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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84화 (284/726)

#284화

‘옥황상제……!’

하늘을 노려보는 처용이 옥황상제를 향해 속으로 읊조렸다.

옥황상제가 지구에 만든, 천교를 따르는 인간들의 세력.

지구에서 가장 강한 패권을 가졌던 거대 길드 중 하나, 천교.

그리고 회귀 전……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했던 병사들.

그런 거대 길드인 천교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 추후 그들에게 뒤통수를 맞을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

게다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처용은 여기에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천교 길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

그것은 고작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저놈들 덕분에 일이 쉬워질 수도 있겠군.’

처용이 WHU 헌터들에 의해 연행되는 양천과 타친핑을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만한 천교의 성좌들이 신관들과 마찰을 빚은 듯 보였다.

성좌와 신관 사이에 생긴 균열.

이 균열을 잘만 이용한다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유도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처용은 미래를 알고 있었다.

천교의 신관들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그들이 천교의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천교의 고위 성좌들만이 알고 있는, 신관들의 진짜 역할이 무엇인지.

처용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준비가 필요하겠군.’

양천과 타친핑을 바라보며 처용이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이 지역의 수습을 부탁드립니다. 커맨더, 그리고 성자.”

천교의 책임자들이 WHU에 의해 모두 연행된 후, 스미스가 커맨더를 바라보며 부탁을 건넸다.

본래, 검은 대지 정화가 끝나면 이 땅의 주인인 천교 길드가 성지를 수습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 무려 신계와 연관된 초대형 폭로가 터졌다.

이런 상황에서 천교에게 수습을 맡길 순 없었다.

WHU의 총장인 자신은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수습해야 했기에,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기가 곤란했다.

결국,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제 판단으로는 두 분이 제일 적격입니다.”

거대 길드들 사이에서 중재를 맡을 수 있는 강력한 헌터인 커맨더.

부패를 직접 제 손으로 청산하고 교단을 개선한 성자.

나름 정의로운 마음가짐을 지닌 두 헌터에게 검은 대지의 뒷수습을 부탁했다.

“……그러죠.”

“도와드리겠습니다.”

스미스의 생각을 알아챈 커맨더와 성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

“하아, 정말 감사합니다.”

커맨더와 성자가 WHU의 의뢰를 받자 스미스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하며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 오버로드.”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처용을 향해 다가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천교에 대한 생각을 멈춘 처용이 무심한 목소리로 묻자.

“그걸……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스미스가 처용의 손에 들린 영체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것에 대한 처리라…….”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영체석을 들어 보이며 읊조렸다.

그러자.

“……제가 이상하게 말했군요. 그것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스미스가 말을 정정하며 다시 이야기했다.

처용이 들고 있는 영체석.

조금 전, 각 길드장들에게 강신한 신들끼리 오갔던 대화와 타친핑의 폭로.

천교의 주신인 옥황상제가 보인 격한 반응까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영체석은 성좌를 죽여서 만든 물건으로 판단되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WHU는 그 물건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스미스가 곤란하다는 듯,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본래, 헌터와 관련된 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WHU가 수거하고 보관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물건인 영체석은, 무려 신의 시신으로 만들어진 물건.

아무리 지구를 대표하는 WHU라지만, 이번 물건만큼은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저희에게 있어…… 곤란한 상황입니다.”

스미스의 말이 끝나자.

“안 그래도 이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잘 되었군요.”

제시카가 입을 열며 다가왔다.

그녀의 뒤로 라진을 포함한 거대 길드의 길드장들도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도 처용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영체석이 들려 있었다.

“아테나 님께서는 이것을 올림포스로 가져오라 명하셨습니다.”

-우우웅!

제시카가 손에 들린 영체석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안에는…… 실종되었다던 올림포스 성좌의 신력이 담겨 있다고 하시더군요.”

제시카의 말이 끝나자.

“태양신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라진이 손에 들린 영체석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스가르드의 주신께서도…….”

“서기관님께서도 이것을…….”

루이스와 라리네 역시 성운의 주신에게서 전달받은 말을 전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닌, 영체석을 들고 있는 길드장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살해당한 성운의 성좌들이니 해당 성운에서 수거하겠다는 것.

그리고…… 영체석을 조사하여 이 일이 어찌 된 일인지 직접 알아보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각 성좌님들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스미스가 길드장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이럴 때 성운들이 직접 수거한다고 하니, 그 의견에 따르는 것이 옳았다.

따지고 보면 영체석은…… 성좌들의 시신이라 해도 무방했으니까.

성운들 입장에서는 실종된 성좌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이었다.

“각 길드장들께서 성운에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미스의 말에 길드장들이 고개를 끄덕일 때.

“아직 찾지 못한 것이 더 있을 수 있으니, 제가 한 번 수색해 보죠.”

처용이 스미스와 길드장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찾을 수 있겠습니까?”

스미스가 궁금한 듯 묻자.

“어떻게 이걸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신력’에 반응하더군요.”

-우우웅!

처용이 금빛과 붉은빛이 섞인 신력을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화아아.

처용의 손아귀에 있던 영체석이 옅은 빛을 내뿜었고.

-화아. 화아아!

길드장들의 손에 들려 있던 영체석들 역시 반응을 보였다.

“일단 감지할 수 있으니, 최대한 수거해 보죠.”

처용이 신력을 수거해 갈무리하며 말하자.

“정말 감사합니다. 오버로드. 사실 그 부분이 정말 막막했었는데…….”

스미스가 처용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영체석은 천교의 지하 시설이 폭발하며 나타난 물건들이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여기저기에 찾지 못한 영체석들이 흩어져 있을 게 뻔했다.

그것들을 찾는 것도 고역일뿐더러, 누가 어디에 어떻게 임시로 보관할지도 문제였다.

그런 복잡한 문제를 처용이 나서서 해결해 준 것이었다.

“찾은 것들은 저희 성지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다가, 추후 한꺼번에 가져가죠.”

“감사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스미스가 복잡한 일을 해결해 준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전했다.

“후, 앞으로의 일정은…… 추후 다시 전달하겠습니다.”

길드장들과의 대화를 끝낸 스미스가 WHU 헌터들과 함께 사무국으로 돌아갔다.

다른 길드장들 역시 휘하 헌터들과 함께 돌아가려는 때.

“오버로드.”

제시카가 처용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아테나 님께서 그분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자 하십니다.”

그녀가 말하는 ‘그분들’은 처용의 성좌들, 태룡전에 머무는 세 명의 대신들을 뜻했다.

그 말에 처용이 잠시 눈을 감으며 집중하고는.

“……알았다고 전해주십시오.”

방금 여래에게 들은 답을 전달해 주었다.

처용의 답을 들은 제시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휘하 헌터들을 이끌고 떠나갔다.

성자와 커맨더는 정화된 검은 대지를 수습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우우웅.

처용은 게이트를 열고 성역, 태룡전으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성역에 있는 보물전의 가장 안쪽으로 향했다.

성역의 주인인 세 명의 대신과 처용만이 들어올 수 있는 장소.

그 공간의 중앙에 배치된 긴 탁자에는.

-화아아!

천교가 비밀 실험으로 성좌들을 희생해 만든 영체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스미스한테는 자신이 흩어진 영체석을 모두 찾겠다고 말했지만.

처용은 이미 영체석을 모두 확보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굳이 나서서 영체석을 수거하겠다고 말한 이유가 있었다.

“자…… 그럼, 다음 판을 짜 볼까?”

처용이 눈앞에 있는 영체석들을 둘러보며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차락. 차락.

영체석 옆에 쌓인 서류 더미에서 서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들은 모두 천교의 비밀 실험실에서 탈취한 문서들이었다.

서류를 살피던 처용이 눈을 돌려 벽 쪽에 자리한 실험 기기를 바라봤다.

이 공간의 외곽에는 천교의 비밀 실험실에서 통째로 뜯어온 실험 기기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서류를 확인하고 해당 서류가 가리키는 실험 기기를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스미스에게는 영체석을 수색하겠다고 말했지만.

어차피 영체석은 모두 확보되어있는 상황. 그 시간에 탈취한 서류를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었다.

이것들을 막 탈취했을 때에는 미처 자세히 살펴볼 시간이 없었으니까.

-차락. 차락.

처용이 몇 권의 서류를 빠르게 넘기며 확인을 계속했다.

그리고.

“……찾았다.”

곧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다음 계획, 더 큰 판을 벌리기 위한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

검은 대지 정화 작전이 끝나고 세간에 다시 한번 충격적인 소식이 퍼졌다.

-천교, 충격적인 비밀 실험 시설 발각!

-천교의 고위직 헌터들 연달아 연행.

-WHU,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기 전까지는 기자회견은 불가…….

현장에 있었던 모든 일이 퍼져나간 건 아니었다.

스미스가 발 빠르게 대처하며 이 일이 크게 퍼지는 것만큼은 막았으니까.

하지만, 작게 퍼져나간 일만으로도 무슨 상황인지 알아챈 이들도 있었다.

“천교가…… 망해 버렸는데?”

-탁. 탁.

S급 마인, 의회주 중 하나인 릴이 긴 손톱을 들고 테이블을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그러자.

“이 머저리 같은 새끼들이……!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릴과 같은 의회주인 잭이 이를 갈며 읊조렸다.

대형 사고가 일어나도 침착한 모습을 보이던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성지가 검은 대지에 잠식된 것도! 천교가 망한 것도! 우리와는 크게 상관없었다!”

잭의 눈썹을 꿈틀거리며 분노를 드러냈고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허나! 그 시설만큼은 들켜서는 아니 되었어!”

-쾅!

잭이 지팡이를 내려찍으며 고함을 지르자.

“그 시설이 도대체 뭐길래 그러는 건가?”

팔짱을 끼며 앉아 있는 의회주, 집행자가 잭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저도 천교의 ‘비밀 시설’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닥터 역시 궁금하다는 듯 잭을 향해 질문했다.

“잭이 천교랑 같이 진행하던 일이었습니까?”

“……맞네.”

잭이 닥터의 말에 이를 아득바득 갈며 수긍했다.

“감찰관님께서 명하신 일이었지.”

감찰관이라는 이명을 가진 판데모니움의 대악마.

잭이 자신의 성좌를 언급하며 말을 계속했다.

“가문의 지원까지 받아 극비로 진행하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망쳐 버리다니!”

-쿵! 쩌저적!

바닥에 다시 한번 지팡이가 꽂히자 지면이 더 버티지 못하고 갈라졌다.

“그놈들이 이렇게 멍청할 줄이야…….”

잭과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제니퍼가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리고는.

“후, 천교와의 연결고리는 모두 지워 버리긴 했는데, 이제 어쩔 거야? 잭.”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잭을 향해 물었다.

“크으으음-! 천교의 성좌들도 모두 머저리들이었군, 실패하지 않을 의식조차도 실패해 버리다니!”

잭은 제니퍼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거대 성운인 천교를 비난했다.

본래라면 천교가 행한 의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지구에 대격변이 일어났어야 했었다.

그러나 대격변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제단 의식.

그 중요한 의식을 맡은 천교가 이 일을 제대로 망쳐 버렸다.

심지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밀 실험실까지 발각된 상황.

“큭, 일을 제대로 말아먹었군.”

상황을 이해한 집행자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 머저리들은 이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집행자가 단호하게 말한 순간.

“뭐가 도움이 안 되냐? 이 빡빡이 새끼야!”

-타탓! 쾅!

의회주들이 있는 회의실에 난입한 누군가가 집행자를 향해 거칠게 말했다.

“뤼장첸…… 죽고 싶나?”

-쿠구구!

집행자가 회의실에 난입한 뤼장첸을 노려보며 마기를 내뿜자.

“나한테 먹히고 싶다고? 크크크.”

-우우웅!

뤼장첸이 이빨이 보이도록 길게 웃어 보이며 신성력을 내뿜었다.

그때.

“둘 다 그만!”

-쾅!

잭이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치며 둘 사이를 중재하고는.

“무슨 일이냐?”

뤼장첸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천교와 마인들과의 거래로 인해, 이곳에서 대악마의 마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일을 모두 마쳤으니 더 이상 볼일은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하늘께서 너희들의 계획에 힘을 보태라고 하시더라고.”

뤼장첸의 자신의 성좌, 옥황상제를 언급하며 말했다.

“……바라는 게 뭐냐?”

잭이 뤼장첸을 똑바로 노려보며 묻자.

“판을 짜는 데 도와주었으면 좋겠어.”

뤼장첸이 마인들을 돕는 대가로 진짜 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역천군주를 처리할 수 있게 말이야. 크흐흐.”

조금 전, 옥황상제의 지령을 떠올린 뤼장첸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모든 것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크크.’

기대감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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