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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65화 (265/726)

#265화

[계획은 있느냐?]

여래가 처용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우선해야 할 일들은 많지만…….”

처용이 말을 흐리며 고민에 빠졌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은 많았다.

가장 중요한 건 태초의 그릇을 소유한 마녀.

하지만 지금 마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해서 차선책으로 제시카에게 과거 행해졌던 일들을 알리고 로스차일드의 조사를 부탁한 것이었다.

이 일은 태초의 그릇과 마녀만이 연관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마인들의 시작이 연합이니만큼, 의회주 여럿이 이 일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섀도우 헌터들이 과거 연합 소속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렇다면 조커 역시 태초의 그릇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일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다 보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엉켜있는 실타래가 하나하나 풀릴 것이다.

일단 태초의 그릇은 제시카와 메리의 소식을 기다리고,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우선, 천교가 하는 짓거리부터 막아야겠습니다.”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놈들이 일으키려는 대격변.

그것은 단순히 놈들을 방해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시간이라도 끌려면…….”

처용이 고민하며 읊조릴 때.

-화아아!

밝은 빛이 퍼지며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한 명은 미륵,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태무신 님?”

처용이 미륵과 함께 나타난 태무신, 운장을 바로 알아봤다.

동시에.

“무슨 일입니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물었다.

운장은 언제나 항상 근엄하고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다급한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간만이구나. 한처용.]

운장은 처용에게 반가움을 전하고는.

[자비의 대신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래를 향해 다급함이 담긴 용건을 이야기했다.

[무슨 일입니까?]

-화아아!

운장의 말을 들었는지, 보살이 빛과 함께 나타나며 말했다.

[패웅무신이 소멸하기 직전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운장이 보살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부탁을 건넸다.

“무신전의 성좌가요?”

처용이 운장의 말에 놀람을 표했다.

패웅무신은 처용 역시 잘 아는 인물이었다.

무신전의 성좌들 중 나름 강자에 속하는 자.

그런 자가 지금 시기에 소멸하기 직전일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일일뿐더러, 누가 무신전의 성좌를 함부로 공격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던 와중.

‘설마……?’

처용의 머릿속에 불현듯 어떤 가능성이 떠올랐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태무신.]

보살이 태무신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쪽으로 데려오게나.]

보살의 수락에 미륵이 태무신을 향해 말하자.

-탁.

운장이 들고 있던 언월도를 들어 가볍게 땅을 내리찍었다.

-우우웅.

운장의 옆에 어디론가 연결되는 공간이 열렸고.

-저벅. 저벅.

그 공간에서 신의가 걸어 나왔다.

[패웅무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래가 신의를 향해 묻자.

[이 안에 있지요.]

신의가 침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의 신물인 대나무 침통은 다양한 의료 도구일 뿐 아니라 환자도 임시로 수용할 수 있었다.

[우선, 의료전으로 가지.]

미륵이 태무신과 신의를 향해 말하고는.

-탁.

짧게 박수를 치듯 두 손을 들어 손바닥을 부딪쳤다.

그러자.

-화아아.

태룡전 내부였던 주변 환경이 성역에 있는 의료전으로 바뀌었다.

[허허…… 내 거처보다도 좋은 곳이구만?]

의료전 내부를 둘러본 신의가 작은 놀람을 표하고는.

[여기에 눕히겠습니다.]

크기가 넓은 침상 쪽으로 다가가며 손에 들린 침통을 들어 올렸다.

-화아아.

신의의 침통이 환한 빛을 내며 반으로 열렸다.

동시에.

-피이이!

침상 위로 밝은 빛이 퍼지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지독하군.]

여래가 침상 위에 나타난 패웅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꺼질 듯, 희미한 숨을 내쉬는 패웅의 몸 여기저기에 검은 칼날들이 박혀 있었다.

심지어.

-치이이.

검은 칼날에서 불길한 오오라가 흘러나왔다.

[팔괘봉마진-억압.]

-화아아!

여래가 밝은 빛을 내뿜는 여덟 장의 부적을 소환해 패웅을 중심으로 팔괘를 그렸다.

-치지지.

패웅의 몸에 박힌 검은 칼날들에서 흘러나오던 오오라에 전류가 튀더니 조금씩 사그라졌다.

[……사악한 힘이군.]

여래가 검은 오오라를 관찰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빌어먹을 새까만 기운 때문에 저도 고생했지요.]

신의가 패웅이 들어있던 자신의 침통을 들어보며 말했다.

녹색인 대나무 침통은 얼룩이 묻은 듯 일부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법의 대신.]

신의가 작은 미소를 보이며 여래에게 감사를 전했다.

본래 패웅을 꺼내자마자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을 막으려 했었지만, 여래가 간단하게 해결했으니까.

불길한 검은 오오라가 여래의 진법에 의해 막혔을 때.

[일단, 응급처치부터 하죠.]

보살이 패웅을 향해 손을 뻗으며 신력을 끌어올렸다.

-화아아.

연분홍빛 신력이 패웅의 몸 위로 뭉치더니.

-스르르.

은은하게 빛나는 연꽃이 꽃잎을 활짝 피며 나타났다.

[자비의 기원.]

보살이 권능을 발동하자.

-스르륵.

패웅 위에 피어난 연꽃이 패웅의 내부에 퍼져 있던 검은 오오라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아아!

보살의 신력이 패웅에게 흘러 들어가며 상처들이 조금씩 아물게 하기 시작했다.

자비의 기원은 좋지 않은 기운을 빨아들이고 활력을 보내주는 보살의 권능이었다.

보살의 권능이 패웅무신을 좀먹는 검은 신력을 조금씩 빨아들이자.

-스르르…….

패웅무신의 육체 여기저기에 퍼져 있던 검은 반점들이 점차 사라지는 듯 보였지만.

-스륵! 스륵!

보살의 신력에 반항하듯 검은 반점이 꿈틀거리며 영역을 넓히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신의는.

[이제, 더 번지지 못하게 막을 수 있겠군!]

-착. 착. 착. 착!

곧장 날카로운 침을 꺼내 패웅의 몸 여기저기에 꽂았다.

-촤아아…….

신의의 침이 박히자 검은 반점들이 몸부림치듯 꿈틀거리더니, 이내 점차 사그라졌다.

[후, 일단 이대로 경과를 지켜봐야겠군…….]

신의가 패웅의 안색이 조금 편해진 것을 살피며 말하고는.

[감사합니다. 저 혼자서는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이 친구를 호전시킬 수가 없었는데…….]

치료를 도와준 보살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일단은 소멸 직전이었던 패웅무신이 위기를 넘긴 상황.

모두가 잠시 안도를 표할 때.

“검은 신력…….”

처용이 패웅에게서 떨어져 나온 검은 칼날 조각을 집어 들며 읊조렸다.

[함부로 만지지 말게나! 나도 침식당할 뻔했-!]

신의가 처용의 행동을 만류하려는 듯 말했다.

처용은 그런 신의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손에 집어 든 조각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파사삭!

검은 칼날 조각을 거세게 쥐며 흩어버렸다.

본래는 흩어지며 퍼진 사악한 기운이 처용에게 닿으며 악영향을 끼쳐야 했지만.

-파아아…….

작게 퍼진 사악한 기운은 처용을 침범하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무슨 수로……?]

신의가 처용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성좌조차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사악한 기운이었다.

아무리 신화경에 닿은 인간이라 해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처용은 사악한 기운이 담긴 칼날 조각을 부숴 없애버렸다.

“제 신력은 파마(破魔)의 힘이니까요.”

처용이 신의의 물음에 답하듯 중얼거리며 말했다.

악을 멸하는 파마의 신력.

처용의 신력은 마(魔)에게 있어서 포식자와 다름없는 힘이었다.

특히, 판데모니움의 기운, 마기에 천적과 같았다.

하지만, 처용이 파마의 신력을 단련한 이유는 단순히 악마들을 상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파마의 신력은 단 하나의 존재를 죽이기 위해 단련한 힘이었다.

“크타니드가 움직였군요.”

악의 종주, 조크-크타니드.

바알보다도 더욱 어둡고 깊은 악을 지닌 자.

처용이 악의 종주를 떠올리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패웅의 몸에 박힌 검은 칼날들.

거기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오오라에서 악의 종주가 가진 신력이 느껴졌다.

[이것이 악의 종주가 가진 힘이더냐?]

여래가 처용을 향해 묻자.

“미약하지만, 파멸의 권능이 담겨 있습니다. 확실합니다.”

처용이 여래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태무신 님.”

태무신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사실, 패웅의 상태를 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내심 짐작은 되었지만.

“도대체 누가 무신전의 성좌를 공격했단 말입니까? 그것도 악의 종주가 가진 힘으로……!”

훨씬 먼 미래에 일어날법한 일이, 예상보다 이르게 일어난 상황이었다.

이 일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천문을 부르지, 그가 이번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줄 거다.]

운장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목숨이 위급했던 패웅의 응급조치는 무사히 끝났지만, 완치는 아니었다.

현재는 신의와 보살이 패웅을 돌보며 더 악화되지 않도록 힘쓰고 있었다.

그리고 태무신은 천문을 대동하고 다시 태룡전으로 돌아왔다.

[……제가 읽은 별자리는 이러했습니다.]

천문이 태무신과 태룡전에 머무는 신격들을 향해, 자신이 본 예언을 설명했다.

[별자리를 해석하자마자 ‘검은 별’들에게 습격을 받았습니다.]

습격을 받은 당시 상황 또한 이야기했다.

그러자.

[무신전에서 그대를 마저 도울 걸 그랬소…….]

천문의 말을 들은 언문이 고개를 숙이며 침음을 흘렸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오. 언문. 나 또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

언문의 말에 천문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처용은 천문과 언문의 대화를 듣고는.

‘천문과 언문의 암살…….’

회귀 전, 둘이 정체불명의 이들에게 암살을 당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천문의 예언, 그리고 습격 당시 상황, 방금 언문과 천문의 대화.

조금 전 얻은 정보들이 처용의 머릿속에 종합되었다.

그러자.

‘회귀 전의 천문과 언문은 검은 별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그들에게 당했던 건가?’

가능성이 높은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처용이 회귀 전 일들을 생각할 때.

[그리고…… 조금 전 천교에서 전갈이 왔었습니다.]

천문이 한숨을 내쉬며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제례를 준비하는 장소 근처에서 왜 행패를 부리고 갔냐고 하더군요.]

패웅과 천문을 노린 검은 별들.

강완이 그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가장 강력한 권능을 사용했었다.

그 결과 싸움이 일어난 일대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천교는 무신전 측에 함부로 신계의 환경을 해쳤다며 책임을 물었다.

[천교 측에는 저희가 습격을 받았었다고 전했었습니다.]

천문은 즉각 천교의 전갈에 대응했다.

하지만.

[저들은 우리가 습격을 받은 건 알 바가 아니라는 식으로 답변하더군요.]

천교는 무신전이 습격을 받은 건 모르겠고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책임만 운운했다.

천문의 말이 끝나자.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해전무신의 인상이 거칠게 일그러지며 분노를 토했다.

비단 해전무신 뿐 아니라 태룡전에 머무는 신격들 모두가 분노한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그 검은 별이라는 놈들은 강해?]

세계수가 궁금한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검은 별들도 권능을 쓸 수 있었습니다.]

천문이 입을 열고는 패웅이 쓰러지기 전, 그가 했었던 말들을 이야기했다.

-놈들도 권능을 쓸 수 있소! 성좌처럼!

패웅이 쓰러지기 직전 천문과 강완에게 했었던 말이었다.

검은 별들 역시 성좌처럼 강력한 권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태초에 가까운 위대한 분을 섬긴다고 하더군요.]

천문은 패웅이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전한 말을 서술했다.

[태초에 가까운 위대한 분?]

세계수가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하자.

“조크-크타니드.”

이야기를 듣던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검은 별들은 악의 종주가 만들어낸 사악한 성좌들인 것 같습니다.”

[인공적으로 사악한 성좌를 만들어낸다? 그게 가능한 건가?]

천문이 믿기 힘들다는 듯 묻자.

“악의 종주는 빌어먹을 태초신이 무책임하게 뒤지면서 탄생한 놈입니다.”

처용이 악의 종주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놈이 태초신하고 가장 가까운 존재인 것은 사실입니다.”

[저 아이 말이 맞아.]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카투라가 처용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걸 보면, 이미 형제들 중 여럿이 잡아먹힌 것 같네.]

카투라의 말에 그녀에게 안겨 있던 도마뱀, 크루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검은 별…… 놈들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텐데.]

태무신이 눈을 감으며 말하자.

[문제는 사라진 검은 별들이 천교와 관련이 있다는 ‘짐작’만 될 뿐, 증거가 없습니다.]

천문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놈들을 찾으려 해도 그건 그거대로 문제이니…….]

답답함이 담긴 천문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일단 환자부터 완치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처용이 의견을 내었다.

[패웅은 지금 치료가 되고 있는 게 아닌가?]

천문이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패웅은 자비의 대신이 발현한 권능으로 치료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완치가 아닌 응급처치입니다. 보살님께서 그리 말씀하셨고요.”

처용이 천문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몸에 박힌 검은 칼날, 파멸의 권능이 담긴 칼날을 제거해야 합니다.”

처용의 말은 사실이었다.

악의 종주가 가진 권능은 파멸.

닿은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는 아주 위험한 권능이었다.

패웅무신의 몸에 박힌 칼날에는 그런 파멸의 권능이 묻어 있었다.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한, 계속 패웅무신을 계속 갉아먹을 것이다.

어렵겠지만, 검은 칼날을 완전히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처용은 그런 크타니드의 권능이 묻은 검은 칼날이 필요했다.

앞으로 할 일에 크타니드의 권능을 역으로 이용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천교에서 먼저 뻔뻔하게 나온다면, 저희도 똑같이 하면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천문이 처용의 말에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러자.

“조만간…… 천교의 성지에 영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이고.”

처용이 미소를 보이고는.

“태무신 님과 천문께서는 천교가 했었던 행동을 그대로 돌려주면 됩니다.”

잔혹한 마음을 최대한 숨기며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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