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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76화 (276/726)

#276화

태룡전으로 돌아온 처용은 곧장 성역에 머무르는 신격들을 불렀다.

그들에게 전할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용은 검은 대지, 천교의 비밀 실험실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이런 걸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발견한 물건들을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우리가 한발 늦었네.]

카투라가 어두운 표정을 드러내며 입을 열고는.

[미안하다.]

처용이 꺼낸 물건들 중 녹색의 큰 덩어리.

[덴트라 크타니드의 파편]

자신의 형제가 죽고 남긴 파편을 집어 들며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둘을 제외하고 정말 다 잡아먹힌 걸까?]

카투라가 착잡한 표정으로 읊조리자.

[누님…….]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작은 도마뱀, 크루마가 고개를 축 내리며 힘없이 말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두 태초의 마수만이 아니었다.

[나의 형제자매를…… 이런 꼴로 다시 마주할 줄은……!]

청룡이 처용에게서 받은 사신수의 내단들을 내려다보며 비통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말…… 유감이오.]

그에 해전무신과 언문이 유감을 표하며 위로를 전했다.

소식이 끊긴 가족을 시체로 다시 마주한 유가족과 같았으니까.

“…….”

처용 역시 가족을 잃어 본 경험이 있기에 이들의 아픔이 공감되었다.

[이렇게라도…… 형제자매들의 흔적을 찾아 주어 고맙구나.]

슬픔을 갈무리한 청룡이 처용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처용이 청룡의 감사에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리고.

[이게 모두……! 천교의 잔학무도한 실험에 희생당한 이들인 건가!]

해전무신이 처용이 꺼낸 영체석들을 바라보며 분노를 담아 읊조렸다.

[신력과 신명까지 분해한다라…… 이런 짓까지 저지를 줄이야.]

영체석을 바라보는 미륵이 눈을 가늘게 뜨며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놈들의 실험 일지를 살펴보니, 산 채로 분해한 듯 보였습니다.”

처용이 착잡한 표정으로 미륵에게 서류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비단, 하급신들만이 아닌, 신계의 거주민들, 신병들까지 희생시킨 듯 보입니다.”

[흠…….]

미륵이 처용에게 건네받은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침음을 흘렸다.

-차락. 차락.

서류를 봄과 동시에 처용이 꺼내 보인, 1번부터 10번까지의 번호표가 달린 영체석을 바라봤다.

그렇게 서류를 살피던 중.

[흐음!?]

미륵의 인상이 순간 꿈틀거리며 일그러졌다.

서류를 넘기던 손길이 멈추었고 멈춘 부분에 적힌 문서를 빤히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

미륵은 처용의 말에도 서류를 바라보며 인상을 쓴 채 침묵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며 침묵을 이어가던 미륵은.

[……41번이라는 번호가 달린 영체석을 꺼내 보거라.]

처용을 향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탁.

미륵의 말에 처용이 군말 없이 영체석을 꺼내 단상 위에 올려놓았다.

[용기의 영체석 / ??]

[확인 불가.]

옅은 붉은 빛이 일렁이는 반투명한 보석.

[……이런!]

영체석을 바라보는 미륵의 인상이 더 깊어지며 침음이 흘러나왔다.

[미륵님, 이 신력은…….]

여래 역시 영체석을 보며 무언가를 짐작한 듯, 옅게 인상을 썼다.

그리고.

[이……! 이건!? 이 신력은!!]

해전무신이 41번 영체석, 용기의 영체석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다니!]

격렬한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혹시, 아시는 분입니까?”

분위기를 살핀 처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전무신 정도 되는 성좌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격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처용의 질문에.

[용기(勇氣)의 여신, 연옥에서 그 아이가 부여받은 신명이었다.]

미륵이 41번 영체석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주었다.

[아…… 이 친구의 소식이 완전히 끊어졌던 이유가?]

언문이 용기의 영체석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연옥의 시련을 통과하고 용기(勇氣)라는 신명을 부여받은 성좌.

그녀는 해전무신과 의학의 신처럼, 무신전에 머무르지 않고 방랑하던 성좌였다.

그런 그녀의 소식이 갑작스럽게 끊어진 뒤 영체석이 되어 나타난 상황.

“방랑하던 무신전의 성좌가…… 천교에게 살해당했다고요?”

처용이 용기의 영체석을 보며 놀란 듯 말하자.

[확실하다. 그 아이의 신력이 맞다.]

미륵이 확신을 담아 답했다.

“이 정신 나간 또라이 새끼들이!”

상황을 파악한 처용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천교가 이번에 저지른 잔악무도한 실험은 신계에서조차도 문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천교가 무언가를 한다 해도, 다른 성운에서 크게 개입할 수는 없었다.

신계 성운들을 나라로 비교하자면, 주신이라는 왕이 군주로 군림하는 왕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소속의 성좌를 희생시켰다 해도, 천교 내부에서 벌인 일의 경우, 함부로 참견할 수 없다.

한 나라가 개인적으로 벌이는 실험을 다른 나라에서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것과 같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천교가 다른 성운의 성좌를 살해한 정황이 밝혀졌다.

아니, 다른 성운의 성좌를 사로잡아 실험체로 만들어 버렸다.

아무리 성운끼리 서로 큰 개입은 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성운의 성좌를 함부로 살해하는 경우는 큰 문제였다.

명백한 신계의 규율 위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장! 태무신께 이 사실을 알리고 놈들을……!]

-철컥!

해전무신이 옆구리에 찬 칼을 강하게 쥐고는.

[놈들을! 모조리 도륙 내 버릴 것이다!]

격한 분노가 담긴 고함을 토해냈다.

그때.

“잠시만요. 해전무신 님.”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해전무신을 불렀다.

[후인이여, 나를 말릴 생각이라면-.]

해전무신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했다.

자신은 이 일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전쟁도 불사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럴 리가요.”

말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듯, 처용에게서 단호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저…… 두 성운의 전쟁만으로 이분들의 한이 풀릴 것 같지 않거든요.”

처용 역시 해전무신 못지않게 이 상황에 분노한 상태였다.

하지만, 불같은 분노와는 반대로 냉정하고 진지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처용의 싸늘한 말이 울리자.

[묘수(妙手)가 있구나?]

언문이 처용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분명, 희생당한 타 성운의 성좌는 무신전의 성좌만이 아닐 겁니다.”

처용이 머릿속으로 새로운 계획을 짜며 입을 열자.

[확실히…… 천교 소속이 아닌 이들도 있다.]

미륵이, 들고 있는 서류와 영체석을 다시 면밀히 살펴보며 말했다.

처용이 미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가 이것을 발견한 실험실에 취한 조치가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이용하면…….”

방금 떠올린 계획을 일부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천교 이 새끼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처용이 말을 마치자.

[그렇군…… 아주 훌륭한 전략이구나. 후인이여.]

분노를 가라앉힌 해전무신이 진지하게 처용의 제안을 평가하며 말했다.

동시에.

[……우선, 태무신께 이 사실을 알리고 방랑하던 동문(同門)들부터 모두 불러 모아야겠습니다.]

다른 성좌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방랑하던 무신전의 성좌가 천교에 의해 살해당한 상황.

이대로 두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나와 같이 가세나, 운장과 이 일에 대해 의논을 해야겠으니.]

미륵의 말에 해전무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 순간.

-샤샥!

해전무신과 미륵이 모습을 감추었다.

두 성좌가 자리를 비우자.

[……참담한 일이도다.]

여래가 단상 위에 놓은 물건들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리고.

[너무나도 격한 고통과…… 두려움이 느껴지는군요.]

보살이 단상 위에 놓인 영체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마치, 영체석의 주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느껴진다는 듯, 서글픈 표정이 보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짓을……!]

보살이 읊조리듯 말하자.

“병기(兵器)를 만들기 위해서일 겁니다.”

처용이 무언가 짐작되는 것이 있다는 듯 답했다.

[성좌를 갈아 넣어서 만든 병기라?]

여래가 차가운 눈빛을 띠며 입을 열자.

“성좌만이 아닙니다.”

처용이 단상 위에 무언가를 더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것 좀 보십시오.”

-탁.

처용이 꺼낸 것은 여러 색상의 룬 문자가 새겨진 돌멩이들이었다.

[프로토타입 스킬석 / ??]

-스킬 ‘거합 내려치기’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프로토타입 스킬석 / ??]

-스킬 ‘화염 채찍’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손에 착 감기는 크기인 돌멩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스킬석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스킬석이 아닌.

“이건, 헌터를 희생시켜 만들어낸 스킬석입니다.”

불법적인 생체 실험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스킬석이었다.

처용의 말이 끝나자.

[여기서도 같은 고통이 느껴지는군요. 계승자.]

보살이 눈을 감고 스킬석들을 하나하나 만져보며 말했다.

영체석과 마찬가지로 같은 아픔이 전해지는 듯, 그녀의 인상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것도, 영체석과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차락. 차락.

처용이 비밀 실험실에서 구한 실험 문서 하나를 꺼내, 한 장 한 장 넘기며 말했다.

[병사들의 영혼에 이식된 시스템의 힘을 강제로 뽑아냈다고?]

여래가 스킬석 중 하나를 집어 들고 자세히 관찰하며 말하자.

“전부는 아니지만, 이 스킬석들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처용이 여래에게 다가가 들고 있는 서류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시스템과 영혼을 분리한 다음, 재조립 및 재구성…….”

서류에 적힌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헌터를 산 채로 분해하여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로 만든다.

그 후, 시스템이 스킬의 힘만을 따로 추출하여 재조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승님도 아시겠지만, 몬스터만 스킬석을 드랍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용이 서류의 페이지를 몇 장 더 넘기고 어느 한 부분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스킬석 드랍 메커니즘 연구]

그 페이지에는 천교가 왜 이 같은 실험을 벌이기 시작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정말 낮은 확률로 그 몬스터가 사용하던 힘이 응축된 스킬석이 나타난다.

하지만 몬스터 말고 스킬석을 드랍하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헌터가 사망했을 때도, 스킬석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헌터가 죽으면 몬스터보다도 더 극악한 확률로 스킬석이 드랍된다.

그것도 사망한 헌터가 사용했던 스킬 중 하나가 내재된 스킬석이…….

천교는 이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는 스킬석 추출 실험을 계획한 것이었다.

[네가 이것들을 쓸 수 있겠느냐?]

이야기를 들은 여래가 처용을 향해 묻자.

“바로 확인해보죠.”

처용이 스킬석 중 하나를 곧장 집어 들며 답했다.

동시에.

“사용한다.”

스킬석에 내재된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파사사.

스킬석이 가루가 되며 사라졌고.

[스킬석 ‘거합 내려치기’를 사용합니다.]

곧장, 시스템의 알림이 울려왔다.

[스킬석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선인의 육체가 흩어지는 스킬석의 기운을 효율적으로 흡수합니다.]

[힘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파쇄격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시스템의 알림을 확인한 처용은.

“일부분만 흡수하는 데 성공했군요.”

흡수한 스킬석의 기운을 갈무리하며 여래를 향해 말했다.

[일부분?]

여래가 의문을 표하자.

“아마 완성품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처용이 다른 스킬석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헌터들은 이걸 쓸 수도 없을 겁니다.”

[그렇군, 선술 덕분이었구나.]

여래는 처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곧장 알아채며 말했다.

천교의 실험으로 만들어진 스킬석.

그것들은 온전한 스킬석이 아닌, 실험으로 탄생한 인공적인 스킬석이었다.

평범한 헌터는 이 스킬석을 사용할 수 없었다.

다만, 처용의 경우는 예외였다.

만물을 지배하는 권능인 선술.

처용은 선인의 육체가 가진 조화의 힘을 통해 흡수가 가능했던 것이었다.

[흠…… 쓸 수 없는 스킬석을 뽑아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여래가 스킬석들을 다시 살펴보며 읊조릴 때.

“저 말고 한 명 더 있습니다.”

처용이 여래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그놈도 이걸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선술로도 온전히 흡수가 불가능한 것을?]

여래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만물을 조화롭게 다루고 지배하는 선술조차 스킬석의 힘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스킬석을 흡수할 수 있는 존재가 더 있다?

“예, 이놈이라면, 흡수가 가능할 겁니다.”

-샤락.

여래의 말에 처용이 들고 있는 서류를 덮어 가장 앞면을 보이며 말했다.

정확히는 서류 앞면에 쓰인 글자.

[프로젝트 : 이터(Eater)]

그 글자는 이 비밀 실험의 명칭이었다.

[포식자(Eater)라……?]

여래가 서류의 제목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읊조리자.

“이 실험은 애초에 ‘포식자’를 완성하기 위한 실험이니까요.”

처용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서류의 제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류가 가리키는 포식자.

“옥황상제의 신관.”

그것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처용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실험은 그를 완성하기 위한 부품들입니다.”

포식군주 뤼장첸.

그를 완성하는 것이 프로젝트 : 이터의 진짜 목적이었다.

그리고.

“제 눈에 걸린 이상, 포식자가 완성될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처용이 천교의 제례를 망치고 재앙을 불러일으킨 진짜 이유 역시, 이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었다.

‘폭식마(暴食魔)가 다시 나타나는 일만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회귀 전, 우주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켰던 존재.

3차 대격변, S급 헌터들이 무더기로 사망했었던 재앙을 일으킨 자.

옥황상제의 신관이자, 천교의 최종병기.

이 모든 계획은 폭식마(暴食魔) 뤼장첸의 완성을 막고 그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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