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하하하! 네가 가진 그 막강한 힘! 이곳에 모인 먹잇감들의 에너지까지 모두 내 것이다!”
진법에 의해 점점 힘을 흡수하는 뤼장첸이 고양감에 휩싸이며 소리쳤다.
바닥의 진법이 가진 기능은 뤼장첸의 불사만이 아니었다.
뤼장첸이 가진 스킬, ‘악식’을 증폭시키고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신력을 가진 처용에 이어 이곳에 모여든 모든 헌터들의 힘을 흡수하는 것.
이것이 뤼장첸과 그를 돕는 이들이 계획한 함정이었다.
“내가! 신이 된다! 하하하!”
뤼장첸이 자신에게 스며들어오는 힘에 취하며 소리치자.
“……여기서 날 죽인다 해도 네가 신이 되는 건 불가능해, 뤼장첸.”
처용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크하하! 네놈이 뭐라 말한들 소용없다! 모두 나의 에너지가-!”
계획이 성공한 뤼장첸이 처용을 비웃으며 말하자.
“신관이 온전한 신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처용이 뤼장첸의 말을 자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앙!?”
뤼장첸이 처용의 침착한 분위기에 의문을 보였다.
자신의 계획은 성공했고 이대로면 주변의 모든 에너지는 자신이 흡수하게 된다.
흡수를 막을 방법도 자신을 죽일 방법도 없다.
처용이 무리해서 진법을 무너뜨린다 해도, 그 전에 이 작업이 끝날 테니까.
그리고 진법이 있는 한 자신은 불사였다.
아무리 봐도 완벽하게 성공한 계획!
그러나.
“자신의 성좌를 죽이고 그 신명을 강탈하는 것.”
처용은 위기를 맞은 사람치고는 너무나 침착한 모습이었다.
“네놈에게 대입하자면 그래…… 옥황상제를 잡아먹어야 온전한 신이 될 수 있겠군.”
신을 모시는 신관이 가장 빠른 기간에 신이 되는 방법.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모시는 성좌를 살해하고 그 신명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처용이 이 사실을 아는 이유는.
-이 방법이 있겠구나.
회귀 전, 여래가 직접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크타니드에 의해 치명상을 입은 여래가 마지막 방법이라며 처용에게 권한 것이었다.
물론 처용은.
-절대!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여래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단순히 온전한 신격을 얻기 위해 스승인 여래를 죽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옥황상제를 죽이고 그의 신명인 천황(天皇)을 얻을 수 있나?”
처용은 뤼장첸에게 자신이 할 수 없었던 일을 과연 실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
뤼장첸이 처용의 말이 과연 사실인지 생각하는 듯, 혹은 처용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듯 침묵하자.
“네놈은 절대로 신이 될 수 없어.”
처용이 단언하며 뤼장첸의 답을 대신 말했다.
과연 뤼장첸이 옥황상제를 죽이고 그 신명을 강탈할 수 있을까?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따져봤을 때, 절대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회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뤼장첸은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자였다.
힘을 갈망하는 탐욕과 광기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집착이 강한 이였다.
그런 뤼장첸이 강력한 힘, 그것도 신명을 얻어 온전한 신이 될 방법을 알아냈다면.
“크, 크크크! 좋은 정보 고맙군.”
그 말을 무시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네놈이 싫어하는 저 하늘의 신 역시 내 먹이가 될 것이다.”
뤼장첸의 눈이 번들거리며 거대한 탐욕을 드러냈다.
자신의 성좌를 잡아먹고 그 신명을 빼앗겠다는 강욕.
그 대상이 하늘을 지배하는 대신이라 해도, 그를 잡아먹고 하늘의 옥좌를 차지하겠다 말하고 있었다.
폭식마에 걸맞는 ‘강욕’이었다.
“내가…… 내가! 모든 것을 잡아먹고 최강이 될 것이다!”
뤼장첸이 점점 끓어오르는 힘에 고양감을 느끼며 소리쳤다.
자신의 성좌를 죽이고 신명을 빼앗겠다고 말한 상황.
명백한 신성모독이었다.
심지어 뤼장첸은 신성모독만큼은 사형으로 다스리는 천교 주신의 신관이었다.
옥황상제가 들으면 당장이라도 천벌을 내리쳐 격노할 상황이었다.
“저 하늘 위의 양반이 들으면 뒷목을 잡겠는데?”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묻자.
“크하하하! 이 안에서는 성좌의 눈이 닿지 않는다고!”
뤼장첸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크게 외치듯 말했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이 진법은 대악마들과 태양신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진법이었다.
진법 안은 교유 결계나 다름없는 공간.
진법을 만든 태양신과 대악마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었다.
그것이 뤼장첸이 대놓고 신성모독을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처용이 입가에 짙은 비웃음을 그려내며 입을 열고는.
“당신의 신관이 성좌를 잡아먹고 하늘의 옥좌를 차지하겠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
하늘 위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 늙다리는 여길 못 본다니까!”
뤼장첸이 처용의 행동을 비웃으며 말하는 순간.
-쿠구구구!!
진법이 그려진 공간 전체가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네……! 이놈!!]
-쿠구! 쿠구구구!!
마치, 강렬한 천둥 번개가 두꺼운 방공호를 내리치는 듯, 강한 진동과 천둥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천둥 벼락과 지진 속에 섞여 크게 울려 퍼지는 격노.
[이런 간악하고 쓰레기 같은 하계종이 감히!!]
다름 아닌 옥황상제의 고함이었다.
“어…… 어!?”
뤼장첸의 입에서 의문이 흘러나오자.
“크크크, 야이 병신새끼야. 옥황상제가 이름만 대신인 줄 알았냐?”
처용의 뤼장첸을 향해 비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대신들 중 유독 오랜 세월을 살아온 옥황상제.
하늘을 지배하는 자, 천황(天皇)이라는 신명을 가진 대신.
옥황상제, 혹은 천황대신(天皇大神)이라 불리는 성좌.
“하늘을 지배하는 대신이 고작 이런 진법 하나 꿰뚫어 보는 것쯤은 우습지.”
처용이 옥황상제가 가진 권능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천안(天眼)
옥황상제가 가진 권능 중 하나인 하늘의 눈.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지배하는 이들을 언제 어디서든 관찰하고 지켜볼 수 있는 권능이었다.
아마테라스의 권능인 태양 빛의 눈동자와 비슷한 권능이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아마테라스의 권능보다 옥황상제의 천안이 상위였다.
때문에, 옥황상제는.
[아마테라스! 네 이년!]
아마테라스와 대악마들이 펼친 장막을 뚫고 신관인 뤼장첸을 몰래 주시하고 있던 상태였다.
[감히! 짐이 공들인 병기를 가로채려 하는 것이냐!?]
옥황상제는 작금의 상황이 벌어진 이유가 아마테라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신관인 뤼장첸을 더욱 강화시키고 처용을 죽이게 만들어 그 힘을 흡수하게 도와주겠다.
이것이 아마테라스가 옥황상제에게 제안한 거래 중 하나였다.
옥황상제는 작금 천교에 벌어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아마테라스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아마테라스는 무언가를 숨기듯, 아무도 진법 내부를 볼 수 없게 권능을 펼쳤다.
옥황상제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권능을 발휘해 신관인 뤼장첸을 은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뤼장첸이 처용의 유도신문에 넘어가 버리고 망언을 내뱉은 상황.
[주신의 자격도 박탈당한 애송이 년이 감히! 감히 짐에게-!]
-쿠구구!
옥황상제는 자신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던 신관이 배신한 이유가 아마테라스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쿠르릉! 쿠릉!
옥황상제가 무언가를 하려는 듯, 계속해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나를 방해하지 마라!]
아마테라스의 분노 섞인 고함이 울려 퍼졌다.
분위기상, 이 일대를 압박하고 있는 옥황상제를 저지하는 듯 보였다.
“이봐? 네 저 하늘에 계신 늙은이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
처용이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키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자.
“……어, 어차피 이 진법으로 내가 완성되면…… 이것이 끝난다면 상관없다!”
뤼장첸이 떨리는 목소리를 다잡으며 소리쳤다.
어차피 처용과 이곳에 모여든 이들을 모두 잡아먹으면 자신은 압도적인 강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옥황상제에게 고개를 숙이며 명령에 복종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의 처용 역시 성좌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자신 역시 막강한 힘만 있다면, 처용처럼 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하하하!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끌 바엔 뭐라도 하지 그랬나? 역천군주!”
다시 자신감을 되찾은 뤼장첸이 처용을 향해 비웃음을 머금으며 소리치자.
“일부로 시간 끈 거다. 멍청한 새끼야.”
처용이 왼쪽 손목을 오른손 검지로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크큭! 멍청한 건 네놈이다! 이제 곧 모든 이들이 내 만찬이 될-!”
뤼장첸이 아직도 가만히 있는 처용을 비웃으며 말한 순간.
“커헉!?”
돌연, 눈이 반쯤 뒤집히며 검은 피를 토해냈다.
동시에.
-파사사…….
육체와 얼굴의 절반이 뜯겨 나가고 가루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뜯겨 나가 흩날리는 부위가 점점 균열이 번지며 넓어지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뤼장첸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부들거리며 읊조리자.
“가리지 않고 처먹으니까 배탈이 나는 거다. 병신같은 놈.”
-스르르.
처용이 왼손에 쥐고 있던 검녹색의 구슬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구슬에서는 옅은 검녹색의 에너지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와 뤼장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 일대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여 뤼장첸에게 보내는 천년한철 진법.
처용은 그 진법의 기능을 이용에 뤼장첸에게 무언가를 흡수시키고 있었다.
“나…… 한테! 무슨…… 짓-!”
뤼장첸이 바닥을 긁고 발버둥 치며 묻자.
“뭐긴, 독을 먹였지.”
-스르르…….
처용이 검녹색의 연기를 피워내는 구슬을 들어 돌려보며 말했다.
“독 따위로 내 불사가-!”
뤼장첸이 처용의 말에 핏발 선 눈을 치켜뜨며 말하자.
“크크, 내가 쓰는 게 평범한 독일 리가 없잖아?”
처용이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으며 답했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구슬, 아니 맹독의 덩어리.
이것은 평범한 독이 아니었다.
[악몽에 벼려진 독옥(毒玉) / 소모품]
[등급 : 레전더리]
[악몽 속의 몬스터, 청자고둥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청자고둥의 정수를 중심으로 다양한 독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매우 강력하고 위험한 독이므로 사용 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며칠 전, 마인들과 악몽 속에 휘말렸을 당시.
마녀가 가디언으로 사냥했었던 청자고둥 한 마리가 있었다.
뒤이어 나타난 다수의 청자고둥 때문에 마인들이 도주할 때.
-이걸 얻을 기회가 생길 줄이야.
처용은 열쇠를 얻는 겸, 죽은 청자고둥에게서 떨어져 나온 정수와 부산물들을 추가로 챙겼었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검녹색의 강력한 맹독 덩어리 구슬.
악몽에 벼려진 독옥은 청자고둥의 정수에 여러 독을 섞어 특수 제작한 독이었다.
신의에게서 받은 백독환을 흡수하여 얻은 독무부.
그리고 무라키 요키라가 지니고 있던 바질리스크의 송곳니까지.
청자고둥의 정수에 치명적이고 위험한 맹독들을 일정 비율로 융합하여 만들어 낸 물건이었다.
맹독에 강력한 저항력을 가진 처용조차도.
-치이이…….
손아귀에서 철이 부식되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피부가 타고 있었다.
금강불괴에 더불어 강기까지 두르고 있음에도 독의 기운에 의해 뚫리는 상황.
단순히 만지는 것에 불과했음에도 선인의 육체를 지닌 처용이 피해를 받을 정도의 맹독이었다.
그런 맹독의 구슬 깊숙이 잠재된, 가장 농도가 짙은 에너지를 흡수한 뤼장첸은.
“크허헉!? 크헉!”
무사할 리가 만무했다.
“크허억!? 불사자…… 인 내가! 독이 통할 리가-!”
천년한철 진법 위에서 불사인 뤼장첸에게 독이 통할까? 싶었지만.
“내가 네놈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독인데 평범할 리가 있나?”
처용의 말대로 작금의 독은 평범한 독이 아니었다.
무엇이든 분해해 버리는 청자고둥의 독.
감염 대상의 생명력을 잡아먹고 증식하는 바질리스크의 독.
그 외에 치명적인 증상을 유발하며 죽음을 선사하는 다양한 독까지.
맹독의 집합체인 이 독옥은, 오로지 폭식마 뤼장첸을 죽이기 위해 특별히 공들여 만든 작품이었다.
“이까짓! 독 따위에게-!”
뤼장첸이 발버둥 치며 소리치자.
-스르르!
천년한철 진법에서 에너지를 받고 무너지던 육체가 다시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사사……!
재생되려던 육체가 얼마 안 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 밑에서 오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모르겠지만…….”
뤼장첸의 발버둥 치는 모습을 바라본 처용이 말을 이었다.
“네놈이 완전히 소멸하기 전까지 그 독은 없어지지 않을 거다.”
처용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리자.
“크-웨엑! 이-러얼-순! 으…… 없-으 어!”
-주르륵! 꿀럭! 철퍽!
뤼장첸이 이젠 슬라임처럼 흐물거리는 몸을 꿈틀거리며 힘겹게 말했다.
동시에.
-쩌적! 쩌저적!
견고했던 천년한철 진법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맹독에 감염된 뤼장첸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계속 보낸 결과, 점차 진법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처용이 침투시킨 팔괘의 진법을 다시 작동시키자.
-스르르륵! 쩌적! 쩌저저적!
견고했던 진법에 검은 얼룩이 번져나가며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아마테라스가 즉시 진법을 고치고 수복해야 했지만.
-쿠구구! 쿠구구구!
아까부터 울려오는 진동으로 보아, 아직도 옥황상제의 방해를 막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윽고.
-쩌저적! 쿠구! 쿠구구!
바닥의 진법이 무너지며 2층 바닥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처용과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뤼장첸이 무너지는 바닥에 따라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에너지를 전해주고 있었군?”
3층의 광경을 본 처용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탁.
처용이 바닥에 착지하자.
[젠장……! 진법이!]
아마테라스의 화신체가 처용을 보며 낭패감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
현장에는 아마테라스와 대치하고 있던 격노 어린 표정의 옥황상제 또한 자리해 있었다.
처용이 아마테라스와 옥황상제를 번갈아 응시하고는.
“반갑다. 이 배신자 새끼들아.”
처용이 다시 마주하게 된 아마테라스를 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