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에드워드가 멍한 표정으로 검게 타 버린 황야와 처용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의문과 황당함을 가득 담아 중얼거리듯 말했다.
군대가 밀집되어 있던 한 지역 전체를 눈앞의 인간이 단번에 쓸어버렸다.
두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도저히 믿어 지지가 않는 상황이었다.
“놈들이 다시 몰려올 가능성이 있습니까?”
처용은 그런 에드워드의 반응을 무시한 채 질문을 건넸다.
만약 놈들이 또 찾아온다면 나름 대비는 해 놓는 편이 좋을 테니까.
“크흠!”
에드워드는 처용의 질문에 짧게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는.
“아마…… 또 올 겁니다.”
진지하게 생각한 바를 이야기했다.
“이 정도 격차를 보였음에도 또 온 다라……?”
처용은 의문을 가짐과 동시에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전 회차에서도 처용의 압도적인 레벨을 직접 확인하고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오히려 집착과 광기를 드러내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놈들에게는 신을 강림시키는 나름 비장의 카드도 있었다.
연합이 이 상황을 정확히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고민하듯 침묵한 처용은.
“우리가 시모어 가로 향하는 걸 연합이 눈치챌 가능성은요?”
다음 이동할 장소에 대해 물었다.
연합이 그곳에 함정을 준비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은, 이미 시모어 가를 공격하고 있다던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는 연합이 마지막 실험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가문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을 고려해 볼 때.
“개인적으로 예상할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됩니다.”
연합이 처용의 다음 루트를 예상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그렇군요.”
에드워드의 솔직한 대답에 처용이 잠시 생각하듯 침묵했다.
그리고.
“철벽부, 풍운부.”
세 장의 철벽부와 네 장의 풍운부를 소환하여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쩌저적!
철벽부 세 장이 서로 뭉치며, 네 장의 날개를 크게 펴고 있는 독수리의 형상으로 변했다.
높이 10미터, 다 펼친 날개의 크기가 30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거대한 독수리.
처용이 만들어낸 독수리는 ‘에이션트 이글(Ancient Eagle)’이라는 이름의 A급 몬스터였다.
고생물 던전에서 보기 드물게 나타나는 매우 희귀한 몬스터.
탁 트인 하늘에서만큼은 재앙급 몬스터와 맞먹을 정도로 위험한 개체였다.
독수리의 형상이 완성되자.
-휘이이.
네 장의 풍운부가 각각 독수리의 날개에 깃들었다.
그리고.
“식신부.”
-스르르.
처용이 만들어진 독수리에 식신부를 부여했다.
그 순간.
-쩌저적! 펄럭!
동상처럼 굳어 있던 독수리가 네 장의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움직이더니.
-캬아아아!!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했다.
[에이션트 스틸 가고일(Ancient
Steel Gargoyle) - 식신]
[등급 : A+]
[특징 : 철벽부와 풍운부의 힘을 받아 태어난 소환수.]
[소환사 스테이터스의 일부를 받고 명령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합니다.]
[스킬 : 스톰 브레스, 천공 질주…….]
“나쁘지 않네.”
처용이 새로 만들어진 소환수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강력한 몬스터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소환수라 그런지 생각보다 강한 개체가 만들어졌다.
“뭐, 이건 뭡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거대한 독수리를 본 에드위드가 뒷걸음을 치며 말했다.
“이 녀석을 타고 움직일 겁니다.”
처용이 독수리의 몸체를 검지로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에드워드가 말한 시모어 가로 들키지 않고 빠르게 갈 방법.
처용은 그 방법으로 하늘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만 알려 주시죠.”
“……아, 알겠습니다.”
에드워드가 침착함을 되찾으려는 듯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피이이!
세 명의 사람을 태운 독수리가 하늘로 떠오르더니,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클로킹 아머.”
-쩌저적!
처용은 독수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외부에 클로킹 아머를 둘렀다.
이제 지상에서는 절대로 독수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에드워드는 시모어 가로 향하던 도중, 처용에게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었다.
단 한 명의 인간이 군대와 더불어 백 명의 병기들까지 단번에 쓸어버렸다.
그리고 처용이 만들어낸, 지금 타고 있는 독수리까지.
독수리를 대충 살펴봐도, 가문의 최상위 병기들이 몰려들어야 겨우 잡을 듯 보였다.
처용은 그런 독수리를 몇 분 걸리지 않아 순식간에 만들어내었다.
게다가.
-배, 백 칠십……! 삼?
에드워드는 가문의 병기 중 하나가 측정기로 처용의 레벨을 측정하며 중얼거린 말을 똑똑히 들었다.
“한국의 헌터인 커맨더가 가장 레벨이 높은 것으로 알았습니다만.”
연합의 정보력으로 파악한 커맨더의 레벨은 110이 조금 정도.
커맨더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헌터였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처용의 레벨은 무려 173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드높은 레벨.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무력을 지닌 존재였다.
“잘 지내나 보네요.”
처용은 간만에 듣는 커맨더의 소식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는 사이입니까?”
“뭐…… 그렇죠.”
에드워드의 물음에 처용이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이곳은 과거, 이곳의 커맨더가 처용을 알 리가 없었으니까.
“도대체……?”
공식적으로 레벨이 가장 높은 헌터와 안면이 있는 정체불명의 헌터.
에드워드가 전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처용에게 의문을 드러내자.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습니다.”
처용은 그런 에드워드의 의문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저는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보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설명해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일을 알아보기 위해 당신을 살렸을 뿐입니다.”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에드워드는 처용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접고 순수한 감사를 전했다.
죽어가는 자신과 붙잡힐 뻔한 레나를 처용이 도와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더는 은인에 대한 정체를 묻지 않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처용에게 끝까지 협력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이며 말했다.
그렇게 쭉 나아가던 때.
[중요 요인 ‘레나 르블랑’이 첫 번째 위험 지역을 벗어났습니다.]
[히든 업적, 에드워드 백 르블랑의 구출 및 생존.]
[악몽 포인트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처용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히든 업적이라……?’
처용이 시스템을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여전히 악몽 속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들어 주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본래는 죽었어야 할 사람이라는 뜻인가?’
시스템 메시지를 본 처용이 에드워드에게 눈짓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펼쳐지는 과거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변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원래 벌어졌던 현실에서는 에드워드가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뭘 알려주려는 거냐?’
처용은 시스템을 바라보며 누군가에게 물어보듯 속으로 물었다.
‘아니지…… 내가 무엇을 알아내면 되는 거냐?’
다시 한번 생각해 본 처용은 속으로 던졌던 질문을 바꾸었다.
이 장소는 온전한 악몽 속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알아서 해라.
시스템을 통해 흘러나왔었던, 학살의 마녀가 했었던 말.
지금의 악몽은 학살의 마녀가 악몽을 조작하여 나타난 환경이었다.
이것조차도 정확한 사실이 아닌 추정에 불과했지만…….
처용이 그간 얻은 정보를 정리하며 고민을 이어간 순간.
[두 번째 챕터가 시작됩니다.]
[주요 요인 레나 르블랑을 안전하게 ‘보호’하십시오.]
[남은 기회는 여덟 번입니다.]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보호라?’
시스템 창을 확인한 처용이 눈을 가늘게 좁히며 속으로 읊조렸다.
상황을 봐서는 레나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의미 같았다.
처용이 앞으로의 일을 예측해보며 생각을 이어갈 때.
“저기, 저기입니다!”
에드워드가 구름 아래에 희미하게 보이는 장소를 가리키며 외쳤다.
처용이 시선을 내리자.
-화르르르.
르블랑 가의 저택처럼, 거대한 저택과 그 주변이 불타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쿠구! 쿠과과!
전쟁이 벌어진 듯한 폭음 소리도 함께 울려왔다.
“내려간다.”
처용이 독수리에게 고도를 낮출 것을 명령하자.
-화아아.
독수리가 은밀하고 조용히 고도를 내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처용이 가까워진 지면을 바라보며 시야와 감각을 넓혔다.
그러자.
-쿠구구! 쿠궁!
거대한 저택을 포위한 채 포격을 퍼붓는 군인들의 모습과.
-지잉! 위이잉!
군인들과 같은 편인 듯 보이는 수십 명의 헌터들이 저택을 향해 스킬을 퍼붓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모조리 죽여 주마!!
단 한 명의 남자가 저택 입구에서 군인들과 헌터들을 상대로 힘겹게 버티며 싸우고 있었다.
양팔에 중화기를 들고 군대와 맞서 싸우는 헌터.
‘……저 놈은?’
처용이 저택 입구를 지키며 싸우는 남자를 응시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독수리가 저택을 향해 조금 더 고도를 내리자.
“데, 데커드!”
에드워드가 저택 입구에서 버티는 남자를 알아본 듯 소리쳤다.
‘역시나…… 맞았군.’
처용이 에드워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택 입구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
[이름 : 데커드 시모어]
[레벨 : 92]
[칭호 : B급, 하늘 벼락의 가호]
[클래스 : 중화기 보병]
[특징 : 중화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중·원거리 클래스입니다.]
[스킬 : 중화기 소환, 화력 강화…….]
역시나 처용의 예상대로…… 저택의 입구를 지키는 남자는 처용에게 있어 익숙한 사람이었다.
데커드 시모어.
섀도우 헌터들 중 ‘블래스터’라는 이명을 가진 강자.
조커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섀도우 헌터였다.
‘시모어라는 말을 듣고 혹시나 했지만…….’
데커드의 정체를 확인한 처용이 속으로 읊조렸다.
‘설마, 저 녀석이 과거 세계 가문 연합 소속이었을 줄이야.’
동시에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찌푸렸다.
마녀와 태초의 그릇.
세계 가문 연합과 성좌들이 벌인 실험.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 등등.
안 그래도 복잡한 정보들이 서로 꼬이고 얽혀 정리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런 와중에 ‘섀도우 헌터의 과거’라는 키워드가 추가되었다.
섀도우 헌터들의 핵심 인물인 데커드 시모어가 과거 세계 가문 연합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조커도 이번 일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젠장…….”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일단, 개입하는 게 좋겠군요.”
데커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
“단 한 명도!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저택 입구에 선 데커드가 군대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개틀링 건.”
데커드가 마나를 모아 기관총을 소환하고는.
-타타타타!
군대를 향해 초격을 포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막아라!”
“방어해!”
군대에 넓게 포진되어있던 이들 중 몇몇이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맨몸으로 총탄에 맞서기 위해 앞으로 나선 이들은 모두 연합의 강화된 헌터, 즉 병기들이었다.
“마나 실드!”
“철벽!”
앞으로 나선 20여 명의 헌터들이 각각 방어 스킬을 사용하자.
-팅! 티티팅!
데커드가 쏟아낸 총탄들이 모두 튕겨 나갔다.
“포기해라! 데커드!”
헌터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데커드를 향해 소리쳤다.
“순순히 죽음을 맞이한다면, 저택 안에 있는 이들은 손대지 않겠다.”
항복을 권유하듯, 진지한 목소리가 데커드에게 울렸지만.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데커드는 그 말에 표정을 험악하게 구기며 크게 소리쳤다.
“네놈들이 다른 가문에 저지른 짓을 다 알고 있다!”
“쯧, 그렇게 발악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데커드의 완강한 태도에 앞으로 나섰던 헌터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연합의 명령은 절대적! 순순히 가문을 위해 죽어라. 데커드.”
헌터가 데커드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보이며 말한 순간.
-휘이이!
-피이이!
멀리서 두 대의 전투기, F-16기가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크크크, 이제 죽어라, 데커드.”
비웃음이 담긴 헌터의 말이 울림과 동시에.
-키이잉.
전투기의 날개 부근에서 발사 준비를 마친 미사일이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젠장!”
데커드가 폭격 준비를 마친 전투기를 바라보며 인상을 세차게 구겼다.
급하게 들고 있던 개틀링 건을 버리고 다른 중화기를 꺼내려 했지만.
“쏴라!”
헌터의 명령과 동시에.
-타타타! 콰쾅!
저택을 향한 군대의 폭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호벽!”
데커드는 쏟아지는 총탄과 헌터들의 스킬을 막기 위해 두꺼운 벽을 세웠다.
하지만, 꺼내 든 벽으로 군대의 총탄을 막을 수 있어도 전투기의 폭격은 막을 수 없었다.
“젠장! 젠장할!!”
데커드가 벽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마나를 더욱 끌어 올렸다.
곧 폭격이 떨어질 것이고 저택은 흔적도 없이 날아갈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자신과 저택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죽을 것이다.
“네놈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피이이!
폭격 준비를 마친 전투기가 빠르게 다가왔고 조종사가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기 직전!
-캬아아아!!
하늘 위에서 괴수가 울부짖는 듯한 거대한 울음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화아아!
거대한 독수리가 구름을 해치며 나타났다.
-콰지지직!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독수리가 가장 앞서 날아오던 전투기를 잡아채 움켜쥐고는.
-휘이이! 콰콰쾅!!
뒤따라오던 두 번째 전투기 쪽으로 집어 던져 폭발시켰다.
갑작스럽게 난입한 거대 괴수가 순식간에 전투기를 무력화시키자.
“무, 무슨!?”
“저게 뭐야!”
데커드를 향해 폭격을 퍼붓던 군인들과 헌터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때.
-쓰으읍!
독수리가 고개를 위로 치켜들며 공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를 내었고.
-푸화아아아!
군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며 브레스를 토해냈다.
-쿠콰과과!!
바람 속성 마나가 가득 응축된 폭풍의 숨결이 저택 입구를 포위한 군대의 정중앙을 휩쓸었다.
“무, 무슨?”
한쪽 무릎을 꿇고 방호벽에 몸을 기댄 데커드가 그 광경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거대한 독수리가 군대를 휩쓸어버리고 있는 황당한 상황.
그때.
“데커드! 자네 괜찮은가?”
에드워드가 데커드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에드……?”
데커드의 입에서 의문 가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르블랑 가 역시 습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가주인 에드워드 역시……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왜 여기 있는 것인가?
데커드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차오를 때.
“소란스러우니.”
-탁.
하늘에서 떨어진 처용이 데커드 앞에 나타나며 말했다.
“저놈들부터 싹 쓸어버리고 이야기하지.”
연합의 군대를 바라보는 처용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