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이종국은 눈앞에 무수히 떠오른 시스템 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처용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는 지금 일어난 현상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는 듯 보였으니까.
“시스템은 ‘헌터의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줍니다.”
처용은 이종국의 질문을 정확히 알아듣고는 답변했다.
“원장님은 시스템의 인정을 받는 노력을 했고 그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그래도 이건…….”
이종국이 처용의 대답에 침음을 흘리며 중얼거리고는 다시 시스템 창을 마주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 그의 레벨은 119였다.
그러나 지금은.
[레벨 : 142]
단번에 20여개 이상의 레벨이 올랐다.
100레벨 초반대의 헌터가 최상위 던전을 클리어한다고 해도 많이 올라 봐야 2~3레벨이 오른다.
이것도 기여를 많이 해서 시스템의 인정을 받은 경우였다.
심지어 이 경우도 전투직 헌터에 해당되는 경우.
이종국은 전투직 헌터가 아닌 비전투직, 힐러였다.
비전투직 헌터는 전투직 헌터들보다 레벨을 올리기가 더 힘들다.
그들은 단순 사냥만 해서는 레벨이 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런 레벨을 올리기 힘든 A급 비전투직 헌터가 단번에 20여 개의 레벨이 올랐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게다가 시스템에 나타난 문구는 레벨의 폭등만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대한 존재들과 함께했습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추가로 상승합니다.]
[칭호 : 선구자(先驅者)가 생성됩니다.]
레벨과는 별개로 추가 스테이터스가 상승했다.
그리고 새로운 칭호를 얻었다.
“선구자?”
이종국이 시스템을 확인하며 새로 얻은 칭호를 보며 읊조리자.
“하하, 축하드립니다.”
처용이 이종국을 향해 진심 어린 축하를 전했다.
동시에.
‘선도를 따라 걷는 자가 아니라 선구자를 얻었다라?’
속으로 놀람을 감추었다.
선도를 따라 걷는 자라는 칭호.
이 칭호는 헌터가 자신의 클래스와 연관이 있는 성좌와 함께 업적을 세웠을 때 얻는 칭호였다.
예시로 전투직 헌터가 전투직 성좌와 함께 전장에 서서 공훈을 세우면 얻을 수 있었다.
의사인 이종국의 경우, 의술과 관련된 성좌들과 환자를 치료했기에 이에 해당되었다.
그런데 이종국은 처용의 예상과는 다르게 선구자라는 칭호를 얻었다.
[선구자(先驅者) / 칭호]
[누구보다도 앞장서 노력했다는 증거.]
[클래스 관련 스킬의 효율이 크게 상승합니다.]
-클래스 관련 모든 스킬 강화.
-클래스 관련 스킬의 마나 소모량이 절반으로 감소.
선구자는 클래스의 모든 스킬 효율을 대폭 상승시켜주는 아주 유용한 칭호였다.
“원장님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기여한 바가 저분들 못지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처용은 이종국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선구자는 강력한 효력을 가진 칭호이니만큼,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성좌와 함께했을 때, 그 성좌를 그저 돕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등한 업적을 세워야 얻을 수 있었으니까.
시스템은 이번 수술에 이종국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었다.
그리고 시스템만 인정했다 하여 이 칭호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대단하더군.]
의학의 신이 이종국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지금 시대의 의료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잘 볼 수 있었네.]
[나 역시 인정하네.]
의학의 말에 신의가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마찬가지로 두 신의 의견이 맞다는 듯, 아스클레피오스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무려 치료와 관련된 세 명의 신이 이종국을 인정했다.
‘의술(醫術)의 선구자’였던 성좌들이 이종국의 의술을 인정한 것.
그것이 이종국이 선구자라는 칭호를 얻은 결정적인 이유였다.
“아닙니다. 성좌님들께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지…….”
신들의 인정과 칭찬에 이종국이 고개를 숙이며 읊조렸다.
그러자.
[그럴 리가, 자네가 깔끔하고 정교하게 칼날을 뽑아내지 않았다면, 이리 수월하지는 않았을 거네.]
의학의 신이 진심이라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비록 처용의 인첸트, 파마의 신력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봉합사를 정교하게 움직여 칼날을 안전하게 제거한 것은 오로지 이종국의 실력이었다.
그 덕분에 패웅의 치료가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감사합니다.”
이종국이 보람찬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역사에 기록된, 이제는 신이 된 이들에게 받은 인정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의사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때.
‘뽑아낸 칼날들 중 에너지의 순도가 높은 것들을 따로 추려 주십시오.’
처용이 여래에게 조용히 전음을 보냈다.
[파멸의 권능이 담겨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걸로 무엇을 하려고?]
여래가 처용의 전음에 조용히 대답하며 물었다.
‘천교의 성지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 써야죠.’
처용이 여래의 물음에 전음으로 대답했다.
[다른 전문가를 쓴다고 하지 않았느냐?]
여래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하자.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처용이 굳은 목소리로 여래의 의문에 대답했다.
그 목소리 안에는 잔잔하게 타오르는 증오와 분노가 섞여 있었다.
‘놈들이 선을 넘으려는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니까요.’
천교의 성역에 지어지고 있는 건축물.
그것이 완성되고 제대로 작동하는 순간, 재앙이 일어난다.
회귀 전 일어났었던 첫 번째 대격변(大激變).
세계 각국에 엄청난 피해를 일으켰던 재앙.
그 재앙 속에서…… 천교의 영역만큼은 무사했다.
‘놈들이 재앙을 일으킬 생각이니, 저 역시 놈들에게 진짜 재앙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처용의 말에 여래가 잠시 침묵하고는.
[이 조각 안에 담긴 작디작은 파멸의 힘도 봉인에 힘을 썼다.]
봉인시킨 검은 칼날 조각 하나를 만져보며 말했다.
여래는 적출한 검은 칼날을 쉽게 봉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조각 하나하나를 봉인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었다.
그만큼, 파멸의 기운 자체가 너무나도 폭력적이고 제어가 되지 않는 힘이었다.
여래는 이 위험한 힘을 처용이 다룬다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놈들은 꿈에도 모를 겁니다.’
처용은 굳은 목소리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제가 크타니드를 죽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었는지!’
악의 종주, 조크-크타니드.
처용은 그를 없애기 위해 정말 수많은 노력을 했었다.
그 노력 중에는 스스로의 단련 말고도 다른 것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크타니드의 신력과 권능을 관찰하고 조사한 것이었다.
‘검은 별들이 나타난 이상, 더는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처용이 주먹을 쥐어 보이며 여래를 향해 전음을 보낸 후.
“우선 태무신께 수술 결과를 알리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의료전을 나갔다.
***
중국, 마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천교의 시설.
-지이잉.
건물 내부 대회의실 안에서 병실 문이 열리더니, 닥터가 걸어 나왔다.
“어찌 되었나?”
대회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의회주 중 하나, 잭이 닥터를 향해 묻자.
“마녀는 무사합니다. 다만 오거는…….”
닥터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진찰 결과를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결과를 들은 잭이 안도를 표하고는.
“머저리 같은 놈…… 감히 금기를 어기다니!”
-탁.
지팡이를 들어 땅을 한 번 찍으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잭이 말하는 ‘머저리’는 오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의회주들이 정한 금기(禁忌).
같은 마인을 죽이고 마기를 흡수하는 행위.
오거는 의회주들이 정한 금기를 어기고 같은 마인들을 잡아먹었다.
“일단 살려 놓긴 했습니다만, 이제 사람…… 아니, 마인 구실 하기는 힘들 겁니다.”
닥터가 분노를 표하는 잭에게 한숨 섞인 실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자.
“차라리 잘 되었군! 오거를 하급 마인으로 강등시킨다!”
잭이 모두 들이라는 듯 큰 목소리로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족쇄를 채우고…… 아니, 이건 필요 없겠군.”
“그렇죠.”
닥터가 잭의 말에 동의하듯 말을 이었다.
“이제 오거는 마기도 제대로 못 쓰고 스킬도 못 쓸 테니까요.”
오거는 평범한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악몽이라는 기괴한 던전 속에서 알 수 없는 저주에 감염되었다.
게다가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을 죽여 잡아먹기까지 했다.
저주와 흡수한 마기가 뒤섞인 탓인지, 이성을 잃고 폭주했다.
다행히 닥터가 그를 제압하여 치료를 했다.
그러나 저주와 폭주로 인해 마기홀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게다가 망가진 마기홀에 저주까지 자리 잡아 점점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닥터는 어쩔 수 없이 닥터의 마기홀이 있는 장기를 제거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의회주들이 전달받은 사실이었다.
-마기홀이 사라진 상급 마인이라니.
-완전히 끝장났군.
-오거의 마기홀이 그…… 거기에 있었다며?
-마인으로서도 끝장났고 인생도 끝장났구만? 크크.
닥터가 전한 소식에 의회주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떠들었다.
“얼마 못 가 죽겠군.”
오거의 현재 상태를 들은 집행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오거는 상급 마인들 중 유독 약자를 혐오하고 하급 마인들을 함부로 대하는 자였다.
마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그리 좋지는 못한 상급 마인.
그럼에도 오거가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규칙이 있다고 하지만, 마인들의 세계는 약육강식이 기반이었으니까.
하지만, 오거가 하급 마인으로 강등되고 힘까지 잃었다?
오거는 이제 개인적인 원한을 가진 이나, 평소 그를 시기하던 마인에 의해 죽을 확률이 높았다.
이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의회주들은 그저 태연한 분위기였다.
그때.
“머저리 같은 놈이 고자가 된 건 그렇다 치고…….”
의회주 중 하나, 릴이 입을 열었다.
“그 악몽 속에서 어떻게 멀쩡하게 살아 나온 거지. 의사 양반?”
릴이 닥터를 의미심장하게 노려보며 말하자.
“마치 내가 다치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릴.”
닥터가 한숨 섞인 미소를 짓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냥,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서 그래.”
릴이 닥터를 향해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하아, 살다 살다 그런 던전은 처음입니다. 시작하자마자 S급 언데드 몬스터가 튀어나오지 않나-.”
닥터가 악몽 속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대략적으로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하기에는 뭐하지만, 역천군주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던전 안에서 싸운 게 아니고?”
릴의 눈이 가늘어지며 닥터에게 묻자.
“악몽 안에서는 ‘참가자’들끼리 서로 죽일 수 없더군요.”
닥터가 악몽 속에서 강제로 착용했었던 아트팩트를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
“악몽에 관심이 많아 보이니, 우연이라도 던전을 찾으면 릴, 당신에게 안내하지요.”
“필요 없어.”
릴이 웃음기 섞인 닥터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대답할 때.
“자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군, 덕분에 마녀도 무사했고.”
잭이 마녀를 언급하며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닥터는 마녀를 신경 쓰는 잭을 아주 잠시 응시하고는.
“대격변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잭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순조롭게 진행 중이네.”
닥터의 질문에 잭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발…… 별일이 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닥터가 얼굴을 쓸며 푸념하듯 말했다.
“연달아 일어난 사고 덕분에 제 일이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다고요.”
“그건 유감이네.”
잭이 닥터의 푸념에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 답했다.
닥터는 나름 중요한 일을 맡아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전부터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난 탓에 그가 맡은 일이 전혀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에 벌어진 악몽 사건으로 인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
“이번만큼은 우리도 신경을 쓰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일단은 감사하군요. 잭.”
닥터가 잭의 말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고는.
“리더와 에블린의 일은 어떤가요? 릴.”
릴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내 일은 왜 묻는데?”
질문을 들은 릴이 인상을 찌푸리며 닥터를 향해 말하자.
“이번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요.”
닥터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문제는 없으니까. 신경 꺼.”
릴은 닥터의 말에 단호하고 고혹적인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자신의 계획을 말하기 싫은 듯 보였다.
“네, 뭐, 서로 방해하지 않는 걸로 하죠.”
닥터가 한숨을 내쉬며 릴을 향해 말하고는.
“대격변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다른 차원에 있는 마인들이 지원을 오는 겁니까?”
다시 잭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우리가 지원을 받을 수도, 지원을 가야 될 수도 있지.”
잭이 무언가를 생각하듯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세계가 연결되기 전에는 서로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모르니까.”
“흠…… 일단 알겠습니다.”
닥터가 잭의 말에 잠시 생각하듯 짧게 침묵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할 일이 바쁘니 먼저 실례하지요.”
-지이잉.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병실 문을 열고는 회의장에서 사라졌다.
닥터가 병원 복도를 쭉 걸어 나가던 중.
“열어 주시죠.”
-저벅.
아무런 팻말도 없는 병실 문 앞에 서며 말했다.
그 순간.
-우우웅.
병실 문이 검게 일렁이더니 어딘가로 통하는 검은 게이트가 나타났다.
-저벅.
닥터가 망설임 없이 검은 게이트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화르륵. 화륵.
좌·우로 나열된 벽화로에 보라색 불꽃이 피어나며 새로운 환경이 펼쳐졌다.
마치 높은 신분의 귀족이 거주할 법한, 고급스러운 저택과 같은 분위기.
닥터가 새로 나타난 복도의 끝을 향해 쭉 걸으며 나아갔다.
이윽고 복도 끝에 보이는 문에 도달했고.
-끼이이이잉.
자동으로 문이 열리며 넓은 홀이 나타났다.
홀에 닥터가 발을 들인 순간.
[내 성역에 직접 방문한 건 오랜만이구나.]
넓은 홀의 끝에 자리한 옥좌에서 누군가가 닥터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검보랏빛으로 빛나는 긴 머리와 양의 뿔처럼 나선으로 휘어진 두 개의 뿔.
머리와 같은 검보랏빛 깃털로 이루어진 세 쌍의 날개.
창백한 얼굴에 마치 검은 눈물이 흐르는 듯한 문신이 있는 여성.
“다녀왔습니다.”
닥터가 옥좌에 앉은 여성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알레인 님.”
자신이 모시는 성좌, 대악마의 이름을 불렀다.
옥좌 위에서 닥터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성.
그녀는 판데모니움 서열 8위, 안개의 대악마 알레인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