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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70화 (270/726)

#270화

조커의 부탁에 잠시 침묵한 타친핑은.

“무슨 생각이냐?”

불안감을 억누르고 조커를 향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천교는 마인들과 동맹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자들은 자신을 포함한 천교의 고위직들 뿐이었다.

아무리 조커가 섀도우 헌터들의 수장이라 해도,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아니, 의심은 할 수 있었다.

당장 올림포스와 동방불패 길드만 해도 천교의 뒤를 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천교가 마인들과 동맹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체르노빌의 일이 있었음에도 무사히 넘어갔으니까.

그러나.

‘도대체 조커가 왜……!’

마인들과 적대하는 섀도우 헌터들의 수장, 조커가 나타났다.

심지어 그가 제례를 멈춰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조커가 무슨 생각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타친핑의 머릿속에 무언가…… 무언가 강렬한 불안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왜 여기에 나타난 것이냐? 조커!”

타친핑이 소리치듯 다시 묻자.

“내 부탁에 대한 답부터 해줬으면 좋겠는데 Bro?”

조커로 변장한 처용이 진지하게 되물었다.

“천교의 중요한 제례다! 네놈이 함부로 멈추라, 마라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타친핑이 인상을 쓰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천교의 Bro들이 마인들과 거래한 건 알고 있었어.”

처용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Bro들을 건들지 않았던 건, 마인들과 ‘거래’만 했기 때문이야.”

모두가 들으라는 듯 울린 조커의 목소리에 타친핑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다른 천교의 헌터들 역시 불편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 처용은.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야.”

목소리를 낮게 깔며 읊조리듯 말했다.

“시스템의 장벽을 무너뜨리려 한다라…… Bro들은 제정신인가?”

낮은 목소리였지만.

-무…… 저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이 제례가 시스템을 무너뜨린다고?

모두가 조커의 말을 들었다는 듯, 서로를 마주 보며 떠들기 시작했다.

“무슨 개소리냐!?”

타친핑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지금 진행하는 제례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시스템의 장벽을 무너뜨리려 한다고?

금시초문이었다.

“이 이상 망언을 내뱉으면 네놈을 처단할 것이다!”

타친핑이 마나를 내뿜으며 경고하듯 말하자.

-스릉. 스르릉.

천교의 헌터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천교의 부길드장 Bro는 정말 몰랐던 모양이네?”

타친핑을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때.

[누가 감히!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느냐!?]

-화아아!

하늘 위에서 빛이 내리치며 태상노군이 나타났다.

-화아아!

-화악!

태상노군에 뒤이어 다른 천교의 성좌들도 차례차례 강림했다.

[하계종 따위가 감히! 신성한 의식에서 난동을 부리다니!]

-파지지직!

태상노군이 처용을 향해 번개를 쏘아 보내자.

‘암영보(暗影步).’

-스르륵.

처용의 몸에 어둠이 휩싸이며 사라지더니, 열 걸음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주로 사용하던 질풍신뢰를 쓰지 않은 이유는 조커를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용이 태상노군의 벼락을 피한 순간.

“태상이시여…….”

타친핑이 조심스럽게 태상노군을 불렀다.

조커는 세상에 위협이 되는 마인들과 대적하는 인물로 알려진 자였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조커를 함부로 공격하는 것은 이미지상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시끄럽다!]

태상노군은 자신의 신관이 표한 조심스러운 우려를 무시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작은 미소를 띠더니.

“……아, 그렇군. 그런 목적이었군.”

태상노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시스템의 장막을 뚫어내는 에너지를 어디서 만드나 했더니…….”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흐리자, 다시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성지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들을 ‘제물’로 바칠 계획이었던 건가?”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마나를 실어 말했다.

그러자.

-……제물?

-저게 무슨 소리야?

주변에서 다시 소란이 일렁였다.

[감히! 하찮은 혓바닥으로 신성한 의식을 더럽히려 하느냐!]

-파지지직!

태상노군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다시 번개를 쏘아 보냈다.

[당장! 저 버릇없는 하계종을 죽여라!]

태상노군이 명령하듯 소리치자 몇몇 성좌의 화신체들이 처용의 주변에 나타났다.

그때.

-쿠구구!

지면이 세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점점 더 강도가 높아지는 듯, 흔들림이 심해지더니.

-콰아아아!!

성지 외곽에 세워진 탑에서 검은빛이 솟구쳐 올라갔다.

[신성한 의식이 시작되었구나!]

태상노군이 두 손을 하늘로 뻗으며 환희를 표하듯 소리쳤다.

그러나.

-콰아! 콰아아아아!!

탑에서 솟구치는 검은 빛줄기가 점점 더 거세지고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음?]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듯, 태상노군의 입에서 의문이 흘러나왔다.

-쿠구! 쿠구구!

검은 빛줄기의 영향인지 하늘이 점점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날씨가 안 좋아지는 것처럼 먹구름이 일렁이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검은 물감이 번지듯, 하늘이 새까매지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태상노군이 하늘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원래는 기둥들에서 퍼진 에너지가 하늘에 닿고 다시 제단으로 모이며 ‘문’이 열렸어야 했다.

하지만 탑, 증폭기에서 퍼진 에너지가 예상을 넘어섰다.

아니, 넘어서는 것을 넘어서…….

-슈르르! 쿠구! 쿠구구!

강렬하게 솟구치는 에너지가 흘러넘쳐 요동치고 있었다.

“이런……!”

그 모습을 본 조커, 처용이 침음을 흘리고는.

“타친핑 Bro!”

타친핑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죽기 싫다면! 당장 사람들을 이끌고 여기서 도망쳐라!”

“무슨 소리를-!?”

처용의 말에 타친핑이 의문을 다 뱉기도 전에.

-주르륵! 주륵! 주륵!

하늘에서 검은 무언가가 흘러내리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마치 비눗방울처럼, 작게는 탁구공, 크게는 배구공 크기의 검은 물방울들이 느릿느릿 쏟아졌다.

-철퍽!

가장 먼저 떨어진 물방울에 사람 한 명이 맞았다.

“어-?”

물방울에 맞은 사람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파사사사…….

바람에 흩날리는 잿더미처럼 흩날리며 부수어져 내렸다.

-파사사…… 파사사삭!

몇몇 사람들이 추가로 물방울에 맞으며 먼지가 되듯 사그라지자.

-꺄아아아!

-으아아!

성지 내부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그때.

“저지먼트 헤븐.”

-화아아!

두 손을 모은 처용이 성자의 스킬을 발동했다.

-파삭! 파사삭!

쏟아지는 검은 물방울들이 저지먼트 헤븐에 닿으며 사그라졌지만.

-화아아…….

곧 한계에 달했는지 환하게 퍼지던 빛이 점점 흐려졌다.

애초에 검은 물방울이 쏟아지는 범위는 천교의 성지, 도시 전체였다.

고작 저지먼트 헤븐만으로 막을 수 있는 재앙이 아니었다.

“이런 빌어먹을 재앙이라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Bro.”

처용이 굳은 목소리로 타친핑과 태상노군을 향해 말하자.

“내, 내가 할 말이다! 이게 도대체……!?”

두 눈이 휘둥그레진 타친핑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답했다.

그리고.

“태상이시여!”

다급한 목소리로 태상노군을 불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인지 알아야 했으니까.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계산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다.]

태상노군은 눈앞에 벌어지는 재앙을 바라보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젠장! 천교 길드는 모두 대피하라!”

결국, 타친핑이 헌터들을 지휘하며 후퇴를 명령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Bro들이 오늘 벌인 일은 내 잘 기억해 두지.”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동시에.

-우우웅.

마나를 내뿜으며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전, 체르노빌 발전소 내부에서 조커가 보였었던 공간 이동 마법진과 같은 모양이었다.

마법진이 완성되기 전.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도와주세요!”

“저희도……!”

일부 사람들이 처용에게 모여들며 간절하게 말했다.

그러자.

“Bro들은 운이 참 좋아.”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모여든 사람들을 처용이 밀어내지 않자.

“저, 저희도!”

“살려 줘!”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다급하게 처용 근처로 더 모여들었다.

이윽고 마법진이 완전히 완성된 순간.

-화아아!

검은 그림자가 처용과 주변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뒤덮었다.

그림자가 돔처럼 사람들을 덮고 주변의 시야를 가렸을 때.

-샤락.

처용이 품속에서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게이트를 열었다.

-우우웅.

게이트로 인해 처용과 검은 그림자 장막에 휩싸인 사람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파아아!

돔처럼 뒤덮은 그림자 장막이 걷어지며 사람들이 시야가 환해졌다.

“여, 여기는?”

“우, 우리는…… 살았어?”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며 말할 때.

“이건…… 무슨 상황이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람들을 보며 당황한 커맨더가 경계하듯 입을 열었다.

“커, 커맨더?”

“역천군주?”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이 놀란 듯 소리치며 말했다.

조커에게 붙어 어디론가 이동되더니 눈앞에 커맨더와 처용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타난 이 장소는 다름 아닌 북한이었다.

정확히는 과거 북한의 수도였던 개성, 버려진 도시 중앙이었다.

커맨더는 다른 헌터들과 같이 도시 주변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며 둥근 돔이 생기더니 사람들이 나타난 상황이었다.

커맨더가 상황을 파악하려 할 때.

“아…… 북한 정벌이었나? 벌써 여기까지 왔었군?”

사람들 중앙에 있던 조커, 변장한 처용이 커맨더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조커…… 이건 무슨 상황이냐?”

커맨더의 옆에 있던 처용이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한테 물어보라고 Bro.”

조커로 변장한 처용이 같이 이동한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하고는.

“난 이만 실례하지.”

-스르륵.

검은 그림자로 몸을 감싸더니, 신기루처럼 일렁이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커맨더의 옆에 있던 처용은.

“거기 서!”

-파지직!

조커를 추적하겠다는 듯, 뢰신보를 발동하며 사라졌다.

처용과 조커가 사라지자.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커맨더가 대략 삼십 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기, 기사를-.”

사람들 중 누군가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말에.

-띠리릭.

커맨더가 왼팔에 장착된 패널을 두들기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이, 이게…… 무슨?”

눈앞에 떠오른 기사와 동영상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파지직!

조금 전 조커를 추적하기 위해 사라졌었던 처용이 다시 나타났다.

“망할 광대 새끼, 도망 하나는 끝내주게 잘 치는군요.”

조커를 놓친 듯 보이는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후배, 이것 봐.”

커맨더가 처용에게 조금 전 보았던 인터넷 기사를 보여주었다.

-천교의 성지, 재앙이 벌어지다

-천교에서 행해지는 제례가 시스템을 무너뜨리려 했다?

-천교에 나타난 조커……

빠른 속도로 갱신되고 있는 기사들이 처용의 눈에 보였다.

“이거 아무래도…….”

처용이 기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읊조리듯 말을 흘리자.

“사전 조사는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커맨더가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고가 터져도 아주 초대형 사고가 터졌군요.”

처용이 진지한 표정으로 기사를 보며 말함과 동시에 속으로 미소를 삼켰다.

“일단, 이분들을 협회로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수송기를 쓰면 되니 걱정하지 마.”

커맨더가 처용의 말에 답하고는.

“마키, 이쪽으로 수송기를 하나 보내 줘.”

왼손의 패널을 조작하며 말했다.

그러고 잠시 뒤.

-피이이이!

여덟 개의 엔진이 달린 넓적한 형태의 수송기 한 대가 도착했다.

동시에 북한, 개성 주변에 퍼졌던 헌터들도 모여들었다.

“이게 무슨 난리야? 이 사람들은 또 뭐고?”

막 도착한 이진호가 커맨더를 향해 묻자.

“천교에 사고가 터졌어.”

커맨더가 홀로그램 기사를 보여주며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조커에 의해 구출되었던 사람들과 북한을 조사하던 헌터들이 모두 수송기에 탑승하고.

“난 우선 협회로 돌아가서 협회장님부터 만나볼게.”

커맨더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 성역을 들렀다 가겠습니다.”

“알았어.”

처용이 답하자 커맨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키이이! 피이!

이륙하는 수송기를 따라 하늘로 날아오르고는 곧장 협회로 향했다.

점점 멀리 사라지는 수송기와 커맨더를 바라본 처용은.

-우우웅.

곧장 태룡전의 열쇠를 이용해 게이트를 열어 발걸음을 옮겼다.

성역으로 향하는 처용의 얼굴에는.

‘계획대로군.’

짙은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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