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77화 (277/726)

#277화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처용이 예고한 검은 대지의 정화 작전 당일이 다가왔다.

다시 한번 거대 길드들의 주요 헌터들이 임시 본부로 모여들었다.

-지이잉.

커맨더가 단상 위로 올라가 홀로그램 지도를 펼치고는.

“각자가 맡은 작전 구역은 이러합니다.”

검은 대지 정화 작전에 대한 자세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동쪽은 올림포스가 맡고 동방불패 길드는 그 뒤를 지원해 주십시오. 그리고…….”

검은 대지로 진입하는 각 방향의 입구는 거대 길드가 하나씩 도맡았다.

대표적으로 동쪽은 올림포스, 남쪽은 파라오, 서쪽은 아스가르드, 북쪽은 교단이 맡았다.

그 외 자잘한 입구들도 각기 다른 길드들이 도맡았다.

각, 길드들끼리의 진입할 루트가 정해졌을 때.

“우리는…… 그냥 방관만 하라는 것인가?”

천교의 대표로 자리한 타친핑이 불만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대 성운들 중 유일하게 진입 루트를 배정받지 못했으니까.

천교는 사고가 일어난 지역이 자신들의 성지이니만큼, 이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했다.

그리고 성지 안에는 다른 길드들에게 들켜서는 안 될 것들도 있었다.

다른 이들이 알아채기 전에 그것들부터 수습해야 했다.

“설마…… 우리의 성지를 수습하는 일에 우리는 빠지라는 것인가!?”

타친핑이 거칠게 말하자.

“그럴 리가요.”

커맨더가 차분한 목소리로 홀로그램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되면 천교는 북서쪽으로 진입해서 뒷수습을 맡아주십시오.”

“뒷수습…… 말이오?”

타친핑이 의문을 표하자.

“이곳에 모인 분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검은 대지 정화입니다.”

커맨더가 진지한 목소리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집 청소는 집주인들이 알아서 하는 게 좋겠죠.”

즉, 이곳에 모인 헌터들은 검은 대지를 정화하고 날뛰는 몬스터만 잡은 뒤 빠지겠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천교는 청소할 여력도 없는 겁니까?”

커맨더가 타친핑을 향해 도발하듯 묻자.

“그럴 리가!”

순간 욱한 타친핑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아니, 아니오…… 배려해주어서 감사하오.”

격해지던 감정을 빠르게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말했다.

동시에.

‘차라리 잘 되었군.’

속으로 안도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천교가 뒷수습을 모두 도맡아 한다면, 비밀 시설들을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타친핑이 속으로 미소를 삼키며 안도를 자아낸 순간.

‘……머저리 새끼들.’

처용이 타친핑을 바라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삼켰다.

그때.

“저희가 할 일은 성물과 축복을 앞세워 전진하는 게 전부입니까?”

토르의 신관, 루이스가 커맨더를 향해 물었다.

신의 성물과 신전에서 축복을 받은 아티팩트들을 최대한 많이 착용할 것.

이것이 처용이 각각 길드들을 향해 말했었던 ‘준비’였다.

덕분에 이틀 동안, 길드들은 성운과 직접 소통하여 최대한 많은 성물의 운용을 허락받아 온 상태였다.

하지만.

“성물만으로는 저 검은 대지를 뚫을 수 없습니다.”

검은 대지를 밟는 순간, 덮쳐오는 잠식은 신성력으로도 온전히 막아낼 수 없었다.

이대로 전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상황.

루이스의 말이 울리자.

“여러분들이 진입할 타이밍은, 한처용 헌터를 포함한 특공대가 일을 끝낸 순간입니다.”

커맨더가 처용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특공대가 근원을 어느 정도 해결하면, 검은 대지의 침식 능력은 사라지니까요.”

이번 작전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러했다.

처용을 포함한 소수의 특공대가 검은 대지의 중앙으로 진입하여 근원을 해결한다.

근원이 사라진 순간, 일제히 사방에서 검은 대지로 진입해 몬스터들을 소탕하는 것이었다.

작전 브리핑을 마친 커맨더가 단상에서 내려오자.

“자 그럼…….”

처용이 이번에 근원을 처리할 ‘특공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밥값 할 시간입니다. 성녀.”

정확히는 이번 작전에 투입될 특공대 중 한 명.

성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이죠!”

처용의 말에 성녀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

그녀는 처음 성지에 도달했을 때보다 안색이 밝아져 있었다.

그간의 치료가 톡톡한 효과를 보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충분히 호전되었기 때문에 이번 작전에 투입된 것도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역천군주.”

성자가 성녀를 바라보고는 처용을 향해 걱정을 표했다.

처용의 장담대로 여동생이 많이 나아진 건,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작전에 투입된다기에 나름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성녀는 교단에서 생활할 때조차 외부에 투입된 일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성지 내부에 머물며 세례와 축복을 내리는 것이 대부분의 일이었으니까.

즉, 성녀가 몬스터와 제대로 싸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리 처용과 함께한다 해도, 성자는 그녀의 가족으로서 걱정이 더 컸다.

“여동생을 영원히 새장 속에 가둘 생각인가요? 성자.”

처용이 성자의 말에 진지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성자에게 한 말은 나름 뼈가 있는 말이었다.

그동안 교단이 성녀에게 해 온 짓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처용은 성녀를 교단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한 인형이자 병기로 다룬 교단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건…….”

성자가 속으로 갈등하듯, 말을 흐렸다.

교단이 지금껏 성녀에게 요구해온 태도들이 잘못되었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성녀는 지켜야 할 소중한 가족이었다.

“치료가 끝나고 성녀가 교단으로 돌아간다면, 잘 신경 써 주는 게 좋을 겁니다.”

성자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고는.

“분명, 신들이 또 성녀를 장난감처럼 다룰 테고 다시 망가뜨릴 가능성은 충분하니까.”

진심 어린 경고를 담아 말했다.

성녀는 앞으로 일어날 재앙들을 대비할 중요한 카드 중 하나.

물론, 성지에서 성녀를 치료하면서 나름대로 조치를 해 놓긴 했었다.

그러나 사고는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법이다.

또 개인적으로 성녀가 회귀 전과 같은, 속박된 삶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저 위에 있는 양반들과는 다를 거라 믿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성자를 통해 성녀가 회귀 전과 같은 일을 당하지 않게 추가로 방지할 생각이었다.

생각의 자유로움을 일찍 깨달은 지금의 성자라면, 충분히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동시에, 이번 기회를 통해 성자에게 제대로 알려줄 생각이었다.

성녀는 더 이상, 보호와 관리를 받아야 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걱정하지 마세요.”

성녀가 처용과 성자에게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고는.

“저, 오라버니가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성장했거든요.”

-우우웅.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어둠 속성과 빛 속성 마나를 피워 보이며 말했다.

마나는 빛과 어둠,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심해야 한다.”

성자가 걱정을 한 수 접고 성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항상 자신감이 없고 수동적인 모습만 보였던 자신의 여동생.

그런 그녀가 활력을 찾은 모습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호네아를 잘 부탁드립니다.”

성자가 처용을 향해 당부하듯 말하자.

“애당초 정말 위험한 곳이었으면 데려가지도 않았을 겁니다.”

처용이 미소와 함께 자신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추가로 가족을 걱정하는 이는 성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꼭, 무리할 필요는 없다. 아일라.”

태양의 신관이자 파라오 길드의 길드장.

라진이 자신의 여동생, 죽음의 신관 아일라를 보며 걱정을 표하자.

“제가 필요한 일인걸요.”

아일라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라진을 향해 답했다.

파라오 길드의 S급 헌터이자, 저승의 신 아누비스의 신관 아일라.

그녀 역시 처용과 함께 근원을 처리하는 특공대 중 한 명이었다.

“작전대로 잘 진행만 되면, 위험한 일은 전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용이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특공대로 선별된 이들을 향해 말했다.

처용과 같이 근원을 처리할 특공대 멤버는 다음과 같았다.

교단의 성녀와 죽음의 신관 아일라.

-철컥.

아티팩트와 장비를 손보며 전투를 준비 중인 연화.

“히히, 드디어 헌터다운 일을 해보는구나.”

마냥 즐거운 듯, 기대감 어린 웃음을 짓고 있는 연아와 처용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루나.

마지막으로.

“이번엔, 같은 편에 서게 되었군요. 역천군주.”

츠쿠요미의 신관, 무라키 미우가 처용에게 다가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처용을 포함한 총 7명이 이번에 근원을 처리할 이들이었다.

모두가 검은 대지를 정화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준비해, 10분 뒤에 공격을 시작할 거야.”

커맨더가 처용에게 다가와 왼손에 장착된 패널을 열고 시간을 살피며 말했다.

“갑시다.”

처용이 임시 본부 밖으로 향하며 나지막하게 말하자.

-저벅.

특공대로 선별된 모든 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처용을 따라나섰다.

***

-쿠구구! 쿠콰콰!!

검은 대지 외곽에서 갖가지 폭격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캬아아!

-크아악!

시커먼 몬스터들과 다크 헌터들이 요란한 소음에 반응하며 검은 대지 밖으로 뛰쳐나왔다.

-콰쾅! 콰르르!

-쿠르르!

외곽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과 검은 대지를 뛰쳐나온 몬스터들이 격돌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검은 대지로 공격을 퍼부은 이유는 어그로를 위해서였다.

검은 대지의 근원을 처리하기 위해 잠입한 특공대.

그들이 몬스터와 마주해 전투가 일어나는 확률을 낮추고자 벌인 일이었다.

이번 검은 대지 정화를 위한 작전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쿠구구!

요란한 소음이 계속 울리고 있을 때.

-찰팍. 찰파팍!

검은 대지 안으로 잠입한 이들은 순조롭게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본래라면, 처용을 제외한 이들은 ‘잠식’의 위험이 있었다.

-스르르.

지금 이 순간도, 대지 위에 흐르는 마기가 일행들의 발을 타고 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슈화아아.

발을 타고 올라오려던 마기들이 두 곳으로 빨려 들어가며 흡수되었다.

첫 번째는.

“아직까지는 견딜 만하네요.”

죽음의 신관인 아일라가 움켜쥔 아누비스의 성물, 앙크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저 역시,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왼손으로 검은 마기를 흡수하고 있는 성녀였다.

아일라와 성녀의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일행들의 ‘잠식’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나아갈 때.

-캬아아!

-크어어억!

검은 대지 외곽에서 울리는 소란을 들은 몬스터들이 달려왔다.

하필이면 뒤늦게 어그로가 끌린 몬스터들이 특공대가 있는 방향으로 몰려온 것.

이대로 몬스터 무리와 충돌하나 싶었지만.

-탓! 타닷!

-쿵! 쿵! 쿵!

다크 헌터들과 몬스터들은 마치 처용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그냥 지나쳐갔다.

몬스터들이 모두 사라지자.

“실력이 늘었군,”

처용이 미우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덕분입니다.”

미우가 처용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츠쿠요미의 신관이자 ‘거울의 환술사’라는 클래스를 지닌 S급 헌터.

그녀는 본인을 중심으로 일행들을 감싸는 은폐 결계를 만들어 둔 상태였다.

특공대가 별일 없이 제단 앞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미우가 가진 역할이었다.

그녀의 결계를 다루는 솜씨와 기술만큼은 처용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편이었다.

조금 전, 고레벨의 다크 헌터가 일행들을 지나쳐 갔음에도 미우의 결계를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그런 그녀의 결계 능력은 처용과 마지막으로 마주했을 때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나아가던 일행들은 앞에, 곧 문제의 제단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꿀럭. 꿀럭.

아직도 검은 액체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 게이트.

이 일대를 검은 대지로 만드는 근원이자 원흉이 있었다.

“자, 그러면 어서 저걸 처리합시다.

처용이 게이트를 바라보며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우우웅.

‘타이밍이 딱 맞겠군. 크크.’

비밀 실험실에서 해킹했던 제한 구역의 보안 장치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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