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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78화 (278/726)

#278화

“이 정도면…… 대략 1시간 정도 걸리겠네.”

제단 위에 열린 검은 게이트를 바라본 처용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충분해.”

-스르릉.

연화가 옆구리에 찬 환도를 뽑아 들며 말했다.

“1시간만 버티면 된다 이거지?”

연아 역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는 자신감을 보였다.

“근원 정화가 시작되면, 은폐 결계를 풀고 방어에 집중해.”

처용이 은폐 결계를 유지 중인 미우를 향해 말했다.

“은폐를 유지하면서 근원을 처리할 순 없는 건가요?”

미우가 궁금한 듯 묻자.

“근원 정화가 시작되면 은폐가 소용이 없어, 인근의 모든 몬스터들이 몰려올 테니까.”

처용이 미우의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검은 대지를 퍼트리는 마기의 근원.

그것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근원에서 양분을 얻는 몬스터들이 본능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은밀하게 근원을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수 정예로 온 것이로군요.”

처용의 설명에 미우가 이해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녀가 결계를 씌워 완벽하게 은폐시킬 수 있는 이들은 수가 한정되어 있다.

처용은 미우가 은폐시킬 수 있는 인원수만큼, 이번 일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이들을 추린 것이었다.

전력이 적지도 과하지도 않은, 효율적인 특공대를 구성하기 위해.

“그럼 시작합시다.”

처용이 작전의 시작을 알렸고.

“팔괴봉마진-억압.”

여덟 장의 명환부를 소환해 검은 게이트를 중심으로 팔괘의 진법을 그렸다.

-화아아!

검은 게이트를 감싼 팔괘의 진법이 하얗게 빛나며 마기를 억누르는 순간.

-쿠구웅! 쿠우웅!

제단을 중심으로 검은 파동이 번져나갔다.

그러자.

-크르륵!?

-크라라!

주변을 배회하던 몬스터들이 제단 쪽으로 고개를 획 돌리며 괴성을 질렀다.

“두 사람은 흡수를.”

처용이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하자.

-스르르! 스륵!

검은 게이트 속에 차올라 있는 마기를 성녀와 아일라가 뽑아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마기가 많아요. 대략 2시간은 걸릴 것 같습니다.”

게이트의 마기를 뽑아내던 아일라가 대략적인 작업 시간을 알렸다.

“자, 2시간 동안 잘 막아 봅시다.”

처용이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보며 여유롭게 말하자.

“가자.”

“응. 언니.”

가장 먼저 연화와 연아가 몬스터를 막기 위해 제단 아래로 뛰어내렸다.

특공대가 할 일은 구체적으로 이러했다.

가장 먼저 처용이 게이트의 입구를 막고 검은 대지를 잠시 무력화시킨다.

그 틈에 검은 게이트 속에 차오른 마기를 일정 부분 뽑아낸다.

게이트 안에 가득 차오른 마기를 뽑아내지 않고 제거하면 마기의 폭주가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이변을 알아차리고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방어한다.

마기를 어느 정도 뽑아내면 게이트를 정화해 완전히 닫아 버린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안전하게 후퇴한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들이치는 밀물!”

-쏴아아!

연화가 내지른 파도의 물결이 제단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밀어냄과 동시에 땅을 적셨다.

땅에 물이 퍼지자.

“늪지대 악령.”

-스르르륵.

연아가 흩뿌려진 물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며 스킬을 발동했다.

-찰팍!

제단으로 다가오려던 몬스터가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밟는 순간.

-촥! 우득! 우드득!

웅덩이에서 악령의 손들이 튀어나와 몬스터를 휘감았다.

그리고.

-꾸르르륵!

마치, 늪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몬스터가 물웅덩이 속으로 끌려갔다.

제단의 정면 쪽에서 성공적으로 방어가 지속될 때.

-으아아!

-크르!

다른 방향에서도 몬스터들과 다크 헌터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제가 막을게요.”

마기를 흡수하던 아일라가 입을 열고는.

“죽음의 신관이 저승의 수호자들께 도움을 청합니다.”

아누비스의 성물, 앙크를 쥐며 스킬을 발동했다.

-촤아아……!

아일라의 주변에 모래바람이 불며 뭉치더니.

-으르르!

-크르르!

양손에 날카롭게 휘어진 칼, 시미터(Scimitar)를 쥔 늑대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존재들이 나타났다.

저승의 신 아누비스의 성역을 지키는 수호자들, 검은 자칼들이었다.

“몬스터들을 막아주세요.”

아일라가 자칼들을 향해 말하자.

[신관의 명령에 따르겠다.]

가장 덩치가 크고 화려한 갑옷을 입은 자칼들의 대장이 대답하고는.

-스르릉!

-스릉!

자칼들이 일제히 시미터를 뽑아 들며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흡수한 어둠이 많아서, 이렇게라도 쓰는 게 좋아 보여서요.”

아일라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다른 행동을 한 것이 실례가 될까 말한 것이었지만.

“좋은 판단입니다.”

처용은 오히려 좋다는 듯 말했다.

던전 속 몬스터와의 싸움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이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살 떨리는 싸움 속에서 교과서 같은 전형적인 대처와 전투는 좋지 못했다.

처용이 봤을 때, 아일라의 대처는 훌륭한 판단의 결과물이었다.

노련한 헌터라면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능력은 필수였으니까.

자칼들이 제단 뒤쪽에 자리를 잡으며 몬스터들을 막을 때.

-삐이이!

-피이!

마치, 박쥐와 나방을 뒤섞어 놓은 듯, 기괴한 생김새의 비행 몬스터들이 날아왔다.

지상을 잘 막고 있을 때, 하늘에 문제가 생긴 상황.

하지만 처용은 하늘을 바라본 시선을 거두고 게이트를 붙잡는 팔괘의 진법에만 몰두했다.

박쥐 몬스터들이 지척에 날아들었을 때.

-스르르.

처용의 그림자 속에서 어둠의 찬가를 쥔 루나가 날개를 피며 날아올랐다.

“블러드 블레이드.”

루나가 양손으로 쥔 어둠의 찬가를 앞으로 크게 휘두르자.

-촤아아!

붉은 혈기가 압축되어 칼날처럼 반원을 그리며 쏘아져 나갔다.

-스가가각!

제단으로 달려들던 박쥐들이 루나가 쏘아 보낸 혈기의 칼날에 찢겨나가며 추락했다.

-피이!

-피이익!

하늘을 날아오른 루나가 나타나자 박쥐들이 그녀를 피해 경로를 틀며 측면으로 비행했다.

그때.

-쿵! 쿠구궁!

선회 비행을 하던 박쥐 몬스터들이 투명한 벽에 부딪힌 듯, 허공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하늘을 덮는 거울.”

미우가 허공에 멈춰진 박쥐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스킬을 발동하자.

-쩌저저적!

박쥐 몬스터들의 주변으로 반짝이는 거울 조각들이 생성되었다.

-쩌적!

거울 조각들이 서로 퍼즐을 맞추듯 이어 붙었고 곧 구 형태의 투명한 감옥이 되었다.

모든 박쥐 몬스터들이 거울 감옥에 갇혔을 때.

“깨져라.”

미우가 뻗었던 손을 강하게 쥐었다.

-파창! 차창창!!

그러자 거울 감옥이 부수어지며 날카로운 칼날 조각들을 흩뿌렸다.

-촤아! 촤아아!

미우의 술법에 갇혔던 박쥐들은 날카로운 믹서에 갈린 듯 찢겨나가며 추락했다.

“아직까지는…… 순조롭네.”

상황을 지켜보던 처용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모든 것이 작전대로 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에 특공대로 차출된 헌터들 역시, 각자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었다.

아니, 이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강력한 S급 헌터.

웬만한 몬스터의 군대 정도는 단신으로 쓸어버릴 정도로 강한 이들이었다.

여기에 검은 대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처용의 계획과 작전이 더해지자, 일이 수월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굳이 처용이 다른 이들과 함께 이번 일을 처리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작전을 통해, 검은 대지의 공략법을 알려주는 것.

이것이 다른 헌터들과 함께 이번 일을 처리하는 이유였다.

검은 대지는 언젠가 지구에 다시 한번 나타날 테니까.

그중 최악의 타이밍은 처용이 이유가 있어 부재중일 때, 검은 대지가 다시 나타나는 경우.

검은 대지는 공략법을 모르면 정말 많은 피해를 입는다.

회귀 전, 검은 대지의 정화 방법을 알아내는 데만 해도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으니까.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작전을 계획한 것이었다.

동시에…… 천교를 제대로 엿 먹이기 위한 계획을 위해서도!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막으며 작업이 계속될 때.

“예상보다 몰려오는 몬스터가 적군요? 역천군주.”

루나와 함께 하늘의 몬스터를 정리하던 미우가 처용에게 묻자.

“한 10분만 더 지나면 말할 여유도 부족할 거야.”

처용이 상황을 지켜보며 미우의 질문에 답했다.

“외곽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 해도, 놈들에겐 근원이 더 중요하니까.”

말을 마친 처용이 시야를 넓히고 먼 거리를 바라보았다.

-쿠궁! 쿠구구!

아직도 검은 대지의 외곽 부근에서는 전쟁이 터진 듯, 요란한 폭음이 울리고 있었다.

본래라면, 근원에 손을 대는 순간 모든 몬스터들이 몰려왔어야 했었다.

하지만 각 자리를 배정받은 길드들이 계속 공격을 퍼부으며 몬스터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직 제단으로 몰려드는 몬스터의 수가 적은 이유였다.

그러나.

“잊지 마, 여긴 검은 대지의 중심부…… 적진 한복판이니까.”

처용이 주변을 살피며 진지하게 말했다.

“……검은 대지가 던전과 같다면, 보스 몬스터도 있겠군요?”

미우가 공중에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막으며 처용에게 묻자.

“정확히는 보스급 몬스터 ‘일곱 마리’가 있지.”

처용이 검은 대지의 지면을 면밀히 살피며 말했다.

“……S급 몬스터 일곱 마리요?”

“그래, 그중 가장 강한 놈이 이쪽으로 나타날 거다.”

미우의 말에 처용이 다시 지면을 살펴보며 답했다.

검은 대지 안에 존재하는 보스급 몬스터 일곱 마리.

정확히 말하자면 그 보스 몬스터는 무언가를 지키는 놈들이었다.

검은 대지를 지탱하는 여섯 개의 검은 탑.

마지막으로 중심부에 있는 제단까지.

이렇게 일곱 개의 중요한 시설을 지키는 이들이 바로 보스 몬스터들이었다.

그리고.

“착각할까 봐 미리 말해주는데, 네가 알고 있는 S급 몬스터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처용이 미우가 했었던 말 중 하나를 지적하며 말했다.

“……개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S급 몬스터가 가장 강한 등급-.”

미우가 의문을 담아 묻자.

“S급 몬스터로 정의될 놈들이 아니니까.”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미우의 말을 끊으며 답했다.

지금 시기에 몬스터와 던전의 난이도를 측정하는 가장 높은 등급은 S급.

하지만…… 처용은 회귀 전, 지금보다 미래에 새로 생길 등급에 대해 알고 있었다.

S급 던전보다 더욱 위험하고 끔찍한 던전을 지칭하는 등급.

이곳 검은 대지 역시 나이트메어 던전과 같은 D(Death)급 던전이었다.

“보면 알 거야.”

처용의 진지한 목소리가 울리자.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이야기를 듣던 성녀가 곤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죽을 일은 없을 테니 걱정은 마시지요. 성녀.”

처용의 대답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검은 대지의 공략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들과 함께 왔다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미래에 있어 아주 중요한 전력들이었다.

심지어 연화와 연아는 처용의 가족.

여기가 처용조차도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로 극악한 곳이었으면 이들을 끌고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검은 대지가 D급 던전인 만큼, 위험한 곳은 맞았지만.

‘지금의 검은 대지가 ‘사고’로 생긴 곳이니만큼, 회귀 전보다는 약하다.’

처용에게는 눈앞에 있는 검은 대지가 회귀 전 마주했었던 검은 대지보다 약하게 느껴졌다.

아마 예상하기로는 고의적으로 일으킨 ‘사고’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가 당신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처용이 모두가 들리도록 신력을 담아 말했다.

“……그렇군요. 여기가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군요.”

미우가 처용의 말에 납득이 되었다는 듯,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처용은 단신으로 신의 성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였다.

미우는 그런 처용의 전력을 가까이서 두 번이나 직접 마주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성좌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이었지만.

‘걱정이 확 사라지는군요.’

지금은 그 괴물 같은 처용이 아군으로서 함께 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을 막고 있는 다른 이들 역시 동감한다는 듯 미소를 띠었다.

그때.

“플……레임 스트……라이크!”

-푸화아아아!!

연화가 있는 방향으로 강렬한 불덩이가 쇄도했다.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막느라 미처 보지 못한 공격.

불덩이가 연화를 집어삼키기 직전.

“디펜드 팬텀!”

-스르르!

연화의 발밑에서 연아가 튀어나와 대신 불덩이를 맞았고.

-푸! 슈화아아!

강렬한 폭발과 함께 연아가 물거품이 되며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그리고.

-스르르.

바닥에 흩뿌려진 물이 모이더니.

“아오, 뜨거-!”

몸을 재생한 연아가 몸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괜찮아?”

연화가 걱정하듯 묻자.

“아무렇지도 않아.”

연아가 방금 불덩이를 날린 몬스터, 아니 다크 헌터를 노려보며 말했다.

“방심하지 마라, A급 헌터다.”

제단 위에서 상황을 살피던 처용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방금 연화를 향해 불덩이를 날린 다크 헌터.

[이름 : 리챠옹]

[레벨 : 129]

[칭호 : A급 다크 헌터]

[클래스 : 플레임 매지션]

그는 생전에 A급 마법사 클래스 헌터였던 자였다.

심지어 그런 A급 다크 헌터가.

[이름 : 왕찬]

[레벨 : 123]

[이름 : 위류천]

[레벨 : 126]

.

.

여덟 명이나 나타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수십 명의 B급 다크 헌터들까지 추가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크아아아!

그들의 뒤로 상당한 덩치의 다크 헌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제는 추가로 모습을 드러낸 다크 헌터가.

[이름 : 양뤼쯔한]

[레벨 : 159]

[칭호 : S급 다크 헌터]

[클래스 : 록 디펜더]

재앙 당시 사망했었던 천교의 S급 헌터였다.

동시에.

-쿠구구!

검게 질척이는 검은 대지가 불길한 울음을 토하며 옅게 진동해왔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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