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61화 (261/726)

#261화

처용이 돌아오자 성지에 머무는 사람들이 안도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아무리 처용이 강하다 해도 자리를 오래 비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3주나 지났다고요?”

처용이 커맨더에게 묻자.

“맞아, 네가 체르노빌에서 사라진 지 딱 3주가 지났어.”

커맨더가 한 번 더 정확하게 말해주었다.

처용은 시간이 며칠 지났으리라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길어 봤자 일주일 정도로 판단했다.

실제로 악몽 속에서 있던 시간은 체감상 그리 길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3주라는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그래도 별일은 없어 보이네요.”

처용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 당황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

내심 걱정되었던 부분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었으니까.

예를 들면 누군가가 크게 다치거나, 혹은…… 죽는다거나.

다행히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은 없는 듯 보였다.

“곧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일이 있긴 한데…….”

커맨더가 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추후 듣겠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처용은 커맨더의 말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우우웅.

게이트를 열고 성역부터 찾아갔다.

[왔구나.]

처용을 본 여래가 반가운 감정을 담아 말했다.

그러자.

“……무슨 일 있었습니까?”

처용이 여래를 포함한 두 신의 분위기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묘하게 분위기가 좋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아니, 별일은 없었다. 그보다도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구나.]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죠.”

처용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고는.

“중요하게 알아봐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악몽 속에서 마주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단 하나, 4번째 악몽인 트라우마만을 제외하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게다가 언급해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 시기에 도움이 되는 정보조차도 아니니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악몽 속에서 얻은 단서 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으니까.

“태초의 그릇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처용은 악몽 속에서 자주 언급된 것 중 하나.

태초의 그릇에 대해서 물었다.

중요한 물건이라는 짐작은 들지만, 아직도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몰랐으니까.

처용의 질문에.

[…….]

[…….]

[…….]

세 명의 대신이 서로를 마주 보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들은 적은 있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이라고 설명하기에는…….]

가장 먼저 입을 연 보살이 고개를 기울이며 잘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나 역시, 그것에 대해 듣기만 했을 뿐, 본 적은 없구나.]

여래 역시 정확히는 모른다는 듯 말했다.

마지막을 남은 사람, 아니 신.

[……흠.]

미륵은 눈을 감고 팔짱을 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침음을 흘렸다.

그렇게 잠시 침묵하고는.

[우선, 그걸 어디서 들은 것이냐?]

눈을 뜨고 처용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음…… 일단 정황을 설명하자면-.”

처용은 어떻게 태초의 그릇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동시에 악몽 속에서 얻은 단서를 토대로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마녀, 레나 르블랑이라는 마인의 몸속에 그게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악몽 속에서 겪은 일들을 토대로 판단할 때, 태초의 그릇은 마녀가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듯 보이지만…….

처용이 악몽 속의 일들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태초의 그릇이 인간에게 이식되었다고?]

미륵이 안대에 가려지지 않은 왼쪽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게 정확한 사실인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됩니다.”

처용은 미륵의 말에 진지하게 대답하고는.

“도대체 태초의 그릇이 무엇입니까?”

태초의 그릇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했다.

분위기상 미륵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

[……가장 원시적인 우주의 힘이 담긴 주머니다.]

미륵은 전부 설명해 줄 수 없다고 덧붙이며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태초신이 소멸하면서 퍼진 중요한 ‘조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구나.]

태초신이 소멸하면서 남은 잔재 중 하나.

그것이 태초의 그릇이었다.

다만.

[태초신이 소멸함과 동시에 없어졌어야 할 물건이…… 왜?]

태초의 그릇은 태초신이 소멸하면서 함께 사라졌었다.

미륵이 의문을 표할 때.

“이거도 그와 비슷한 물건입니까?”

처용이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화아아.

금빛으로 빛나는 태룡전의 열쇠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급하게 악몽 속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

학살의 마녀는 처용에게 있는 태초의 힘으로 악몽을 나가라 조언했었다.

처용이 격렬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태룡전의 열쇠였다.

그 당시에는 확신이 없었지만, 처용의 선택은 정답이었다.

그렇다면 이 열쇠 역시 태초의 힘과 관련이 있다는 것.

“태초의 그릇에 이걸 접촉시키는 것으로 악몽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만…….”

처용의 말이 울리자.

[……그렇군, 정말로 태초의 그릇이었군.]

미륵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맞다. 그것 또한, 아주 ‘특별한 조각’으로 만들어졌지.]

“그렇군요.”

처용이 미륵의 말을 듣고는 손에 들린 열쇠를 관찰하며 말했다.

[이 사실을 너 말도고 또 누가 알고 있느냐?]

“아마…… 본인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륵의 말에 처용이 마녀를 떠올리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본 마녀의 반응을 볼 때, 그녀는 악몽이 보여준 과거를 기억하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필이면…… 좋지 않군.]

처용의 말을 들은 미륵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걸 회수해야 한다.]

“……죽입니까?”

미륵의 말이 처용이 싸늘하게 말했다.

태초의 그릇이 자리 잡은 마녀.

그녀를 죽인다면 깔끔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 그릇이 이식된 인간이 죽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미륵은 처용의 말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렇군요.”

처용이 미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알 역시 마녀에게 태초의 그릇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 테니…….”

거대한 어둠의 대악마, 바알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악몽이 보여준 과거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바알은 태초의 그릇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이 마녀에게 이식되어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을 터.

다만, 마인이 된 마녀에게서 그릇을 왜 당장 회수하지 않는지는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가능하면 이 자리에서 그릇을 차지하려 했거늘……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것인가?

악몽 속, 레나가 소환한 바알의 말로 짐작해 볼 때, 무언가 사정이 있는 듯 보였다.

대충 유추해보자면.

‘바알은 당장 마녀에게서 그릇을 빼앗을 순 없다.’

바알이 당장 마녀를 해하고 그릇을 차지할 가능성은 적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릇을 노리는 모든 이들로부터 마녀를 지켜야 할 판이었으니까.

“하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생각을 마친 처용이 한숨을 내쉬며 미륵을 향해 묻자.

[……당장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군.]

잠시 고민하듯 침묵한 미륵이 입을 열었다.

마녀를 죽이는 것도, 그녀에게서 그릇만 빼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산 채로 잡아 오너라, 그러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보겠느니라.]

남은 방법은 마녀를 생포해 오는 것.

이것조차도 임시방편에 불과했지만, 지금으로써는 최선이었다.

“쉽지 않군요.”

처용이 작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지금 시기의 마녀와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사살과 생포는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지금은 상급 마인인 마녀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일단 염두에 두겠습니다.”

결국, 당장 무언가를 할 수 없다 판단하고 이 일을 보류했다.

“그리고 당장 아테나를 만나 봐야겠습니다.”

태초의 그릇만큼이나 중요한 일들이 많았으니까.

[제우스를 봤다고 했느냐?]

미륵이 처용이 했었던 말들을 다시 떠올리며 말했다.

자취를 감춘 전대 올림포스 주신인 제우스.

그가 처용이 마주했었던 악몽 속 과거에서 나타났으니까.

[도대체…… 태초의 그릇으로 무슨 짓거리들을 한 건지.]

“깊게 관련되어 있는 놈들은 제우스를 포함한 일부 주신들인 것 같았습니다.”

처용이 미륵의 말에 악몽 속에서 봤었던 상황을 설명하며 의심되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흠…… 다른 주신 놈들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보겠다.]

미륵의 처용에 말에 답하자.

[제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침묵하고 있던 보살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그 당시에 깊게 개입되어 있지 않았다 해도, 무언가 아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보살의 말에 여래가 답하고는.

[우리는 아테나를 만나봐야겠구나.]

곧장 처용을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여래의 말에 처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이야기를 마친 처용은 곧장 게이트를 이용해 올림포스의 성지로 찾아갔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다행입니다.”

제시카가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처용을 반겼다.

“아테나 님을 만나야 합니다.”

처용은 제시카의 인사를 대충 받고는 급한 용건을 꺼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제시카는 처용의 모습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곧장 파악하고는.

“아테나 님, 지금….”

눈을 감으며 아테나에게 소식을 전했다.

제시카가 아테나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십니다.”

감았던 눈을 뜨며 처용을 향해 말했다.

“기다리죠.”

처용이 곧장 대답하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제시카가 처용을 향해 궁금한 듯 물었다.

“이따가 아테나 님과 함께 있을 때 이야기하겠습니다.”

처용은 제시카의 질문에 이따가 말해준다고 답하고는.

“그것보다…….”

복도에 나열된 기둥 중 한 곳을 날카롭게 응시했다.

“난 누가 몰래 엿듣는 걸 좋아하지 않아.”

처용이 복도 기둥을 바라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에서 은밀하게 기척을 죽이고 대화를 엿듣는 이가 있었으니까.

“……네?”

제시카가 처용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지금 자신과 처용이 있는 이 복도는 길드장실 앞이었다.

이곳에 자주 오는 이들은 메리를 포함한 소수.

특별한 용건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잘 오지도 않는 장소였다.

게다가 자신의 감각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저벅.

곧 기둥 뒤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이는 웨이브가 진 긴 금발 머리에 단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었다.

“헬레나?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제시카가 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성, 헬레나를 향해 말하자.

“그……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숨었는데요.”

헬레나가 작게 기어 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움츠리며 말했다.

“……누굽니까?”

처용이 제시카를 향해 묻자.

“미의 여신님의 신관입니다. 제 친척이기도 하고요.”

제시카가 헬레나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헬레나 로스차일드.

연아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연약한 분위기의 여성.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관.

처용도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디오니소스와 같은 부류…….’

아프로디테 역시 회귀 전 크타니드에게 투항해 악신이 되었었던 여신이었다.

그 점이 조금 꺼렸던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제시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고?’

헬레나를 보며……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처용이 헬레나를 보며 속으로 의문을 가질 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헬레나?”

제시카가 헬레나를 향해 물었다.

“빌리가 바쁘다고 이걸 대신 부탁했는데…….”

헬레나가 쭈뼛거리며 제시카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이전에 지시했었던 사항에 대한 결산 보고서였다.

“……나중에 확인해 볼 테니, 일단 가 봐.”

“알았어요.”

헬레나가 제시카의 말에 대답하고는 뒤돌아 걸어 나갔다.

“지금 바로 가시죠.”

그 모습을 본 제시카가 처용을 향해 말하며 어디론가 이동했다.

처용이 제시카를 따라 복도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쯧.”

어리숙하고 여려 보이던 헬레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고혹적인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색무취의 매료향이 통하지 않는다라?”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무색무취(無色無臭)의 매료향.

말 그대로 아무런 색도, 냄새도 나지 않는 향이었다.

이 향을 활용하면 대상의 감정과 사고를 원하는 방향대로 유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향의 가장 무서운 점은 따로 있었다.

이 향은 상대에게 향을 뿌리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용자가 자기 자신에게 사용하는 향수였다.

스스로에게 향을 뿌리고 원하는 대상에게 접근하는 것.

이것이 무색무취의 매료향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즉, 이 향은 자기 자신에게 사용하는 것이기에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인 방어 스킬을 가진 헌터라 해도 이 향을 눈치챌 수는 없었다.

상대가 모르게 그 대상을 마인드 컨트롤 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하고 위험한 향.

그것이 무색무취의 매료향이었다.

회심의 카드로 아껴두었던 단 하나뿐인 향을 이번 기회에 사용한 것이었지만.

“간단하게 차지하나 싶었는데, 괜히 신격에 닿은 놈이 아니었나 보네요.”

처용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 보였다.

향에 감염된 사람이 보이는 특징이 전혀 보이질 않았으니까.

게다가 무언가 이상한 듯한 낌새를 알아챈 듯, 꺼리는 모습도 보였다.

다행히도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르는 듯했지만.

“위험하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죄송해요. 실패해 버렸네요…….”

마치, 누군가에게 대화를 하는 듯 작게 말하며 헬레나가 사라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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