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조커에 의해 구출된 사람들은 커맨더가 헌터 협회로 인도했고.
-우우웅.
처용은 곧장 게이트를 열고 태룡전으로 돌아왔다.
‘후…… 일단은 순조롭군.’
태룡전으로 돌아온 처용이 조금 전 일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안도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천교의 제례는 문제없이 진행되었어야 했었다.
그들이 성지에 지은 정교한 건축물, 중앙의 제단과 외곽에 세워진 검은 탑들.
그 건물들의 중심에는 각각 크타니드의 신력이 깃든 판테라움이 핵으로 자리해 있었다.
파멸의 권능이 깃든 핵.
의식이 시작되면 ‘증폭기’의 역할을 하는 외곽의 탑들이 에너지를 분출한다.
분출된 에너지가 중앙의 제단으로 모이고 시스템의 장막을 일부분 뚫어내기 시작한다.
시스템의 장막이 뚫리면…… 시스템에 보호를 받던 지구에 위험이 들이닥친다.
단순한 위험 정도가 아니라, 세계의 국가들이 뒤흔들릴 정도로 큰 재앙이 발생한다.
게다가 천교가 행하는 제례는 단순히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례를 완벽하게 막기 위해선 ‘모든 제단’을 파괴해야 하니까.
지상뿐 아니라, 신계, 그리고 판데모니움에 세워진 제단까지.
총 세 개를 전부 부숴야 막을 수 있었다.
이것이 회귀 전 뒤늦게나마 알아냈던 방법이었다.
지상의 제단은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었고 천교의 성역에 지어진 제단도 무너뜨릴 방법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판데모니움에 세워진 제단.
그것만큼은 당장 무너뜨릴 방법이 없었다.
놈들의 계획을 지금으로서는 완전히 막을 수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계획대로…….’
미래의 지식이 있는 처용에는 ‘차선책’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처용이 이 계획을 떠올린 건, 여래에게서 신계의 제단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즉 신계의 제단은 해결된 상황.
그런 와중에 패웅무신이 큰 부상을 입고 태룡전에 찾아온 사건이 발생했다.
패웅무신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검은 칼날.
악의 종주가 가진 권능, 파멸의 힘이 담긴 조각을 얻은 순간.
처용의 머릿속에 모든 계획이 완성되었다.
천교의 제례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처용이 조커로 분장해 나타난 이유도 계획의 일환이었다.
첫째는 자신에게 쏠린 세간의 이목을 조금 돌리기 위해서.
그리고 두 번째는 천교의 이미지에 더 큰 타격을 주기 위해서였다.
조커는 마인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집단, 섀도우 헌터들의 수장이었다.
그런 조커가 천교의 성지에 직접 나타나.
-시스템의 장벽을 무너뜨리려 한다라…… Bro들은 제정신인가?
천교가 행하는 제례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폭로한다.
이것만으로도 세계에 소란이 일렁일 정도였다.
천교가 마인들과 손을 잡고 재앙을 일으키려 한다는 분위기를 만든 후.
진짜 재앙을 일으킨다.
이것이 준비한 계획이었다.
그 계획을 위해 처용이 만들어낸 식신, 파멸의 권능이 담긴 보석을 짊어진 작은 거미.
그 거미의 역할은 검은 탑을 무너뜨리는 폭탄 역할이 아니었다.
파멸의 권능이 담긴 검은 탑에 파멸의 권능을 더하는 것.
오히려 증폭기의 역할을 하는 탑에 더욱 힘을 실어 주는 셈이었다.
탑에서 분출되는 에너지가 증폭되는 것을 넘어서 홍수처럼 흘러넘치도록 만들었다.
결국, 천교가 정교하게 계산한 에너지의 균형이 무너지고 과부하가 되어버린 힘이 제단으로 모여든다.
제단으로 모인 힘은 안정되지 않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파멸의 권능이 담긴 에너지의 폭주.
그 결과, 천교의 성지 전체에 ‘파멸의 권능’이 담긴 비가 내렸다.
모든 사람들이 잿더미가 되어 사그라지고.
건물, 가축, 동물 등 사고가 발생한 모든 지역이 파괴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발생했다.
그 와중에 조커는 재앙을 막기 위해 노력했고 일부 사람들까지 구해냈다.
심지어 커맨더와 처용, 한국의 헌터들이 사람들을 구한 조커를 목격했다.
이것으로 조커가 재앙을 일으켰다는 의심을 받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현장에 있었던 조커와 처용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다녀왔습니다.”
태룡전 안으로 처용이 들어오자, 여래와 보살, 미륵이 고개를 돌려 처용을 마주했다.
[성공했구나. 제자야.]
여래가 처용을 반기며 말했다.
“네…… 성공했죠.”
여래를 마주 본 처용이 어두운 분위기를 띠며 말했다.
다름 아닌 조금 전 저지른 대학살 때문이었다.
죄책감 같은 감정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천교를 따르는 이들을 학살한 것에 후련하고 개운한 감정이 일렁였다.
악몽 속에서 다시 마주했었던 회귀 전, 과거의 트라우마.
그 일을 겪은 이후로 처용의 마음속에 자라난 복수심이 한층 더 짙어졌으니까.
처용의 심상 세계가 변한 것이 그 증거였다.
다만.
‘달가워하지 않으실 테지.’
눈앞에 있는 세 명의 성좌들은 처용이 저지른 학살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여래는 과거 신계에 피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처용은 수십 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보냈기에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여래는 선인(仙人)이다.
다른 두 성좌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자비의 대신, 보살은 더더욱 이번 일을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이번 재앙으로 인해 일반 시민들도 무수히 희생되었으니까.
그러나.
[혼자서 무거운 짊을 짊어지려 하지 말거라.]
여래가 처용의 심상(心想)을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네?”
처용이 의문을 표하자.
[지금쯤…… 슬슬 시작되었겠군.]
여래가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평소의 여래와는 다르게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폭탄…….”
처용은 여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채고는 읊조렸다.
[이것만큼은 명심해 두었으면 좋겠구나. 제자야.]
여래가 차가운 분위기를 지우고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품속에서 붉은 문자가 쓰인 검은 부적을 꺼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촤아악!
마지막 말을 마친 여래가 품속에서 꺼낸 검은 부적을 찢어 보였다.
***
천교의 성역, 옥황상제가 거주하는 하늘궁의 중심.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이다!!”
드높은 옥좌에 앉아 있는 옥황상제의 입에서 격노 섞인 고함이 울려 퍼졌다.
“분명!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하지 않았느냐!”
평소 무게감을 잡으며 근엄한 분위기를 내는 옥황상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
그만큼, 그는 지금 분노한 상태였다.
“태상노군!”
옥황상제가 태상노군을 부르자.
“예, 상제시여.”
태상노군이 고개를 깊게 숙여 보이며 긴장감을 담아 말했다.
“이 일이 어찌 된 것인지 상세히 고하라!”
옥황상제의 고함이 울리자.
“성지에 조커라는 하계종이 나타났었습니다. 그리고…….”
태상노군이 성지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시작되기 직전 나타난 조커.
그가 한 행동과 했었던 말들.
이후 의식이 시작되며 터진 사고까지.
자신이 보았던 모든 일들을 옥황상제에게 상세히 고했다.
태상노군의 말을 쭉 들은 옥황상제는.
“어째서 사고가 일어난 것인가?”
차가운 분노가 울렁이는 목소리로 휘하 성좌들을 보며 물었다.
“…….”
“…….”
옥황상제의 분노에 모두가 침묵하자.
“짐은 그대들에게 입을 다물라 명하지 않았느니라!!”
-쿠구구!
하늘궁이 크게 울릴 정도로 옥황상제의 격노가 울려 퍼졌다.
“의, 의식이 진행되던 와중, 갑자기 검은 탑에서 에너지가 과하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태상노군이 대표로 떨리는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에너지가 넘치자, 제단이 폭주를 일으켰습니다.”
“왜 검은 탑에서 에너지가 넘친 것이냐?”
옥황상제가 태상노군을 향해 말하자.
“그, 그건…… 소신(小臣)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상제.”
태상노군이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검은 탑이 에너지를 과하게 증폭시켰다라?”
옥황상제가 태상노군의 말을 듣고 차갑게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성지 외곽에 세워진 검은 탑.
그것은 제단에 모여드는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가진 건축물이었다.
단, 무한히 증폭하는 것이 아닌, 제단이 감당할 정도로 적절하게 증폭시키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설계 구조상, 제단을 폭주시킬 정도로 에너지를 증폭시킬 수도 없었다.
건축되기 전부터 그렇게 설계도를 짜고 건축한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검은 탑을 설계하고 제단의 구조를 만든 것은 옥황상제였다.
설계자인 옥황상제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사고가 일어날 리가 없다는 것.
즉.
“본 상제가 실수를 저질렀다 이 말이더냐?”
검은 탑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설계자인 옥황상제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의미였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상제!”
옥황상제의 싸늘한 목소리에 태상노군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설계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곳 성역의 제단 역시 문제가 발생했어야 하옵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이더냐!”
옥황상제의 입에서 재차 고함이 울려 퍼지자.
“하계의 병사들을 시켜 원인을 조사해 보겠습니다. 고정하시옵소서. 상제.”
태상노군이 상황을 수습하려는 듯, 침착을 유지하며 말했다.
“허…….”
분노가 일렁이는 한숨을 내쉰 옥황상제가 눈을 감고는.
“하계의 피해는 얼마나 되는 것이냐?”
인상을 펴듯 이마를 문지르며 휘하 성좌들에게 물었다.
“다행히 주요 신관들과 정예 병사들 대부분은 무사히 대피했습니다.”
나타가 옥황상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계속 고하라.”
옥황상제가 나타의 말에 짧게 물었다.
마치 뒤에 무언가가 더 있지 않냐는 듯한 물음이었다.
“…….”
나타가 잠시 침묵하고는.
“하계의 병사들 중 절반 이상이…… 이번 일로 인해 소멸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나쁜 소식들을 전했다.
천교는 이번 사태로 인해 헌터들 중 절반 이상을 잃었다.
거대 성운 중 하나인 천교가 다스리는 천교 길드.
천교가 거대 길드 중에서도 유독 전력이 강한 이유는 바로 ‘인원수’ 때문이었다.
지상에 존재하는 거대 길드 중 가장 헌터들의 인원수가 많은 길드가 천교였으니까.
그런 천교 길드원 중 절반 이상이 죽어버렸다.
인원수로만 따지면 다른 거대 길드 하나가 단체로 몰살당한 정도.
단순히 큰 피해인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막심한 인명 피해였다.
“크으으음……!”
나타의 보고에 옥황상제가 분노를 참는 듯 침음을 흘렸다.
너무나도 뼈아픈 손실이었으니까.
그러나 좋지 않은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성지의 7할 정도가…… 죽음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나타가 눈을 감으며 추가로 보고했다.
앞서, 절반의 병사들이 죽은 것보다 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검게 변한 땅 위로는-.”
나타의 보고가 계속 이어질 때마다.
-우드드!
옥황상제가 분노를 참는 듯 옥좌 팔걸이를 거세게 쥐어 보였다.
결국.
-콰지지직!!
옥황상제의 손아귀에 의해 옥좌 팔걸이가 으스러지며 부수어졌다.
그 모습을 본 천교의 하위 성좌들이 두려운 듯 몸을 웅크렸다.
“……천교의 신하들은 들으라.”
옥좌에서 일어난 옥황상제가 매서운 눈빛으로 성좌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본 상제는 이 사태를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일으켰다 생각하느니라.”
제단을 건설하고 대격변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
엄청난 준비를 하였고 혹시 모를 사고가 생기지 않기 위해 세심한 공을 들여 작업했다.
몇 번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주기적으로 상황을 점검했다.
사고가 일어날 리가 없었다.
옥황상제는 현장에 나타났었던 조커가 이번 일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별들을 움직여 조커라는 하계종과 그 졸개들을-!”
생각을 마친 옥황상제가 휘하 성좌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직전.
-쿠구!
돌연, 천교의 성역 전체가 지진을 맞은 듯 흔들렸다.
말이 끊긴 옥황상제가 눈살을 찌푸릴 때.
-쿠구구!
한 번 더 지면이 강하게 울려왔다.
“……무어냐!?”
신경이 거슬린 옥황상제가 손을 들어 크게 허공을 휘젓자.
-화아아아.
옥황상제의 앞, 하늘궁 대전 중앙에 구름이 모여들었다.
구름이 뭉친 정중앙이 거울처럼 일렁이더니, 천교의 성역 외부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는 천교 성역에 지어진 거대한 제단이 비추어졌다.
-쿠구구구!
재차 지면이 울리더니.
-슈우우…….
성역에 지어진 제단에서 시커먼 에너지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설마?”
그 모습을 본 옥황상제의 머릿속에 불안감이 차올랐다.
“당장! 제단을 수습해라!”
옥황상제가 다급하게 명령을 내린 순간.
-푸화아아아아!!
제단에서 시커먼 불길이 솟구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쿠구구!!
폭발로 인해, 제단 전체가 마치 로켓이 된 듯 허공 위로 솟구쳐올랐다.
모두가 멍한 표정으로 하늘 위로 솟구친 제단을 바라볼 때.
-쩌저적! 피이이!
제단에 균열이 번지며 검은빛이 새어 나왔다.
이윽고.
-콰콰콰콰콰콰콰-!!
사방에 검은 불덩어리들을 토해내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검은 불덩어리들이 성역 전체에 떨어지며 성역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으악!
-아악!
천교의 성역 전역에서 주민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쿠구구! 쿠콰콰!!
지상으로 하락한 검은 불덩어리들이 추가 폭발을 일으켰다.
검은 불길이 솟구치며 타오르는 천교의 성역.
천교에서 일어난 두 번째 재앙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