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93화 (293/726)

#293화

“크헉!”

-샤아아…….

처용에게 베인 마지막 몽마가 가루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하급 몽마들이라 그런가, 문지기 역할 외엔 아무것도 없었군.”

원하는 대답을 딱히 듣지 못한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방금 처치한 몽마들은 말 그대로 후문을 지키던 문지기, 고작 하급 몽마들에 불과한 놈들이었다.

다만, 수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몽환 가루라…… 온 김에 이것 좀 많이 구해야겠네.”

처용이 바닥에 떨어진, 연한 푸른색 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윤아가 궁금한 듯 몽환 가루 주머니 하나를 들어 자세히 바라봤다.

[몽환 가루 / 재료]

[몽마들이 만들어내는 꿈과 환각의 힘이 담긴 가루.]

[잘못 사용 시, 환각과 환청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용 방법에 따라 각성, 흥분, 정신착란 등, 정신적 타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감정해보니까. ‘마약’이라고 나오는데요?”

몽환 가루 주머니를 향해 감정 스킬을 쓴 윤아가 처용을 보며 말했다.

잘못 사용하면 환각과 환청, 정신적인 흥분상태를 유발하고 정신착란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가루.

흔히 헌터들의 뒷세계에 알려진, 몬스터로 만든 마약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몬스터 마약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마약 맞아.”

처용은 윤아의 말이 맞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해 보였다.

몽환 가루는 사용한 대상을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드는 마약이 맞았다.

회귀 전, 몽마들에게 붙잡힌 저항군들이 이 몽환 가루에 고문을 받기도 했었으니까.

대상을 정신적으로 죽어가게 만들며 가루를 흡입한 자는 종국에 가진 정보를 모두 빼앗기고 육체를 조종당하게 된다.

이것이 몽환 가루를 아주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처용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굳이 이상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쓸 활용 방법은 많아.”

처용은 몽환 가루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몽환 가루를 수거하고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복도로 일행들이 쭉 걸어 나갈 때.

“앞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후퇴한 듯 보입니다.”

전방의 어둠을 탐지해본 류마가 처용에게 말했다.

지금 뒷문으로 들이닥치는 이들이 만만치 않은 이들이니만큼, 모두 도망간 듯 보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

루나가 전방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봤다.

“어둠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어.”

“그건 나도 보이긴 하는데…….”

처용이 루나의 말에 동의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통찰의 눈을 최대치로 활성화하자.

-스르르! 슈르르!

벽을 타고 흐르는 마나의 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루나의 말대로, 또 감각에 느껴졌던 대로 던전 내부의 마나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오른쪽 벽에 흐르는 마나가 정면을 향해 흘렀고 왼쪽 벽은 반대로 뒤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본래, 대부분 던전의 마나는 보스가 있는 쪽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하지만, 몽마들이 거주하는 이 던전은 왼쪽과 오른쪽이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처용과 루나가 의문을 가지며 앞으로 나아갈 때.

“……회전하는 거예요.”

용의 혜안을 발동하여 주변을 면밀히 살핀 윤아가 알았다는 듯 강하게 말했다.

“마나가 저희를 중심으로 긴 직사각형을 그리면서 회전하고 있어요.”

윤아가 수 속성 마나를 손에 뭉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했다.

그 말에.

“명환부 – 빛의 길.”

처용이 던전 벽에 명환부를 던져 어둠 속성 마나에 빛 속성을 미세하게 섞였다.

환한 빛의 선이 던전의 마나 흐름을 따라가며 긴 꼬리를 그려내었다.

이윽고 처용의 명환부가 던전의 마나가 그려내는 흐름을 모두 따라가자.

“하하…… 당했군.”

처용이 헛웃음을 흘리며 작은 미소를 띠었다.

방금, 던전 내부에 흐르는 마나의 길에 명환부를 던진 결과.

지금 처용의 머릿속에는 던전 내부에서 흐르는 마나가 어떤 ‘문양’을 그리는지 보였다.

던전 내부에서 흐르는 마나는 일행을 중심으로 회전만 하는 게 아니었다.

회전하는 마나 중 일부는 외부로 뻗어 나가 다른 문양들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직사각형과 원들로 구성된 거대한 마법진과 같은 문양.

“환영 마법에 빠삭한 고위 귀족 몽마가 하나 있나 본데?”

머릿속에 그려진 문양을 살핀 처용이 중얼거리듯 말하고는.

“명환부.”

여섯 장의 명환부를 소환하여 일행들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동시에.

-우우웅!

파마의 기운이 담긴 신력을 끌어 올려 빛의 고리에 더했다.

-화아아!

환하게 빛나던 빛의 고리가 파마의 힘을 얻고 더욱 눈부신 광명을 내뿜기 시작했다.

빛의 힘과 파마의 힘이 충분히 모인 순간.

“파마의 물소리.”

처용이 붙잡고 있던 빛과 파마의 신력을 외부로 풀어내었다.

-우웅! 우우웅!

빛의 고리를 따라 회전하던 파마의 신력과 빛의 마나가 마치 잔잔한 호수 위의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그러자.

-울렁. 울렁.

긴 복도처럼 보이던 던전의 내부가 마치 신기루처럼 흔들리며 희미해졌다.

이윽고.

-챙강!

유리가 깨지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눈에 보였던 환경이 무너져내렸다.

“으윽!”

“으아악!”

처용 일행들을 둘러싸고 있던 몽마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통 섞인 신음을 흘렸다.

새로 나타난 환경은 파티 홀처럼 보이는 넓은 원형의 공동.

아무래도 몽마들이 단체로 모여 마법진을 형성하고 함정을 준비한 듯 보였다.

언뜻 보이는 몽마들의 수가 30은 넘어갔다.

게다가.

“몽환의 신기루가 깨지다니-!”

“젠장! 모두 정신 차려라!”

역시나 처용의 예상대로 몽마들 중에는 강한 마기를 지닌 상급 몽마들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으…… 난 놀러 나왔을 뿐인데, 왜 이런 귀찮은 일이……!”

상급 몽마들 중 유독 강력한 마기가 느껴지는 검푸른 드레스 차림의 서큐버스가 눈에 보였다.

짙은 푸른 웨이브 머리에 다른 몽마들보다 유독 길게 솟아난 뿔.

처용이 가장 강해 보이는 서큐버스를 향해 통찰의 눈을 발동하자.

[리리아 드 타라샤]

[등급 : A급 공작]

[특징 : 고귀한 꿈의 일족 가문의 일원.]

[아직 완전한 성장을 이루지 못한 상태입니다.]

[스킬 : 몽환의 안개, 환영의 장막…….]

‘공작급 몽마…… 아니, 아직 어린 개체인가?’

고위 귀족 몽마를 살펴본 처용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리리아 드 타라샤.”

-스르르륵.

처용의 그림자에서 루나가 솟아 나오더니, 가장 강한 마기를 지닌 고위 몽마를 향해 말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는 몽마야?”

처용이 루나를 향해 묻자, 루나가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였다.

“브, 블라디미르 로 루나리스!?”

루나에게 이름을 불린 고위 귀족 서큐버스, 타라샤가 놀란 듯 루나의 풀네임을 불렀다.

“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왜 피의 일족이 여기에!? 게다가 왜 인간들을 돕는 거야? 그리고 넌 죽었다고-!”

“살아남았지, 그리고 인간들을 돕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루나가 타라샤라는 고위 몽마의 말을 자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돕는 인간들이 내 일족들을 공격하고 살해했어.”

-화아아!

루나가 붉은 혈기를 거칠게 뿜어내며 적대감을 담아 말하자.

“그, 그건…….”

타라샤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읊조렸다.

그 순간.

“젠장!”

“벌써 여기까지 올 줄은-!”

-샤샥! 샥!

세 명의 상급 마인과 열 명의 B급 마인들이 현장에 난입했다.

심지어 상급 마인 중 한 명은 처용에게도 조금 익숙한 이였다.

“역천군주……!”

리더라는 이명을 가진 상급 마인, 라이언이 처용을 보며 적대감을 가득 피워냈다.

“라이언…… 네놈이 이곳에 있다는 건.”

처용이 라이언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전 커맨더의 파티원인 라이언.

이전 커맨더에게서 동료였던 그가 왜 마인이 되었는지에 대해 들었던 말들이 생각났다.

“에블린이라는 마인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로군.”

처용이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스모데우스의 페러사이트 디멘터로 인해 변이되고 마인이 되어버린 소녀.

그녀는 추후 S급 마수인 재앙의 나무, 티그라무트로 변한다.

그러므로 재앙의 나무가 되어 버리기 전에 반드시 그녀를 죽여야 했다.

그리고 에블린을 재앙의 나무로 개화시킨 데미갓 프로젝트.

태초의 조각을 들고 달아난 아마테라스 역시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덕분에 따로 찾아낼 수고를 덜었군.”

-스릉!

처용이 역천의 절을 고쳐 쥐며 싸늘하게 말하자.

“내가 두고 볼 것 같은가!?”

-우우웅!

라이언이 마기를 분출하며 처용을 향해 적대감 가득한 고함을 질렀다.

“윤아, 주변 지형을 유리하게 바꾸고 방어 위주로 싸워, 나머지는 내가-.”

처용이 빠르게 오더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공격 타이밍을 잡을 때.

-쿠구구! 쿠콰!

돌연, 천장의 벽 일부가 금이 가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찾았다!”

-쿵!

2미터가 넘어가는 키와 마치 보디빌더 선수처럼 근육이 탄탄하게 잡힌 남자가 떨어져 내렸다.

“뭔데? 저 변태는-!”

연아가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남자를 향해 일그러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비단 연아 뿐 아니라.

“…….”

“오우…….”

웬만해선 큰 반응을 보이는 일이 없는 연화와 윤아도 표정이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다름 아닌 현장에 난입한 남자의 복장 때문이었다.

근육의 라인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쫙 달라붙어 있는, 거의 속옷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짧은 반바지.

그 아래에, 마찬가지로 근육 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검은 망사 스타킹에 넓고 높은 굽의 구두.

거기에 매우 짧고 타이트한 가슴 부분까지만 내려온 탱크톱 민소매.

팔 상단 부분을 감싼 견갑에 어깨에 부착된, 미식축구 선수가 쓸 법한 두꺼운 철제 숄더패드.

숄더패드 아래에 이어진 사슬이 X자로 엮여 탱크톱 아래로 이어진 모습까지.

여러모로 아주 기괴한(?) 모습의 괴한이었다.

“적이야!? 아무리 봐도 몽마들의 대장 같은데!?”

엄청난 패션에 충격을 받은 연아가 적의를 드러내며 외치자.

“지원군이 왔군.”

처용이 눈앞에 난입한 정체불명의 괴한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때.

“야, 빌리!”

“다짜고짜 일직선으로 달려가면……! 진짜 여기에 있었잖아!?”

남자가 뚫고 나타난 천장에서 헤스티아의 신관, 도로시와 헤라클레스의 신관 리차드가 나타났다.

그리고 뒤이어.

“우리도 왔다고!”

진호와 백호가 나타나 바닥에 착지했다.

-탓. 타탓!

주변을 둘러보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도로시와 리차드가 빌리의 옆에 서며 적들을 경계했다.

진호와 백호 역시 처용 일행의 앞에 자리 잡았다.

그때 기괴한 패션의 남자, 빌리가 고개를 돌려 처용 일행을 바라봤다.

“오버로드 가이(Guy), 맞지?”

그가 하얀 치아가 보이도록 씨익 웃으며 입을 열자,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성이 울렸다.

“오다가 우연히 알았는데, 바닥을 부수면 밑으로 곧장 내려갈 수 있더라고.”

“좋은 정보 고맙군.”

빌리가 전해 준 말에 처용이 대답함과 동시에.

-스르릉! 촤자자!

역천의 절로 바닥을 세 번 베어내었다.

그러자.

-쩌저적! 쿠구! 쿠구구!

정확히 처용과 일행들이 있는 주변의 바닥에 금이 가고 부서지며 일행들이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갑작스러운 추락에도 당황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고.

-탓. 타탁!

일행들은 대략 5초 정도 추락하다가 자연스럽게 착지했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거야?”

연화가 고개를 들어 천장 위를 바라보며 처용에게 묻자.

“문제없어, 우린 이대로 나아간다.”

처용은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고작 다섯에 불과했지만, 처용은 그들만으로 수가 많은 적들을 상대할 수 있다 판단했다.

바닥을 부수고 새로 나타난 공간을 일행들이 둘러볼 때.

“어머나?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왔는데?”

-또각. 또각.

어둠 속에서 교태 어린 목소리가 울리며 점점 다가오는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점점 다가오는 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의회주 릴……!’

처용이 모습을 드러낸 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스모데우스의 신관.”

“오? 나에 대해서 정확히 아나 본데?”

릴이 처용의 말에 작은 놀람을 표하며 말했다.

자신은 집행자와 달리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인이었다.

그런데 처용은 자신이 어떤 대악마를 모시는지도 단번에 알아봤다.

“그 더러운 악신의 악취가 여기까지 풍기는데 모를 리가 있나.”

-스르릉!

처용이 역천의 절을 치켜들며 적대감을 가득 담아 말하자.

“겁대가리가 없다는 건 알았지만, 상당히 미친놈이었네?”

릴이 거침없이 대악마를 모욕하는 처용을 보며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장 표정이 여유로운 미소로 바뀌었다.

“근데, 아쉬워서 어쩌니? 아무리 너라도 이번엔 늦은 것 같은데?”

-우우웅!

릴이 왼손에 쥐고 있던, 검은색과 핑크색으로 일렁이는 구슬을 들어 보이며 말한 순간.

“뢰신보.”

-파지직!

처용이 최고 속력으로 뢰신보를 발동하여 릴에게 쇄도했다.

-스르릉!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고 신속하게 역천의 절을 내질렀지만.

-샤아악!

릴은 처용의 검격에 뒤로 물러나며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내가 남자를 상대로 죽을 뻔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데?”

뒤로 물러난 릴이 목 언저리를 더듬으며 말했다.

“칫, 지금부터-!”

처용이 눈앞의 릴을 죽이기 위해 일행들에게 오더를 내리려는 순간.

“늦었다니까? 하하하!”

-화아아!

릴이 왼손에 쥐어진 작은 구슬, 아스모데우스의 성물을 발동시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젠장, 지금까지 시간 끄는 것이 목적이었나?’

처용이 릴이 쥐고 있는 대악마의 성물을 보며 속으로 읊조린 순간.

“몽환 속의 미로.”

-화아아아!

릴이 아스모데우스의 성물 속에 잠재된 권능을 발동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