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90화 (290/726)

#290화

“크, 크크크…….”

엠마가 처용에게 목을 잡힌 상황에서도 웃음소리를 흘리자.

“웃어?”

처용이 헛웃음을 흘리며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시에.

“아아…… 그런 건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금 전, 처용은 옥황상제와 대악마를 모욕하는 말을 내뱉었다.

명백한 신성모독,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라면 분명히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엠마는 비웃음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군.”

생각을 끝낸 처용이 입을 열고는.

“병신같은 순혈자 새끼들이 심어 놓은 간자였구만? 크크크.”

주변에 크게 들리지 않도록 엠마를 향해 속삭이며 말했다.

그러자.

“이…… 이! 감히 고귀하신 분들의 뜻에 반하는 하계종 따위가!!”

비웃는 엠마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지며 괴성을 토해냈다.

일그러지는 엠마의 표정과 반응을 본 처용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순혈신교……!’

순혈자.

선천적 신격들 중, 스스로를 고귀하고 고결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자신을 드높여 말하는 호칭.

순혈신교는 그런 순혈자들을 맹렬히 따르는 광신도 집단이었다.

순혈자인 성좌가 키워낸 길드와 같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전혀 다른 이들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길드의 헌터들과는 다른 순혈자 추종자들만의 비밀집단이었다.

“순혈자의 신전이 세 번이나 망가지고 조커가 조각상에 낙서한 걸 많이 좋아해 주던가?”

처용이 그간 있었던 일들을 언급하며 도발하듯 읊조렸다.

아레스의 신전이 오염되고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두 번이나 무너졌다.

심지어 조커는 고귀한 순결의 여신상에 신성모독적인 짓까지 저질렀다.

속삭이듯 울린 처용의 말이 끝나자.

“이, 이!”

순혈자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광신도, 순혈신교의 신도 입장에서는.

“감히! 하찮은 하계종 따위가! 고귀하신 분들을 모욕하다니!!”

격렬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도발이었다.

“그 하계종에는 네놈도 포함된다는 것을 모르는가? 크크.”

“고귀한 분들을 따르는 내가! 네놈들같이 더러운 놈들과 같은 줄 아느냐!?”

처용의 비웃음 섞인 말에 엠마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순혈자들에게 사명을 부여받은 신도인 자신들 역시, 아주 특별하고 고귀한 이들이라 믿는 것.

그것이 순혈자들을 따르는 순혈신교의 믿음이자 광기였다.

“역천군주! 네놈 역시 그림자들과……!”

방금 처용의 말을 들은 엠마가 분노를 담아 읊조리고는 목을 잡힌 손아귀를 풀기 위해 발버둥 쳤다.

고귀한 순혈자들의 신전이 세 번이나 무너졌다는 사실.

그리고…… 순결의 여신 조각상에 조커가 신성모독을 저지른 일까지, 처용은 알고 있었다.

처용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 조커와 한통속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크크크.”

처용이 몸부림치는 엠마를 비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순혈신교의 신도, 엠마는.

“모든 것은…… 순혈자를 위해!”

-탁!

목에 걸려 있던 검은 보석이 장식된 목걸이를 뜯음과 동시에.

“파멸의 나락.”

처용의 멱살을 붙잡으며 아티팩트의 시동어를 읊었다.

-피이이!

엠마의 입에서 시동어가 흘러나오온 순간, 검은 보석에서 검은빛이 새어 나왔고.

-콰아아아!!

사방을 모조리 집어삼킬 듯, 격렬한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순혈자들이 직접 하사한, 그들의 힘이 담긴 성물.

목숨이 위험할 때나, 순교가 필요할 때 사용하라고 내려준 성물이었다.

블랙홀처럼 퍼지며 어둠이 번지자.

-쩌적! 쿠구구! 쿠구!

건물에 금이 가고 물건들이 일그러지며 어둠 속으로 점차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큭!?”

“모두 물러나! 위험하다!”

주변에 있던 스미스와 WHU 소속 헌터들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인력이-!”

“버텨! 빨려 들어가면 죽는다!”

마치, 블랙홀을 재현한 듯, 휘몰아치는 어둠에 저항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꺄하하하! 역천군주! 네놈만 죽인다면! 그분들의 위대한 대업이-!”

엠마의 광기 어린 외침이 울리고 주변 전체가 어둠에 삼켜지기 직전.

“흡기장.”

-슈화아아아!

처용이 왼손바닥을 펴며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을 한곳에 모았다.

그러자 나선을 그리며 회전하던 블랙홀이 반대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스르르!

처용의 손아귀에 한 점으로 뭉치더니.

-탁! 치이이……!

처용의 손아귀 안에서 사라졌다.

“대업이 뭐?”

처용이 주변을 잠식하던 어둠을 손쉽게 처리하자.

“이, 이! 괴물 같은 변종 새끼가!”

엠마가 질린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무려 신들 중 가장 고귀한 이에게서 하사받은 성물이었다.

그런 성물의 힘을…… 눈앞의 괴물은 아무렇지 않게 없애 버렸다.

“이제…… 내 차례인가?”

“이……!”

처용의 살기 어린 눈빛을 마주한 엠마는.

“허, 헌터 변호사를 요청합니다. 나는 재판을 받을 권리가-!”

헌터들에게 적용되는 미란다 원칙을 읊으며 말했다.

자신은 WHU의 고위 임원.

강압적으로 수사를 받을 위치가 아니었다.

인류에게 적용되는 법칙을 이용해 일단 이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눈앞의 이단자는 상식 이상의 괴물이었다.

우선 이 자리를 빠져나간 후, 다른 신도를 만나 소식을 전달해야 했다.

처용은 순혈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보다 더한 괴물이라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더 위험한 괴물이 되기 전에 죽여야 한다고 전해야 했다.

그러나.

“큭, 변호사?”

엠마의 목을 틀어쥐고 있는 처용은 인류의 법칙 따위를 생각하는 이가 아니었다.

특히, 배신자를 눈앞에 둔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게, 내가 지옥에서 모셔온 변호사다 이 배신자 새끼야!”

-슈르르! 파지지직!

처용의 왼손에 세 장의 수류부와 세 장의 뇌격부가 생성되었고 하나로 뭉쳤다.

그리고.

“지옥형벌 – 수류뢰침(水流雷浸)!”

-퍼억! 슈르르!

엠마의 명치를 가격함과 동시에 공처럼 뭉쳐진 속성의 덩어리를 터트렸다.

그러자.

-슈화아아아!

물줄기가 솟구치며 엠마를 공처럼 가두었고.

-파지지지직!

동시에 강렬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강렬한 전류가 끊임없이 흐르는 강에 죄인을 담가 버리는 지옥의 형벌.

익사와 감전, 공포와 고통을 동시에 겪는 형벌이 처용의 손아귀에서 재현되었다.

강력한 전류가 발끝부터 뇌의 정수리 끝까지 관통하자.

“……!!”

마치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듯, 엠마의 입이 크게 벌어짐과 동시에 눈이 뒤집혔다.

-쿠르르륵! 쿠르륵!

온몸으로 고통을 표현하듯, 팔과 다리를 마구잡이로 뒤틀었고 입에서 공기 거품을 내뿜었다.

이윽고 강렬하게 흐르던 전류가 멈추자.

-슈르르!

물줄기가 다시 처용의 손아귀로 뭉치며 돌아왔다.

“아…… 으…… 아…….”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강렬한 고통.

그 고통이 끝나자 희미한 신음과 동시에 약간의 정신이 돌아왔다.

엠마의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온 것을 본 처용은.

“고작 ‘5초’ 지났다.”

살기가 잔뜩 흐르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음은 10초 정도로 해 볼까?”

“아, 아아…… 아!”

조금 전 뇌리를 관통했던 강렬한 고통을 다시 상기한 엠마가 두려움 섞인 침음을 흘렸다.

무언가를 말하려 노력했지만, 조금 전 고통 때문인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오? 이걸 버티겠다고? 참으로 독하군!”

처용은 입술을 달달 떠는 엠마를 향해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 아…… 아! 안!”

“순혈자들이 네 굳건한 충성심을 아주 좋아하겠어. 그치?”

“아, 아-ㄴ…… 아, 니-ㄴ 아닌.”

엠마가 말을 버벅대며 고개를 젓기 시작했지만.

“지옥형벌 – 수류뢰침!”

-슈화아아아!

처용은 다시 한번 엠마를 물줄기로 휘감았다.

“어얽…… 어!”

물줄기에 갇힌 엠마의 눈빛에 극한의 두려움이 일렁였다.

이윽고.

-파지지지직!

다시 한번 뇌리를 관통하는 강렬한 전류가 사방으로 튀었다.

엠마의 눈이 뒤집혔고 소리 없는 비명과 몸부림이 계속될 때.

“역천군주! 적당히-!”

스미스가 처용을 만류하려는 듯, 소리쳤다.

그러자.

“날 방해하면.”

-쿠구구구!

처용에게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작은 소리임에도 신력이 담겨 있기에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쩌적! 쿠구구!

처용의 목소리를 타고 퍼져 나간 신력과 마나의 영향으로 주변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놈과 같은 ‘배신자’라 생각하고 똑같이 만들어주겠다.”

살기가 흉흉하게 묻어나는 처용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친구와 동료의 등 뒤에 비웃음을 흘리며 칼을 꽂는 ‘배신자’들.

그런 이들에게 자비와 관용을 베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배신자들, 특히 순혈자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조롱까지 내뱉는 쓰레기들이었다.

“날 방해하지 마라…… 이건 경고다.”

살기가 일렁이는 처용의 낮은 목소리가 울리자.

“…….”

“…….”

스미스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침묵했다.

애초에 처용은 말린다고 하여 말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엠마가 배신자라니…… 배신자라니…….”

스미스의 입에서 ‘배신자’라는 말이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아직도 엠마가 누군가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였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무려 15년을 함께 한 동료였다.

지구에 시스템이 생기기 이전부터.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성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이전부터.

쭉 자신과 함께 일해 온, 서로가 신뢰하는 동기이자 파트너였다.

WHU가 처음 창설될 당시부터 스미스와 함께 근무했던 동료.

그런 엠마가…… 뤼장첸을 자신 몰래 WHU 사무국으로 잠입시켰고.

수감되었던 천교의 S급 헌터들을 뤼장첸에게 살해당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처용에게 정체가 들통난 뒤에 보인 광기까지.

작금의 상황을 진지하게 따져봤을 때…… 명백한 배신이었다.

“도대체…… 왜?”

스미스가 의문 가득한 목소리로 읊조릴 때.

-파지지지…….

처용이 내뿜었던 전류가 다시 약해졌다.

-슈화아아!

엠마를 가두었던 물줄기가 다시 처용의 손아귀로 돌아온 순간.

“아, 으…… 으아, 마-ㄹ 말…… 말하겠-.”

엠마가 달달 떠는 입으로 겨우 목소리를 내었다.

“난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묻자.

“고, 고귀-한 이들께서…… 하, 하사…… 하신 임무…….”

엠마는 처용이 묻지도 않았음에도 아는 것들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WHU가 창설된 순간, 순혈자들에 의해 명령을 받고 잠입한 간자였다.

“사, 상제의…… 신관을 도우라고 고, 고귀한 이들께서 명령을…….”

엠마가 조금 전, 뤼장첸을 몰래 사무국에 잠입시킨 이유.

그것은 순혈자들에게서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언제.”

처용이 짧게 묻자.

“다, 당신이 여기-서 나가고 바로…….”

처용이 양천과 타친핑 등 S급 헌터들에게서 증거를 얻고 사무국을 나갔을 때였다.

“지령을 받는 방식은?”

“아, 그…… 이, 이걸로-.”

-차라락.

엠마가 처용의 질문에 손에 쥐고 있던 목걸이 아티팩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티팩트를 잠시 살펴본 처용은.

“네게 지령을 내린 순혈자가 누구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 그, 그건…… 그-.”

엠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고 입을 들썩이며 망설임을 보였다.

-스르르!

처용이 왼손에 뭉쳐진 물줄기를 다시 퍼트리려는 순간.

“제, 제게 지, 지령을 내린-!”

엠마의 입이 열렸다.

그러나 그때.

“커허헉!?”

-푸화악! 주르르륵!

엠마가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냈고 눈과 코, 귀에서도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어리석은 하계종이구나.

엠마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어억! 으억! 커헉!?”

-슈르르르르!

마치 역병이 번지듯, 등에서부터 시작된 푸른 반점이 엠마의 전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표식이 발동되었군.’

처용이 엠마의 전신을 뒤덮는 푸른 반점을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순혈자들을 따르는 순혈신교의 신도들이 지닌 표식.

그 표식이 있는 신도가 순혈자의 신명을 입에 담는 순간, 그 신도는 죽음의 저주를 받는다.

무려 신과 직접적으로 계약해 받은 표식이기에 지금의 처용은 막을 수 없는 저주였다.

하지만.

-우우웅!

처용이 엠마를 뒤덮는 죽음의 저주를 향해 신력을 내뿜었다.

-콰아아!

죽음의 저주와 처용의 신력이 맞닿은 순간, 무언가와 연결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내 말 들리는 거, 다 안다. 이 빌어먹을 씨발 새끼야.”

처용은 죽음의 저주에 뒤덮이며 죽어가는 엠마를 향해 살기를 담아 말했다.

“네놈이 누구인지 찾아낼 것이다. 찾아내서…….”

처용의 말이 끝난 순간.

-슈르륵! 쩌저저적!

엠마의 전신이 완전히 퍼렇게 변했고 마치, 얼어붙은 시체처럼 딱딱하게 변했다.

-탁! 쿠궁! 쿵!

딱딱하게 굳은 채 죽어 버린 엠마의 시체를 바닥으로 팽개친 처용은.

“스미스 씨.”

고개를 돌려 스미스를 불렀다.

“크흠! 네, 네.”

헛기침을 한 스미스가 답하자.

“각 거대 성운의 길드장들 좀 다시 불러 모아야겠습니다.”

처용이 바닥에 놓인 엠마의 시체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쓰러져 있는 엠마의 등 부분을 응시하고 있었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엠마의 등에는 마치 핏방울처럼 보이는 문신의 일부가 보였다.

‘벌써 순혈신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지?’

처용이 입꼬리를 비틀며 속으로 읊조렸다.

회귀 전, 저항군들을 내부에서부터 분열시켰던 순혈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광신도들.

순혈자들이 다루는 비밀 단체인 순혈신교가 움직임을 드러낸 상황이었다.

정황상 순혈자들이 뤼장첸, 천교를 적극적으로 돕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감히 나를 방해하려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겠다?’

처용의 입가가 비틀리며 비웃음을 자아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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