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69화 (269/726)

#269화

천교의 성지에 조커가 나타나기 하루 전.

정확히는 패웅무신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처용이 성지에 있는 협회 지부를 찾아갔다.

“북한을 정리하자고?”

커맨더가 처용의 꺼낸 이야기에 의문을 표했다.

“네, 이번 기회에 거기를 싹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처용이 이전부터 계획했었던 바라고 말을 덧붙이며 말했다.

“북한이라…….”

-탁. 탁.

성지로 찾아온 협회장이 의자 팔걸이를 두들기며 고민하듯 침음을 흘렸다.

“사실 지금 북한을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태민이 모두가 들으라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순히 처용의 의견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서 나름 계산한 결과였다.

“지금의 저희는 예비 전력이 많으니까요.”

태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본래 한국은 소수의 최정예 헌터들이 활약해준 덕분에 나라가 안정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헌터가 바로 커맨더, 그리고 권백호 등 그의 파티원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수 정예를 제외하면 타국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러나.

“모두 처용 님 덕분입니다.”

태민의 말대로 처용이 협회를 본격적으로 돕는 순간 판도가 바뀌었다.

가장 먼저 정예 헌터라고 할 수 있는 A급 헌터들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특히, 백호가 이끌던 협회의 정예들.

그들은 모두 A급 헌터가 되었고 각각 다른 헌터들을 이끄는 협회의 팀장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 일부는 최강의 스킬이라고 할 수 있는 결전기를 익혔다.

지금 시기에 A급 헌터들 중 결전기를 가진 이는 정말 손에 꼽는다.

같은 A급 헌터라 해도 결전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전력 차이가 상당했다.

백호만 해도 같은 A급 헌터 5명을 순식간에 정리해 버릴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확실히, 스피릿 팀이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전력에 문제는 없겠군요.”

협회장이 태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스피릿(Spirit).

성지, 정확히는 한국 헌터 협회에 소속된 이종족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여러 의미를 가진 말이었지만,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이기도 했다.

인간이나 이종족이나 똑같은 사람(人)으로 보는 것.

스피릿 팀(Spirit Team)은 협회장이 차별을 없애기 위해 만든 새로운 조직이었다.

협회 내부에서 이종족들과 헌터들이 짝을 이뤄 만들어진 새로운 팀.

예시로 추기경의 청량리 테러 당시 활약했었던 김정훈과 조인족 대장 차루스 호크가 서로 팀이었다.

“헌데, 굳이 북한을 정리하려는 이유가 있나요?”

협회장이 처용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몬스터 오지 중 하나인 북한, 말 그대로 몬스터만이 가득한 장소.

굳이 처용이 그곳을 정벌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일단 첫 번째, 가까운 곳에 몬스터 오지가 있는 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처용이 협회장의 말에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몬스터 오지는 온갖 이계의 야생 환경이 지구에 펼쳐진 장소였다.

던전을 빠져나온 몬스터들이 독자적으로 환경을 구축하고 번식하는 지역.

점점 수가 늘어나는 몬스터들은 오지를 뛰쳐나와 가장 가까운 마을이나 도시를 습격해 온다.

과거 북한과 남한을 나누던 휴전선.

지금은 그 장소에 거대한 강화 콘크리트 장벽이 펼쳐져 있었다.

수시로 침략해오는 몬스터들을 막는 용도였다.

현재, 지금 시기에는 굳건하게 잘 버티는 듯한 분위기였지만.

‘그 장벽이 몇 년 뒤에 무너지고 한국이 난장판이 되니까.’

처용은 미래에 그 장벽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기에 조치하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몬스터 오지에서 얻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몬스터 오지에서?”

백호가 처용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묻자.

“몬스터 오지는 이계의 생명체들이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며 펼쳐진 독자적인 생태계입니다. 그곳에는-.”

처용이 작인 미소를 띠며 답하기 시작했다.

몬스터 오지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떤 이득이 발생할지 등.

그리고.

“오지에 펼쳐진 생태계 중 일부는 그대로 유지하고 활용할 생각입니다.”

정벌한 몬스터 오지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설명했다.

“확실히, 성공적으로 정벌만 한다면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협회장이 처용의 의견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몬스터 오지를 정벌하는 것으로 소재만 얻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영토(嶺土)였다.

그것도 그냥 영토가 아닌,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넓은 영토를 얻는 것이었다.

“하지만…… WHU랑 세계 각국에서 태클을 걸 수도 있습니다.”

태민이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영토에 관련된 문제는 민감했으니까.

그러나.

“당장 아마존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한테 뭐라 할 입장은 못되지요.”

처용이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듯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번 몬스터 오지 정벌에 저 역시 나설 겁니다.”

“처용 님이 직접이요?”

태민이 처용의 말에 놀람과 궁금증을 섞어 묻자.

“아 제가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전 이것도 헌터들의 훈련이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처용이 태민의 말에 답했다.

정벌에 나선 헌터들을 조력하기만 하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만일의 사태, 즉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개입하겠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내일 바로 답사를 가볼 생각인데, 같이 가 보시겠어요?”

처용이 커맨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딱 좋네, 마침 일도 없으니까.”

커맨더가 흔쾌히 수락하듯 말했다.

“WHU에는 일단 제가 알려 두겠습니다.”

협회장이 WHU를 언급하며 말했다.

영토와 관련된 문제이니만큼, 알려야 했으니까.

“실패할 일은 없으니 대외적으로 알려도 상관없습니다.”

처용이 협회장의 말에 작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에 성장한 한국 헌터들의 수준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추가로 외부에 북한을 정벌한다고 대외적으로 크게 알리는 것.

이것들 역시 앞으로의 일을 위한 나름대로 노림수 중 하나였다.

“그럼, 내일 보죠.”

처용이 말을 마치며 일어나자.

“나름대로 준비할 필요가 있겠네.”

커맨더와 다른 이들 역시 자리를 비우며 회의를 파했다.

***

하루 뒤.

-우우웅.

처용이 금빛 게이트를 열고 중국에 나타났다.

이전 동방불패 길드의 성지를 방문했을 때, 태룡전의 열쇠에 등록해 둔 게이트였다.

본래, 오늘은 커맨더를 포함한 한국 헌터들과 함께 북한, 몬스터 오지를 탐사하기로 했었다.

그런 처용이 북한, 몬스터 오지가 아닌 중국에 나타났다.

지인들과 맺은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는 처용이 약속을 어긴 상황.

그러나 처용이 스마트폰을 열고 기사를 확인하자.

-역천군주, 커맨더, 북한, 몬스터 오지 정벌 선언

-대한민국, 몬스터 오지 정벌에 도전하다

-세계 최초, 몬스터 오지 정벌의 시작

막 떠오른 뜨거운 뉴스들이 줄줄이 떠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역천군주와 커맨더, 몬스터 오지 경계선에서 포착

기사 중에는 처용과 커맨더가 나란히 찍힌 사진도 떠올라 있었다.

심지어 기사가 떠오른 시간은 불과 5분도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처용과 커맨더, 한국의 헌터들이 찍힌 사진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기사를 확인하는 처용은 지금 중국 땅을 밟고 있었다.

처용이 두 명이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자생(自生)하는 인형]

[정교하게 만들어진 분신을 하나 창조합니다.]

[분신의 능력은 복사 대상의 50%까지 발휘할 수 있습니다.]

[내장된 자생의 백염이 완전히 소모되기 전까지 반영구적으로 활동합니다.]

[신력과 마력 스테이터스가 높을수록 더 강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최대 1개 생성 가능.

-내장된 에너지 소실 시, 분신 소멸.

처용에게는 스스로를 두 명으로 나눌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아마테라스조차 바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분신.

커맨더와 같이 있는 처용은 본체가 아닌 분신이었다.

물론, 분신은 본체의 능력의 절반만 발휘할 수 있고 내장된 백염이 모두 소모되면 사라진다.

하지만 커맨더와 같이 있는 분신의 역할은 북한의 사전 탐사.

적극적으로 몬스터와 싸우는 일이 아닌, 정찰에 가까운 일이었다.

불시의 사태가 생기면 개입하겠다고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북한 정벌을 준비를 위해 사전 조사에 나선 헌터들은 모두 성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던 헌터들.

그들 모두가 상당한 강자였기에 돌발 상황이 생긴다 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이제 커맨더와 분신이 세계의 이목을 끌며 시선을 잡는 동안, 이곳에서의 일을 처리하면 된다.

기사를 확인한 처용은.

-파직!

곧장 재빠르게 움직여 천교의 성지로 향했다.

베이징 서쪽에 자리한 천교의 성지 앞에 도달하자.

-스르륵.

인적이 드문 장소로 들어가 준비를 시작했다.

“철벽부-철가면.”

얼굴에 철벽부를 붙이고 몸을 어둠 속성의 마나로 감쌌다.

-스르르.

그림자를 머금은 어둠 속성의 마나가 몸을 감싸며 검은 연미복 형태로 변했고.

-철컥.

얼굴을 감싼 철벽부는 흑백으로 나누어진 하회탈 반가면으로 변했다.

처용이 씨익 웃자.

-번쩍.

금빛으로 빛나는 치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커로 변장한 처용은 그대로 동화경을 유지하며 천교의 성지 내부로 진입했다.

조커의 모습으로 변했음에도 모두가 처용을 인지하지 못한 듯, 그냥 지나쳐 갔다.

이윽고.

-탁.

성지에서 건축 중인 높은 탑 중 한 곳에 처용이 도착했다.

길고 날카로운 느낌이 전해지는 검은 탑.

탑의 기능인 망루나 사람들이 거주하는 건축물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식신부-지뢰거미.’

처용이 탑 앞에서 손을 바닥에 내리자.

-끼릭. 끼릭.

소매 속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인 작은 거미가 기어 나왔다.

마치 철사를 꼬아 만들어진 듯, 투박한 형태의 거미.

그리고.

-위이잉. 우웅.

거미의 둥글고 통통한 꼬리 부분은 요사스러운 검은빛을 내고 있었다.

사실, 처용이 만들어낸 거미는 꼬리가 없는 거미였다.

꼬리로 보이는 둥글고 통통한 검은 보석은 만들어진 식신에게 붙여 놓은 것이었다.

그것은 패웅무신에게서 뽑아낸 검은 칼날 조각을 깎아 만든 보석이었다.

미약하지만, 파멸의 권능이 담겨 있는 보석.

그리고…….

‘저 탑에도 크타니드의 신력이 미약하게 담겨 있지.’

처용이 탑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눈앞에 있는 탑은 무력으로 쓰러뜨린다고 하여 쉽게 쓰러지는 건축물이 아니었다.

애를 써서 무너뜨린다고 해도 천교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탑은 그저 ‘증폭기’의 역할을 할 뿐이었으니까.

-사각. 사각.

처용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작은 거미가 은밀하게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처용은 곧장 다른 탑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사각. 사각.

-사각.

천교의 성지 외곽에 지어지고 있는 탑에 각각 거미를 한 마리씩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처용이 향한 장소는 천교의 성지 중앙에 지어지고 있는 거대한 제단이었다.

제단 앞에 도달한 처용이 동화경을 유지하며 잠시 기다렸고.

-……!

곧 거미에게서 탑 꼭대기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전달받았다.

그 순간.

-스르륵.

조커로 변장한 처용이 동화경을 풀며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냐!?”

“뭐, 뭐야?”

근처에서 경비를 서던 천교의 헌터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조커를 보며 놀란 듯 소리쳤다.

“……조커?”

“어떻게 들어온 거냐!?”

중요한 제례가 치러지는 장소에 난데없이 조커가 나타난 상황.

조커를 알아본 헌터들이 경계를 보이며 소리치자.

“당장, 이 빌어먹을 제사를 멈추라고 전해줬으면 좋겠어. Bro.”

처용이 조커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스릉.

-착.

천교의 헌터들이 처용을 향해 무기를 겨누며 경계했다.

엄숙한 분위기였던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뭐야? 무슨 일이야?

-저거…… 조커 아니야?

성지에 체류하던 사람들이 조커를 알아보며 수군거렸다.

동시에.

-야! 빨리 찍어!

-특종이다.

천교의 성지에서 행해지는 제례를 촬영하던 이들이 카메라를 돌려 찍기 시작했다.

점점 더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지고 어수선해질 때.

“이게 무슨 소란이야!”

태상노군의 신관, 타친핑이 나타나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고함을 내질렀다.

타친핑이 나타나자.

-샤삭. 샥.

천교의 상위 헌터들도 빠르게 모여들었다.

“조커! 감히 드높은 신들이 계시는 땅에서 소란을 일으키다니!”

타친핑이 조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천교 부길드장 타친핑 Bro.”

정중한 목소리로 타친핑을 향해 말을 이었다.

“부탁하지, 이 제사를 멈춰주지 않겠나?”

조커의 입에서 흘러나온 정중한 목소리에.

-이게 무슨 상황이야?

-왜 조커가……?

주변 사람들이 서로 떠들며 소란이 일렁였다.

“…….”

타친핑 역시 눈앞에 있는 조커의 의도를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의 반응을 살핀 조커, 아니 처용은 한껏 집중된 이목을 느끼며 속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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