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악몽이 재구성됩니다.]
갑자기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
그리고.
-쿠궁! 쩌저적! 쩌적!
세상이 요동치며 무언가가 깨지는 듯 금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뭐야?’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흔들림은 바알과 신격들에 의한 싸움으로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이 공간이…… 아니, 세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악몽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릇을 내놓아라!]
[죽어라! 대악마!]
바알과 다른 신격들이 요동치는 세상을 무시하고 계속 싸우는 중이었으니까.
마치, 세상의 흔들림을 처용만 느끼는 듯 보였다.
그때.
“이, 이게…… 이게, 뭐야?”
레나 역시 흔들리는 세상이 느껴지는 듯 머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 꼬마와 나만 이걸 느끼는 건가?’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악몽 속의 이변은 처용과 주요 요인인 레나만이 느끼는 것 같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 처용이 주변을 둘러볼 때.
[악몽의 완전한 초기화를 시작합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됩니다.]
[남은 시간 : 60]
[남은 시간 : 59]
.
.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좋지 않은데…….’
아무리 봐도 시스템의 카운트다운이 다 되는 순간, 무언가 불길한 일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처용의 예감이 맞다는 듯.
[여기까지인 것 같군.]
마녀의 목소리가 시스템을 통해 울려왔다.
[더 시간을 끌고 싶었지만, 이젠 불가능-.]
[당장 여기서 나가라.]
시스템을 통한 마녀의 목소리가 울리자.
“뭐 어떻게 나가라는 거냐?”
처용이 다급한 감정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물었다.
이 악몽 속을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었으면 진작에 나갔을 테니까.
[네가 가진 태초의 힘을 이용-.]
[그릇과 태초의 힘이 맞닿으면 문이 열릴-.]
마치 처용의 질문을 들었다는 듯, 마녀가 해결책을 알려주었다.
“나한테 태초의 힘 같은 게 어디에 있냐!”
처용이 마녀의 말에 거칠게 물었다.
태초의 힘? 그런 건 소유한 적도 없고 수련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계승자인 네놈만이 쓸 수 있는 게 있지 않-.]
마녀는 처용에게 태초의 힘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듯 말하고 있었다.
[악몽이 완전한 초기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 31]
[남은 시간 : 30]
.
.
지금, 이 순간에도 시스템 창에 보이는 남은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처용이 마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머리를 세차게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나만이 쓸 수 있는?’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것.
떠올릴만한 것들은 많았다.
선술, 신력, 그리고…… 오랜 세월 수련하며 단련한 수많은 기술들.
다른 헌터들은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처용만의 힘이었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이…… ‘계승자’인 나만이 쓸 수 있는 것.’
처용은 다시 생각했다.
[남은 시간 : 10]
[남은 시간 : 9]
.
.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계속 생각했다.
이윽고.
-탁!
처용이 뒤에서 웅크리고 있는 레나를 향해 뛰어갔다.
“레나!”
“으……?”
레나가 처용의 외침에 힘겹게 고개를 들어 보였다.
순식간에 레나의 곁에 다가온 처용은.
“이게 정답이기를 바란다.”
-우웅.
굳은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남은 시간 : 2]
[남은 시간 : 1]
남은 시간이 완전히 다 되기 직전!
-탁!
처용이 꺼낸 ‘태룡전의 열쇠’가 레나의 이마에 닿았다.
-쩌저저적!
카운트다운이 다 된 영향인지, 주변의 환경이 무너지며 검은 우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아아아!
처용과 레나가 금빛 섬광에 휘감기며 사라졌다.
***
처용과 레나가 금빛 섬광에 휘감겨 사라지고.
“……성공한 거냐? 실패한 거냐?”
낯선 장소에 홀로 나타난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읊조렸다.
하늘 끝까지 솟구친 거대하고 굵은 나무들이 자라난 숲과 같은 장소.
나무의 이파리가 풍성하고 푸른 빛을 띠는 숲이라면 장관이었겠지만.
‘으스스하고…… 기괴하군.’
거대한 나무들은 차디찬 겨울을 맞이한 것처럼 이파리가 모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었다.
바닥에는 붉고 검게 물든 나뭇잎들이 쌓여 있었고 하늘 역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처용은 새로 나타난 공간에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묘하게…… 익숙한데?”
무언가 익숙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처용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볼 때.
-철컥! 탁!
갑옷과 갑옷이 부딪히는 쇳소리와 동시에 누군가가 처용의 앞을 가로막듯 나타났다.
검은색과 붉은색, 금색이 적절히 섞인 갑옷.
얼굴 부분에 씌여진, 흔히 치우라고 불리는 도깨비 가면을 쓴 모습.
게다가 양팔은 손이 아닌.
-스르릉!
날카로운 칼날로 이루어져 있었다.
골렘처럼 보이는 기괴한 모습의 무언가.
‘저것도…… 이상하게 익숙한데?’
처용은 앞을 가로막듯 나타난 골렘을 보며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저 골렘을 던전이나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시각적인 익숙함이 아닌, ‘감각’에서 전해져 오는 익숙함이었다.
처용이 골렘을 보며 생각할 때.
-스르릉!
치우 가면을 쓴 골렘이 양팔, 칼날을 교차하듯 자세를 잡고는 처용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역천의 절을 꺼내려 했지만.
‘보물전이!?’
아공간이 열리지 않았다.
-사각!
처용은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일단 가볍게 뒤로 빠지며 칼날을 피했다.
그러자.
-우우웅!
골렘의 칼날에 금빛이 은은하게 흐르는 붉은 강기가 솟구쳤다.
‘무슨!?’
처용이 골렘의 강기를 보며 놀람을 표했다.
눈앞의 골렘이 보인 강기는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놀랄 만한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스릉.
골렘이 양팔을 접어 허리춤에 대는, 발도 자세를 잡고는.
-스릉! 촤자자작!
칼날을 빠르게 앞으로 내지르며 날카로운 강기의 조각들을 내뿜었다.
‘검의 비명!?’
놀랍게도 골렘이 사용한 기술은 ‘검의 비명’이었다.
처용은 놀람을 뒤로하고 손바닥에 강기를 피워올리고는.
“반탄장.”
-차카카캉!
강기가 일렁이는 손으로 태극을 그리며 검의 비명을 모조리 쳐내었다.
동시에.
“……알았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조용히 읊조렸다.
-우우웅!
그런 처용을 본 골렘이 다시 칼날을 교차하며 처용에게 달려들었다.
처용은 골렘을 보며 오른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골렘이 거의 지척에 다가온 순간, 처용이 손을 내렸다.
-스르릉!
어느새 처용의 오른손에 쥐어진 역천의 절이 날카로운 칼날을 빛내며 골렘에게 떨어져 내렸다.
-차캉!
단단한 철이 서로 충돌하는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처용이 내리친 칼날을 골렘이 양손의 칼날을 교차하여 막았다.
-콰드드득!
날카롭게 벼려진 강기가 충돌하며 서로 지지 않겠다는 듯 불꽃을 피웠다.
짧은 대치가 이어지고.
-우우웅! 쿠궁!
처용이 강기를 더 크게 피워올리며 골렘을 거세게 밀어냈다.
-콰쾅!
나가떨어진 골렘이 뒤에 있던 나무에 충돌하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릉! 철컥!
골렘이 칼날을 바닥에 세워 몸을 지탱하고는 다시 일어서려는 때.
-샥!
처용이 골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일어나라.”
골렘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역천의 절.”
처용의 말이 울리자.
-스릉. 철컥.
치우 가면을 쓴 골렘, 역천의 절이 칼날을 내리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처용은 그런 골렘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 전, 골렘과 싸우며 이 장소가 어디인지 깨달았으니까.
앙상하고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에 닿을 듯 솟아 있는 숲.
이곳은 처용의 심상세계(心象世界)였다.
-자신만의 색과 의지를 수련한 자가 극의에 닿으면 그 심상(心象)을 구현할 수 있다.
회귀 전 검성이 처용에게 했었던 말.
심상세계는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갈고닦은 무인이 극의에 닿은 순간.
그 무인의 마음이 구현된 세계였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지금 있는 이 장소는 처용의 마음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처용은 이 장소가 어디인지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에게 칼날을 겨누는 골렘의 정체도 알아챈 것이었다.
“거친 방법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처용이 골렘, 역천의 절을 향해 말하자.
-철컥.
골렘이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였다.
치우 가면을 쓴 골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자신의 무구.
역천의 절이 구현된 모습이었다.
“에고(Ego)가 더 강해진 건가?”
처용이 역천의 절을 향해 물어보듯 말했다.
에고(Ego),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아(自我).
역천의 절은 루돌프에 의해 강화되었을 때부터 옅은 자아를 가지던 무구였다.
아마 지금껏 전투를 치러오면서 그 자아가 더 짙어진 듯 보였다.
-철컥.
처용의 말에 긍정하듯 역천의 절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역천의 절은 주인인 처용에게 해를 입힐 목적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장소에 대한 정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알려준 것이었다.
역천의 절에 깃든 자아는 처용이 그동안 벌인 투쟁으로 인해 만들어졌으니까.
“왜 이렇게 변한 건가?”
처용이 주변을 다시 둘러보며 읊조렸다.
회귀 전, 드높은 경지에 닿았었던 만큼, 심상세계에 대해 알고 있었다.
수련을 통해 자신의 심상세계 또한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한 자신의 심상세계는 무언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원래,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하고 드높은 나무들은 푸른 잎이 무성했었다.
하늘 역시 창공처럼 푸르고 맑았었다.
단단하고 굳건함 마음을 보여주듯 듯한 숲이 자신의 심상세계였다.
하지만 생명력이 넘치듯, 푸르고 거대한 나무들은 차가운 잿빛을 띠고 있었다.
푸르던 이파리는 모두 말라 떨어져 마치 피에 젖은 듯 축축하고 검붉은 땅을 만들어냈다.
창공처럼 맑던 하늘 역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자신이 알던 스스로의 심상세계와 다른 모습이었기에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도대체……?”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의문을 표할 때.
-철컥.
역천의 절이 고개를 들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처용이 그 방향으로 눈동자를 돌려 바라보자.
“설마 했지만……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인데?”
거대한 나무 아래.
뿌리가 일부 드러난 자리 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입을 열어 말했다.
“너는……!”
처용이 나무뿌리 위에 앉아 있는 이를 확인하자 눈이 점점 커졌다.
“마녀!?”
나무뿌리 위에 앉아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녀.
정확히는 악몽으로 인해 구현되었던 학살의 마녀였다.
“네가…… 왜 여기에?”
처용이 굳은 표정으로 묻자.
“나도 몰라.”
마녀는 자신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른다는 듯 말하고는.
“분명, 시스템에 의해 내 데이터는 전부 삭제되었어야 했는데…….”
마치 본인이 만들어진 프로그램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말을 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
담담한 마녀의 태도에 처용이 침묵했다.
뭐라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아직 악몽 속에서 얻은 여러 정보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한 상태였다.
게다가 눈앞에 학살의 마녀까지 다시 나타난 상황.
심지어 그냥 나타난 것도 아닌, 처용의 심상세계에 자리해 있었다.
처용이 상황을 파악하며 생각을 정리할 때.
“시작하자마자 머리를 날려버리는 걸 보고 어쩌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알아낸 것 같군.”
마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네가 만들어낸 것들이었나?”
예상대로 조금 전 악몽 속에서 펼쳐진 과거는 학살의 마녀가 손을 쓴 것이 맞았다.
“더 정확히는 내 과거의 데이터를 구현한 거지.”
마녀는 처용의 말에 긍정하며 말을 이었다.
“……뭘 알려주려고 했었던 거냐?”
처용은 마녀에게 중요한 질문을 건넸다.
그녀가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처용에게 보여주려 했던 과거였으니까.
“글쎄? 어느 한 소녀의 불쌍한 인생사?”
마녀는 처용의 질문에 가벼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 어차피 데이터에 불과한 내가 여기서 뭘 더 할 순 없으니까.”
처용의 질문에 대한 답을 거부했다.
그리고.
“저놈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녀의 말이 끝난 순간.
-화아아아!
허공에 붉은 에너지가 뭉치며 무언가가 나타났다.
-달그락! 탈각!
마치 두려움을 느낀 듯, 역천의 절이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이윽고.
-스르르.
붉은 에너지가 뭉쳐지며 무언가 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인 악마와 같은 형상을 한 전신 갑주.
“크타니드!?”
처용이 눈앞에 나타난 존재를 보며 크게 경계하듯 말하고는.
‘아니, 조금 다르다.’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
회귀 전, 가장 거대한 적이었던 조크-크타니드.
눈앞에 나타난 이는 그런 크타니드와 거의 흡사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크타니드는 전신이 빛 한점도 허락하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자였다.
반면에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붉은 색이 섞여 있었다.
“……그렇군.”
처용은 눈앞에 나타난 존재의 기운을 느끼며 자세히 살피고는.
“드디어 만났네.”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반갑다. 이 기생충 새끼야.”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다름 아닌 죄악의 파편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