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제우스……!”
예상치 못한 만남에 처용이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그러자.
[이 하계종이 나를 단번에 알아본 것인가?]
제우스 역시 처용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흠……?]
처용을 자세히 관찰하고는 눈이 점점 커졌다.
[어떻게 이 하계종에게서 신력이 느껴지는 거지?]
제우스가 처용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들을 감지하며 의문을 이었다.
시스템에 의해 탄생한 인간 병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하게 전해지는 기운.
게다가 그 기운 중에는 신의 힘 ‘신력’이 있었다.
신관들이 가진 가공된 신의 힘, 신성력과는 확연히 다른 힘.
처용에게서 느껴지는 신력은 가공된 힘이 아닌, 그만이 가진 고유의 신력이었다.
제우스가 의문을 표할 때.
“저놈이 그릇의 실험으로 탄생한 ‘병기’로 보입니다.”
제이크가 제우스를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뭐라?]
제우스가 제이크의 말에 작은 놀람을 표했다.
[실패한 게 아니었던 말인가?]
“저 역시 실패한 줄 알았습니다.”
제이크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처용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크흐흐.”
제이크의 눈빛 속에는 염원과 욕망, 집념이 뒤섞여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아, ‘데미갓 프로젝트’를 말하는 건가?”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떠보는 의도를 숨기며 말했다.
그러자.
“……역시!”
[…….]
제이크와 제우스의 표정으로 즉각 반응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 진짜 그거로?”
레나 역시 처용의 언급한 데미갓 프로젝트에 반응을 보였다.
반응을 확인한 처용이 머릿속의 정보를 다시 정리했다.
처음 마주했던 군인들이 언급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
눈앞의 노신사, 제이크 로스차일드.
놈들이 자주 언급하는 ‘가문을 위해’라는 말.
추가로.
-로스차일드뿐 아니라 각국의 여러 가문들이 과거에 같이 계획한 프로젝트입니다.
이전 처용이 제시카에게 데미갓 프로젝트에 대하여 물었을 때, 그녀가 했었던 말이 생각났다.
-난장판이 되어가는 세계를 위해 준비했던 여러 연구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 차원 균열이 발생하고 몬스터가 나타날 시기.
각국의 영향력 있는 가문이 힘을 합쳐 진행한 프로젝트라고 했었다.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볼 때, 저들이 말하는 그릇의 실험과 병기는 데미갓 프로젝트과 관련이 있었다.
게다가 방금 떠본 말로 한 가지 더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마녀는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있다.’
레나가 포함된 가문, 르블랑 가 역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는 것.
다만, 어떤 이유로 다른 가문들이 연합해 르블랑 가를 없애 버렸고 레나만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작금의 상황을 토대로 처용이 짐작해 볼 때…….
제우스와 제이크가 말하는 그릇의 실험으로 탄생한 ‘병기’는 레나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 실험체, 그것도 ‘완성된’ 상태의 실험체.
처용은 방금 파악한 사실을 숨기고는.
“할 짓이 없어서 사람으로 실험하는 짓거리를 하나?”
표정을 굳히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놈을 생포해야 합니다! 저 녀석만 있다면-!”
제이크는 처용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제우스를 향해 말했다.
[알고 있다.]
-파지지직!
제우스 역시 처용의 말을 무시하고 제이크의 말에 동의하며 전류를 내뿜었다.
“나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제우스.”
처용이 제우스를 향해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는.
-쿠구구!
신력에 신살자의 기운을 섞어 내뿜으며 말했다.
[하계종 따위가 감히 신을 위협하는 힘을 지니고 있구나!]
제우스가 신살자의 힘을 알아보고 표정을 굳히고는.
-파지지직!
번개처럼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처용의 오른쪽에 나타났다.
-쐐에엑!
아스트라페의 창날이 처용의 상반신을 휩쓸기 직전.
-파직!
처용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는 제우스의 뒤에 나타났다.
-스르릉!
역천의 절이 제우스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졌고.
-차캉!
제우스는 휘둘렀던 아스트라페를 등 뒤로 돌려 역천의 절을 막아내었다.
[허어?]
처용의 뢰신보를 본 제우스가 한쪽 눈썹을 크게 올리며 놀람을 표했다.
-파지직!
다시 제우스가 한 줄기 번개가 되어 사라지자.
-파직!
처용 역시 다리에 번개를 휘감으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차캉! 콰콰콰!!
다시 나타난 둘, 역천의 절과 아스트라페가 충돌하자 사방에 충격파가 일렁이며 주변을 휩쓸었다.
“……안 보여.”
“모두 물러나!”
처용과 제우스가 제대로 격돌하자 헌터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들 중 가장 레벨이 높은 제이크 역시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지만.
“신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인간! 확실하군!”
그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은 다른 헌터들과는 달리 환희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가문의 병기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서둘러 다음 의식을 준비한다!”
휘하 헌터들을 향해 명령했다.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저 병기를 무조건 확보한다!”
제이크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때.
[네놈은 뭐냐?]
처용과 격돌하던 제우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처용을 향해 물었다.
[그릇으로 탄생했다기에는 무언가 이상하다. 네놈은 뭐냐?]
아무리 강력한 병기를 만드는 실험을 했다지만, 제우스가 보기에 처용은 무언가 이상했다.
고작 인간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실험체가 대신의 화신체와 맞서 싸울 수 있다?
아무리 자신이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크크크.”
처용은 그런 제우스를 향해 작은 웃음을 흘리고는.
“하나만 묻지 제우스.”
제우스를 향해 미소를 지우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자비의 대신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 사죄는 했냐?”
처용의 질문이 울리자.
[……!]
제우스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네놈이 그걸 어떻게!?]
무려 수천 년 전의 일.
평범한 인간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다시 묻지, 네놈은 누구냐?]
눈앞의 인간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자비의 대신께서는 내 사조(師祖) 되시는 분이시다.”
처용이 제우스의 질문에 역천의 절을 겨누며 분노를 담아 읊조렸다.
사조(師祖)는 스승의 스승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혈선……!]
처용의 말에 제우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과거 신계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 갔었던 역천의 신.
올림포스뿐 아니라 거의 모든 신의 성역들을 초토화시키며 불었던 피바람.
처용은 그런 피바람을 일으킨 역천의 신과 관련이 있는 인간이었다.
[혈선과 관계가 있었던 하계종이었구나!]
제우스가 표정을 거칠게 구기며 말하자.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사죄는 하지 않았구나. 이 개새끼야!!”
처용이 분노를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
악몽 속에서 뜬금없이 나타난 제우스에게 보살에 대하여 물은 것은 별것 아니었다.
조금 전 악몽, 트라우마에 대한 여파가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거기에 개인적인 궁금증이 섞였을 뿐이었다.
과연 실종되었다던 제우스는 보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을까? 라는 궁금증.
하지만, 여래에 대해 분노를 불태우는 제우스의 태도를 보니 아닌 듯 보였다.
-콰아아아!!
처용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붉은색과 금색이 섞인 신력이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네까짓 하계종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파지지직!!
제우스 역시 표정을 세차게 구기며 외치고는 격렬한 뇌전을 내뿜었다.
그때.
-콰아아!
하늘에서 빛의 기둥들이 지상에 내리꽂혔고.
-화아아!
빛의 기둥 속에서 성좌의 화신체들이 추가로 걸어 나왔다.
[분명,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쓰지 말라고 했거늘.]
가장 앞서 나타난 근육질의 노장과 같은 모습의 성좌가 불편한 심기를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딘?’
처용은 아스가르드의 주신, 오딘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게다가.
‘헤임달에 티르에…… 토르까지?’
오딘을 보좌하듯 같이 나타난 아스가르드 성좌들.
-척! 척! 척!
추가로 나타난 아스가르드 성운의 정예 신병인 발키리들까지 나타났다.
거기에 더불어.
-화아아!
제우스의 뒤에서도 빛의 기둥이 떨어지더니, 올림포스 소속 성좌들의 화신체와 신군들이 나타났다.
‘아테나? 헤라클레스?’
처용이 제우스 옆에 나타난 성좌들을 보며 속으로 놀람을 표했다.
나타난 성좌는 다름 아닌, 아테나와 헤라클레스가 포함된 제우스의 자식들이었다. 그리고…….
“……아레스!”
그들 중에는 패륜의 신 아레스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갑자기 수많은 화신체들이 지상에 강림한 상황.
처용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잠시 눈을 돌렸다.
그러자.
“……미쳤군.”
무언가를 보고는 표정을 구기며 침음을 흘렸다.
처용의 눈에 광기 어린 모습으로 뭐라 외치는 제이크 로스차일드와.
-주르륵. 주륵.
그 뒤에 수십 명의 헌터가 심장에 칼을 박아 자살한 광경이 보였다.
조금 전.
-가장 위대한 성좌를 위해 제물을 바치니…….
제우스를 지상에 강림시킨 듯 보이는 제물 의식.
아마도 그것을 대규모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용이 막 상황을 파악했을 무렵.
[갑자기 호출을 받았습니다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다가와 의문을 담아 물었다.
[혈선의 제자라고 하더군.]
제우스가 아테나의 말에 처용을 노려보며 말하자.
[……그게 정말입니까?]
아테나가 놀람을 표하며 말했다.
비단 놀란 것은 아테나만이 아니었다.
[사실인가?]
오딘 역시 작은 놀람을 표하며 제우스를 향해 물었다.
[녀석이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더군.]
제우스가 오딘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그렇군.]
오딘이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놈이 그릇과 관련이 있나?]
제우스를 향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야기했다.
지상의 인간들과 협력하여 진행 중인 아주 은밀한 실험.
성좌들의 화신체를 지상에 강림시키는 조건 중 하나가 바로 그 실험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였으니까.
[의심은 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제우스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때.
“성좌라는 새끼들이 할 짓이 없어서!”
처용이 성좌들을 향해 신력을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
“지상에서 생체 실험 따위나 하고 있다니!”
처용의 고함이 울리자.
[…….]
[……뭐?]
헤라클레스가 미간을 좁혔고 아테나가 의문을 표했다.
[……사실입니까? 아버지.]
토르 역시 오딘을 향해 의문을 드러냈다.
[저 하계종의 말은 듣지 마라.]
제우스가 의문을 표하는 두 자식들을 향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나중에 말해주마.]
오딘 역시 토르의 의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저들은 사정을 잘 모르는군.’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속으로 읊조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테나와 헤라클레스를 포함한 몇몇은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듯 보였다.
그리고.
[이 쓰레기 같은 하계종 새끼가 감히 신에게 소리치는 것이냐!]
-스르릉!
아레스는 위협적인 목소리로 칼을 빼 들며 처용을 향해 소리쳤다.
‘……이 개새끼는 알고 있었던 것 같고.’
처용이 아레스의 태도를 관찰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침착해 보이는 새끼들 전부 알고 있군.’
지상에 강림한 성좌들을 보며 분위기를 읽었다.
비단 아레스뿐만이 아닌,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역시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처용은 그들의 확실한 공통점 또한 알고 있었다.
‘순혈자!’
그들은 모두 회귀 전 배신한 성좌들이었다.
마녀와 르블랑 가문.
로스차일드를 포함한 명문 가문들.
최초의 데미갓 프로젝트.
실종된 제우스.
그리고 순혈자들까지.
악몽이 보여주는 마녀와 관련된 과거는 생각보다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었다.
처용이 떠오른 정보들을 머릿속에 나열할 때.
[당장 무릎을 꿇고 조아리지 못할까! 쓰레기 같은 하계종!]
-스릉!
아레스가 왼손에 방패를 치켜들고 오른손에 칼을 내지르며 처용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결전기 팔괘-태극천체진.”
-스릉! 스르릉!
열 개의 무구들을 모두 꺼내며 결전기를 발동했다.
“극(極) 이기어술-천체극섬!”
처용이 손을 뻗자.
-스릉! 스릉! 스르릉!
아홉 개의 무구가 순식간에 아레스를 둘러싸며 퇴로를 막으며 공격을 시작했다.
동시에 처용은 하나 남은 투창을 움켜쥐고 강기를 극한으로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런 장난질을!]
아레스는 처용의 공격을 별것 아니라 판단하고.
-차캉!
허공에 떠오르며 내질러오는 역천의 절을 향해 칼을 들어 쳐내려 했다.
그러나.
-차! 까강!
[윽!?]
놀랍게도 아레스가 짧은 힘 싸움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아레스가 아주 짧은 틈을 보인 그 순간.
“극(極)-투귀맹진!”
-투! 콰앙!!
빈틈을 보인 아레스를 향해 상어의 형상이 일렁이는 투창이 쇄도해왔다.
[이까짓!]
아레스가 방패를 들어 올리며 투창을 막으려 시도했다.
-콰쾅!!
처용이 던진 투창과 아레스의 방패가 충돌했고.
-콰드드드득!!
투창에 일렁이는, 강기로 형성된 상어가 아레스의 방패를 물어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무! 무슨!?]
아레스가 투창에 일렁이는 신살자의 힘과 강기에 당황을 표했다.
이윽고.
-우드드득!
상어가 아레스의 방패를 완전히 물어 으스러뜨린 순간!
-스릉! 스각! 사가각!
사방에서 온갖 무구들이 아레스의 화신체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쓰레기가!!]
아레스는 어떻게든 검을 휘둘러 발악했지만, 점점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레스가 정신없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무구들을 쳐낼 때.
-스르릉!
어느새 역천의 절을 쥔 처용이 아레스 앞에 순식간에 나타났다.
‘검성류 오의!’
-우우웅!
강렬한 신력과 강기가 역천의 절에 타오르는 듯 일렁였다.
[이 쓰레기가 감히!]
아레스가 검을 들어 올리며 막으려 했지만.
-차캉!
차륜 도끼와 대검이 빠르게 쇄도해오더니 아레스의 검을 X자로 교차해 막아서며 움직임을 봉쇄했다.
동시에.
“단절!”
-스가악!
역천의 절이 아레스의 정수리를 내려치며 반으로 갈라 버렸다.
“꺼져, 형편없는 쓰레기 새끼야.”
처용이 가루가 되며 사라지는 아레스의 화신체를 향해 읊조리듯 말했다.
그리고.
-스릉! 스르릉!
열 개의 무구들을 자신의 앞에 일렬로 나열시키고는.
“다 덤벼. 이 새끼들아.”
성좌들을 향해 도발하듯 손을 까닥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