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252화 (252/726)

#252화

레나가 가리킨 방향으로 처용이 쭉 달려나가자.

“……저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타오르는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걸음을 멈춘 처용이 저택 외부를 자세히 관찰하자.

“보초를 서는 놈들이 있군.”

처용의 감각에 불타오르는 저택 안을 뒤지는 이들이 감지되었다.

익숙한 마나가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 이전 회차에서 마주했었던 이들로 보였다.

‘군대에 헌터들까지 포진시켜놓고……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처용이 저택을 관찰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처용에게 강제로 묶여 끌려왔던 레나는 지금…….

“으웨에에…….”

빙글빙글 도는 정신을 강제로 붙잡으며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의 걸음으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몇 분 만에 도달한 부작용이었다.

흔들리는 정신을 겨우 붙잡은 레나가 겨우 몸을 일으켰지만.

“으아…….”

완전히 만취한 취객처럼 다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좀 있어라, 정신 사납다.”

처용이 그런 레나를 향해 핀잔을 주자.

“너…… 때문…… 에.”

나무를 붙잡으며 겨우 몸을 지탱한 레나가 처용을 노려보며 읊조렸다.

처용은 그런 레나를 무시하고는.

“우선, 놈들을 빼내야겠군.”

다시 저택 안을 탐지해보며 계획을 세웠다.

“철벽부, 암영부…….”

자연부를 소환한 처용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허공에 강철과 어둠이 뭉쳐지며 사람의 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암철의 기사]

두꺼운 검은 갑주와 흉측하게 생긴 망치를 든 기사의 생김새.

처용이 만들어낸 것은, 이전에 만든 적이 있었던 짝퉁 데스나이트.

암철의 기사 두 기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웃는 얼굴의 처형자]

웃는 표정의 검은 가면을 쓰고 날카로운 낫을 쥔 암살자와 같은 모습.

섀도우 헌터들을 모방해 만들었었던, 웃는 얼굴의 처형자 두 기었다.

각각 7장의 자연부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만큼, A급 헌터와 맞먹게 싸울 수 있는 소환수들이었다.

“가라.”

처용이 명령하자.

-샥!

네 마리의 소환수들이 빠르게 숲속으로 질주해나가며 사라졌다.

그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군대가 밀집해 있던 장소였다.

그렇게 몇 분 기다리자.

-쿠궁! 쿠구구!

마치 전쟁이 터진 듯 요란한 폭음과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

-……!!

불타는 저택 안을 들쑤시던 이들이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이들이 모여 무슨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더니.

-탁!

-타닥!

저택을 점거하던 헌터들 중 대부분이 부리나케 어디론가 뛰쳐나갔다.

“잘하고 있나 보네.”

상황을 관찰하던 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용이 소환수들에게 내린 명령은 군대를 공격하라는 것.

하지만, 완전한 섬멸은 아니었다.

헌터들이 주로 쓰는 말로는 어그로(Aggro).

즉, 선제공격을 통해 군대의 시선을 끌고 이곳을 점거한 이들을 유인하는 것이었다.

겨우 군대의 수준으로는 처용이 만들어낸 소환수들을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이전 회차처럼, 사령관은 가문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 분명했다.

그 예상이 맞은 듯, 저택을 점거하던 헌터들이 뛰쳐나간 상황.

이제 소환수들이 시간을 끄는 동안 저택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차후를 계획하면 되었다.

처용은 저택으로 가기 전에.

“이게 좋겠군.”

-우우웅.

보물전에서 로브 형태의 아티팩트 하나를 꺼내 레나의 머리에 덮어씌웠다.

그러자.

-스스스.

레나의 모습이 주변 환경과 동화되더니 점차 사라졌다.

처용이 꺼낸 것은 루돌프가 보물전 안에 있던 재료 중 하나를 이용해 만든 로브였다.

[클로킹 로브 / 아티팩트]

[등급 : 유니크]

[주변 환경과 동화되어 모습을 감추는 ‘클로킹 아나콘다’의 가죽으로 만든 로브.]

[사용자의 모습과 기척을 감추어 줍니다.]

-사용자 상시 은폐 상태.

-움직이지 않을 시, 초 은폐 상태로 변경.

-은폐 시 환경적 요소로 인한 피해 감소.

클로킹 아나콘다는 처용이 곤, 니모를 처음 마주쳤던 던전인 고생물 던전에서 잡은 몬스터였다.

주변 환경에 따라 피부가 변하면서 모습을 감추는 거대한 아나콘다.

처용이 쓸모가 있을까? 싶어 보물전에 넣어둔 것이었다.

“이, 이건 투, 투명 망토!”

레나가 자신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보고 놀람을 표하며 말했다.

“가, 가문에서도 만드는 데 실패한 물건인데…… 어떻게?”

세계의 영향력 있는 가문들이 힘을 합쳐 제작하려 했던 투명 망토.

이것을 얻기 위해 헌터의 스킬과 몬스터의 사체 연구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제작에 실패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완벽해 보이는 투명 망토가 처용의 손아귀에서 나타난 상황.

“이, 이런 걸 막 줘도 되는 거야?”

레나가 처용을 향해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었다.

이 망토가 가문에 공개된다면 모두가 놀랄 만한 물건이었으니까.

그런 레나의 물음에.

“그런 건 차고 넘치니까 걱정하지 마라.”

처용은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 말은 나름 진실이었다.

보물전 안에는 클로킹 로브보다도 등급이 높은 무구들이 많았으니까.

루돌프가 태룡사에 합류한 이후, 기존에 쓰던 무구들도 그의 손에 의해 차츰차츰 강화되고 있었다.

클로킹 로브만 해도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 몇 벌 더 있었다.

클로킹 아나콘다를 여러 마리 잡기도 했었고 그 크기가 큰 만큼, 가죽 또한 많았으니까.

“……이, 이런 게 많다고?”

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동시에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눈앞에 있는 처용은 가문의 병기들, 지상에 강림한 신들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그런 처용이 사용하던 검만 해도 평범한 물건으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장갑차는 물론, 전차조차도 단번에 베어 버리는 검.

게다가 지상에 강림한 신들을 상대할 때 꺼냈던 무기들 모두 절대로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도, 도대체……?”

레나는 묻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걸 쓰고 있으면 불에 닿아도 화상을 입을 일은 없을 거다.”

시간을 낭비하기 싫은 처용은 레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직 저택을 감시하는 소수의 헌터들이 남아있었지만.

-사각!

조금의 소리조차 새어나가지 않은 채 처용의 손에 처치되었다.

애초의 그들의 레벨은 고작 70 정도.

지금 과거의 수준에서는 나름 높은 편일지 몰라도, 처용에게는 너무나 손쉬운 상대였다.

처용은 저택을 지키던 소수의 헌터들을 순식간에 정리한 후.

“흡기장.”

-푸화아아아!

저택을 불태우는 화염을 자연신보의 힘을 이용해 모조리 빨아들였다.

동시에.

“풍운부 – 무음(無音)의 바람.”

저택 외곽에 마나를 둘러 소리와 기척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어디부터 가야 하나?”

처용이 불타다 만 저택을 둘러보고 있을 때.

-……!

클로킹 로브를 뒤집어쓴 레나가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잠시 생각한 처용이 그런 레나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저택 안쪽에 있던 중앙 홀의 문이 열렸고.

“흐, 흐읍.”

“흠…….”

드러난 광경에 레나가 입을 막았고 처용이 침음을 흘렸다.

불타다만 시체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시체 등.

넓은 홀로 보이는 중앙에는 사람의 사체가 즐비해 있었다.

“……헌터들에게 살해되었군.”

시체들을 면밀하게 살펴본 처용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단순히 칼에 베이고 총에 맞아 죽은 듯 보이는 시체들도 있었지만.

‘스킬에 의한 흔적이다.’

시체들 중 일부는 마법에 당한 듯, 신체 일부가 불타거나 터져 나간 흔적도 있었다.

저택을 점거했던 헌터들이 벌인 짓이 분명했다.

“다 죽이고 여기로 끌고 와서 한꺼번에 불태우려던 건가?”

학살을 저지르고 시체를 한 곳으로 모아 불태우는 방식.

증거를 인멸시키는 방법 중 하나였다.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며 단서가 있나 찾을 때.

-으…….

귓가에 아주 희미한 소리가 잡혔다.

그 소리를 놓치지 않은 처용이 근원지를 찾아 움직였다.

이윽고 발걸음이 멈춘 처용이 쌓여 있는 시체 더미 중 일부를 치우자.

“어…… 어으.”

가슴에 칼이 박힌, 연미복을 입은 상처투성이의 중년 남자가 옅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처용이 중년 남자를 찾아낸 순간.

“가, 가주님?”

레나가 머리에 씌워진 로브를 벗으며 다가왔다.

그러자.

“……레, 레나.”

쓰러진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떠 보이며 반응을 보였다.

“우선, 응급처치부터 하지.”

처용은 일단, 죽어가는 남자를 살리기로 결정했다.

레나의 말대로라면 눈앞에 있는 남자는 르블랑 가의 ‘가주’로 보였으니까.

“자비의 손길.”

-우우웅!

처용의 손아귀에서 황금빛 신력이 퍼져나갔다.

자비의 손길이 중년 남자에게 닿은 순간.

-탁! 푸욱!

처용이 남자의 가슴에 박힌 칼을 뽑아냈다.

“큭!”

남자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지만, 곧장 자비의 손길로 인해 상처가 치유되었다.

“으윽, 가, 감사합니다.”

정신을 차린 남자가 처용을 향해 감사를 전했다.

“다, 다른 이들은……?”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생존자는 이 꼬마와 당신뿐이다.”

처용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겨우 숨이 붙어 있는 남자를 본 처용은 혹시 다른 생존자가 있을까? 싶어 감각을 넓혀보았었다.

하지만, 추가로 감지되는 것은 없었다.

“……에드워드 백 르블랑이라고 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우 살아난 남자, 에드워드가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처용은 감사를 전하는 에드워드를 잠시 바라보더니.

“가주가 ‘한국인’일 줄은 몰랐는데?”

에드워드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를 한국인이라고 특정한 이유는 통찰의 눈에 보이는 그의 정보 때문이었다.

[이름 : 백한민]

[레벨 : 71]

[칭호 : B급, 군신의 가호]

[클래스 : 메디컬 알케미스트]

[특징 : 포션 제작 연금술에 특화된 전투보조 클래스입니다.]

[스킬 : 알케미스트 테이블, 포션 융합…….]

통찰의 눈으로 보이는 에드워드의 정보에는 그의 이름이 ‘백한민’으로 떠 있었다.

“백한민이 본명 아닌가?”

“그, 그걸 어떻게……?”

에드워드가 놀란 듯 묻자.

“자세히는 말할 수 없고 일단은 나도 한국인이니까.”

처용은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에드워드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성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처용에게 이름을 물었다.

“……한처용.”

잠시 고민한 처용이 이름을 알려 주자.

“한 씨…… 한 씨라.”

처용의 이름을 들은 에드워드가 무언가를 생각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혹시, 한정민 씨와 관련이……?”

에드워드의 입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지?”

처용이 에드워드의 말에 속으로 놀람을 감추며 물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다름 아닌 처용의 아버지였으니까.

“설마 그 친구의 지인분에게 도움을 받을 줄이야…….”

에드워드가 복잡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난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왔다.”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는 걸 전부 말해줘야겠어.”

설마 악몽 속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들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정확히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볼 필요는 충분했다.

이들이 말하는 가문이나 실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우선, 자리부터 피하시죠. 그들이 아직 근처에 있을 겁니다.”

에드워드가 처용의 말에 답하고는 한쪽 구석으로 다가가 벽을 더듬었다.

그러자.

-드르륵!

벽에 붙어 있던 기둥 안쪽이 열리더니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레나를 도와주신 분이니 제가 아는 것을 모두 말씀드리지요.”

“……좋아.”

처용이 에드워드의 말에 대답한 순간.

-불이 꺼졌다! 당장 수색해!

-보초 서던 놈들이 죽었어!

저택 외부에서 여러 기척이 감지되며 고함이 울려왔다.

처용이 잠시 눈을 감으며 시간을 끌고 있는 소환수들의 시야를 살펴보았다.

-쿠구구!

-쿠콰콰!

소환수들의 시야에는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스킬들로 인한 폭발이 가득했다.

대충 살펴보아도 소환수 한 명당 수십 명의 헌터가 몸을 던지며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A급 헌터와 같은 전력을 지닌 소환수라 해도 인해전술로 몰아치면 답이 없었다.

심지어 암철의 기사 한 기는 이미 당한 상태였다.

‘신들을 강림시키려고 단체로 모여 자살할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생각보다 ‘가문’의 명령에 따르는 헌터들이 많았다.

적게 잡아 봐야 수백 명.

하지만 소환수들이 모두 당한다고 처용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이미 시간은 충분히 끌었으니, 빨리 여길 빠져나가지.”

“아, 알겠습니다.”

처용의 말과 밖에서 들리는 외침 소리에 상황을 파악한 에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와 처용이 비밀 통로 안으로 들어가고.

“미안하다…… 모두들.”

마지막으로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한 에드워드가 비밀 통로를 닫으며 사라졌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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