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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73화 (273/726)

#273화

세계 헌터 회의가 끝나고 하루 뒤.

사고가 일어난 천교의 성지 외곽에는 WHU에 의해 임시 대처 본부가 세워졌다.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가까이서 정황을 관찰하며 대처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성지 인근 주변에 기지를 세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검은 대지로 돌변한 성지에서 몬스터가 수시로 쏟아져 나왔으니까.

그러나 강력한 헌터 한 명이 나서 주었기에 방어 기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캬아아!

-크아아!

검은 대지에서 뛰쳐나온 몬스터들이 임시 기지를 향해 돌진해왔다.

그때.

“장갑병은 앞으로!”

임시 기지에 세워진 방벽 위에 선 커맨더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명령하듯 외쳤다.

-철컥! 철컥!

방벽 앞에 일렬로 쭉 나열된 커맨더의 안드로이드들이 왼손의 방패를 치켜들었다.

-위이잉! 지잉!

방패를 앞으로 치켜세우고 오른손에 장착된 마나 소드를 날카롭게 세우며 준비한 순간.

-캬아아!

-쿠궁!

-차캉!

돌진해오던 몬스터들과 커맨더의 안드로이드들이 충돌했다.

-치이이!

몬스터들의 돌진으로 인해 안드로이드들의 진형이 조금 밀렸지만, 쓰러진 안드로이드들은 하나도 없었다.

방패로 몬스터들의 돌격을 막아내자, 곧장 안드로이드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위잉! 위잉! 우우웅!

날카로운 마나 소드가 달려든 몬스터들의 가죽을 찢고 베어 가르기 시작했다.

커맨더가 다루는 안드로이드의 전투력은 각각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C에서 B급 헌터 정도.

단일 개체만 따지면 그리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기갑 강화! 고출력 에너지 셀!”

커맨더가 스킬 발동하며 군단을 강화하고 지휘하는 순간, 로봇 군단의 전투력은 크게 상승한다.

애초에 그가 커맨더, 사령관이라는 이명을 얻은 이유는 군단을 다루는 전술 능력에서 비롯되었으니까.

“장갑병은 2보 뒤로!”

커맨더의 명령에 의해 몬스터들을 막던 중장갑 안드로이드들이 뒤로 물러선 순간.

“소총병 앞으로!”

중장갑 안드로이드 뒤에 대기하고 있던, 샷건을 치켜든 안드로이드들이 앞으로 나섰다.

두껍고 짧은 총구가 몬스터들에게 향한 순간.

“쓸어 버려!”

-타아앙! 타앙!!

커맨더의 명령과 동시에 일제 사격이 퍼부어졌다.

-캬아아!

-크아아!

검은 대지를 뛰쳐나온 몬스터들이 갈가리 짖기며 거의 정리될 때.

“더블…… 슬래쉬.”

-촤아아! 촤아!

날카롭게 벼려진 검은 마나의 칼날이 로봇 군단을 향해 들이닥쳤다.

“장갑병 1조 앞으로!”

커맨더가 빠르게 명령을 내리자 방패를 치켜든 중장갑 안드로이드들이 앞으로 나섰다.

-촤아악! 스가악!

다섯 기의 안드로이드가 두꺼운 방패로 방어했지만, 방패가 크게 갈라지며 뒤로 밀려났다.

“다크 헌터……!”

커맨더가 새로 나타난 몬스터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전체적인 모습은 사람 형태의 검은 그림자와 같았다.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형태에 눈 코 입 부분이 붉게 찢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WHU에 의해 명명된 몬스터의 이름은 ‘다크 헌터’

그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들이…… 전 헌터였던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성지에서의 사고 당시 희생된 헌터들.

그들이 몬스터가 되어 되살아났고 다른 몬스터들과 같이 인근 도시를 습격하고 있었다.

다크 헌터가 나타난 순간.

“폭풍참! 4연격!”

-촤자자자!!

쌍검을 치켜든 이진호가 순식간에 나타나 다크 헌터를 향해 검격을 퍼부었다.

-푸확! 푸화아아!

이진호의 맹렬한 공격에 당한 다크 헌터가 검은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스스스스.

쓰러진 다크 헌터는 검은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듯 바닥을 적시며 사라졌다.

그리고.

-차캉! 철크럭!

다크 헌터, 생전의 헌터가 사용하던 검과 갑옷 아티팩트, 그리고 헌터 라이센스가 바닥을 뒹굴었다.

습격해오던 몬스터들의 방어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여기, 감별 좀 부탁합니다.”

이진호가 다크 헌터에게서 나온 물건들을 수거해 임시 본부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WHU소속 감정사 클래스 헌터가 이진호에게서 받은 물건에 손을 올리며 감정 스킬을 발동했다.

그리고 잠시 뒤.

“이름 왕쯔쉬안, 94레벨 B급 헌터로 확인되었습니다.”

헌터 라이센스와 아티팩트를 감정한 감정사가 해당 물건의 주인을 찾아내었다.

“감사합니다. 이진호 헌터.”

감사를 전하는 감정사 헌터의 말에.

“아닙니다……. 고생하십시오.”

이진호는 심기가 불편한 듯 작은 한숨을 내쉬며 본부 밖으로 나왔다.

“왔어?”

밖에 있던 커맨더가 본부에서 나오는 이진호를 보며 말하자.

“헌터 라이센스가 남아있어서, 신원 확인이 바로 끝났어.”

이진호가 조금 전, 감정의 결과를 이야기했다.

“그래? 그나마 다행이네.”

커맨더가 이진호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 헌터가 몬스터가 되어버릴 줄이야.”

이진호가 조금 전 처치했었던 다크 헌터를 떠올리며 읊조렸다.

커맨더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고레벨 헌터들이 이번 사태 수습에 손을 보태고 있었다.

임시 본부의 방어를 커맨더가 맡는 사이, 다른 거대 길드들은 검은 대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는 적이 바로 다크 헌터들이었다.

생전의 스킬과 아티팩트를 사용해 공격하는 다크 헌터들.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이들 중에는 다크 헌터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전우이자 친구였던 이들이 끔찍한 몬스터가 되어 적으로 나타난 상황.

그나마 올림포스는 아레스 신전에서 있었던 일 덕분에 침착한 분위기를 보였지만.

-어째서 이런 끔찍한…….

-젠장!

대부분 헌터들은 같은 헌터가 몬스터가 되어버린 끔찍한 상황에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안으로 꼭 가야겠어?”

인상을 찌푸린 이진호가 커맨더의 옆에 있던 처용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것도 혼자서?”

이진호의 말속에는 처용을 향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나도 조금 걱정되긴 해.”

옆에 있던 커맨더가 이진호의 말에 동의하듯 말했다.

“이런 상황이기에 사전 정찰은 필수입니다.”

처용이 이진호와 커맨더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교의 성역까지 문제가 발생한 이상, 더 이 일을 질질 끄는 건 좋지 않습니다.”

이번 사고는 천교의 성지에만 터진 것이 아니었다.

하루 전, 이번 사건을 논의하던 임시 세계 헌터 회의 당시.

-처, 천교의 성역에…… 테, 테러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타친핑에 의해 또 하나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엔 신의 성지가 아닌, 신들이 거주하는 성역이 공격을 받았다는 것.

그로 인해 지금 천교는 완전히 아비규환에 빠진 상황이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스미스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다 판단하고.

-이번만큼은 힘을 모아야 합니다. 모두 도와주십시오.

거대 성운의 길드들을 향해 도움을 청했다.

스미스의 말에 대표로 모인 이들이 모두 동의를 표했다.

처용 역시 이번 사건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정확히는.

-제가 직접 ‘검은 대지’ 안으로 들어가 사전 정찰을 해보지요.

사고가 발생한 천교의 성지, 검은 대지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스미스를 포함한 다른 헌터들이 놀람과 우려를 표했다.

그 중 동방불패 길드장 하오찬은 처용을 향해 큰 걱정을 드러냈다.

-위험합니다! 검은 대지를 밟는 순간…….

그는 천교의 성지였던 검은 대지 안으로 조금 진입해 봤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대지를 밟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검은 대지로 진입하는 순간, 검은 마기가 다리를 타고 올라오며 몸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레벨이 높은 헌터들은 어느 정도 저항할 순 있었지만, 계속 버티기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한 번 몸을 잠식하기 시작한 검은 마기는 정말 끈질겼다.

교단의 고위 사제가 신성력을 한껏 퍼부어야 겨우 정화되었으니까.

다행히 빠르게 지원을 온 성자가 잠식된 헌터들과 하오찬을 서둘러 정화한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지금, 이진호와 커맨더가 처용을 걱정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잠식되는 마기의 정화를 제때 한다면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정화의 시기를 놓치고 검은 마기가 몸을 완전히 뒤덮는 순간.

마기에 오염된 헌터는…… ‘다크 헌터’로 변해버린다.

천교의 B급 헌터 하나가 정화 시기를 놓치고 완전히 잠식되어 몬스터가 되어버렸었으니까.

그것이 거대 성운의 길드들이 검은 대지로 곧장 진입하지 못하고 외곽만 청소하고 있는 이유였다.

검은 대지를 밟는 순간 잠식되어오는 마기를 막을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

“조금 경과를 지켜보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커맨더가 처용에게 우려를 담아 의견을 전하자.

“검은 대지가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더 지체하는 건 좋지 않아요.”

처용이 고개를 들고 검은 대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 순간도.

-스르륵. 스륵.

오염된 천교의 성지, 검은 대지가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이대로 시간이 지체되면, 검은 대지가 세계 각지로 번질 테니까.

문제는 당장 영역을 넓히는 검은 대지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

교단의 신성 결계조차도 효과가 없었다.

결국, 검은 대지 조사를 위해 안쪽으로 진입해야만 했다.

다만, 검은 대지 안쪽으로 들어갈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답이 나오지 않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처용이 나서 주었다.

게다가.

“파마의 신력을 지닌 전, 검은 대지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처용은 ‘유일하게’ 검은 대지에 영향을 완벽하게 이겨낼 수 있는 헌터였다.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저 혼자 적진에 돌진하는 것도 아니고 사전 조사를 하러 갈 뿐이니까요.”

자신감이 담긴 처용의 말이 울리자.

“그래도 조심해야 해.”

커맨더가 걱정 어린 씁쓸한 미소를 띠며 격려를 보냈다.

동시에 왼손에 장착된 패널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시작하겠네.”

시간을 본 커맨더가 읊조리듯 말하자.

-쿠구! 쿠구구!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소란스러운 울림이 퍼졌다.

검은 대지 외곽을 정리하던 거대 성운의 헌터들이 검은 대지를 향해 공격을 퍼부은 것이었다.

그 결과.

-캬아아!

-크아아!

검은 대지에서 다량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방어 대형으로!”

그 모습을 본 커맨더가 안드로이드들 향해 명령을 내리며 방어를 준비했다.

동시에 처용에게 눈짓하자.

“그럼, 다녀오죠.”

-파지직!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말하고는 검은 대지를 향해 나아갔다.

검은 대지 외곽에서 소란을 일으켜 안쪽의 몬스터들을 밖으로 유인한다.

그 순간, 처용이 검은 대지로 진입해 안쪽을 조사한다.

이것이 첫 번째 작전이었다.

-탁.

처용이 동화경을 발동하여 손쉽게 검은 대지 안으로 진입했다.

본래라면 작전대로 주변을 정찰하며 검은 대지를 조사해야 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걸 더 조사할 필요는 없지.’

처용은 이미 검은 대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검은 대지가 어떤 원리로 영역을 펼치는지,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헌터 회의에서 이를 말하지 않고 사전 조사를 자처했다.

처용이 세운 계획은 천교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진정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지금부터 이룰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반드시 찾아야 할 것들이 있었으니까.

발걸음을 옮긴 처용은 점점 더 검은 대지 깊은 곳으로 진입했다.

-캬아아!

-크아아!

-으어어…….

시커먼 몬스터들과 다크 헌터들을 지나치며 계속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모든 것이 다 망가진 것 같은데, 이곳에서 찾을 게 있느냐?]

상황을 지켜보던 여래가 처용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검은 대지가 되어도 멀쩡한 장소가 있습니다.’

처용이 여래의 질문에 확신을 담아 답하고는.

‘회귀 전에도…… 와 본 적이 있으니까요.’

눈을 감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회귀 전, 정확히는 지구가 멸망하고 10년도 더 지났을 무렵.

처용은 멸망한 지구에 한번 발을 들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멸망한 지구는 지금의 장소처럼, 전 세계에 검은 대지가 펼쳐져 있었었다.

시스템이 무너지고 악신들에게 점령된 지구는…… 일종의 기지이자 실험실이 되어있었다.

마수들을 번식시키고 ‘어떤 실험’을 하는 기지.

처용이 멸망한 지구에 다시 발을 들인 이유는 악신들의 실험 기지를 박살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당시 어떤 실험의 기지였던 장소.

천교의 성지였던 장소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얻은 단서가 있었다.

천교가 행한 어떤 실험은 그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그것을 준비했었다는 정보였다.

[그것을 없애려는 것이냐?]

처용의 이야기를 들은 여래가 궁금한 듯 물었다.

천교가 벌이는 실험은 미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닙니다.’

처용은 고개를 저으며 여래의 말에 부정했다.

[그럼?]

여래가 다시 묻자.

‘그것들을 제가 차지할 생각입니다.’

처용이 분노를 억누르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이 만든 병기를 빼앗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처용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 병기로 놈들을 갈아 버릴 생각입니다.’

천교가 오랜 기간 공들여 준비한 병기를 강탈하고 그것을 이용해 놈들을 사냥한다.

그것이 처용이 이번 재앙을 벌인 진짜 이유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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