군!”
대악마를 모시는 신관이자 의회주 중 하나인 닥터.
그런 그가 대악마의 진명을 함부로 입 밖에 내었다.
마인들은 절대로 대악마의 진명을 언급해서는 안 되었다.
이는 마인들에게 있어 신성모독에 해당되었으니까.
“대악마의 형벌을 받을 거다.”
라이언이 굳은 목소리로 닥터를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그러나.
“큭, 색욕악신 따위가 내게 심판을 내릴 수 있을 리가.”
닥터는 진심으로 대악마가 가소롭다는 듯,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
라이언이 닥터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는.
“……정체가 뭐냐, 백병원.”
진지한 목소리로 닥터를 향해 물었다.
지금 닥터의 태도는 도저히 의회주라고 보기 힘들었다.
동시에 왜 자신에게 이런 모습을 드러내는지 너무나 의문이었다.
라이언의 질문이 울리자.
“궁금한 게 많을 겁니다.”
닥터가 오른손을 들고는 자신의 이마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꾸며진 무대 뒤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라이언을 향해 질문을 건네는 닥터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일렁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