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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66화 (266/726)

#266화

처용의 말이 울리자.

[허허, 직접 가서 깽판이라도 칠 셈인가?]

언문이 옅은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처용의 말속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분노와 증오가 느껴졌으니까.

“당장이라도 놈들의 성지를 싹 밀어버리고 싶긴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언문이 처용의 마지막 말을 언급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 말고 다른 ‘전문가’가 움직일 겁니다.”

처용이 언문의 물음에 작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허, 깽판을 치는 전문가가 따로 있었나?]

언문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하자.

“정확히는 마인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들이 곧 깽판을 칠 겁니다.”

처용이 웃음기를 지우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면 오히려 역으로 천교를 역으로 압박할 기회가 생길 겁니다.”

테러를 당한 피해자가 주변 성운들에게 압박을 받는다?

조금 이상한 말이었지만, 처용은 그것을 실현할 방법이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일단 패웅무신부터 완치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무신전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겠다.]

태무신이 처용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감사를 전했다.

***

회의가 파하고 패웅무신을 치료하기 위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렇게 와 주어서 정말 고맙소.]

신의가 의료전에 찾아온 새로운 인물을 향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자.

[당연히 와야지요. 신의.]

-탁.

머리부터 턱까지 이어지는 새하얀 수염으로 자가 신의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나, 의학(醫學)의 신의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하겠소.]

그는 연옥의 시련을 통과한 영혼.

무신전의 성좌 중 하나인 의학의 신이었다.

연옥의 시련을 통과한 영혼들 모두가 무신전의 성역에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

해전무신처럼 바뀐 세상을 살펴보는 등, 개인적인 이유로 방랑하는 이들도 있었다.

연옥으로부터 의학(醫學)이라는 신명을 부여받은 성좌 역시 그런 부류였다.

신계를 방랑하던 그가 단번에 돌아온 이유는 태무신이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첫 번째로 연옥의 시련을 통과하여 태초의 힘에게 인정받은 운장.

그는 연옥의 시련을 수료하여 성좌가 된 영혼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

다른 무신전의 성좌들에게는 없는 그만이 지닌 권능.

그 권능을 통해 소식을 전달받은 의학의 신이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지원군은 의학의 신만이 아니었다.

[올림포스의 도움 역시 잊지 않겠소.]

태무신이 태룡전을 찾아온 올림포스의 두 성좌를 향해 감사를 전했다.

[부탁하지.]

헤르메스가 뒤에 있는 성좌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하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헤르메스 님.]

곱슬기가 짙은 머리와 수염이 무성한, 진지한 표정의 성좌.

올림포스 소속,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헤르메스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패웅무신의 부상 소식을 들은 아테나가 즉각 보낸 지원이었다.

보살을 포함하여 치료와 관련된 네 명의 성좌가 힘을 합쳤다.

그리고.

[진법을 더 견고하게 만들지요.]

여래가 패웅무신의 주변에 추가로 진법을 설치하며 말했다.

동시에.

[준비되었느냐? 제자야.]

옆에 있는 처용을 향해 물었다.

“저는 준비됐습니다.”

처용이 여래의 말에 자신감을 보이며 대답하고는.

“원장님.”

조금 뒤로 물러서 있던 이종국을 바라보며 그를 불렀다.

“제, 제가 이런 자리에 있어도 괜찮은 겁니까?”

이종국이 떨리는 목소리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처음 처용의 연락을 받았을 때, 급한 환자가 있다는 말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처음 들어와 보는 신들의 성역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처용이 이야기한 ‘환자’가 성좌였다는 사실을 듣고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인간이 성좌를 치료한다?

이종국은 처음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동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원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처용은 진지하게 이종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말하고 있었다.

아니, 처용은 진심으로 이종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가 가진 정교한 기술과 그 기술을 한껏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으니까.

이종국의 도움이 있어야 패웅무신의 육체에 박혀 있는 검은 칼날들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종국의 실력을 믿을 수 있는 이유가 더 있었다.

회귀 전, 그가 중상을 입고 점차 소멸해가던 성좌를 살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처용의 부탁에 이종국이 고민하는 듯 침묵하며 시선을 돌렸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성좌를 치료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성지에 머무는 이들이라면 이젠 모르는 이가 없는 자비의 대신.

올림포스에서 찾아온 치료의 신.

그리고…… 무신전의 성좌인 신의와 의학의 신.

그 둘은 이종국이 단번에 알아볼 정도로 유명한 이들이었다.

인류 역사상 ‘의술’과 관련된 위인 중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들이었으니까.

솔직히, 그런 역사 속 위인들과 같은 자리에 서고는 싶었다.

반면에 같은 이유로 성좌들과 같은 자리에 서기가 망설여졌다.

신(神)에 오른 그들에 비해서 스스로의 능력이 너무나도 모자랐으니까.

오히려 그들의 방해가 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이 참가하는 것으로 성좌, 아니 ‘환자’의 치료에 해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이종국이 망설이고 있을 때.

“원장님, 저분을 살려야 합니다.”

처용이 다시 한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저분을 살리려면 원장님의 ‘의술’이 필요합니다.”

진지함이 전해지는 처용의 말에 이종국이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알겠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지요.”

고개를 들고 각오를 다진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좋습니다.”

처용이 이종국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하고는.

“구체적인 방법은 이러합니다. 우선…….”

모두 들으라는 듯, 패웅의 치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말했다.

그러자.

[자네가 그것을 처리한 후-.]

[그럼 제가 이 부분을-.]

세 명의 성좌가 빠르게 의견을 교환했다.

짧은 시간 동안 의견이 합쳐지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우웅.

처용이 파마의 신력을 끌어올리며, 수술의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마이크로 아이즈(Micros Eye).”

이종국이 스킬을 발동했다.

-지잉.

그의 눈동자 속에 푸른 고리가 그려졌다.

유니크 클래스, 하이테크 메딕이 지닌 스킬인 마이크로 아이즈.

이 스킬의 능력은 눈으로 보이는 광경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시야를 현미경처럼 보이게 만드는 스킬이었다.

“변환 봉합사.”

이종국이 다른 스킬을 추가로 발동하자.

-스르르르!

그의 손에서 얇고 푸른 실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실 끝이 바짝 세워지더니.

-차캉!

일부는 날카로운 바늘처럼 곧게 뻗었고 일부는 메스처럼 예리한 칼날 형태로 변했다.

변환 봉합사는 실 끝을 다양한 모양의 수술 도구로 변환시킬 수 있는 실을 만들어내는 스킬이었다.

이종국이 변환 봉합사를 뽑아낸 순간.

-우우웅!

처용이 이종국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파마의 신력을 흘려보냈다.

이종국에게 흘러 들어간 파마의 신력이 점점 이동하여 변환 봉합사에 깃들었다.

인첸터들이 사용하는 마법 부여 기술을 응용한 것이었다.

변환 봉합사에 파마의 신력이 깃들자.

-화아아!

실과 바늘이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럼, 적출하겠습니다.”

이종국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패웅무신의 몸에 박혀 있는 검은 칼날을 응시했다.

검은 칼날에 눈을 떼지 않고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움직이자.

-스르르.

파마의 신력이 깃든 봉합사가 이종국이 노려보는 검은 칼날을 향해 쇄도했다.

-스스슥. 스슥.

예리한 메스가 달린 봉합사가 검은 칼날이 박힌 환부 주변을 조심스럽게 가르기 시작했고.

-촤자자자.

날카로운 바늘이 달린 봉합사가 그 뒤를 따르며 보조하듯 움직였다.

“생각보다 ‘뿌리’가 깊습니다.”

이종국이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말하자.

“하나의 잔여물도 없이 전부 잡아내야 합니다.”

처용이 변환 봉합사에 파마의 신력을 더욱 집중시키며 이종국을 향해 말했다.

패웅무신의 몸에 박힌 칼날은 단순한 칼날이 아니었다.

악의 종주가 가진 권능, 파멸의 권능이 담겨 있었다.

검은 칼날에 담긴 파멸의 권능이 패웅무신에게 뿌리를 내려 그를 서서히 파괴하고 있었다.

비록 여래의 팔괘봉마진과 보살의 권능으로 파멸의 힘이 약해졌지만.

이미 검은 칼날이 박혀 뿌리를 내린 부위는 조금씩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용이 이종국에게 수술을 부탁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뿌리 때문이었다.

잡초의 잔뿌리처럼 넓게 퍼져 있는 이 뿌리를 전부 제거하지 않으면 검은 칼날을 뽑아낼 수 없었으니까.

뿌리를 없애지 않고 뽑으면 상처가 크게 벌어질뿐더러, 잘못하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뿌리 자체가 얇고 복잡하게 뻗어 있어 제거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용이 파마의 신력을 집중하여 퍼부은다고 해도 뿌리를 전부 태워버리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안전한 방법이 바로 이종국의 의술이었다.

“후, 일단 첫 번째 검은 칼날의 뿌리는 거의 다 없앴습니다.”

수술에 집중하던 이종국이 작은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변환 봉합사를 이용한 이종국의 수술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이종국은 절단된 헌터의 신체도 몇 초 만에 다시 이어붙일 수 있었으니까.

그런 이종국의 변환 봉합사가 파마의 힘으로 지원을 받으며 검은 칼날을 제거하고 있었다.

이윽고.

-푸화아아!

변환 봉합사가 성공적으로 첫 번째 검은 칼날을 뽑아내었다.

검은 칼날이 뽑혀 나온 순간.

[봉마(封魔).]

지켜보던 여래가 적출된 검은 칼날을 새하얀 부적으로 감싸며 봉인했다.

이종국에 의해 검은 칼날이 뽑혀 나오자.

[내상은 내가.]

[외상은 내가 처리하지.]

신의와 의학의 신이 말하며 즉각 움직였다.

-푸부부북.

검은 칼날이 뽑혀 나간 환부 주변에 신의의 침들이 꽂혔고.

-우우웅.

의학의 신이 패웅울 향해 손을 뻗으며 신력을 끌어올렸다.

찢어진 상처에 의학의 신이 방출한 신력이 달라붙자.

-스스륵.

신력의 덩어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감염된 부분을 없애고 찢어진 상처를 꿰매며 치료하기 시작했다.

올림포스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신의와 의학의 신을 보조했다.

세 명의 신이 분주히 움직일 때.

-스샥. 촤자자자.

이종국은 변환 봉합사를 움직여 두 번째 검은 칼날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푸화아아!

패웅의 몸에 박혀 있던 마지막 검은 칼날이 적출되었다.

“으, 으어……!”

약 한 시간 동안 집중한 이종국이 눈을 질끈 감으며 주저앉았다.

본래, 마이크로 아이즈와 변환 봉합사는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시야를 현미경처럼 확대해 주는 마이크로 아이즈를 오래 유지하면 눈에 무리가 가고.

변환 봉합사는 스킬 자체가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그 두 스킬을 동시에 발동해서 한 시간이나 유지했으니, 지쳐 주저앉는 것은 당연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원장님.”

-우우웅.

처용이 바닥에 주저앉은 이종국을 향해 자비의 손길을 사용해 주었다.

그때.

[이젠 한 번에 몰아낼 수 있겠군요.]

자비의 기원을 유지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보살이 입을 열고는.

-화아아!

패웅을 향해 손을 뻗으며 대량의 신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치이이!

패웅의 몸에 남아있던 파멸의 기운 잔여물이 흘러나왔다.

-슈르륵!

새까만 파멸의 기운은 순순히 사라지지 않겠다는 듯 발버둥 쳤지만.

-스르르…….

여래의 진법과 보살의 신력을 버티지 못하고 연기가 되며 사라졌다.

수술이 완전히 끝난 순간.

-우우웅.

주저앉아 쉬고 있던 이종국의 몸에서 강렬한 마나가 피어났다.

동시에.

“……어?”

이종국이 허공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그의 눈 앞에는.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

.

레벨이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줄줄이 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애초에 그를 이번 수술에 참여시킨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축하드립니다.”

처용이 이종국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네자.

“이게…… 도대체 무슨?”

이종국이 아직도 끝나지 않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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