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처용이 제시카를 따라 쭉 이동하자.
-우우웅.
걸어가는 도중 주변의 환경이 일렁이더니, 마치 게이트에 입장했을 때처럼 복도가 사라지고 다른 환경이 펼쳐졌다.
새로 나타난 환경은 고대 그리스 양식의 넓지 않은 응접실이었다.
“여!”
[왔군.]
미리 와 있었던 것인지, 메리와 그녀의 성좌인 헤르메스가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구나.]
아테나가 처용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반가움을 표했다.
동시에.
-화아아.
초대를 받은 듯 여래가 응접실에 나타났다.
모두가 테이블에 앉자.
[네가 먼저 날 찾은 경우는 처음이구나.]
아테나가 처용을 향해 흥미롭다는 듯한 분위기로 물었다.
“중요한 일이니까요.”
처용이 아테나의 말에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우스에 관한 일입니다.”
처용의 말에.
[전 주신에 관한 일일 줄이야.]
아테나가 표정에 놀람을 감추며 말했다.
비단 아테나만이 아니라.
[으음…….]
“제우스 님?”
헤르메스와 제시카, 메리 또한, 예상하지 못한 말에 놀란 모습이었다.
[자세히 들어봐야겠구나.]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겁니다.”
[상관없다. 다른 일도 아니고 전 주신에 관한 일이니까.]
아테나가 처용의 말에 진지하게 답했다.
그런 아테나를 보며 잠시 생각한 처용은.
“말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테나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제우스가 다시 돌아와 주신의 자리를 넘기라 한다면 어쩌실 겁니까?”
처용의 말에.
[…….]
아테나의 표정에 고민이 일렁였다.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한 침묵의 시간이 지나자.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장 판단하기는 힘들구나.]
고민이 가득 담긴 아테나의 말이 들려왔다.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처용은 그런 아테나를 향해 다시 한번,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제우스가 돌아와서 올림포스를 장악하고 저와 관련된 이들을 공격하라 명하면 어쩌실 겁니까?”
처용의 질문이 울리자.
[뭣!?]
“그게 무슨 말입니까!?”
헤르메스와 제시카, 메리까지, 모두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하는 이유가 있느냐?]
아테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묻자.
“네.”
처용이 아테나를 마주 보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테나가 처용의 말을 듣고 눈을 감으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하고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짧은 생각의 시간이 지나고.
[용납할 수 없다.]
아테나에게서 단호한 감정이 실린 대답이 들려왔다.
[아무리 전 주신이라고 해도, 그런 행패는 받아들일 수 없다.]
“알겠습니다.”
처용이 아테나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제가 그런 질문을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래를 제외한 모두가 처용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가고 마주한 곳은 악몽이라고 불리는 던전이었습니다.”
처용은 침착한 목소리로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악몽이 저에게 보여준 것은, 대략 7년 전의 과거였습니다.”
그리고 악몽 속에서 마주한, 처용이 직접 겪은 과거에 대한 내용을 중심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7년 전까지는 제우스가 있었죠?”
[그래.]
아테나가 굳은 표정으로 처용의 말에 긍정했다.
언제 제우스가 사라졌는지 외부에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처용은 제우스가 어느 시기에 사라졌는지 짚어냈다.
“악몽이 보여준 과거는 진짜 과거가 맞나 보군요.”
처용이 아테나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과거, 제우스는 세계 가문 연합이라는 놈들과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험?]
아테나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하고.
“워, 월드 클랜이라고요?”
제시카 역시 놀란 반응을 보였다.
처용은 놀란 반응을 보이는 이들의 얼굴을 잠시 살피고는.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
과거에서 벌어졌던 사건 사고의 원인 중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말했다.
“태초의 그릇을 이용한 생체 실험, 제우스는 그 실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은 몰랐습니까? 제시카.”
처용이 인상을 구기고 있는 제시카를 향해 물자.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까지는…….”
제시카가 그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세계를 위해 여러 가문이 모여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실험을 했는지, 누가 어떻게 어디서 참여했는지 등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그 당시, 전 후계자 교육을 받고 있던 터라…… 그 일에 참여하지 못했었습니다.”
제시카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테나 님은 모르셨습니까?”
처용이 제시카의 말을 듣고는 아테나에게 물었다.
[전 주신이 중요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테나가 처용의 질문에 과거 제우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혹시, 따로 불러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거나 한 적은 없습니까?”
[잘 모르겠구나.]
“흠…….”
처용이 아테나의 말을 듣고 침음을 흘리고는.
“본래 7년 전에는 성좌들이 떼거지로 지상에 강림하는 일 자체가 없었군요.”
악몽 속 과거를 떠올리며 말했다.
-분명,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쓰지 말라고 했거늘.
악몽 속 2회차 때, 오딘이 지상에 강림하며 했었던 말이었다.
이 말로 짐작해 볼 때, 본래 세계에서는 성좌들이 지상에 강림하는 ‘급박한’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악몽 속 성좌들이 지상에 강림한 가장 큰 이유는.
‘나 때문이군.’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인간.
처용이 나타나 연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테나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묻자.
“악몽 속에서 신들이 저를 잡으려고 염병을 떨더군요.”
처용이 악몽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제우스, 오딘, 옥황상제…….”
그 당시 연합이 했었던 실험에 누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는지와.
“대부분 성운은 태초의 그릇 때문에 참여한 듯했지만, 일부는 무언가 더 깊게 관여된 듯 보였습니다.”
의심이 가는 부분 등을 이야기했다.
[전 주신을 좋게 보지 않는 이유가 있었구나.]
아테나가 작은 한숨을 쉬며 말하자.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어봤거든요. 자비의 대신에게 사죄는 했는지, 미안한 마음이 있기는 한지를…….”
악몽 속에서 마주했었던 제우스.
처용은 그에게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지 확인해봤었다.
하지만.
“제게 돌아온 답변은 제우스의 벼락이었습니다.”
제우스는 자비의 대신에게 저지른 짓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는 태도가 없었다.
오히려.
“이후에는 제게 그릇이 있는 줄 알고 집착과 광기를 보이며 저를 생포하려 하더군요.”
처용을 집요하게 노리기까지 했었다.
처용의 말이 울리자.
[그렇군.]
[아버지가 그랬단 말이지…….]
아테나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헤르메스가 작은 짜증을 표했다.
[지금 한 말, 전부 사실이야?]
헤르메스가 처용을 향해 사실 여부를 물었다.
“저 역시 제가 악몽에서 겪은 일이 정녕 사실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처용이 헤르메스의 질문에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악몽 속에서 겪은 일은 사실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로 악몽 속에서 구현된 ‘학살의 마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말할 순 없었다.
그 대신.
-탁.
처용은 헤르메스의 말에 책상 위로 문서 한 권을 올려 보였다.
“악몽 속에서 얻은 정보입니다.”
처용이 내민 것은 에드워드에게서 얻은 서류였다.
정확히는 그가 보여준 서류를 마법으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혹시 몰라 사본을 만들어 두길 잘했군.’
처용의 예상대로 에드워드가 건네준 원본 서류는 악몽을 나오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차락. 차락.
제시카가 서류를 들고 하나하나 넘기며 살펴보자.
“……가문의 인장이군요. 이것도……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알고 있던 겁니다.”
서류에 적힌 내용들을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해 보였다.
“더 자세히 봐야겠지만…… 거짓말은 아닌 듯 보입니다.”
“열 권 정도 더 있으니 다 드리죠.”
처용이 제시카의 말에 서류를 더 꺼내 보이며 말하자.
“도대체 이걸 어디서……?”
제시카가 처용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지금 처용이 보인 서류 중에는 제시카가 그간 의심만 하고 있던 내용들도 적혀 있었으니까.
“에드워드 백 르블랑이라는 사람에게 얻었습니다. 지금은…… 죽은 사람이겠고요.”
“……르블랑?”
“연합이 없애버리려던 가문.”
처용이 제시카의 의문에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에드워드는 실험에 대한 입막음이라고 하던데…… 아는 거 없습니까?”
“제가 기억하기로 르블랑 가는 비도덕적인 짓을 저질러 말살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큭, 현실에서는 입막음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나 보군.”
제시카의 말에 처용의 입가가 비틀리며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직접 본 과거에서는 군인들과 헌터들이 르블랑 가를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처용은 악몽 속 과거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들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이 문서 안에는 연합이 강제로 생체 실험한 어린아이들 목록이 있고…….”
증거물로 한 권의 서류를 더 꺼내 보이며 말을 잇자.
“7년 전에 실종되었다던 애들이 설마…….”
제시카가 무언가 떠오른 부분이 있는지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말했다.
“과거에 실종된, 연합 소속 가문의 아이들까지…… 확실해! 내가 기억하는 이름이 있어.”
메리 역시 서류를 확인해보며 놀란 듯 말했다.
“그 아이들을 희생시키는 데 앞장선 신이 제우스였습니다.”
처용이 서류를 살피는 제시카와 메리를 향해 말하고는.
“이것이…… 아까 제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 대한 답입니다.”
아테나와 헤르메스를 바라보며 말을 마쳤다.
처용의 말에.
[…….]
아테나가 생각이 많아진 듯 침묵했다.
그리고.
[만약 전 주신께서 돌아와 이 일을 반복하려 한다면…….]
생각을 마친 아테나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그를 막을 것이다.]
아테나의 말이 울리자.
“뭔가, 쉽게 믿어 주시는 느낌이 드는데요?”
처용이 진지하게 물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과거를 보여주는 던전, 허무맹랑한 소리로까지 들릴 정도로 현실감이 없는 내용이었다.
악몽 속 과거가 사실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있다지만, 그건 말할 수 없었다.
악몽 속 과거가 진실이라는 증거가 조금 빈약한 상황.
그런데 아테나는 처용을 믿는 듯 보였다.
[전 주신이 내게 했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아주 중요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제우스가 아테나에게 넌지시 했었던 말.
중요한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 호출하면 즉시 전투를 준비하라는 명령이었다.
[아마도…… 네가 말했었던 성좌들의 단체 강림과 관련이 있는 것 같구나.]
아테나가 제우스를 떠올리며 말하고는 말을 이었다.
[결정적으로 지금껏 네가 보여주고 증명한 정의(正意)를 믿겠다.]
“좋습니다.”
아테나의 믿음이 담긴 말에 처용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선…… 이 일은 우리만 알고 있도록 하지.]
한숨을 내쉰 아테나가 헤르메스를 향해 말하자.
[어머니께서 아셔 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헤르메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어머니께는…… 조금 더 알아보고 차후, 내가 직접 전해야겠어.]
아테나가 올림포스의 대신 중 하나, 헤라를 생각하며 읊조리듯 말했다.
그녀는 아직도 실종된 제우스를 찾고 있었으니까.
처용은 그런 아테나와 헤르메스를 바라보고는.
“솔직히,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가장 의문이 드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제우스는 사라지기 전, 정의의 여신에게 주신의 자리를 양도했는가.”
처용이 아테나를 향해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었다.
제우스에 관한 일은 회귀 전에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그 당시에는 동료인 아테나를 배려하는 마음에 먼저 물어보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사건이 사건인지라 제우스에 대하여 알아봐야만 했다.
아테나와 대화를 마치고 의문이 드는 점이 있었으니까.
‘왜 하필이면 아테나에게 주신의 자리를 넘겼을까?’
가장 의문이 드는 점이었다.
악몽 속에서 마주한 제우스는 전형적인 선천적 신격다운 모습을 보였다.
인간을 하찮게 여기고 오만하며 강욕적인 성좌.
그런 제우스가 헤라, 그리고 다른 대신들인 포세이돈, 헤스티아, 하데스 그 모두를 제치고.
그 당시 정의의 여신이었던 아테나에게 왜 직접 주신의 자리를 넘겼는가?
처용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아테나는 개인의 욕망이라는 감정과 가장 거리가 먼 성좌였다.
심지어 그녀는 제우스가 불순한 목적으로 돌아와 행패를 부리면 적대한다고까지 말했다.
제우스 역시…… 그런 아테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악몽 속에서 제우스를 보고 처음에는 그가 대악마와 협력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반신반의한 부분이었다.
혹시 제우스가 판데모니움으로 투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헤르메스가 처용에게 묻자.
“제우스가 크타니드와 손을 잡았다면, 정의의 여신에게 주신의 자리를 넘길 리가 없지요.”
처용이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제우스가 사라지기 전, 뭔가를 말해주거나 한 건 없었습니까?”
아테나를 향해 질문했다.
처용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듯 침묵한 아테나는.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말이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으로 제우스를 마주했을 때, 그가 전했었던 말을 읊조렸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런 짐을 짊어지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 당시 제우스가 작은 슬픔이 담긴 목소리로 아테나에게 전했었던 말이었다.
[도대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길래…….]
아테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지르며 답답한 감정을 담아 말할 때.
[……이건 그냥 제 생각, 가설입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여래가 입을 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