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301화 (301/726)

#301화

뤼장첸이 에블린의 뒤에 나타난 순간.

[이 하계종이-!?]

아마테라스가 당혹스러움을 드러냈고.

“어떻게?”

처용 역시 당황을 표했다.

특수한 독을 먹인 뤼장첸은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그의 모습도 왼쪽 발목과 오른쪽 팔만이 남아있는 기괴한 살덩어리나 다름없는 상태.

그런 그가 이렇게 오래 버틴 것도 의문이었고.

어떻게 이 거친 싸움의 여파를 뚫고 에블린이 있는 곳까지 왔는지도 의문이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아마테라스와 처용 둘 다 당장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마테라스는 처용의 검격에서 가까스로 버티던 상황, 게다가 에블린에게 등을 보이는 상태였다.

처용 역시 아마테라스와 대치하고 있던 상황.

작금의 상황을 무시하고 당장 뤼장첸에게 갈 수가 없었다.

결국.

-콰직!

뤼장첸의 이빨이 에블린의 어깨에 틀어박혔고.

-콰아아아!

타인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스킬, 악식이 발동되었다.

“이, 이건! 이건! 내 거야!”

그가 격렬한 전장을 뚫고 에블린에게까지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힘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흘러들어오던 에너지의 근원이 에블린임을 본능적으로 알아본 것.

처용과 아마테라스가 싸움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나마 멀쩡한 오른팔과 왼쪽 발목을 질질 끌며, 다가온 것이었다.

“이 미친 또라이 새끼가-!”

처용이 뤼장첸을 보며 욕을 내뱉었다.

설마, 완전히 망가진 몸으로, 손목과 발목만을 움직여 악착같이 기어 왔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 것이다! 전, 전부! 나의 것이다!”

뤼장첸이 녹아내린 안면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알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에블린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뤼장첸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푸화아아!!

강렬한 에너지 폭풍이 에블린과 뤼장첸에게서 몰아쳤고.

“젠장……!”

[아, 안 돼!]

아마테라스와 처용이 에너지 폭풍으로 인해 뒤로 크게 밀려났다.

처용은 밀려나는 육체에 힘을 주고는.

-쾅! 쿠드드-!

지면에 역천의 절을 꽂아 몸을 바로잡았다.

동시에 에너지 폭풍을 버티며 뤼장첸을 응시했다.

“어떻게 악식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뤼장첸은 분명 신관의 자격을 박탈당했다.

당연히 그가 지녔던 모든 스킬도 사라져야 했다.

“악식은…… 처음부터 내 힘이었다!”

에너지를 흡수하는 뤼장첸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처용을 향해 환희를 내지르며 소리쳤다.

처용도 모르고 있던 사실.

뤼장첸의 악식은 옥황상제의 신관이 되며 받은 스킬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가 지니고 있던 고유 능력이었다.

타인을 잡아먹고 그 에너지를 강탈하는 스킬.

뤼장첸이 천교의 병기로 선택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악식의 보유자였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내가! 내가 이겼-!”

강렬한 힘에 취한 뤼장첸이 포효하듯 환희를 내질렀다.

자신이 잡은 먹잇감에게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모두 차지한다면, 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파아아!

돌연, 에너지의 강렬하게 솟구치던 에너지의 흐름이 뒤틀렸다.

“어?”

뤼장첸이 의문을 토해낸 순간.

-콰아아!

에블린에게서 뤼장첸에게 흐르던 에너지가 역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본래, 악식의 능력대로라면 에블린의 모든 것을 뤼장첸이 강탈해야 했었다.

하지만.

-화아아!

에블린의 가슴에 박힌 태초의 조각이 발광하기 시작했고.

-슈화아아아!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대상에는.

“아, 아! 안 돼! 이럴 수는-!”

에블린을 붙잡고 있던 뤼장첸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치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 블랙홀이 형성되며 에너지를 마구잡이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슈화아아악!

뤼장첸과 주변의 에너지가 에블린의 가슴, 태초의 조각으로 빨려 들어갔고.

-콰아아아아아!!

온갖 것들이 뒤섞인 에너지가 강렬하게 분출하기 시작했다.

“큭! 팔괘금강문!”

-쿵!

처용이 전방에 팔괘금강문을 소환하며 에너지 폭풍을 견뎠고.

[아, 안 돼! 내 염원이-! 안-!]

-파사사……!

아마테라스는 신전이 무너지는 영향 때문인지, 화신체가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때.

[이게 뭔 난리더냐?]

-콰아아!

미륵이 석장을 휘둘러 공간을 찢으면서 처용 옆에 나타났다.

“……옥황상제는요?”

처용이 팔괘금강문에 계속 힘을 집중하며 미륵에게 묻자.

[그 망할 늙은이가…… 놈은 도망쳤다.]

미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

[그래도, 전리품은 얻어 왔느니라.]

-슥.

짧게 일그러졌던 표정을 피며 왼손에 들린 청동 원판, 천부인을 들어 보였다.

“그걸 회수해서 다행입니다.”

처용이 천부인을 짧게 응시하며 말했다.

옥황상제는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천부인을 포기한 듯 보였다.

[그나저나…… 태초의 조각이 왜 폭주하고 있는 것이냐?]

미륵이 다시 전방을 응시하며 처용에게 물었다.

“그게…….”

처용이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짧고 빠르게 설명하자.

[이런 어리석은 것! 태초의 조각에 함부로 낙인을 새겨 불안정하게 만들다니!]

미륵이 점점 화신체가 무너지고 있는 아마테라스를 향해 질책하듯 소리쳤다.

본래 태초의 조각, 태초신의 힘이 담긴 파편은 웬만해선 폭주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힘이 거대하고 복잡한 태초신의 신력이니만큼, 작다고 해도 안정되어 있었다.

문제는 아마테라스가 태초의 조각에 담긴 힘을 끌어내기 위해 낙인을 새기고 조종하려 했다는 것.

그로 인해 태초의 조각이 불안정해진 상황.

그런,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뤼장첸이 잘못 건든 순간.

-콰아아아!

불안정하게 유지되던 태초의 파편이 폭주하고 만 것이었다.

[닥쳐라, 변절자! 네놈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아마테라스가 무너지는 화신체를 바로잡으며 소리치자.

[그냥 꺼져라! 우매하고 멍청한 것!]

-차라랑! 차랑!

미륵이 아마테라스의 말을 자르고 마치 석장을 던지려는 듯 투창 자세를 잡았다.

이윽고.

-쾅! 콰쾅!

미륵이 던진 관철의 조정자가 정확히 아마테라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 크……!]

가슴이 뚫린 아마테라스는 무릎을 꿇으며 침음을 토해냈다.

[관리자로서, 네년에게 태초의 조각을 함부로 훼손한 것에 대한 제약을 걸겠노라!]

-파지지직!

미륵이 던진 석장, 관철의 조정자에서 잿빛 신력이 퍼져나가며 아마테라스의 화신체를 잠식했다.

이윽고.

-파사사사!

완전히 잿빛으로 변한 아마테라스가 모래성이 무너지듯 무너져 내렸다.

[방해되던 저 멍청이는 처리했고…… 문제는 저것인데.]

아마테라스를 정리한 미륵이 폭주 중인 에블린을 보며 읊조렸다.

“꺄아아아!”

-콰아아!

괴성을 내지르는 에블린과 그 주변에 휘몰아치고 있는 강렬한 에너지 폭풍.

당장 폭풍을 뚫고 나아가 에블린을 죽이면 해결될 듯 보였지만.

-까까강! 쩌적! 쩌저적!

전방을 방어하고 있는 팔괘금강문조차 점점 금이 가며 부서지고 있었다.

처용이 계속 마나를 주입하여 복구하고 있지만, 더 밀려나지 않고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젠장, 어떻게든 뚫고 가서 죽인다면-.”

[소용없느니라.]

미륵이 처용의 말에 의도를 파악하고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 불쌍한 것을 죽인다 하여 당장 폭주가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해야 합니까?”

처용이 미륵에게 해결 방법을 묻자.

[나도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없으니…… 문제로구나.]

미륵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 순간.

-쿠구구…….

돌연, 강렬하게 휘몰아치던 에너지의 폭풍이 멈췄다.

그리고.

-콰드드득! 쿠득! 쿠드득!

에블린을 중심으로 검은 나무뿌리들이 사방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콰콰콰! 콰드득! 콰득!

사방을 부수며 전진하던 검은 뿌리가 팔괘금강문을 휘감아 순식간에 으스러뜨려 버렸다.

“젠장!”

처용이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고 미륵 역시 뒤로 물러났다.

“재앙의 나무……!”

온 사방을 초토화하며 번져나가는 검은 뿌리.

그리고 하늘 위로 점점 올라가며 몸집을 키우는 나무줄기.

처용이 점점 크기가 거대해지는 나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회귀 전 일본 열도 전체를 뒤덮어 멸망시킨 대재앙.

그 재앙의 나무가 다시 나타나 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으아아아!!

이번에 나타난 재앙의 나무는 회귀 전보다도 더 끔찍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에블린이 역으로 뤼장첸을 잡아먹으니 영향인지, 재앙의 나무에서 뤼장첸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단 임시로 조치라도 취해야겠군.]

미륵이 굳은 목소리로 오른손에 석장을 움켜쥐고는.

[나 좀 도와주게나, 천찰…….]

왼손에 쥔, 옥황상제에게서 탈취한 천부인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화아아.

미륵이 잿빛 신력을 내뿜자.

-키이이잉!

천부인의 위에 작은 문자들이 빛을 발하며 나타났다.

-스르르. 스르릉!

신력을 받고 공중을 부양하던 천부인이 미륵의 머리 위로 향하며 천천히 회전했다.

“……성좌를 지상에 잠시 강림시키는 신물이었군요.”

처용이 천부인과 미륵의 화신체를 번갈아 살피며 말했다.

천부인이 작동하는 순간, 신전이 무너진 여파로 조금씩 흔들리던 미륵의 화신체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래, 환인이 하늘에서 인간들을 지켜보며 보살피기 위해 만든 신물이지.]

미륵이 처용의 말에 답하면서 신력을 끌어 올리고는.

[멈추어라.]

-쾅!

석장을 들고 바닥을 강하게 내려치며 권능을 발동했다.

그러자.

-쩌적!? 쩌저저적!

무언가 문제가 생겼는지 점점 영역을 넓혀가던 재앙의 나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태초의 조각을 잠시 무력화시켰다.]

미륵이 재앙의 나무를 제압한 순간.

-파차창! 파창!

유리가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대악마의 신물은 부쉈어!”

연아와 연화, 윤아가 처용을 향해 다가왔다.

동시에.

-역천군주!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 거야!? 저 나무는 도대체……!

마찬가지로 몽환의 미로에서 빠져나온 메리가 처용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마인 놈들은?’

처용이 메리가 연결한 귓속말 라인을 통해 전음을 보내자.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고 있어, 작전 실패라고 외치면서.

메리가 현장의 상황을 전달해 주었다.

‘차라리 잘 되었군, 메리 지금부터 제시카와 하오찬에게 내 말부터 전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메리가 처용의 말에 궁금한 듯 묻자.

‘최악…… 긴급상황이다.’

처용이 재앙의 나무를 응시하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긴장감이 묻어나는 처용의 말에 메리의 안색 또한 굳어졌다.

검은 대지가 퍼졌을 때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처용이었다.

그런 처용이 ‘최악’이라고 말할 법한 사태가 일어난 상황.

‘지금부터 내 말 잘 듣고 전해, 저 검은 나무는…….’

처용은 메리에게 재앙의 나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는 전투를 준비하라 일렀다.

그리고.

“커맨더.”

라이센스를 작동시켜 커맨더에게 연락을 취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미로가 무너지니 연락이 되는군.

“커맨더, 마키나를 이끌고 이쪽으로 오면서-.”

처용은 커맨더의 말에 답하지 않고 바로 용건부터 꺼냈다.

“……뉴 클리어를 준비해 주십시오.”

잠시 말을 멈춘 처용이 가장 중요한 용건을 말하자.

-……방금, 메리에게 저 나무에 대해 들었어, 그 정도로 위험하다고?

커맨더가 인상을 찌푸리며 처용에게 물었다.

“이번에 저걸 막지 못하면, 중국 대륙뿐 아니라 한반도까지 다 쓸려나갈 겁니다.”

처용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장 최악의 경우를 이야기했다.

재앙의 나무가 가진 위력을 생각해 볼 때, 충분히 있을 법한 가능성이었으니까.

-일단, 주변 수습이 끝나는 대로 바로 공격을 시작할게.

커맨더가 알았다는 듯 처용의 말에 답하자.

“다른 헌터들한테 단단히 일러 주십시오. 저 뿌리에 제대로 잡히는 순간…… 죽는다고.”

처용이 다시 한번 진지한 목소리로 경고를 전하고는 통신을 끊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돼?”

“…….”

연화의 말에 처용이 잠시 생각에 잠기며 눈앞의 검은 나무를 응시했다.

통찰의 눈으로 재앙의 나무를 관찰한 결과.

[폭식의 재앙목(災殃木)]

[등급 : ?]

[특징 : 닥치는 대로 에너지를 먹어 치우고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확인 불가.]

[스킬 : 악식 뿌리, 대지 잠식…….]

아니나 다를까, 뤼장첸을 흡수했기 때문인지 회귀 전과는 다른 정보가 나타났다.

재앙의 나무, 티그라무트는 폭식의 재앙목이라는 이름으로 변해 있었다.

회귀 전과 비슷한 능력에 뤼장첸의 악식이 더해진 듯 보였다.

전혀 좋다고는 볼 수 없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것은.

-찰랑. 찰그랑.

미륵이 권능을 발휘해 재앙의 나무가 더 번지는 것을 잠시 막은 상태라는 점이었다.

이 틈을 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재앙의 나무, 아니 폭식의 재앙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