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대한 독수리가 군대의 정중앙을 휩쓸고 다니자.
-뭐, 뭐야 저거!?
-왜 몬스터가!?
-으아아!
일사불란하게 저택을 포위하던 군인들과 헌터들의 진형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저거 잡아!
-스킬을 써!
그나마 헌터들 중 일부가 뭉쳐 어떻게든 대항해보려 했었다.
하지만.
-푸화아아아!!
하늘을 빠르게 비행하는 독수리가 다시 한번 폭풍의 숨결을 쏘아 보냈고.
-으아악!
-피해!
어떻게든 맞서 싸워보려던 헌터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지면에 처박혔다.
독수리가 군대와 헌터들의 진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을 때.
“뇌격부.”
처용이 여덟 장의 뇌격부를 허공의 띄워 회전시키며 하늘로 올려보냈다.
-파지지직!!
강렬한 뇌전이 튀는 샛노란 고리가 구름 위로 사라지자.
-쿠궁! 쿠르릉!
순식간에 먹구름이 끼며 하늘이 울리기 시작했다.
“만뢰(萬雷).”
처용이 손을 아래로 내리며 말하자.
-쿠구! 쿠콰콰콰콰!!
하늘 위에서 수백 줄기의 벼락이 소나기처럼 내리치기 시작했다.
-콰쾅! 파지직! 파직!
내리친 벼락들이 장갑차 등 현대식 병기들을 불태워 버렸고.
-콰쾅! 파사사…….
군인들과 헌터들을 잿더미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니, 뇌운(雷雲)이 자리한 지역 전체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뇌운이 자리한 장소를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
“빠져나가라!”
“이쪽으로!”
헌터들 중 일부가 서로 뭉치며 뇌운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나 뇌운 밖으로 발을 딛는 순간.
-푸화아아아!
그들을 향해 폭풍이 숨결이 몰아쳤다.
“으아아!”
“막을 수 없-!”
선두에 섰던 이들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바람에 온몸이 찢겨나가며 뒤로 날아가 지면에 처박혔다.
뒤따라오던 헌터들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바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뒤로 날아갔다.
-캬아아!
거기에 하늘을 유영하는 거대한 독수리까지 아무도 뇌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짧은 시간, 비명과 천둥소리만이 가득한 죽음이 지나가고.
-치이이…….
새까맣게 타버린 죽음의 땅이 드러났다.
전멸(全滅).
저택을 포위했던 이들 중 살아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데커드가 눈앞에 드러난 광경을 보며 침음을 흘렸다.
저택을 빽빽하게 포위하던 적들이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불과 10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일을.
“이제 방해꾼은 사라졌군요.”
담담한 표정으로 말하는 젊은 동양인 혼자서 저질렀다.
“두 번째 봐도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에드워드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에드워드…….”
데커드가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마치, 설명을 요구하듯 작게 말했다.
“안심하게, 일단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일세.”
에드워드가 처용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나 역시 이분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걸세, 자네를 만나지도 못했을 테고…….”
“그런가…….”
데커드가 에드워드의 말에 안심한 듯한 미소를 짓고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용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처용은 데커드의 감사에 무표정만 드러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면 속에는 그런 얼굴이었나?’
단 한 번도 얼굴이 보인 적이 없던 섀도우 헌터.
가면을 쓰지 않은 데커드는 30대로 보이는 잿빛 머리의 서양인이었다.
“저택 안에도 누가 있는 것 같은데?”
처용은 데커드의 감사를 대충 넘기고 저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와주신 덕분에 저 사람들도 살 수 있었습니다.”
데커드가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하고는.
“서둘러…… 빠져나가야 합니다.”
빨리 도망칠 것을 촉구했다.
“안 그래도, 그 말 하려고 했네.”
에드워드가 그 말에 동의하듯 말했다.
상황이 모두 정리된 후, 데커드가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처용과 에드워드, 레나가 따라 들어갔다.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저택 안에 숨어있었던 사람들이 데커드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비밀 통로로 도망치라고 하지 않았나!”
데커드가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 호통을 섞어 말하자.
“가주님만 두고 갈 순 없습니다.”
“저희만 도망칠 순 없었습니다…….”
숨어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처용은 저택에 숨어있던 이들의 이름을 통찰의 눈으로 확인하고는.
‘……익숙한 이름들인데?’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읊조렸다.
곧, 그들의 이름이 익숙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전부…… 섀도우 헌터들이군.’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섀도우 헌터들.
정확히 말하자면 악몽이 아닌 현실에서 섀도우 헌터들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통찰의 눈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름이 악몽에 말려들기 전에 봤었던 섀도우 헌터들의 이름과 같았으니까.
‘머리가 아프군.’
처용이 복잡한 표정을 숨기며 머릿속의 정보를 정리할 때.
“미안하네…… 에드워드.”
저택 안에서 힐러인 에드워드에게 치료를 받던 데커드가 입을 열었다.
“하워드를…… 자네 아들을 지키지 못했네.”
데커드의 말에.
“그렇…… 군.”
에드워드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하워드가…….”
레나 역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있어 에드워드의 아들인 하워드는 동갑내기 친척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손을 썼어도……!”
에드워드의 반응을 본 데커드가 주먹을 쥐며 분하다는 듯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데커드.”
에드워드가 데커드에게 그간 있었던 사정을 묻자.
“연합의 욕망이…… 선을 넘었네.”
데커드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연합이 비밀스럽게 실험을 한 번 더 진행했어.”
태초의 그릇이 사라져 버린 마지막 실험.
세계 가문 연합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실험의 생존자들을 모아 실험을 진행했다.
아니, 마지막 실험의 생존자들을 무더기로 납치하여 실험을 벌였다.
그 결과, 최후의 실험 또한…… 실패해 버렸다.
“하워드…… 잭키…… 가문의 어린아이들이…… 가루가 되어버렸어.”
태초의 그릇에 담겨 있던 에너지를 이용한 최후의 실험.
그 실험을 강행한 결과 검은 블랙홀이 만들어지며 실험장을 초토화시켰고.
-사,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실험에 강제로 참여한 모든 아이들이 분해되면서 검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죽여놓고! 과욕을 버리지 못하다니!”
데커드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태초의 그릇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실험을 이어간단 말인가?”
에드워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연합이 하고자 했던 실험은…… 단순히 태초의 그릇만 이용한 게 아니었네.”
데커드가 분노를 참는 듯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헌터들의…… 시스템의 힘을 이용했지.”
그의 입에서 연합이 저지르는 가장 최근 정보가 흘러나왔다.
“놈들이…… 시스템의 힘을 직접 뽑아내려 했어.”
“시스템……?”
에드워드가 데커드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시스템의 힘…… 혹시?’
처용은 데커드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 번득하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헌터들의 시스템을 이용한 실험.
처용은 헌터들에게서 시스템을 뽑아내 실험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으니까.
‘마수!?’
마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실험 중 하나인 마수 실험이었다.
‘마수 실험이……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고?’
추후 마인들의 주력 병기가 될 마수.
그런 마수 실험이 연합,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중요한 정보에 처용이 표정을 굳히며 귀를 기울이자.
“그것만이 아니네…… 연합은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 성좌들하고만 협력한 게 아니었네.”
데커드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무슨 소리인가? 연합이 성좌들의 명령에 따른 게 아닌가?”
에드워드가 데커드의 말에 의문을 표하며 묻자.
“아니야!”
데커드가 거세게 부정하고는 말을 이었다.
“신들은 연합을 이용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건 연합 역시 마찬가지였어.”
성좌들은 태초의 그릇을 온전히 이용하기 위해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인 연합을 이용했다.
역으로…… 연합 역시 태초의 그릇을 이용해 힘을 얻고 지구의 패권을 장악하려 했다.
하지만 성좌와 연합, 둘 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연합은 한 가지 세력과 추가로 손을 잡았다.
“연합이…… 악마를 소환했어!”
데커드는 두 눈으로 연합이 악마를 소환하는 것을 직접 봤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악마?”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악한 성좌다.”
에드워드의 물음에 데커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으…….”
데커드의 말을 들은 레나가 고개를 숙이며 침음을 흘렸다.
그녀는 이전 회차에서 악마, 그것도 삼천마인 바알을 소환했었으니까.
하지만 처용의 눈에는 레나가 무언가를 더 아는 듯한 눈치로 보였다.
“아마도…… 이번에 휘하 가문들 중 일부를 정리하는 것 역시 무언가 지시를 받은 듯 보였다.”
“그래서 이 녀석을 노리는 건가?”
데커드의 말에 처용이 레나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바알이 레나를 단번에 알아본 이유가 있었군.’
이전 회차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해 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바알이 레나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본 이유.
그 시점에서 이미 연합이 벌이는 일을 바알이 알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다만, 레나를 놓고 거대 성운의 성좌들과는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맹과…… 경쟁이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연합은 성좌들과 악마들에게 양다리를 놓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세력에게 힘을 실어 준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초월자에게 붙는다.
이것이 처용이 생각한 연합의 의도였다.
‘연합이 벌인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가 마수 실험의 시작일 뿐 아니라…….’
모든 이야기를 듣고 종합한 처용이 인상을 구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인들의 시작점 또한 연합이었다.’
처용이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문질렀다.
악몽 속에서 단순히 마녀의 과거에 대해서만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커지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추가적으로 얻은 단서 덕에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마인들의 시작은 세계 가문 연합이었다.
그들이 벌이는 실험은 모두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지구에 악마들을 본격적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이들 역시 연합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순혈자들과 판데모니움의 동맹이 맺어졌을 수도 있다.’
마지막은, 생각을 정리하며 추가로 내린 결론이었다.
‘그 새끼들이 바알을 소극적으로 공격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가설대로라면 설명이 된다.’
이전 회차에서 일부 성좌들은 바알을 향해 소극적인 공세를 취했었다.
대표적으로 후방에 있었던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처용은 그들의 정체가 순혈자임을 알기에 그저 이 상황을 지켜보는 것인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방금 들은 이야기로 다시 판단해 보니,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들은 이 시점부터 이미 판데모니움과 협력을 하고 있었다.
처용은 이 가설이 맞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아…….”
정보와 생각을 정리한 처용이 답답함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에드워드와 데커드에게 다음 목적지에 대해서 물었다.
“이대로 있으면 날파리들만 꼬일 것 같은데.”
처용이 말하는 날파리들은 연합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하하…… 연합이 날파리라니, 겁이 없으신 분이군요.”
데커드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 대단하신 날피리들이 지금 어떻게 되었더라?”
처용이 저택 입구를 향해 턱짓하며 말하자.
“……그렇군요.”
데커드가 처용이 보인 무력을 떠올리고는 말을 흐렸다.
“우선, 표적이 된 다른 가문 사람들을 찾아야 합니다.”
에드워드가 데커드와 처용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하자.
“이곳에 있는 이들이 마지막이었네.”
데커드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이들 역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30여 명 정도 되는 사람들.
그들은 데커드가 마지막으로 구출한 이들이었다.
“안전한 곳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일단 그들과 함께 더 안전한 장소로 가야 하네.”
“정말, 잘해주었네. 데커드.”
에드워드는 데커드가 진심으로 대단하다는 듯 말했다.
연합의 횡포에 제 한 몸 가누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는 사람들을 구하러 다녔으니까.
“당신은 이제 어쩌실 겁니까?”
데커드가 처용을 향해 물었다.
에드워드에게서 처용이 연합을 조사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었다.
그가 173레벨의 터무니없는 강자라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
그런 처용이 함께 해준다면, 연합의 눈을 더 수월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데커드의 질문에 잠시 생각한 처용은.
“……동행하지요.”
아직 더 단서를 얻을 기회라 생각하고는 동행을 결정했다.
“감사합니다.”
처용의 대답에 데커드가 다행이라는 듯 말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