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재앙의 나무, 티그라무트.
회귀 전 처용조차도 공략에 실패하고 일본 열도를 포기하게 만들었던 대재앙.
처용은 재앙의 나무를 상대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재앙의 나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십 번 공략을 시도했음에도 실패에 그쳤다.
그 말인즉슨.
‘나조차도 저것의 정확한 공략법을 모른다.’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한 처용도 재앙의 나무를 파괴하지 못했다.
재앙의 나무가 가진 위험한 능력에 가까스로 맞서 싸울 방법은 찾았다.
하지만 재앙의 나무가 발휘하는 위험천만한 능력들을 완벽하게 파훼하는 데는 실패했다.
게다가 지금 재앙의 나무는 뤼장첸까지 흡수하여, 변이까지 되어버린 상황.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그나마 좋은 소식이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재앙의 나무가 이제 막 발현하기 시작했다는 점.
회귀 전에는 일본 열도 전체가 재앙의 나무로 뒤덮였었기에 공략이 불가능했다.
전 세계의 S급 헌터들과 처용이 힘을 합쳐도 절반도 채 뚫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무는 그 크기가 이제 막 100미터에 도달한 정도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구나.]
화신의 그릇과 천부인의 권능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미륵의 존재였다.
[저것을 뚫고 심장부로 다가가 핵을 파괴해라, 그 이후는 내가 어떻게든 해보마.]
미륵이 말하는 핵은 태초의 조각이 이식된 에블린을 의미했다.
“알겠습니다.”
처용이 미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전에 한 말 명심하고 다른 헌터들과 합류해서 저걸 계속 공격해.”
뒤에 있던 연화와 연아, 윤아에게 말을 전했다.
고개를 끄덕인 세 명이 다른 헌터들과 합류하기 위해 뒤돌아 나아갔다.
[내 힘이 닿는 대로 계속 시간을 끌어 보마.]
미륵이 석장을 움켜쥐고는 하늘로 향하며 말했다.
정확히는 재앙의 나무 꼭대기 부분으로 향하는 듯 보였다.
미륵이 권능을 펼쳐 시간을 벌고 있었음에도.
-쩌저적! 쩌적!
바닥의 뿌리들이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촤아아!
하나의 뿌리가 처용을 노리고 달려들자.
-스가가각!
처용이 역천의 절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 반으로 쪼개 버렸다.
그러나.
-쩌적! 쩌적! 촤아아!
갈라진 뿌리에서 새로운 뿌리가 돋아나 처용을 노리며 쇄도했다.
‘하나하나 상대해서는 끝이 없다.’
-파지직!
처용은 우선 바깥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지하를 벗어나 지상 위로 올라오자.
-뿌리에 휘감기지 마라! 순식간에 죽는다!
-S급 헌터들을 보조해!
-화력이 강한 마법을 한 점에 집중해!
재앙의 나무를 중심으로 헌터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처용이 지시한 대로 진형을 갖추며 지상 위로 솟구쳐 오는 뿌리들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다.
-탓.
처용이 지상 위에 나타나자.
“역천군주!”
제시카가 처용을 발견하고는 그를 불렀다.
“저걸 상대하고는 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기가 힘듭니다!”
-쾅!
다가오는 나무뿌리 하나를 제시카가 방패로 쳐내며 말했다.
-쩌저적!
제시카의 방패에 부딪힌 뿌리가 돌처럼 굳어졌다.
-탕! 쩌저적! 쿠구구!
굳은 부분을 성물, 아스트라페로 강하게 찌르자 전류가 일어나며 굳은 뿌리가 무너져 내렸다.
재앙의 나무에서 뻗어 오는 뿌리는 각 길드의 S급 헌터들이 최전선에 서서 맞서고 있었다.
그때.
-휘리릭!
검은 나무뿌리 하나가 S급 헌터들을 보조하던 B급 헌터 둘을 잡아챘다.
“아, 안-!”
헌터들이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치이이……!
온몸의 에너지가 전부 빨려 나간 듯, 미이라처럼 쪼그라들며 사망했다.
‘마나 강탈……!’
처용이 순식간에 당한 헌터들을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점점 영역을 넓혀오는 검은 나무뿌리의 능력 중 하나인 마나 강탈.
뿌리에 닿는 모든 생명체는 그 에너지를 빼앗기고 순식간에 죽임을 당한다.
특히, 마나 지배력이 약한 헌터들은 저항조차 할 수 없다.
재앙의 나무가 가진 가장 위험한 능력.
게다가 그 마나 강탈 능력이 뤼장첸을 흡수했기 때문인지, 더 강해진 듯 보였다.
“젠장! 한 템포 더 물러난다!”
제시카가 점점 영역을 넓혀오는 검은 뿌리를 보고 명령하듯 소리쳤다.
“S급 헌터들을 제외한 이들은 더 뒤로 물러나라!”
“저 뿌리에 닿지 마라!”
다른 S급 헌터들 역시 조금씩 뒤로 더 빠지며 다른 헌터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그때.
“모두 물러나!!”
-스르릉!
뒤에서 힘을 모으던 헤라클레스의 신관, 리차드가 대검을 강하게 움켜쥐며 앞으로 돌진했다.
-우우웅!
강렬하게 솟구치는 황토빛 신성력을 휘감은 대검이 점점 다가오는 검은 뿌리를 후려치자.
-타당! 촤아아-!!
앞을 빽빽하게 가로막고 있던 뿌리들이 일제히 반 토막 나며 무너져 내렸다.
전방 30미터 정도의 뿌리들이 토막 난 순간.
“성화의 축복.”
손 위로 작은 화로 형태의 성물을 띄워 올린 헤스티아의 신관, 도로시가 권능을 발현했다.
-화르르륵!
도로시가 화로에서 피어난 성화를 흡수해 화염을 더욱 끌어올렸고.
“플레임 스톰!”
성화의 힘을 융합시킨 광역 스킬을 사용했다.
-화륵! 화르륵! 화륵!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화염의 회오리가 잘려 나간 뿌리들을 추가로 부수며 태우기 시작했다.
마나를 순식간에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마나 강탈 능력.
그런 재앙의 나무를 상대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신성력이었다.
재앙의 나무는 신성력도 흡수가 가능했지만, 마나보다 그 속도가 느렸다.
그리고.
-화르륵! 화륵! 화륵!
신성력에 의해 강렬한 피해를 받는 와중에는 마나 강탈 능력이 크게 약해진다.
S급 헌터들이 처용의 지시에 따라 최전방에 나선 이유였다.
리차드와 도로시가 활약해준 덕분에 넓은 범위의 뿌리들이 사라졌다.
전장의 상황이 조금 나아진 듯 보였지만.
-쩌저적! 쩌저저적!
순식간에 밑에서 다른 뿌리들이 솟구치며 그 자리를 메꾸었다.
동시에 점점 영역을 더 넓히고 있었다.
-쩌적! 쩌저저적!
또다시 검은 뿌리들이 빈틈을 노리고 헌터들에게 향하자.
“결전기 - 어스 가디언!”
-쿠구구! 쿠구!
데메테르의 신관, 스티븐이 결전기를 발동해, 대지의 수호자들을 일으켜 앞으로 세웠다.
-콰쾅! 콰콰쾅! 쿠궁!
단단한 바위 골렘들과 나무뿌리들이 굉음을 내며 충돌했다.
잠시 뿌리들을 막아내나 싶었지만.
-우드득! 우득!
검은 나무뿌리들이 바위 골렘들을 휘감으며 점점 일그러뜨리고 밀어내기 시작했다.
“제길! 이대로 계속 버티기만 할 수는 없다. 제시카!”
스티븐이 바위 골렘들에게 신성력을 더 주입하며 제시카에게 소리칠 때.
“흐아아압!!”
하오찬이 머리 위로 언월도를 한 바퀴 크게 휘두르며 나타났다.
“창룡격(蒼龍擊)!”
-우우웅!
하오찬의 언월도에서 금빛 용의 형상이 일렁이며 나타났고.
-캬아아아!
나선으로 회전하는 금빛의 용이 점점 크기를 키우며 나무뿌리를 향해 쏘아졌다.
-콰지직! 콰직! 콰직!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금빛의 용이 바위 골렘들을 휘감아 으스러뜨리던 뿌리들을 모조리 부수었다.
“감사합니다. 동방불패.”
“아닙니다. 그보다도…….”
스티븐의 감사에 지상에 착지한 하오찬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역천군주.”
처용에게 검은 나무에 대해 물었다.
처음 검은 나무가 자라나며 나타났을 때, 상대법을 알려준 것이 처용이라고 들었으니까.
“재앙의 나무…… 말 그대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나무입니다.”
처용이 점점 크기를 불려 나가는 나무를 보며 읊조리듯 말했다.
“재앙의 나무라…… 확실히 이름 대로군요.”
하오찬이 인상을 찌푸린 채, 검은 나무뿌리를 보며 말했다.
최전방에서 재앙의 나무를 상대해 본 바로는 그 이름에 걸맞을 정도로 위험한 상대였다.
“그나마 미륵님께서 저것을 억눌러주신 덕분에 자라나는 속도가 더디긴 합니다만…….”
처용이 나무의 머리 부분, 먼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석장을 움켜쥐고 허공을 부유한 채, 무언가를 하고 있는 미륵이 보였다.
“지금 이게 더딘 속도라니……!”
제시카가 처용의 말을 듣고 인상을 팍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S급 헌터들이 힘을 합치는 지금도 점점 전선이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게 더디게 자라는 속도였다니…….
“역천군주, 저것을 처리할 방법이 있습니까?”
제시카가 처용을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지금 상황.
하지만 처용이라면 분명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처용이 입을 열 때.
“우리 왔어!”
전신 슈트를 갖춰 입은 커맨더가 하늘을 비행하며 처용에게 다가왔다.
동시에.
-쿠구구!
조금 떨어진 하늘 위에서 구름을 헤치며 커맨더의 성지가 내려왔다.
“정확한 타이밍에 딱 왔네요.”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이야?”
커맨더가 처용을 향해 묻자.
“모두 뒤로 더 물러나!”
처용이 모두가 잘 듣도록 마나를 담아 크게 외쳤다.
그러자.
“모두 세 템포 뒤로 물러난다!”
“후방부터 순서대로 후퇴하라!”
S급 헌터들이 헌터들을 지휘하며 일사불란하게 후퇴했다.
헌터들이 뒤로 물러선 순간.
“적들을 옭아매라!”
-쩌저적! 콰콰콰쾅!
스티븐이 전방을 막고 있는 바위 골렘들을 모두 자폭시켜 돌풍을 일으켰다.
-콰쾅! 쾅! 쾅!
거대하고 묵직한 바위들이 회오리치며 나무뿌리들을 찢어내고 짓뭉갰다.
스티븐뿐만이 아니라.
“석화의 시선.”
-키이잉!
제시카가 방패를 전방에 세우며 신성력을 퍼트리자.
-쩌저적! 쩌적!
신성력에 닿은 나무뿌리들이 돌처럼 굳어가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다른 S급 헌터들도 스티븐과 제시카처럼 나무뿌리를 향해 스킬을 발동하며 물러섰다.
“지금입니다!”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외치자.
“마키! 쏴버려!”
커맨더가 성지, 마키나 호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키이이잉!
마키나의 정면, 주력 함포에 미리 충전해 놓은 강렬한 에너지가 끓어올랐고.
-피잉! 피슈우우웅!!
최대치로 충전된 플라즈마 포가 재앙의 나무를 향해 세 번 발사되었다.
정확히 나무의 몸통 부분에 한 발, 뿌리 아랫부분에 두 발이 명중했다.
-콰콰! 콰콰쾅! 콰-!!
강렬한 폭음과 동시에 화마가 하늘로 솟구쳤다.
-쩌저적! 쩌적!
재앙의 나무가 크게 흔들림과 동시에, 나무줄기 한쪽 면이 크게 찢어지듯 뜯겨 나가며 불타올랐다.
-캬아아아!!
플라즈마 포에 명중 당한 영향인지, 검은 나무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에블린.”
비명을 들은 커맨더가 에블린의 이름을 읊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처용에게서 재앙의 나무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금의 비명은 오래전, 괴물로 변한 에블린의 목소리와 같았다.
“……커맨더, 재앙을 되풀이할 순 없습니다.”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굳은 목소리로 말하자.
“나도 알아, 어쩔 수 없다는 거.”
커맨더가 각오를 다진 눈빛으로 대답했다.
마인으로 변한 에블린은 이제 더 이상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재앙’ 그 자체로 변한 상태.
자신이 망설인다면, 무수히 많은 헌터들과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뉴 클리어도…… 준비가 끝났어.”
커맨더가 흔들리지 않는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경우가 발생했을 경우, 사용하는 겁니다.”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말했다.
“그래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고.”
커맨더가 재앙의 나무를 응시하며 말하고는.
“마키! 마지막 한 발을 발사해!”
마키나를 향해 명령하듯 말했다.
-키이잉! 피슈우웅!
다시 한번 플라즈마 포가 재앙의 나무, 정확히는 머리 부분을 향해 발사되었고.
-콰콰콰쾅!!
재앙의 나무 꼭대기 아랫부분에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지이잉! 콰콰콰콰!
마키나의 함포가 일제히 재앙의 나무를 조준하더니 포격을 시작했다.
쏟아지는 함포 사격이 뜯겨 나간 나무 부분을 추가로 타격하며 나무의 재생을 억제했다.
-캬아아아!!
-콰드득! 콰득! 우드득!
강렬한 폭발과 함포 사격으로 인해 재앙의 나무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때.
“토류부, 화염부, 뇌격부, 풍운부, 수류부.”
처용이 다섯 장의 자연부를 소환해 앞으로 펼치고는
-탓. 촤라라라-!
신력과 강기를 끌어올리며 손을 휘젓자, 각각의 자연부가 여덟 장으로 늘어났다.
동시에.
-촤르르륵!
처용 주변을 회전하며 태극을 그려내었고 다섯 개의 진법이 만들어졌다.
-콰아아!
풍운부와 뇌격부, 수류부가 하늘을 향해 빛의 기둥을 만들며 솟구쳤고.
-쿠구구!
화염부와 토류부는 땅속으로 스며들며 사라졌다.
자연부로 만들어진 팔괘의 진법이 각각 하늘과 땅으로 솟구친 순간.
“선술 - 오의(奧義).”
처용이 두 손을 합장하며 강기와 신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쿠구구! 쿠구!
지진이 들이닥친 듯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고.
-쿠르릉! 쏴아아……!
하늘에 먹구름이 모임과 동시에 천둥과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려는……?”
제시카가 하늘을 보며 의문을 토했고.
“일단 더 뒤로 물러난다!”
하오찬은 심상치 않은 하늘을 보며 헌터들에게 더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헌터들이 뒤로 더 물러난 순간.
“천재지변(天災地變).”
처용이 합장하던 두 손을 떼며, 선술의 궁극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을 발동했다.
-쿠콰콰! 화르륵! 화륵!
지진이 닥친 듯 흔들리는 땅에서 용암이 터지기 시작했고.
-쿠르릉! 쿠르르!!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서는 천둥벼락과 거센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재앙이 몰아치기 전, 커멘더의 플라즈마 포에 의해 큰 피해를 받았던 재앙의 나무는.
-콰지직! 콰직! 콰직!
처용이 일으킨 재앙을 온몸으로 맞으며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캬아아아아!!
몹시 고통스러운 듯, 몸을 떨며 진동하는 재앙의 나무가 비명을 질러댔다.
“이걸로 끝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우웅!
처용이 재앙의 나무가 질러대는 비명을 들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