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75화 (275/726)

#275화

태블릿 안에 기록된 자료들은 대부분.

[화산의 나락 던전]

-최심부 쪽, 비밀 장소에서 불사조 발견, 사냥 성공.

[고생물 던전]

-폭포 동굴 속…….

어떤 던전에서 어떤 희귀 몬스터가 발견되었고 어떻게 사냥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고위 신수 내단 목록]

처용이 그토록 궁금했던 부분.

지금 시기에 고위 신수들의 내단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도 기록되어 있었다.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에스라 대륙에서 레어 발견.

-성역 침입 및…….

가장 궁금했던 드래곤 사냥.

역시나, 처용의 예상대로 내단의 주인은 에인션트 드래곤, 반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수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금의 청룡보다 한 단계 아래에 있는 신수.

마주치기도 몹시 어려울뿐더러, 헌터들이 사냥하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존재.

그러나.

-흑면장군, 호법신.

태블릿 안에는 누가 에인션트 드래곤을 사냥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랑진군과 나타라…….”

처용의 입에서 천교의 주력 성좌들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에인션트 드래곤을 사냥한 이는 다름 아닌 이랑진군과 나타였다.

태블릿의 기록을 확인해보니,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잠들어 있던 에인션트 드래곤의 성역을 뚫고 천교의 성좌가 직접 침입하여 사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사냥한 신수들 중에는.

“현무, 백호, 주작…….”

청룡과 같은 사신수(四神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태블릿의 목록을 넘기며 자료를 살피던 처용은.

[대격변 프로젝트]

천교가 제단을 건설한 목적인 대격변 계획에 대한 자료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미래를 알고 있던 처용의 지식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이 새끼들…… 이번에 일으키려는 대격변이-.”

처용이 대격변과 관련된 자료들을 쭉 둘러보며 읊조렸다.

“1차만이 아니라, 2차 대격변까지 한꺼번에 일으킬 속셈이었나?”

회귀 전 지구에 펼쳐졌던 재앙, 대격변이라 불리던 현상.

천교와 마인들이 일으킨 대격변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회귀 전에는 지구에서만 총 네 번의 대격변이 발생했었으니까.

처용은 이번에 천교가 벌이는 대격변이 1차 대격변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1차 대격변은 지구를 보호하는 시스템의 장막을 흔들고 게이트를 대량으로 발생시키는 것이었다.

단순히 게이트가 다수 나타나는 정도가 아니라, 나타남과 동시에 게이트가 폭주한다.

전 세계에 엄청난 혼란이 찾아오고 지구에 존재하는 나라 중 1/3이 사라진다.

이것이 회귀 전, 고작 첫 번째에 불과했던 1차 대격변의 결과였다.

그런 1차 대격변에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스템을 망가뜨리기 시작한 2차 대격변도 한꺼번에 일어난다?

“……천만다행이군.”

처용의 입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만약, 처용의 대처가 늦었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했을 테니까.

더 얻을 정보는 없나 태블릿 속 자료들을 계속 넘겨 봤지만.

“……더 없군.”

대격변에 대한 내용이 마지막이었다.

처용은 보관 창고를 한 번 더 살피고는.

-슈와아아아!

태룡전의 열쇠로 게이트를 열어 창고 안의 모든 물품들을 챙겼다.

온갖 물건들이 가득했던 창고가 완전히 비워지자.

“화염부, 철벽부, 암영부…….”

처용은 자연부를 소환해 창고 내부를 채우기 시작했다.

-콰드득! 콰득!

철벽부들이 각각 뭉치며 비어 버린 선반을 채우기 시작했고.

-스르륵.

철벽부로 만들어진 형상에 각각 다양한 속성 에너지들이 깃들었다.

마지막으로.

“명환부 – 빛의 환영.”

명환부의 힘을 덧씌워 만들어진 물건들이 빛을 발하는 것처럼 연출했다.

처용이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조금 전까지 창고 내부에 가득했었던 물건들이었다.

즉, 더미를 만들어 놓은 것.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암영부.”

제한 구역을 나누는 결계 부분에 암영부 한 장을 깃들여 놓았다.

뒤처리를 끝낸 처용이 보관 창고를 나와 다시 복도 끝을 향해 나아갔다.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성과는 있다.’

처용이 찾던 것이 창고 안에 있지는 않았지만, 예상 밖의 큰 수확을 얻었다.

그리고 조금 전 얻은 태블릿 속에는 실험실의 지도도 표기되어 있었다.

덕분에 처용이 찾던 실험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복도를 쭉 걸어 나아가자, 곧 끝에 도달했다.

[중앙 실험실 D동]

제한 구역과 마찬가지로 결계가 둘러진 문이 가로막았지만.

-지이잉.

처용이 다가가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제한 구역을 해킹하면서 이 시설의 보안을 장악한 상태였으니까.

-우웅! 탁, 타닥!

불이 켜지며 이전보다 넓은 실험 구역이 드러났다.

“여기군.”

눈앞에 드러난 넓은 공동을 보던 처용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회귀 전 보았었던 실험 기기들과 비슷한 것들이 눈에 보였으니까.

그래도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는 있었기에 가장 가까이 있는 실험 기기에 다가갔다.

“화로……?”

처용이 다가간 곳은 지름 6미터 정도 크기인 원형 화로였다.

-부글. 부글.

붉은 액체가 옅게 끓어오르고 있는 화로.

화로와 이어지는 배출구 옆 선반에는 주괴를 만들어내는 형틀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옆 선반에는 형틀로 찍어 만들어낸 듯, 다양한 빛깔로 반짝이는 주괴와 보석들이 있었다.

주변을 관찰하던 처용의 눈에.

[영체 분쇄기 실험 일지]

눈앞에 있는 기기가 무엇인지 적혀 있는 실험 문서가 보였다.

-차락. 차락.

문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보자.

-영혼에 담긴 에너지를 추출.

-다른 형상으로 재가공 및 변환.

원형 우물, 영체 분쇄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찾았다.”

문서를 자세히 살피던 처용의 입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정확한 명칭은 이번에 처음 알았지만, 눈앞에 있는 영체 분쇄기는 처용이 찾던 게 맞았다.

-차락. 차락.

조금 더 정보를 얻기 위해 문서를 넘기며 자세히 살펴보자.

“……한참 전부터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건가?”

처용의 눈가가 점점 일그러지며 분노 섞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열 번째 실험]

-천교의 하위 성좌 : 빗방울의 신

-실험 결과 : 일부분 추출 성공

지금 처용이 바라보고 있는 실험 페이지의 내용이었다.

문서를 살핀 처용이 눈을 돌려 보석과 주괴가 있는 선반을 바라봤다.

그 중 ‘10번’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보석을 찾았다.

[빗방울의 영체석 / ??]

[확인 불가.]

[확인 불가.]

손에 딱 잡히는 크기인 물방울 모양의 투명한 보석.

처용이 빗방울의 영체석을 집어 들고 자세히 관찰하자.

-우우웅.

보석 안에서 옅은 신력이 흐르는 것이 감지되었다.

그것도 물처럼 축축하고 잔잔한 느낌이 전해지는 신력.

마치 ‘빗방울’과 같은 느낌이 전해지는 신력이었다.

“하? 같은 성운의 성좌를 실험체로 삼았다고?”

실험 기기와 문서를 보며 들었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자, 처용의 입에서 기가 막힌다는 듯한 한숨이 튀어나왔다.

영체 분쇄기 실험.

이 실험은 생명체를 분해하여 가진 에너지를 추출하고 재구성하는 실험이었다.

천교의 하위 성좌, 빗방울의 신은 영체 분쇄기에 갈려 나갔고…….

지금 처용이 손에 쥐고 있는 빗방울의 영체석이 되어 버렸다.

같은 성운의 성좌를 희생시키는 잔악무도한 실험.

지금의 이 실험은 아직 작은 힘을 담은 영체석을 만드는 게 고작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몇십 년 뒤에는 영체석을 만드는 이 실험이 완벽하게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미안해요…… 계승자.

“이런! 개새끼들이!!”

-까가강!!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처용이 역천의 절로 벽을 가르며 욕을 내뱉었다.

“하아-!”

격하게 차올랐던 감정을 억누르는 듯 처용의 입에서 깊은 심호흡이 흘러나왔다.

‘젠장……!’

순간 떠오른 기억 때문에 하마터면 실험 기기를 망가뜨릴 뻔했다.

-스르릉.

마음을 가라앉힌 처용이 역천의 절을 회수하며 집어넣고는.

“…….”

고개를 돌려 영체 분쇄기를 뒤로하고는 다음 실험 기기를 살펴보았다.

높이 6미터 정도 크기의 투명한 원형 플라스크가 세워진 실험 기기.

그 앞에 놓인 선반에는 다양한 색상의 룬 문자가 새겨진 돌멩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처용이 선반 위에 놓은 서류를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프로젝트 : 이터(Eater)]

“……찾았다.”

서류의 제목을 바라본 처용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피어났다.

***

검은 대지 인근에 세워진 임시 본부.

“하아,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까?”

본부 내부 회의실에 앉은 스미스가 답답한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스미스의 말에 회의실의 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길드장들도 답답한 표정을 드러냈다.

검은 대지의 조사를 위해 홀로 잠입한 처용.

그가 검은 대지로 진입한 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아직, 검은 대지를 정화할 방법은 찾지 못한 겁니까?”

스미스가 성자를 바라보며 묻자.

“아직, 정화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성자가 고개를 저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잠깐은 밀어낼 수 있습니다만, 곧 다시 번져오더군요.”

교단의 고위 사제들과 성자는 신성력을 모아 검은 대지를 정화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번지던 검은 대지가 잠깐 주춤거리기만 할 뿐, 다시 스멀스멀 번지곤 했다.

교대로 신성력을 퍼부으면 검은 대지가 번지는 속도는 늦출 수 있겠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역천군주는 곧 돌아올 겁니다.”

대화를 듣던 제시카가 의견을 전했다.

“그때까지 우선, 검은 대지를 막을 방법부터 다시 찾아보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게 답답할 노릇입니다.”

성자가 제시카의 말에 작게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올림포스 길드장님, 정화의 불꽃은 효과가 있습니까?”

스미스가 제시카를 향해 물었다.

정화의 불꽃은 올림포스 소속 대신 중 하나, 화톳불의 여신인 헤스티아의 권능이었다.

성지가 아닌 지상에서 신의 힘을 함부로 발현할 순 없지만, 방법은 있었다.

헤스티아의 신관인 도로시.

그녀가 강신을 사용해 헤스티아의 화신체를 받아들이면, 일시적이나마 정화의 불꽃을 쓸 수 있었다.

“시도는 해 봤습니다.”

제시카의 뒤에 자리한 도로시가 입을 열었다.

“결과는…… 성자께서 시도한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정화의 불꽃도 검은 대지를 밀어낼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

“신의 힘조차 통하지 않을 줄은…… 이 무슨 끔찍한-.”

메리가 답답한 상황에 한탄하듯 말할 때.

“……아니, 이제는 다를 겁니다.”

돌연, 제시카가 무언가를 느끼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그렇죠? 역천군주.”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시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바로 알아챌 줄은 몰랐는데?”

어느새 회의실 안에 들어온 처용이 공석 중 한 곳에 앉아 있었다.

“……역천군주!?”

“언제?”

처용을 발견한 이들이 놀란 듯 소리쳤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처용이 스미스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뭔가를 찾으셨군요!”

스미스가 처용의 분위기를 살피고는 혹시나 하며 물었다.

“네.”

자신감이 담긴 처용의 대답이 들오자, 스미스가 안도의 미소를 자아냈다.

그 순간.

“총장님! 지금……!”

회의실에 들어온 WHU 소속 헌터 한 명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스미스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말하자.

“검은 대지가 활동을 멈췄다고!?”

스미스의 입에서 놀람이 담긴 음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무언가를 짐작하고는 처용을 바라보자.

“임시방편으로 조치해 놓긴 했는데, 효과가 있나 보군요.”

처용이 작은 미소를 자아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예상대로 처용이 검은 대지 안에서 무언가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임시방편이라면, 완벽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로군요.”

금세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스미스가 처용을 향해 질문하자.

“네, 말 그대로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이틀은 갈 테지만…….”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검은 대지를 완벽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까?”

스미스가 다시 진지하게 물었다.

애초에 처용이 검은 대지로 잠입한 이유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제가 시간을 벌어 놓은 동안, 여러분들께서 준비할 게 있습니다.”

처용이 스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각 길드에서는…….”

모두가 처용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경청했다.

이윽고 처용의 말이 끝나자.

“그게 끝입니까?”

토르의 신관, 루이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처용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처용이 말한 준비는 생각보다 간단한 것들이었으니까.

루이스의 말이 울리자.

“제가 말한 것들이랑, 전투 준비만 든든하게 갖춰 놓으면 됩니다.”

처용이 다시 한번 강조하듯 진지하게 말했다.

“몬스터와의 싸움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준비물도 어렵지 않고요.”

루이스가 처용의 말에 자신감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이틀 뒤에 뵙겠습니다.”

스미스의 말을 마지막으로 회의가 파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려는 때.

‘가문 연합 쪽에는 아직 소식이 없나?’

처용이 메리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가려던 메리가 잠시 멈칫하며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천교가 비밀리에 연합과 접선한 흔적이 있어, 정확한 건 더 알아봐야 하지만…….’

귓속말을 통해 그간 알아낸 정보를 알려주었다.

‘……우선 이 일부터 해결하지.’

처용은 메리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전음을 보내고는 임시 본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우우웅.

인적이 드문 곳에서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성역으로 돌아갔다.

이틀 동안 천교의 성지를 뒤지며 얻은 것들을 처리할 시간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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