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89화 (289/726)

#289화

양천에게서 그가 아는 모든 정보가 흘러나왔고.

-뤼장첸은 반드시 죽는다. 그거 하나만 알아 둬라.

정보를 얻은 처용은 양천을 향해 한 마디를 건네고는 수감시설을 나갔다.

처용이 WHU 사무국을 나가고 반나절 정도 흐르자.

“신관으로서의 생활은…… 이제 끝이군.”

눈을 감은 양천이 조용히 읊조렸다.

“아니, 헌터로서의 생활도 끝인가? 크흐흐…….”

천교는 이제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방금 역천군주에게 준 정보로 인해, 무너지는 속도가 더욱 가속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은 이제 천교 성운을 완전히 배신한 상태였다.

아마 이제 곧 모든 신성력이 몰수되고 신관의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쁘지만은 않군.’

오히려 강압적인 신들의 속박에서 벗어난 듯, 개운한 기분도 함께 들었다.

더 이상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망할 성좌들에게 굽신거릴 필요도.

그들의 말에 강제적으로 따를 필요도 없었으니까.

앞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했다.

양천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생각을 이어갈 때.

-철컥! 끼이이-!

수감시설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울리며 다시 문이 열렸다.

침묵이 깨지고 양천이 상념에서 벗어나며 눈을 떴다.

문을 연 이는 다름 아닌 스미스의 비서, 엠마였다.

“……?”

양천은 용건이 끝난 엠마가 왜 다시 찾아왔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때.

-저벅.

엠마의 뒤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고.

“간만이다. 이 땡중 새끼야.”

들뜬 목소리와 동시에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간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뤼장첸……!”

양천의 눈이 크게 떠지며 경악을 읊조렸다.

“네놈도 잡혔……을 리가 없군.”

처음에는 뤼장첸 역시 수감된 것인가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양천이 뤼장첸이 아닌 엠마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뤼장첸의 왼손 손목에는 WHU 고위 임원들만이 가진 아티팩트가 있었으니까.

즉, 그는 자신처럼 마나와 신성력이 봉인되어 수감된 신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WHU 고위 임원 전용 아티팩트를 착용한 뤼장첸과 태연한 표정으로 옆에 서 있는 엠마.

“네년…… 정체가 뭐냐?”

양천이 엠마를 향해 표정을 굳히며 묻자.

“곧 뒈질 놈이 알 거 없지.”

-우우웅!

뤼장첸이 거무죽죽한 신성력을 분출하며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석탄 공장 위로 피어오르는 매연처럼, 검은 연기와 같은 신성력.

-후우! 후우우!

그 검은 신성력 안에는 미세하게 여러 빛깔의 색들이 일렁였다.

마치, 무지개 위에 검은 물감이 쏟아져 뒤섞인 듯한 모습이었다.

뤼장첸의 신성력을 유심히 살펴본 양천은.

“……설마?”

신성력 안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들을 감지하며 경악했다.

“크크크.”

뤼장첸은 양천의 반응을 보고 더욱 웃음을 끌어올렸다.

“아주 즐거운 ‘만찬’이었다고. 크하하!”

“이 개자식이!”

양천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뤼장첸의 신성력 속에서 미세하게 빛을 내는 다른 에너지들.

그것들은 모두 이곳에 수감되었던, 타친핑을 포함한 천교의 S급 헌터들의 신성력이었다.

“이제, 마지막 만찬을 즐길 시간이다!”

-콰아아!

뤼장첸이 거친 신성력을 내뿜으며 말하자.

“……젠장.”

자리에서 일어선 양천이 뒤로 조금 물러나며 침음을 흘렸다.

현재 자신은 모든 힘이 봉인된 상태, 하지만 상대는 아니었다.

맞서 싸우고 싶어도 불가능한.

말 그대로 덫에 걸린 사냥감을 포식자가 편안하게 잡아먹는 상황이었다.

“시간 끌어서 좋을 거 없으니, 빨리 끝내.”

엠마가 뤼장첸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지어 보내고는.

-철컥! 쿠구궁!

수감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이윽고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철컥! 끼이이…….

다시 수감실의 문이 열렸다.

-푸서석!

바닥에 양천이 입었던 옷가지와 푸석푸석하고 마른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크하하하!”

-콰아아!

양천을 흡수하고 더욱 강한 에너지를 얻은 뤼장첸이 환희를 자아냈다.

“일이 끝났으면, 꺼져라! 뤼장첸.”

격리실의 문을 연 엠마가 찌푸린 눈으로 뤼장첸을 바라보며 말했다.

“감히, 나를 그따위로 노려보다니……! 네년도 만찬이 되고 싶-!”

힘에 취한 뤼장첸이 엠마를 흉흉하게 노려보며 손을 뻗으려는 때.

“순혈자들께서 네놈을 돕는 이유를 잊지 마라.”

엠마가 굳은 목소리로 뤼장첸을 향해 경고하듯 말했다.

그러자.

“퉤……! 개 같은 년.”

-파아아…….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던 신성력이 잠잠해졌고 뤼장첸이 욕을 내뱉었다.

“내가 역천군주를 처리하는 동안, 다른 만찬도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뤼장첸이 엠마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며 잔혹한 미소를 드러내자.

“그나 똑바로 처리해라, 그러면 커맨더도, 성자도, 더러운 역천군주의 피붙이들도 네 식사가 될 테니까.”

엠마가 표정 없는 얼굴로 싸늘하게 답했다.

“마음에 드는 식단이군! 하하하!”

뤼장첸이 광기 어린 미소를 외치며 격리실 밖으로 나가자.

“…….”

엠마가 뤼장첸이 나간 자리를 응시하고는 그를 따라 나갔다.

***

볼일을 마치고 성지로 돌아와 다음 계획을 준비하던 처용은.

“뭐지?”

돌연, 무언가를 느끼고 의문을 토해냈다.

[무슨 일이더냐?]

여래가 의문을 표하자.

“……혹시 몰라서, 양천에게 표식을 새겨놨는데, 방금 사라졌습니다.”

처용의 미간이 점점 일그러지며 답했다.

[죽었단 말이냐?]

“예, 그것도 방금.”

여래의 말에 답한 처용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바로 알아봐야겠습니다.”

-우우웅!

게이트를 열고 즉시 WHU 상하이 지부로 향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상하이 지부에 도착한 처용은 머릿속에서 계속 의문이 맴돌았다.

대략 10시간 정도 전, 양천을 만나 중요한 증언을 듣고 WHU 사무국을 나오기 직전.

-암영부 – 그림자의 눈.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암영부 한 장을 소환하여 양천에게 붙였었다.

그 당시 뒤늦게 든 생각 때문이었다.

뤼장첸은 프로젝트 이터의 당사자이니만큼, 자신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다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즉, 추후 천교의 S급 헌터들을 모두 잡아먹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언젠가는 양천과 타친핑 등, 천교의 S급 헌터들을 노릴 것이다.

그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처용이 양천에게 암영부 한 장을 부착해 놓은 것이었다.

대상에게 어둠을 부착하는 암영부의 기술, 그림자의 눈.

그림자의 눈은 단순 추적 장치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대상이 ‘사망’할 경우, 즉시 처용에게 알려주는 기능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천의 위치에 변동이 전혀 없었다.

그런 양천이 살해되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런다면 양천은…… WHU 사무국 안에서 살해당했다는 말이었다.

-쾅!

처용이 WHU 상하이 지부의 정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나타나자.

“뭣!?”

“여, 역천군주? 왜 다시 여길-!”

WHU 사무국 직원들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처용은 모든 이들의 반응을 무시하고는.

-쿵! 콰쾅!

반나절 전, 자신이 마주했었던 증인들이 수감된 지하 시설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허락 없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WHU 사무국 소속 헌터들이 처용을 막으려 했지만.

“날 막으면, 죽는다.”

-쿠구구구!

처용이 거칠게 일렁이는 강기를 내뿜으며 협박하자.

“으……!”

WHU 소속 헌터들이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그때.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뛰어온 WHU 총장, 스미스가 당황스러움을 드러내며 처용을 향해 말했다.

“양천이 죽었다.”

처용은 스미스를 향해 굳은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내뱉고는.

-후욱! 콰쾅!

길을 가로막는 헌터들을 향해 강기를 내뿜으며 뒤로 쳐내고는 지하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모두 역천군주를 막지 마라!”

스미스는 빠르게 WHU 헌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처용을 따라가며 의문을 토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모르는 것 같군.”

당황하는 스미스를 바라본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읊조렸다.

“그러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알 수 없는 처용의 말에 스미스가 한 번 더 의문을 표할 때.

-쾅! 끼이이!

처용이 강제로 결계를 부수고 양천이 수감되어 있었던 감옥의 문을 열었다.

“무, 무 무슨?”

텅 비어버린 방안을 둘러본 스미스가 당황을 내비쳤다.

“어떻게……?”

“여긴 S급 헌터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고!”

뒤따라온 WHU 사무국 헌터들도 당황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특수 시설에 수감된 양천이 사라져 버린 상황.

“비상! 사무국의 경계 레벨을 3단계로 격상한다!”

상황을 파악한 스미스가 아티팩트를 활성화시키며 재빨리 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수감되었던 양천이 빠져나갔다. 주변을 수색-!”

스미스가 추가 명령을 내릴 때.

“양천은 살해당했다.”

처용이 스미스의 말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스미스가 알 수 없다는 듯, 당황한 표정으로 처용을 바라볼 때.

-스슥.

처용이 바닥에 떨어진 양천의 옷가지를 들어 보였다.

그러자.

-후두둑! 후둑!

작은 뼛조각과 이빨 조각, 깨어진 두개골 일부가 떨어져 내렸다.

“그, 그게…… 양천이란 말씀이십니까?”

스미스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처용에게 묻자.

“맞다.”

처용의 입에서 스미스의 예상이 맞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도대체 누가!”

스미스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당황을 표할 때.

“초, 총장님! 혹시나 해서 다른 수감시설을 열어 봤습니다만……!”

WHU 고위 임원 중 하나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스미스에게 다가왔다.

“모두…… 이것만 남기고!”

고위 임원이 작은 비닐에 담긴 뼛조각을 보이며 말하자.

“……모두 죽었다고?”

스미스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수감된 천교의 S급 헌터들이 옷가지와 뼛조각만 남긴 채 살해당했다.

심지어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미스가 당황할 때.

“암영부 – 그림자 흔적.”

-스르르!

처용이 암영부 한 장을 소환해 주변에 어둠 속성 마나를 퍼트렸다.

그러자.

-스르륵!

양천의 시체에서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일어나더니.

-……! -!

마치 누군가에게 목을 붙잡힌 듯, 허공 위로 버둥거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파사사.

점점 말라비틀어지는 고목처럼 사람 형태의 그림자가 얇아지더니.

-파삭! -푸화아!

모래처럼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마치, 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보여주는 듯한 영상이었다.

양천에게 붙여 놓은 그림자의 눈.

처용은 그 그림자의 눈을 회수하여 추적 대상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재현한 것이었다.

“뤼장첸, 이 개새끼가!”

양천의 시체와 그가 죽는 모습을 본 처용은, 누가 양천을 죽였는지 바로 알아챘다.

“뤼장첸? 천교 길드장 말씀이십니까?”

스미스가 처용의 말을 듣고 의문을 표하며 말을 이었다.

“그가 여기에 왔었단 말씀이십니까? 도대체 무슨 수로!?”

“누군가가…… 협력해 주었겠지.”

처용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스미스의 말에 진지하게 답하고는.

-저벅. 탓.

자신이 부순 수감실의 문으로 다가가 손을 대었다.

정확히는 수감실의 문을 여는 잠금장치에 손을 대었다.

“명환부 - 빛의 흔적.”

-화아.

처용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옅은 빛이 수감실 결계에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만 두 번 열렸군?”

결계의 기록을 읽은 처용이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읊조렸다.

“그럴 리가요? 수감시설이 열린 건, 오전에 한 번뿐이었습니다.”

스미스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말하자.

“불과 18분 전에 한 번 더 열렸어.”

처용이 스미스의 말에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명환부 – 빛의 흔적.”

한 장의 명환부를 더 소환한 처용이 잠금장치에 부적을 붙이자.

-후우우!

잠금장치에서 얇은 빛의 실선이 두 가닥 흘러나왔다.

그리고 두 개의 실선이 빠르게 쇄도하여 나아간 순간.

-콰쾅!! 우드득!

처용이 누군가의 목을 잡아채 벽에 처박으며 위로 들어 올렸다.

“커, 커허!? 커헉!”

처용의 손아귀에 목을 붙잡힌 사람은 다름 아닌 엠마였다.

“여, 역천군주!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갑작스러운 처용의 돌발 행동에 스미스가 경악하자.

“이 자가 18분 전에 수감실을 열었다. 그리고 양천이 죽었고.”

처용은 엠마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스미스를 향해 말했다.

지금 격리실 문에서부터 시작된, 빛나는 두 개의 선.

그 두 개의 선 모두가 엠마의 왼쪽 손목에 장착된 WHU 고위 임원 전용 아티팩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마인들과 악마들만큼이나 역겨워하는 존재가 있어.”

-우드드득!

엠마를 노려보는 처용의 손아귀에 힘이 더욱 거세졌다.

“바로 ‘배신자’야.”

WHU에 숨어들어 뤼장첸을 도와준 간자, 그것이 엠마의 정체였다.

다만.

“옥황상제가 심어 놓은 개새끼냐? 아니면…… 대악마들이 심어 놓은 개새끼냐!?”

-콰쾅!

엠마가 누구를 따르는 것인지.

왜 뤼장첸을 도와 그가 천교의 S급 헌터들을 흡수하게 도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처용이 목을 붙잡은 엠마를 다시 한번 벽에 처박으며 거칠게 묻자.

“크, 크크크…….”

고통을 호소하듯 일그러졌던 엠마의 표정이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