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지미가 자기 스스로를 ‘단장’이라며 소개하자.
‘꼭두각시 인형술사, 단장 잭키인가?’
처용은 B급 마인의 행세를 하는 섀도우 헌터의 정체를 알아챘다.
꼭두각시 인형술사, 통칭 ‘단장’이라고 불리는 섀도우 헌터.
블래스터, 데커드 시모어처럼 조커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자였다.
악몽 속에서 마주했었던 검은 머리의 소년, 잭키가 바로 눈앞에 있는 이였다.
‘본체는 아니군.’
처용이 잭키를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동시에 눈앞에 있는 B급 마인, 지미를 응시했다.
[이름 : 지미 데니언스]
[레벨 : 77]
[칭호 : B급 마인, 어둠의 가호]
[클래스 : 다크 스카우트]
[특징 : 주변에 마기를 퍼트려 함정과 적을 감지하는 클래스입니다.]
[스킬 : 동작 감지, 흐르는 어둠…….]
-현재 소울 아바타가 적용중입니다.
눈앞에 있는 마인은 악마의 마기를 지닌 B급 마인이 맞았다.
하지만.
‘소울 아바타라…….’
지미는 소울 아바타라는 독특한 스킬이 적용 중이었다.
아마도 성자가 신도에게 자신의 의식을 씌우는 스킬 ‘아바타’와 유사한 스킬로 보였다.
즉, 겉은 마인이 맞지만 지미를 조종하는 건 ‘단장’ 잭키라는 것.
처용이 침착한 모습으로 지미, 아니 잭키를 관찰하자.
“흠, 저는 외부에 제 ‘이명’을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마찬가지로 처용의 반응을 살핀 잭키가 고개를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미래를 알고 있는 게 맞는 것 같군요.”
잭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지금 처용의 반응은 명백히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
“…….”
처용이 잭키의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렇게 알고 있는 건가?’
미래를 알고 있냐는 잭키의 말에 처용은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악몽 속에서 나타났었던 학살의 마녀.
조커는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였었다.
왜 학살의 마녀가 악몽 속에서 구현되었는지를 따져 본다면, 처용에 대해 유추가 가능했다.
그렇다면, 눈앞의 잭키가 처용이 미래에 대해 알고 있다 확신하는 이유.
아마 조커가 잭키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군.”
처용은 방금 잭키의 말로 인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악몽 속에 있던 그 꼬마는 네놈이었군.”
악몽 속에서 마주했었던 검은 머리의 소년, 잭키.
그 소년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었다.
정체를 숨기고 처용에게 접근했었던, 눈앞에 있는 잭키와 동일 인물이었다.
마지막 악몽에서 마주했었던 레나는 지금의 마녀가 과거의 모습으로 구현된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지미, 잭키 역시 악몽 속에서는 어린 잭키로 구현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마녀와는 다르게 처용처럼 기억이 온전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았다.
‘악몽의 해킹…….’
아마도…… 섀도우 헌터들의 수장인 조커가 무언가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 바로 거기까지 알아내셨을 줄은 몰랐는데요?”
-짝짝.
지미, 아니 단장 잭키가 작은 박수를 치며 놀람을 표했다.
겉으로는 가볍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내 정체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바로 알아챌 줄이야…… 만만치 않네.’
내심 긴장감을 숨기고 있었다.
상대는 미래를 아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
어떤 정보를 쥐고 있을지, 섀도우 헌터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건, 당신 역시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었군요.”
미래를 안다 해서 처용이 모든 지식을 가진 것은 아닌 듯 보였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은 미래의 지식이라 해도 섀도우 헌터들에게 있어 아주 중요했다.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미래에 무슨 일들이 발생하는지 조금이라도 알아봐야 했었다.
눈앞에 있는 강자는 신조차도 통제가 불가능한, 강력한 변수였으니까.
위험한 일이었지만,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는 역천군주와의 만남이 필요했다.
“맞아, 내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단장, 아니 잭키 찬.”
처용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잭키의 말에 수긍했다.
“……제 풀네임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텐데.”
잭키가 처용의 입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이름에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처용은.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줄까? 네놈들의 미래에 대해서.”
잭키를 향해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 궁금한데요. 그거.”
잭키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비틀린 미소를 싹 지우고는.
“섀도우 헌터들은 전멸한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전부!”
냉혹한 목소리로 ‘진실’을 말해주었다.
회귀 전, 지구가 멸망에 치달을 때.
-아아…… 여기까지인가?
악마들의 세력에 완전히 잠식되어 가는 지구를 보며 조커가 읊조린 말이었다.
-네놈에게 맞서기엔 내가…… 그저 광대에 불과했구나.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조커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섀도우 헌터들은 모두 전멸했다.
처용의 냉혹한 진실이 울리자.
“…….”
잭키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마치, 처용의 말이 정말로 진실인가를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말한 미래는 진실일까? 아니면…… 거짓일까?”
처용이 깊은 생각에 잠긴 잭키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과연 조커의 최측근인 ‘단장’은 자신이 전한 진실을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했다.
“모르겠군요. 다만,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아주 짧은 시간 고민을 마친 잭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말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잭키가 내린 결론은 처용의 말한 미래가 진짜라는 것이었다.
“섀도우 헌터의 핵심 멤버가 자신들의 파멸을 진실로 본다?”
처용이 잭키가 내린 결론을 흥미롭게 생각하며 묻자.
“우리는 거대한 적을 상대로 아주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으니까요.”
잭키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섀도우 헌터들의 주적은 마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세계 가문 연합, 대악마들, 그리고…… 성운들.’
처용은 잭키가 말하는 거대한 적이 마인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학살의 마녀가 보여준 과거를 통해, 어떻게 마인이 탄생했는지를 알았으니까.
게다가 마인들이 탄생하고 섀도우 헌터들이 비극을 당한 데는 모두.
‘데미갓 프로젝트.’
세계를 주름잡는 거대한 세력들의 실험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들의 과거를 본 당신이라면,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모르겠는데?”
처용이 잭키의 말에 표정 없는 모습으로 낮게 말하자.
“뭐, 모르신다면 어쩔 수 없죠.”
잭키가 가벼운 목소리로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처용이 잭키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는.
“왜 날 찾아온 거냐?”
섀도우 헌터가 왜 자신을 찾았는지 본론을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조커의 의도’를 물었다.
눈앞에 있는 섀도우 헌터, ‘단장’ 잭키가 스스로 자신을 찾아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가 여기로 온 데에는 분명, 조커의 명령이 있다고 판단했다.
“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합니다만…….”
잭키가 처용의 말이 고개를 기울이며 침음을 흘리고는.
“우선, 감사를 전하고 싶군요.”
밝은 미소를 띠며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
잭키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자.
“천교가 망한 덕분에 저희가 조금 숨통이 트였습니다. 하하.”
잭키가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대격변…… 저희한테도 상당히 성가신 일이었거든요.”
“대격변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왜 천교는 견제하지 않은 거냐?”
처용이 잭키의 말에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회귀 전에도 섀도우 헌터들은 천교를 딱히 견제하지 않았으니까.
지금 잭키의 태도와 말을 보면, 분명 섀도우 헌터들도 천교와 마인들이 손을 잡은 것을 알았다.
그런데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의문이었다.
“하, 우리가 왜 그림자 속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는지…….”
잭키는 처용의 질문에 탄식 섞인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들처럼 강하지 않습니다.”
“조커가 강하지 않다고? 개소리!”
처용이 잭키의 말에 헛웃음을 흘리며 비꼬았다.
조커의 정체는 다름 아닌 태초의 파편으로 드러났다.
그런 그가 전력을 발휘한다면, 분명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경지이지 않을까 판단했다.
의회주들은 물론, 웬만한 성좌의 화신체쯤은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처럼 강하지 않다고요.”
잭키는 ‘당신들’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한 번 더 말했다.
그가 지목한 대상은 처용만이 아니라는 것.
“당신의 뒤에는 무려 세 명의 대신이 있죠.”
잭키가 가리킨 ‘당신들’에는 처용만이 아닌, 처용을 지지하는 성좌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한 분은 과거 신계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다는 강력한 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처용을 지지하는 성좌들은 모두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당장 여래만 해도 거대 성운의 성좌들이 두려워하는 자였으니까.
반면에.
“우리의 뒤에는…… 그런 빽이 없습니다.”
섀도우 헌터들은 처용과는 사정이 달랐다.
그들이 음지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할 성좌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양지에서 이렇게 깽판을 칠 수 있는 건, 역천군주 당신이니까 가능한 겁니다.”
“뭐…… 인정하지.”
처용은 잭키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믿어 주고 함께 힘을 실어 준 성좌들도 있었으니까.
처용은 잭키의 말을 수긍함과 동시에.
“네놈들을 돕는 성좌…… 평범한 신이 아니군?”
섀도우 헌터들을 돕는 성좌에게 의문을 가지며 떠보듯 물었다.
“악몽 지배자가 누구냐?”
처용의 입에서 어떤 성좌의 이명이 흘러나왔다.
악몽 지배자.
이 이명은 섀도우 헌터들을 통찰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나타났던 이명이었다.
모든 섀도우 헌터가 악몽 지배자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체르노빌에서 마주했었던 블래스터, 데커드 시모어도 악몽 지배자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잭키와 다른 조커의 최측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용은 여기서 추가로 드는 의문이 하나 더 있었다.
악몽이 보여준 7년 전, 과거의 데커드는 다른 가호를 받고 있었다.
[이름 : 데커드 시모어]
[레벨 : 92]
[칭호 : B급, 하늘 벼락의 가호]
[클래스 : 중화기 보병]
처용은 하늘 벼락의 가호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올림포스의 전 주신, 제우스였다.
지금의 데커드는 그런 대신급 성좌인 제우스의 가호가 지워지고.
[이름 : 데커드 시모어]
[레벨 : 174]
[칭호 : A급 헌터, 악몽 지배자의 가호.]
[클래스 : 블래스터]
악몽 지배자라는 새로운 신의 가호를 받은 상태였다.
기존의 가호를 없애고 새로운 가호로 덧씌우는 것.
한 성운의 주신급 성좌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도대체…… ‘악몽 지배자’가 누구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처용의 질문이 울리자.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잭키가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자격이 없거든요.”
“자격이 없다?”
처용이 다시 묻자.
“네, 저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군요.”
잭키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리고.
“아, 이런…… 시간이 다 되었군요.”
손목에 걸린 검은 링을 보며 아쉽다는 듯 말을 이었다.
“곧 출근할 시간이라 가 봐야겠군요.”
“누구 마음대로?”
처용이 잭키의 말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낮게 말했다.
저쪽은 원하는 것을 확인한 느낌이었지만, 자신은 아직 원하는 답들을 얻지 못했으니까.
“그냥 보내주는 게 당신한테도 좋을 텐데요?”
잭키가 처용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네놈한테나 좋은 거겠지.”
처용이 강기를 스멀스멀 내뿜으며 답했다.
위협적으로 나오는 처용의 태도를 본 잭키는.
“이건 공들여 만든 인형이기에, 인형이 무사하다면 당연히 저야 좋죠.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걸 아셔야죠. 이 인형의 정체를 아는 자는 이 세상에서 단 세 명뿐입니다.”
“…….”
처용은 잭키가 말하는 세 명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챘다.
조커와 인형을 조종하는 단장 잭키 찬, 그리고…… 처용이었다.
마인들에게 간자로 숨어있는 섀도우 헌터, 잭키는 자신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다.
잭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 저를 곱게 보내주신다면, 서비스로 한 가지 도움이 되는 소식을 알려드리지요.”
처용에게 한 가지 정보를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말해 봐.”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뤼장첸이 마인들과 함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잭키가 처용이 찾으려는 뤼장첸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다른 이도 아닌, 당신을 노리는 함정입니다. 이 정도면 도움이 되었죠?”
“…….”
처용이 잭키의 말에 잠시 고민하듯 침묵하고는.
-파아아.
징벌의 선고를 해제했다.
“하하, 말이 잘 통해서 다행입니다. 역천군주.”
잭키가 처용을 향해 너스레 웃으며 말하고는.
-피이이!
손목에 찬 검은 링 형태의 아티팩트를 어루만지며 마기를 내뿜었다.
-스르르.
마기가 잭키의 몸을 덮으며 공간 이동 준비를 시작했다.
“조커한테 전해.”
처용은 점점 마기에 덮여가는 잭키를 향해 낮게 말했다.
“용건이 있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조커가 이렇게 전하라더군요.”
처용의 말에 잭키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차피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잭키가 건넨 대답을 마지막으로.
-스르르! 파아아……!
마기가 완전히 잭키를 덮으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