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처용이 합장하며 천재지변을 일으키자.
-쿠콰콰콰! 콰콰! 쿠르르-!
재앙의 나무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재앙이 한꺼번에 몰아치고 있었다.
-콰! 콰콰! 콰르르-!
땅에서는 용암이 터지며 땅속의 뿌리와 지면의 뿌리들을 폭발시키며 불태웠고.
-쿠르릉! 쿠릉! 파지직!
하늘에서는 세찬 비바람과 천둥·번개가 무수히 쏟아지며 나무줄기와 가지들을 태우며 으스러뜨렸다.
가히 대재앙이라고 불릴 정도의 광경이 펼쳐지자.
“이걸 혼자……? 아니, 이런 스킬이 있을 리가!?”
제시카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재앙과 처용을 번갈아 보며 놀란 듯 읊조렸다.
처용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천교에서 나름 호전적이고 강하다 알려진 성좌, 불 도깨비 나타도 가볍게 제압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재앙의 나무를 향해 벌어지는 자연의 재앙은……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대마법? 아니, 이걸 고작 마법이라기엔-!’
제시카는 레벨이 높은 마법사 클래스 헌터들이 힘을 합쳐 대마법을 발현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던전 폭주를 일찍 막지 못하고 그 일대가 몬스터 오지가 되려 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이었다.
하나의 지역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진압하는 극단적인 수단.
그러나.
-쿠콰콰콰! 콰콰! 쿠르릉!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자연의 재앙은 무려 백 명 이상의 마법사들이 발휘하는 대마법에 버금갔다.
아니, 그보다도 훨씬 이상의 위력이었다.
단 한 명의 인간이…… 자연의 대재앙을 지배해 일대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비단, 놀란 모습을 보이는 이들은 제시카뿐만이 아니었다.
“역천군주,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이건…… 도대체가-!?”
올림포스와 동방불패 길드의 다른 S급 헌터들, 뒤로 물러선 모든 이들이 경악을 표하고 있었다.
‘태무신 님, 정녕 저것이……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힘입니까?’
하오찬이 굳은 표정으로 눈앞의 재앙을 목도하며 자신의 성좌, 태무신을 향해 말했다.
[허허, 답을 보고 있음에도 내게 묻는 것인가?]
운장이 옅게 웃음을 지으며 묻자.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오찬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연을 지배하는 듯한 모습의 처용을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하오찬의 눈에는 처용이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로 보였다.
하오찬의 말이 울리자.
[인간이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운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고는.
[너 역시 가능성은 충분하다.]
자신의 신관을 향해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제가 어찌……!’
하오찬이 운장의 말에 반사적으로 부정을 보이자.
[내가 선택했으니까.]
운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뛰어난 무장이자, 이젠 신이 된 그가 강한 믿음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성좌가 보이는 믿음과 신뢰에 하오찬이 복잡한 표정으로 침묵하자.
[그리고 조만간 어째서 저 아이가 저렇게 강할 수 있는지, 알아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운장이 신관인 하오찬의 시선을 통해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계승자가 생각한 제안이 어떤가?
얼마 전, 미륵이 무신전 소속 성좌의 영체석들을 돌려주려 찾아왔을 때 꺼냈던 제안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미륵이 전한 제안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처용과 신관인 하오찬을 보며 고민을 끝냈다.
[우선 저 아이를 도와 앞에 있는 끔찍한 것들을 정리하거라.]
‘알겠습니다. 태무신 님.’
하오찬이 운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지시하기 전까진 함부로 공격하지 마라!”
헌터들을 향해 지휘하듯 소리쳤다.
다른 모든 헌터들이 뒤로 물러나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대재앙을 지켜볼 때.
“하아아압!”
처용은 재앙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 수인을 맺고 기합을 지르며 신력과 강기를 더 끌어올렸다.
-쿠구구! 쿠구! 푸화아아!!
지상에서 분출하는 용암이 더욱 거세게 폭발했고.
-쿠구! 콰르릉! 쿠릉!!
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이 두 배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콰아아아아! 푸화아아!!
지상의 용암과 하늘의 벼락이 뒤섞여 거센 회오리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쩌저적! 쩌적! 콰드드득!!
나무의 줄기 옆구리 부분, 정확히는 마키나의 플라즈마 포가 폭발했던 부분이 크게 뜯겨 나갔다.
-꺄아아아아!!
재앙의 나무에게서 강렬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쩌저적! 쿠구-!
점점 크게 자라나던 거대한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기울어진 순간.
-쩌저적! 촤아아!
두 갈래의 두꺼운 나무줄기가 처용을 향해 쇄도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자연의 대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자.
그 존재가 처용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재앙의 나무가 발악하듯 공격을 뻗은 것이었다.
처용은 자연부의 궁극적 기술인 천재지변을 사용하는 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즉, 재앙의 나무가 필사적으로 가하는 공격을 피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파도의 검 – 네 번째 장.”
-스르릉! 쏴아아아!
연화가 환도에 파도를 휘감으며 처용의 앞에 나타났다.
“해일 가르기!”
-사가가각! 사각!
날카롭게 압축된 파도의 검기가 처용에게 다가오는 나무뿌리를 네 갈래로 갈라 버렸다.
동시에.
“사슬톱의 악령!”
-위이이이-!
연아가 양손에 고속으로 회전하는 물줄기 칼날을 형성해 뒤이어 오는 나무줄기를 막아섰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칼날이 두 번 교차하듯 그어지자.
-키잉! 키이잉! 쩌저적-!
처용에게 쇄도하던 나무줄기가 토막 나며 바닥에 흩뿌려졌다.
재앙의 나무가 가한 회심의 일격이 막힘과 동시에.
-파아아…….
처용이 발휘한 자연의 대재앙이 점점 끝나가기 시작했다.
“젠장……!”
인상을 찌푸린 처용이 혀를 찰 때.
[닫혀라!]
-차라랑! 차랑!
미륵이 석장을 앞으로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화아아!
맑은 소리를 내는 석장, 관철의 조정자에서 잿빛 신력이 퍼졌고 재앙의 나무를 휘감았다.
그러자.
-치이이…….
재앙의 나무가 검은 연기를 피워올리며 점점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쩌적. 쩌저적…….
마치, 수분과 양분이 빠져나가는 듯,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앙상하게 말라갔다.
[고생했느니라. 덕분에 에너지를 빨아먹는 저 기괴한 능력을 봉인시킬 수 있었다.]
미륵이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미륵님.”
처용이 미륵을 향해 감사를 전하고는
-딸각! 꿀꺽.
아공간에서 심해의 농축 포션을 꺼내 마셨다.
천재지변을 일으키며 꽤 소모한 에너지들이 빠르게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처용이 빠르게 포션을 마시며 에너지를 보충하고는.
-파지직!
역천의 절을 쥐고 순식간에 나무의 머리 부분으로 쇄도했다.
‘검성류 – 오의!’
-스르릉!
처용이 역천의 절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높이 들어 올렸다.
“단절!”
-촤아아-!
재앙의 나무 가운데에 하늘과 땅을 잇는 얇은 선이 그어졌고.
-키잉! 쿠구구-!
거대한 나무가 반으로 갈라지며 크게 흔들리며 무너졌다.
동시에.
-화아아!
재앙의 나무 중심부에 있던, 나무뿌리에 온몸이 휘감긴 에블린이 드러났다.
그 중심, 가슴 부분에 틀어박힌 채 발광하는 태초의 조각도 눈에 보였다.
‘검성류-!’
-스르릉!
처용이 태초의 조각을 응시한 채 역천의 절을 앞으로 날카롭게 세웠다.
이대로 검을 내질러 태초의 조각을 파괴하든, 적출하든 할 생각이었다.
“검의 비상!”
-스릉!
날카롭게 강기가 일렁이는 칼날이 순식간에 태초의 조각 지척에 도달했다.
이대로 역천의 절이 태초의 조각에 틀어박히려는 순간!
-이, 이건! 나의 것이다!!
-푸화아아! 쩌저저적!!
태초의 조각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뤼장첸의 사념이 울려 퍼졌다.
“이-!”
처용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의 파동을 무시하며 역천의 절에 힘을 주었지만.
-까강! 까가강!
기껏 닿은 칼날은 태초의 조각에 작은 스크래치만 남겼을 뿐이었다.
-화아아!
처용의 몸이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폭풍으로 인해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
-쩌저저적!
주변에서 새로 자라난 검은 나무뿌리가 에블린을 휘감으며 둥글게 변했다.
-내 거다! 내 것이다! 모두 나의 것이다!!
뤼장첸의 사념이 한 번 더 울려 퍼졌고.
-쩌적! 쩌저저적!
둥글게 말려 있던 나무뿌리가 주변으로 뻗어 나가며 어떤 형상을 취하기 시작했다.
-쩌저적! 촤아아-!
두 쪽으로 갈라진 채 삐쩍 마른 거대한 나무를 찢고 나타난 것은.
-쿵! 쿵!
30미터가 넘어가는, 나무와 넝쿨로 뒤섞여 만들어진 거대한 골렘이었다.
[젠장! 안에 섞인 불순물이 튀어나왔군!]
붉게 일렁이는 눈동자로 골렘을 응시하던 미륵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처용 역시, 모습이 변한 재앙의 나무를 통찰의 눈으로 살펴봤다.
[폭식괴목(暴食怪木)]
[등급 : ?]
[특징 : 끊임없는 허기와 갈증을 분출하는 괴물.]
[집착이 강한 사념이 깃들어 있습니다.]
[확인 불가.]
[스킬 : 에너지 보어, 역류…….]
통찰의 눈으로 새로 나타난 재앙의 나무를 살펴본 처용은.
“뤼장첸, 이 개새끼가-!”
미륵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눈치채며 욕을 내뱉었다.
태초의 조각이 이식된 에블린을 흡수하려다 오히려 역으로 잡아먹힌 뤼장첸.
그가 그대로 재앙의 나무에 잡아먹히며 인격과 육체가 소멸한 줄 알았으나.
-나…… 나아-는! 부, 불사- 다!
재앙의 나무가 약해진 순간, 뤼장첸의 인격이 재앙의 나무를 지배해 버린 상태였다.
그로 인해 재앙의 나무가 골렘의 형태를 띠며 더 위협적으로 변했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탓.
처용이 뒤로 밀려나던 몸을 바로잡으며 욕을 내뱉자.
“역천군주, 저건 도대체……!? 2페이즈가 있었던 겁니까?”
제시카가 처용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간혹 보스 몬스터 중, 위기에 몰리면 각성하며 더 위험해지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헌터들은 흔히 그런 현상을 몬스터의 2페이즈 패턴이라 불렀다.
“재앙의 나무가 뤼장첸을 잡아먹었었는데…… 지금은 뤼장첸이 재앙의 나무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용이 제시카의 말에 인상을 구기며 답했다.
“무슨 그런-!?”
제시카가 거대한 나무 골렘을 올려다보며 당황과 경악을 드러낼 때.
-모오오-두! 내, 내 먹이가 되어라!
재앙의 나무로 변한 뤼장첸이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쩌저저적!
골렘의 발밑에서 나무뿌리가 맹렬한 기세로 뻗어 나갔다.
“젠장!”
“모두 피해라!”
닿은 대상의 에너지를 모조리 빨아먹고 죽게 만드는 검은 나무뿌리.
그것이 빠르게 번져나가며 쇄도하자 헌터들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전방을 막아!”
“맡겨라!”
S급 헌터들은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뻗어오는 검은 뿌리에 맞섰다.
-콰쾅! 쾅!
검은 나무뿌리와 S급 헌터들이 충돌하자.
“……뭐지?”
“뭔가 다르다!”
S급 헌터들이 의문을 드러냈다.
본래 검은 나무뿌리는 마나보다는 느리지만 신성력도 흡수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에너지가 빨려 나가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은 두 번 다시 쓸 수 없을 것이다!]
허공을 부유하고 있던 미륵이 모두가 잘 듣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관리자의 권한을 발동하여 태초의 조각에 제약을 걸었다.
그로 인해, 재앙의 나무는 에너지를 흡수하는 ‘악식 뿌리’ 능력을 쓸 수 없었다.
“진형을 바꾼다! 탱커들은 앞으로-!”
“동방불패 길드 전원! 검진을 펼쳐라!”
제시카와 하오찬이 미륵의 말을 듣고 재빨리 헌터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가장 무섭고 성가신 능력인 에너지 흡수가 성좌의 권능으로 봉인된 상황.
이젠 화력을 집중하여 거대한 나무 골렘을 쓰러뜨리면 끝이었다.
-이! 먹잇감 놈들이-!
골렘에게서 뤼장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쩌저저적!
골렘의 머리 부분 뿌리가 마치 입을 벌리듯, 좌·우로 갈라지며 열리고는.
-쿠웨웨웨엑! 주르르-!
허리를 숙이며 바닥에 검게 질척이는 무언가를 게워냈다.
골렘이 게워낸 토사물들이 슬라임처럼 뭉치더니.
-스륵! 스륵! 쩌저적!
나무뿌리를 휘감으며 10미터 크기의 골렘들로 변했다.
-쿵! 쿵!
새로 나타난 8기의 나무 골렘들이 헌터들을 향해 돌진하며 나아갔다.
“결전기 – 어스 가디언!”
가장 앞장서 있던 데메테르의 신관, 스티븐이 다가오는 나무 골렘을 보며 결전기를 발동했다.
-쿠구구구!
바위와 흙들이 뭉치며 다가오는 나무 골렘들과 같은 크기의 바위 골렘들이 나타났다.
-쾅! 콰쾅! 쿵!
스티븐이 소환한 대지의 수호자들과 뤼장첸이 토해낸 나무 골렘들이 충돌했다.
“길드장을 도와라!”
“밀어붙여!”
올림포스 소속 헌터들이 그런 스티븐을 도울 때.
-화괘의…… 장막.
나무 골렘들 중 하나가 쇳소리를 내며 말하더니.
-푸화아아아!
강렬한 화염을 휘감으며 주변에 달려드는 스티븐의 골렘들과 헌터들을 밀쳐냈다.
“그 스킬은-!?”
스티븐이 적 골렘이 발휘한 스킬을 보며 경악을 드러냈다.
시전자 주변에 빠르게 회전하는 화염의 고리를 만들어 내는 공방일체의 스킬.
화괘의 장막은 천교의 S급 헌터, 양천의 대표적인 스킬이었다.
양천의 스킬을 사용하는 골렘을 시작으로.
-풍진…… 포!
이번엔 다른 골렘 중 하나가 타친핑의 스킬을 사용하며 헌터들을 공격했다.
‘설마?’
처용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뤼장첸이 만들어 낸 골렘들을 통찰의 눈으로 살펴보자.
[괴목(怪木) - 양천]
[등급 : S]
[스킬 : 화괘의 장막…….]
[괴목(怪木) - 타친핑]
[등급 : S]
[스킬 : 풍진포…….]
아니나 다를까, 8기의 나무 골렘들은 모두.
‘뤼장첸에게 잡아먹힌 놈들…….’
최후의 만찬이 되어 뤼장첸에게 잡아먹힌 천교의 S급 헌터들이었다.
“제시카! 하오찬! 커맨더!”
처용은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대표 헌터들을 불렀다.
“저 커다란 놈을 내가 맡을 테니-!”
“우린 걱정하지 말고! 저 망할 새끼부터 잡아!”
커맨더가 처용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빠르게 대답했다.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지지직!
뢰신보를 발동하며 재앙의 나무가 되어버린 뤼장첸을 향해 나아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