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74화 (274/726)

#274화

재앙이 발생했던 천교의 성지 내부.

-철퍽. 철퍽.

처용이 주변을 관찰하며 성지 깊은 곳으로 쭉 나아갔다.

일대 전체에 석유가 쫙 깔린 듯, 검게 물들어 버린 대지.

그 위에 폭삭 무너져 버린 건물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어어!

-크워어어!

여기저기를 떠도는 흉측한 몬스터들과.

-으어…….

-크으으…….

좀비처럼 검은 대지 위를 방황하는 다크 헌터들도 눈에 들어왔다.

검은 대지가 되어 버린 천교의 성지는 마치 세기말과 같은 모습이었다.

종말이 펼쳐진 것 같은 검은 대지 위를 쭉 나아가던 처용은.

-탁.

최초로 사고가 발생한 제단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처용이 시선을 올려 제단 위를 바라보자, 그 위에 생성된 검은 게이트가 눈에 보였다.

-꿀럭. 꿀럭.

찐득한 느낌의 꾸덕한 검은 액체를 쏟아내고 있는 게이트.

이 인근을 검은 대지로 잠식시키는 에너지의 근원이었다.

근원을 처리한다면 검은 대지가 점점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처용은 게이트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

제단 위의 게이트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려 지나쳤다.

혼자서 검은 대지로 진입한 진짜 이유가 있었으니까.

제단을 무시하고 쭉 나아간 처용의 발걸음이 멈춘 장소는.

[천교(天敎)]

[드높은 하늘 위 가장 위대한…….]

반쯤 부수어져 삐걱대고 있는 거대한 간판이 부착된 빌딩 앞이었다.

재앙이 일어나기 전, 성지에서 가장 거대한 건축물이었던 천교의 길드 본부였다.

본래는 초고층 빌딩이었지만, 지금은 아래쪽 1/3 부분만 남은 폐건물이 되어있었다.

처용이 동화경을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회귀 전, 단신으로 이 장소에 잠입했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여기군.’

처용의 앞에 붉은 문자가 나열된 검은 벽이 나타났다.

천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였다.

통찰의 눈을 발동한 처용이 몇몇 붉은 문자에 손을 댐과 동시에 어둠 속성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드륵. 드륵. 드르륵.

손댄 붉은 문자들이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더니.

-쿠구구구.

검은 벽이 좌·우로 갈라지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처용이 계단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자.

[제- 야, 연결- 희미- 지- 구나.]

악몽에 처음 빨려 들어갔을 때처럼, 여래와의 연결이 희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여래 역시 이변을 느끼고 처용을 불렀지만.

‘판테라움으로 만들어진 결계 때문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외부를 감싸는 검은 벽은 판테라움을 다른 광석과 합성하여 세운 강화 방벽이었다.

그리고 검은 벽 위에 쓰인 붉은 문자는 악마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도료로 그려진 결계문이었다.

지금 처용이 들어가려는 비밀 실험실 자체가 하나의 격리된 공간과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곧 연결이 끊길 겁니다.’

처용이 계단을 쭉 내려가며 말하자.

[조심- 라.]

여래에게서 조심하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이윽고 내려가던 계단이 끝났고.

-화아아.

처용의 눈앞에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어둠 속으로 처용이 발을 들인 순간.

-탁! 탁! 탁! 우우웅!

기계 장치들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며 주변이 환해졌다.

그 순간.

-크어?

-캬악!?

어둠 속을 배회하던 다크 헌터들이 갑작스러운 소란에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곧장 소란의 원인을 찾아 고개를 돌렸고.

-크아악!

입구에 서 있던 처용을 발견하고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스르릉.

처용은 빠르게 역천의 절을 꺼내고 발도를 준비했다.

다크 헌터들이 지척에 다가온 순간.

-스르응!

찰나의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철컥.

내질렀던 칼날이 다시 칼집으로 들어갔다.

-촤아아!

처용의 지척에 다가왔던 다크 헌터들의 머리가 동시에 나가떨어졌다.

다크 헌터들을 깔끔하게 처리한 처용은 역천의 절을 집어넣고 재가 되며 사라지는 시체들을 바라봤다.

-탁. 타닥.

다크 헌터들이 사라지며 그들이 지니고 있던 물건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처용이 다가가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주웨이롱 / B급 / 수석 연구원]

젊은 남성의 사진과 이름, 직책이 새겨져 있는 카드.

“연구원들이었나?”

처용이 집어 든 건 방금 죽인 다크 헌터.

이곳 실험실의 연구원 중 한 명의 신분증이었다.

성지에 사고가 터지고 검은 지대가 펼쳐질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듯 보였다.

“흠…….”

처용이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책상과 컴퓨터, 각종 기계 장치들, 그 위에 쌓인 서류들이 눈에 보였다.

지금 있는 장소는 연구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보였다.

사무실 끝으로 나아가자.

[실험실 A동]

실험실로 이어지는 넓은 문이 나타났다.

처용이 문에 부착된 패드에 조금 전에 얻은 카드키를 대자.

-띠리릭. 지이잉.

패드에 ‘승인’이라는 문자가 뜨며 문이 열렸다.

-탁. 탁. 탁…….

쭉 이어진 복도를 따라 불이 켜지고 격리된 실험실의 모습이 드러났다.

좌·우가 투명한 유리벽으로 세워진 복도.

그리고.

[실험실 A-1]

-에너지 증폭 실험…….

[실험실 A-2]

-마나 압축 실험…….

.

.

쭉 이어진 유리벽 안쪽에는 각각 실험실의 번호가 적혀 있는 방이 나열되어 있었다.

마치, 격리 병동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저벅. 저벅.

처용은 격리된 실험실들을 관찰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것도 없거나 기계만 놓여 있는 실험실들도 있었지만.

[실험실 A-11]

-마수 강화 실험 및…….

-캬아아!

-크르르르……!

중간중간 몬스터가 격리되어있는 실험실도 있었다.

문제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닌.

‘마수…….’

하나하나가 B급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마수들이었다.

심지어 검은 대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더 흉포해진 상태였다.

처용이 실험실과 마수들의 격리실을 관찰하며 쭉 나아갈 때.

‘으음?’

기존의 실험실보다 조금 더 넓은 격리 공간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리벽 안에는 마치 창고처럼 여러 물품들이 쌓이고 진열되어 있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자.

[보관 격리실 A-21]

격리실 유리문에 붙어 있는 팻말이 보였다.

-삑.

처용이 수석 연구원의 카드키를 대자.

-삐리릭.

격리된 유리문이 열렸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잠시 보관 격리실 내부를 둘러본 처용은.

“……좋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보관 격리실은 천교가 비축해 둔 다양한 물품들을 보관하는 시설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물품이 아닌, 고르고 고른 최상급의 물품들이었다.

처용이 진열대에 나열된 군청색의 강철 주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천년한철(千年寒鐵) 주괴/ 재료]

[천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한철(寒鐵)을 가공하고 정제해 만든 주괴.]

지금 시기에 알려진 천교의 대표적인 특산품은 백년한철이었다.

그러나 백년한철은 천교의 진짜 특산품이 아니었다.

외부 공개용 및 판매용으로 따로 제작한 모조품이었다.

천교의 진짜 특산품은 백년한철이 아닌, 지금 처용이 집어 든 천년한철이었다.

모조품 따위보다 훨씬 단단하고 마나 전도율이 뛰어난 진품.

그런 진품 천년한철 주괴가 선반 위에 가득 쌓여 있었다.

-탁. 까강.

처용은 천년한철 주괴를 선반 위로 휙 집어 던지고는 시선을 돌렸다.

창고 안에는 천년한철보다도 더 귀중한 것들이 많았으니까.

다음 선반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천년하수오(千年何首烏) / 재료]

[천년설삼(千年雪蔘) / 재료]

.

.

구하기 힘든 희귀한 영약들이 종류별로 쭉 나열되어 있었다.

영약들이 나열된 선반을 지나치자.

[불사조의 깃털 / 재료]

[지룡의 비늘 / 재료]

.

.

이번엔 보기 드문 몬스터들의 소재가 쌓여 있었다.

소재들을 대충 살펴보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제한 구역]

붉은 문자가 나열된 유리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처용이 카드키를 대자.

[승인 불가.]

[수석 연구원 주웨이롱의 모든 권한을 정지합니다.]

-삐이이.

승인 불가라는 문구와 함께 경고음이 울리며 연구원 카드가 먹통이 되었다.

카드를 던져버린 처용은.

‘암영부 - 녹아드는 어둠.’

벽에 어둠 속성 마나를 내뿜으며 해킹을 시도했다.

그러자.

-파지지직!

제한 구역 격리실에 나열된 붉은 문자가 빛나더니 전류를 피워냈다.

“어쭈? 이것 봐라?”

생각보다 견고한 듯 보이는 결계에 처용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판데모니움의 문자로 친 3중 결계에 자폭 시스템까지 설치해놨다?’

조금 전, 붉은 문자에서 튄 전류는 자폭의 전조증상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자폭이 아니라 이 격리 실험실 전체가 폭발하는 대규모 자폭이었다.

침입자를 사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 정도가 아닌, 이 지역 전체를 날려 버릴 목적으로 설치한 듯 보였다.

다행히 처용이 내뿜은 어둠의 마나가 자폭만큼은 막아낸 상황이었다.

‘이 안에 뭐가 있길래?’

필히, 제한 구역 안에 천교가 감추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다.

혹은 이 비밀 실험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물건이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처용은 안에 무엇이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 실험실에 방문한 목적과는 다르지만, 안에 있는 물건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제한 구역의 결계를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본 처용은.

“암영부.”

-후우우!

어둠 속성 마나를 내뿜으며 다량의 암영부를 만들어냈다.

제한 구역을 나누는 붉은 문자는 총 열 개.

처용은 붉은 문자 하나당, 암영부를 두 개씩 겹쳐 붙였다.

“흑마법은 내 전문이 아니지만…….”

문자 위로 암영부가 모두 붙자, 처용이 두 손을 합장하며 어둠 속성 마나를 더 끌어올렸다.

그리고.

“다크니스 바이러스 인펙션(Darkness Virus Infection).”

합장하던 두 손을 떼고 앞으로 뻗으며 흑마법을 발동했다.

-슈르륵! 슈륵! 슈륵!

암영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이 붉은 문자들을 검게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처용이 발휘한 기술은 어둠 속성 마나로 다른 마법이나 결계를 집어삼키는 흑마법이었다.

정확히는 암영부의 어둠을 이용해 해당 흑마법을 흉내 낸 것이었다.

-슈화아아!

붉게 빛나던 모든 문자가 처용이 내뿜은 어둠에 완전히 잠식되어 검게 물든 순간.

-파사사사…….

유리벽에 나열된 붉은 문자가 가루처럼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르륵. 스륵.

붉은 문자가 나열되어 있던 자리를 처용의 암영부가 차지하더니 새로운 문자를 새겼다.

-우웅. 우웅.

외곽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검은 문자들이 새로 나열되자, 처용이 결계에 손을 뗐다.

그리고.

“열어.”

처용이 문에다 대고 명령하듯 말하자.

-지이잉.

그 명령이 이행되었다는 듯, 제한 구역의 문이 열렸다.

처용은 제한 구역의 결계를 해제하거나 부순 것이 아니었다.

비밀 실험실 결계 전체를 자신의 힘으로 잠식시켜 장악해 버린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실험실의 보안 장치들을 해킹하고 지배한 것.

“뭘 숨기고 있는지 좀 볼까? 옥황상제.”

실험실의 보안을 장악한 처용이 제안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제한 구역 안에는 단 하나의 보관 케이스만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둥근 구체 같은 것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처용이 케이스 안에 있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구미호의 여우 구슬 조각/ 재료]

[칠색 봉황의 내단 조각 / 재료]

.

.

놀랍게도 그 안에 여러 ‘신수’들의 내단이 나열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것부터 쭉 살펴보자.

“……이것들을 어떻게 구한 거지?”

내단들을 하나하나 살피던 처용의 눈이 점점 커졌다.

케이스 안에 나열된 물건들 중에는.

[드래곤 하트의 조각 / 재료]

지금 시기의 지구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것들도 나열되어 있었다.

신수들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드래곤.

그들은 지금 시기의 지구에서는 절대로 마주칠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드래곤의 사체를…… 천교가 소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도대체…… 에인션트급 드래곤을 어떻게? 무슨 수로?’

드래곤 하트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아무리 봐도 고룡(古龍)급.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드래곤은 하나의 세계를 관리하는 관리자들이자 균형의 수호자들.

세계를 관리하는 신과 비슷한 존재들이었다.

심지어 에인션트급 드래곤은 지금의 처용조차도 상대하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생명체였다.

그런 존재를 지금의 천교가 가진 전력으로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조각난 드래곤 하트를 관찰하며 생각하던 처용은 시선을 돌려 다른 물건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아니, 더 충격적인 물건들도 찾을 수 있었다.

[현무의 내단 조각 / 재료]

[주작의 내단 조각 / 재료]

[백호의 내단 조각 / 재료]

처용의 눈에 들어온, 다른 내단들보다도 유독 큰 크기인 내단.

그것은 다름 아닌 청룡과 같은 고위 신수의 내단이었다.

“……이 새끼들 혹시?”

고위 신수들의 내단을 본 처용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동시에 천교가 무슨 짓들을 저질러 왔는지 짐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내단을 확인하자.

[덴트라 크타니드의 파편 / 재료]

처용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녹갈색의 고깃덩이를 배구공 크기로 둥글게 뭉쳐놓은 듯한 내단.

그것은 놀랍게도 태초의 마수의 일부분이었다.

정확히는 조크-크타니드에게 살해당한 태초의 마수.

“마수가 있었던 이유가 있었네.”

마수 실험에 사용되는 재료 중, 가장 중요한 재료가 바로 태초의 마수였다.

처음에는 이전 마수 실험장에서 회수한 가이라마-크타니드의 파편이 또 있나 싶었었다.

하지만, 확인 결과 또 하나의 태초의 마수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처용이 신수들의 내단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쓸어 보이며 욕을 내뱉었다.

신수의 격을 통해 살해당한 신수들의 원통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처용의 눈에 진열대 위에 놓인 태블릿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태블릿이 아닌, 마나로 작동하는 태블릿.

심지어 최고 관리자, 즉 이 제한 구역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자만이 열람 가능한 태블릿이었다.

하지만 처용은 이미 이 실험실의 보안을 해킹한 상태.

태블릿을 열어 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삐릭.

태블릿의 보안이 풀리며 그 안에 기록된 자료가 나타났다.

“……!”

기록을 확인하는 처용의 표정이 점점 세차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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