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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72화 (272/726)

#272화

천교의 성지가 쑥대밭이 되어버리는 재앙이 발생하자.

-엄청난 사상자가…….

-천교에서 시스템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의견이 잇따르는…….

-지금 천교는 성지에 벌어진 참사를 수습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세계 각지 언론에서 이 일을 부리나케 다루었다.

천교에서 벌어진 사고는 단순한 사고 정도가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대재앙 수준이었다.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하나의 도심 지역 전체가 무너졌다.

심지어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신의 성지였던 곳.

신성한 땅이었던 장소가 단 하루 만에 파괴되었다.

아니, 단순히 파괴되는 것을 넘어서.

-천교 성지, 몬스터 오지로 변하다?

-천교의 성지였던 베이징 서부, 시커먼 몬스터 출몰…….

몬스터가 출몰하는 던전이 되어 버렸다.

검은 대지가 되어 버린 성지에서 출몰한 몬스터들이 인근 도시까지 습격하고 있는 상황.

가까스로 재앙에서 탈출한 천교의 헌터들이 상황을 수습하려 노력 중이었지만.

그들만으로는 이 대재앙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WHU가 이번 사건을 수습하러 나섰다.

WHU 총장 스미스는 비상령을 선포하고 긴급 세계 헌터 회의를 개최했다.

‘긴급’ 세계 헌터 회의는 기존과는 다르게 각 길드의 길드장과 소수의 실무자들만 참석한다.

하지만 인원수가 준 만큼, 모집 일시는 단 하루였다.

장소는 중국 상하이에 있는 WHU 사무국이었다.

WHU의 부름을 받은 각 거대 성운의 길드 대표들이 하루 만에 상하이로 모였다.

“이렇게 서둘러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상에 올라선 스미스가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표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천교의 성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스미스는 진지한 목소리로 곧장 본론을 이야기하며 들고 있는 태블릿을 조작했다.

-픽.

스미스의 뒤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누군가가 촬영한 듯한 사진과 동영상들이 출력되었다.

처참하게 무너진 천교의 성지가 스크린에 비추어지자.

“크으으음…….”

천교의 대표로 이 자리에 참석한 헌터, 타친핑이 다크서클 가득한 눈을 치켜뜨며 침음을 흘렸다.

“우선, 지금 천교의 상황은…….”

스미스는 스크린에 여러 사진들을 띄우며 현재 상황에 대해 브리핑했다.

“……도심을 습격해 오는 몬스터들은 천교의 헌터들과 동방불패 길드 헌터들이 방어하고 있습니다.”

스미스의 말이 끝나자.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우리도 나서야 했소.”

동방불패 길드의 길드장, 하오찬이 입을 열었다.

“천교의 허락 없이 우리가 함부로 개입한 것은 사과하겠습니다.”

하오찬이 타친핑을 향해 말하자.

“……아니오. 도움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동방불패 길드장.”

타친핑이 어두운 표정으로 지친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솔직히, 마음속으로는 화를 내고 싶었다.

동방불패 길드와 천교는 서로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기로 약조를 했었으니까.

하지만, 성지 주변의 도시가 습격을 받은 순간.

동방불패 길드가 나타나 대피하는 사람들을 도왔고 도시를 습격하는 몬스터들을 몰아냈다.

약조는 어겼지만, 그들이 나타나 도와주지 않았다면, 인근 도시마저 끝장났을 것이다.

명백히, 도움을 받은 것이기에 차마 이 자리에서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천교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곤두박질친 것도 컸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만큼, 희생자들의 유가족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고 있었으니까.

천교를 지지하던 일반 시민들, 독실한 신자들까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

반면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나선 동방불패 길드는 찬양을 받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천교가 동방불패 길드를 배척하기란 불가능했다.

위태위태하게 남아있는 민심마저 사그라질 테니까.

타친핑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WHU의 부름에 응답해 이 자리에 왔지만.

‘젠장…….’

그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이번 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

회의장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낸 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한국의 대표로 참석한 처용이 팔짱을 낀 자세로 나지막하게 질문하듯 말했다.

“명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스미스가 말을 흐리며 잠시 타친핑을 바라봤다.

마치, 해명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우리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타친핑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조커가 한 말은 사실입니까?”

제시카가 타친핑을 바라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천교의 성지에서 제례를 촬영하던 이들로 인해, 조커의 말이 외부로 퍼졌으니까.

“천교의 제례가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의식이었다는 게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제시카의 말에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타친핑에게 몰렸다.

그들 역시 궁금했으니까.

“그럴 리가 없다!”

타친핑이 눈을 치켜뜨며 거세게 반박했다.

“결코! 그럴 리가 없어! 우리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해!?”

타친핑의 고함이 울리자.

“그럼 조커의 이 말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제시카가 차가운 눈빛을 띠며 타친핑을 향해 말했다.

동시에 옆에 있던 메리가 태블릿을 조작했다.

-성지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들을 ‘제물’로 바칠 계획이었던 건가?

태블릿 속에서 조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교의 성지, 사고가 일어나기 전 조커가 했었던 말이 녹음된 파일이었다.

“조커의 말대로 대재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드르륵.

제시카가 타친핑을 향해 말하다 말고 분노가 일렁이는 눈빛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 아테나 님께 시스템에 균열이 일어났다고! 직접 들었습니다!”

타친핑을 향해 분노를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

천교의 성지에 재앙이 펼쳐진 후, 올림포스의 주신은 시스템의 이변을 감지했다.

그리고 시스템의 이변을 감지한 것은 아테나만이 아니었다.

“태양신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소.”

파라오 길드의 대표로 참석한 라진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스템의 이변이 발생했다고…….”

“아스가르드의 주신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라진의 말에 토르의 신관, 루이스가 의견을 더했다.

그는 성좌인 토르에게서 오딘이 전한 말을 들은 것이었다.

제시카에 이어서 라진, 루이스까지 입을 열자.

“저희 역시…….”

“방금 성좌님께 여쭤보니까. 시스템이 손상을…….”

“저희 성운도…….”

각각 대표로 참석한 헌터들이 입을 열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같았다.

시스템에 손상이 발생했다.

조커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는 증거였다.

“이이……!”

타친핑이 주먹을 쥐며 이를 갈고는.

“미쳤다고 우리가 신도들을 희생해!? 정녕 이번 일을 우리가 고의적으로 벌였다고 생각하는가!?”

답답한 감정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천교는! 이번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단 말이다!”

그간 쌓아 둔 감정을 터트리듯, 타친핑이 호소하자.

“……천교 부길드장의 말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메타트론의 신관, 라리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십시오. 정말 이번 일을 몰랐습니까?”

라리네가 타친핑을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 속에 옅은 신성력이 섞여 있었다.

동시에 안대로 가린 라리네의 눈 부분에서 푸른 빛이 일렁였다.

정의의 대천사 미카엘에게서 하사받은 진실의 눈.

그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난 전혀 몰랐다!”

타친핑이 벌게진 눈으로 라리네를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마인들과 한배를 탄 것은 사실이다.

천교가 대악마들과 동맹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벌어진 사고만큼은 절대로 고의가 아니었다.

“정말이오. 이번 일은…… 절대로 우리가 계획한 것이 아니었소.”

타친핑의 옆에 있던 나타의 신관, 양천이 눈을 감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결백합니다.”

“같은 천교의 교인들을 희생시키다니! 그럴 수는 없습니다!”

뒤에 있던 다른 천교 소속 헌터들이 의견을 더했다.

그들의 말을 모두 경청한 라리네는.

“……모두 진실입니다. 거짓은 없습니다.”

퍼트렸던 신성력을 거두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처용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표로 참석한 헌터.

커맨더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말에 다른 헌터들 역시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왜 천교에 재앙이 발생했고 조커의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회의장 내부에 답답한 공기가 흐를 때.

“조커는 천교의 헌터들에게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었어.”

침묵하고 있던 처용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시카가 궁금한 듯 묻자.

“커맨더, 그 영상을.”

처용이 커맨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이걸 봐 주십시오.”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왼손에 장착된 패널을 조작했다.

-피이이!

작은 드론이 떠오르며 회의장 중앙에 TV 화면과 같은 홀로그램이 펼쳐졌다.

그러자.

-당장, 이 빌어먹을 제사를 멈추라고 전해줬으면 좋겠어. Bro.

조커의 모습이 촬영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세간의 뉴스에 퍼진 영상이나 사진보다 더 선명하고 더 가까이 찍힌 영상.

“이건, 조커가 구한 생존자 중 한 명이 찍은 영상입니다.”

조커의 공간 이동 마법으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

그들 중에는 천교의 제례를 가까이서 촬영하던 방송국 카메라맨이 있었다.

재앙이 일어나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영상이 쭉 이어지자, 회의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집중하여 바라봤다.

카메라맨이 찍은 영상은 처용과 커맨더가 나타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이렇게 저희는 북한을 사전 탐사하던 도중, 조커와 마주했었습니다.”

커맨더가 영상을 종료하며 말을 마치자.

“조커는 천교의 ‘성좌’들을 향해 말한 겁니다.”

처용이 꺼진 영상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저 영상을 보고 유추해보면…….”

“이번 사태를 벌인 것은, 천교 길드가 아닌…… 성운이란 말입니까?”

조용히 회의를 지켜보던 스미스가 처용의 말을 잇듯,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능성은 충분하죠.”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회의장 내부에서 소란이 일렁였다.

그러자.

“억측하지 마라! 역천군주!”

타친핑이 처용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성좌님들께서 왜 그런-!”

점점 목소리를 높이는 타친핑이 거세게 반박하려는 때.

“대악마 흉수악신.”

처용이 타친핑의 말을 끊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개새끼가 저지르려던 짓을 잊었나?”

“……설마?”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며 읊조렸다.

그 모습에 처용이 작은 미소를 짓고는.

“‘그분’을 위한 제물이 되어줘야겠다, 분명 놈이 이렇게 말했었죠.”

세계 헌터 회의 당시, 흉수악신이 했었던 말을 언급했다.

“흉수악신이 말한 ‘제물’, 조커가 말한 ‘제물’, 왜 난 둘이 비슷하다고 느껴질까요?”

처용의 말이 울리자.

“그때 흉수악신이 저지르려던 짓과 이번 일이 흡사합니다!”

제시카 역시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소리치며 말했다.

천교의 전 고위 성좌, 천수(天守)의 신 이랑진군.

그의 진짜 정체는 대악마 흉수악신이었다.

-네놈들 전부! ‘그분’을 위한 제물이 되어줘야겠다!!

세계 헌터 회의 당시, 본 모습을 드러낸 흉수악신이 외쳤던 말.

그는 불길한 마기를 내뿜으며, 현장에 있는 모든 헌터들을 죽이기 위한 권능을 발동했었다.

그 당시에는 처용과 신법의 대신이 대비를 하였기에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대비가 없었다면?

흉수악신의 말대로 현장에 있는 모두가 ‘제물’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불길함이 확 전해질 정도로 시커먼 마기에 잡아먹히면서 말이다.

제시카는 그 당시 흉수악신이 저지르려던 짓과 이번에 벌어진 사고가 매우 흡사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흉수악신과 같은 자가 이번 일을 벌인 것이라면?”

의문 섞인 제시카의 말이 끝나자.

“이거 일이 생각보다 더…….”

“배신한 성좌가 또 있었다니…….”

회의장 안에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일렁였다.

“무, 무슨……!?”

회의장의 분위기에 타친핑이 당황스러운 듯 말했다.

양천과 몇몇 천교의 헌터들 역시 서로를 바라보며 당황스러움을 표했다.

‘태상노군이시여.’

타친핑은 이 일을 보고할 필요가 있다 판단하고 눈을 감으며 자신의 성좌를 불렀다.

그러자.

-지금 네놈의 보고를 받을 때가 아니니라!

태상노군의 격한 목소리가 타친핑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타친핑은 작게 인상을 찌푸리고는.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재빠르게 작금의 회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성역이 공격을 받았다! 지상에 신경 쓸 여유가…….

태상노군에게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예? 그게 무슨……!?”

타친핑이 얼굴이 와락 일그러뜨리며 침음을 흘렸다.

“호법신(護法神)이시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양천 역시 자신의 성좌인 나타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인데, 벌써 놀라면 안 되지.’

속으로 기대감 어린 잔혹한 미소를 감추어 보이며 읊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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