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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계승자-246화 (246/726)

#246화

처용의 눈앞에 나타난 1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

“…….”

뒤바뀐 환경을 관찰하던 처용이 붉은 머리의 소녀를 자세히 관찰하듯 응시했다.

소녀의 얼굴에서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혹시나? 싶은 생각에 처용이 통찰의 눈을 사용하자.

[이름 : 레나 르블랑]

[확인 불가…….]

[확인 불가…….]

마녀의 이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이름을 확인한 순간, 처용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스르릉.

역천의 절을 강하게 쥐고는.

-스가악!

눈앞에 있는 소녀의 목을 날려버릴 기세로 칼날을 휘둘렀다.

지금 처용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할 상태가 아니었다.

조금 전, 악몽에 의한 트라우마.

그것으로 인해 지금 처용은 굉장히 예민하고 경각심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절대로 같은 미래를 되풀이할 순 없다.

이것이 지금 처용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가장 강렬한 마음이자 다짐이었다.

그 다짐을 실현하려면?

미래에 해악이 될 만한 놈들을 전부 죽어버려야 했다.

마녀는 지구를 무너뜨리는 데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한 마인.

눈앞에 있는 어린 소녀가 정말로 과거의 마녀라면,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윽고.

-샤악!

처용이 내지른 역천의 절이 소녀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동시에.

-쩌저적!

타오르는 숲과 나무들이 한꺼번에 무너지며 사방이 어두워졌다.

***

처용이 마녀의 목을 날리고 시야가 잠시 암전된 이후.

-화르륵! 화륵!

눈앞에 잿더미처럼 타오르는 숲이 다시 펼쳐졌다.

‘……뭐지?’

무너진 숲이 다시 펼쳐지자 처용이 속으로 의문을 내뱉었다.

그리고.

“흐윽!”

조금 전 목을 베어버렸던 소녀가 멀쩡한 모습으로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이 상황에 처용이 침묵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침착하자…….’

트라우마로 인한 분노와 격한 감정들을 조금씩 억누르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아직 악몽 속이다.’

처용은 아직 악몽 속에서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고 주변을 더 자세히 둘러봤다.

그때.

[야이, 멍청한 수호신 새끼야.]

시스템 창이 울려왔다.

문제는…… 시스템의 목소리가 기존과는 무언가 많이 달랐다.

“……마녀?”

처용은 바뀐 시스템의 말투와 목소리에서 한 인물을 떠올리고는 중얼거리며 말했다.

다소 거칠고 강압적인 말투와 자신을 ‘수호신’이라고 칭하는 시스템.

그 말투와 목소리는 다름 아닌 조금 전 마주했었던 실체화된 악몽.

학살의 마녀가 건넨 목소리였다.

[다짜고짜 머리를 날리는 새끼가 어디 있냐? 덕분에 기회를 한 번 날렸으니, 앞으로는 신중한 행동을 하는 게 좋을 거야.]

“…….”

시스템을 확인한 처용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악몽 속에서 처음 마주하는 최후의 악몽이라는 말.

-악몽을 해킹하는 사이에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졌군?

조커가 나타나며 말했었던 ‘악몽의 해킹’이라는 말.

그리고…… 조커의 말에 의해 태도를 바꾼 실체화된 악몽, 학살의 마녀.

게다가 마지막에는.

-나이트메어 던전 속을 직접 손대 본 적은 없지만…… 가능하겠군.

학살의 마녀가 악몽 속의 환경을 직접 조작하는 모습도 보였었다.

‘……학살의 마녀가 무언가를 했군.’

머릿속에서 여러 정보를 정리한 처용이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 결론을 내렸다.

처용이 생각을 정리하며 침묵하는 와중에도.

[이제 알아서 해라.]

마녀의 목소리가 담긴 시스템은 계속 울려왔다.

“뭐 어쩌라는 거냐?”

처용이 시스템, 마녀를 향해 되물었다.

하지만.

[여기■지 해줬■■■…….]

[이제 네■이■■…….]

이어지는 시스템 창들이 흔들리며 점차 사그라졌고.

[최후의 악몽 ‘구원자’를 시작합니다.]

곧 시스템의 원래 목소리와 말투로 새로운 시스템 창이 열렸다.

[중요 요인 ‘레나 르블랑’을 안전한 곳으로 탈출시키십시오.]

[남은 기회는 ‘아홉’ 번입니다.]

[실패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처용은 시스템의 마지막 문구를 보고는.

-이번에는 실패하지 마라.

악몽, 학살의 마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원하는 대로 해주마.”

처용은 시스템의 문구에 수긍하듯 진지하게 말했다.

어차피 악몽을 빠져나가려면 시스템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처용이 시스템을 확인하며 생각할 때.

“너! 저택에서 일하던 사람이지!”

울고 있던 소녀가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처용을 향해 말했다.

“빠, 빨리 안전한 곳으로 날 데려다 줘!”

붉은 머리의 소녀, 레나가 처용을 앙칼지게 노려보며 명령하듯 말하자.

“나한테 명령하지 마라.”

처용이 싸늘한 눈빛으로 레나를 노려보며 낮게 읊조렸다.

“흐! 히끅!”

살기 어린 처용의 목소리를 마주한 레나가 딸꾹질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본 처용은.

“여긴 어디고,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레나를 향해 진지하게 물었다.

그때.

-쩌저저적!

불타오르던 거대한 나무 하나가 쓰러지며 레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꺄아아!”

레나가 주저앉으며 비명을 지를 때.

-사각! 촤자자자!

처용이 가볍게 검기를 날려 떨어지는 나무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 날려버렸다.

그리고.

“다시 묻지.”

레나의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여긴 어디고, 어디로 가야 하나?”

시스템은 레나를 여기서 ‘탈출’시키라고 했지만, 처용인 이 장소가 어딘지 몰랐다.

지형도 위치도 모르는 장소이기에 우선 정보를 얻기로 한 것이었다.

“여, 여기는-.”

레나가 처용의 말에 대답하려 할 때.

-화르르륵!

이번엔 숲을 불태우던 거센 화염들이 점점 커지며 레나에게 가까워졌다.

“꺄아아!”

레나가 하던 말을 잇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거슬리는군.”

그 모습을 본 처용은.

“수류부, 풍운부.”

수류부와 풍운부를 각각 네 장씩 펼쳐 주변에 원을 그리고 회전시켰다.

“대 폭포 용오름.”

-콰아아아!!

그러자 처용과 레나를 중심으로 거대한 물줄기가 회오리치며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쏴아아아!

하늘로 솟구치던 거대한 물보라 회오리가 점점 번져나가며 사방에 거센 비를 뿌리자.

-치이이!

숲 전체를 불태우던 불길들이 빠르게 소강상태가 되었다.

“…….”

레나가 화마를 순식간에 잠재운 처용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내 질문에 대답해라.”

방해되는 것들을 치워버린 처용이 다시 레나를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우선, 여긴 어디냐?”

“여, 여긴 우, 우리 가문의 저택 뒷숲이야.”

레나가 처용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가문? 저택?”

처용이 의문을 표하며 묻자.

“우, 우리 가문, ‘르블랑’ 가의 저택….”

레나가 고개를 숙이고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르블랑이 가문의 이름이었던 건가?’

처용은 마녀의 이름에 붙은 ‘르블랑’을 떠올리며 속으로 읊조리고는.

“네 집이 왜 불타고 있던 건데?”

레나를 향해 또 다른 질문을 건넸다.

“흑, 그, 그게…….”

처용의 질문에 레나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찾았다!!

주변에 기척이 느껴지며 몇몇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치, 잘 훈련을 받은 군인들처럼 전신에 방호복을 입고 소총을 든 이들이었다.

처용과 레나를 발견한 그들은.

-목표를 찾았다!

-한 명 더 있다!

-모두 이쪽으로 모여!

마치, 주변의 모두가 들으라는 듯 크게 외치며 다가왔다.

처용은 다가오는 군인들이 불길에 갇혔던 레나를 구출하는 이들인가 싶었지만.

-철컥!!

-철크럭!

그들은 처용과 레나를 향해 총을 들어 보이며 적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히, 히익!”

레나의 얼굴빛이 파랗게 질리며 뒷걸음질 치는 것이 보였다.

“흠.”

처용이 레나와 다가온 정체불명의 군인들을 번갈아 보며 상황을 파악하고는.

“네놈들이 여기에 불을 질렀나?”

다가온 이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목격자는 살려두지 마라!”

“죽여라!”

총을 겨누며 다가온 군인들이 처용을 향해 외치고는.

-타타타타타!!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무려 스무 명의 가까운 인원들이 가한 일제 사격.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철벽부-방호벽.”

처용은 철벽부 두 장을 레나에게 던져 작은 돔 형태의 벙커를 만들어 주고는.

“흠.”

날아오는 총알들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가하는 살상 무기가 바로 총이었지만.

-팅! 티티팅!

금강불괴와 호신강기의 힘이 상시로 적용되어있는 처용의 육체에는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맨몸으로 총알을 튕겨내는 처용을 보며 총격을 가한 이들이 당황을 표했다.

“저놈도 가문에서 만든 ‘병기’인가?”

군인들 중 하나가 처용을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자.

“지금부터…….”

처용이 당황하는 이들을 향해 싸늘하게 읊조리며 말을 이었다.

“내 말에 고분고분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처용의 말이 울리자.

“계속 공격해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무한하게 유지할 순 없을 거다!”

소총을 든 이들이 빠르게 재장전을 마치고는 처용을 향해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검성류.”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싸늘하게 웃음을 지으며 발도 자세를 취했다.

“검의 비명.”

처용이 빠르게 검격을 내지르자.

-촤자자자자!!

날카로운 강기의 조각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스각! 사가가각!!

고깃덩이들이 날카로운 절삭력에 잘려나가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촤아! 촤아아아!!

스무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사방에 뜨거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대부분은 육체가 조각나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지만.

“으…… 으어!”

“어…….”

단 세 명만은 팔다리가 잘려나간 채 가까스로 살아있었다.

“다시 묻지.”

-스르릉!

처용은 ‘일부러’ 살려둔 이들을 향해 역천의 절을 겨누며 물었다.

“네놈들이 여기에 불을 질렀나?”

“크, 크크크…….”

처용의 질문을 받은 군인의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어?”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입꼬리를 틀며 되묻자.

“로스차일드의 영광을 위해!”

군인이 목을 긁으며 마지막 말을 크게 외치고는.

-탁!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있는 왼팔을 가슴으로 뻗어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그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는 살아남았던 두 명의 군인들 또한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콰콰콰콰콰!!

마치 폭격이 떨어진 듯, 지면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불이 꺼진 숲에서 다시 강렬한 화마가 솟구칠 때.

“……로스차일드라고?”

-화아악!

화마를 해치며 멀쩡한 모습의 처용이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그리고.

“너, 너, 너 뭐야!?”

어느새 해제된 벙커를 빠져나온 레나가 처용을 보며 외쳤다.

“가, 가문에서 만든 병기야? 그렇지만 어떻게 폭탄을 맞고도-!”

“시끄럽고.”

처용이 레나를 노려보며 낮게 읊조리듯 말하자.

“읍…….”

레나의 입이 다물렸다.

“이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저 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 그게…….”

처용의 말에 레나가 우물쭈물하며 당황했다.

조금 전, 총탄 세례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던 벙커에 있을 때.

외부가 보이는 작은 틈 사이로 처용을 모습을 지켜봤었다.

무려 스무 명이 가한 총탄 세례를 맨몸으로 받아내고.

종국에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군인들의 자폭에 당했음에도 화마를 걷으며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게다가 광활한 숲 전체를 불태우던 화염을 물과 바람을 일으켜 단번에 꺼 버리는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가문에서 만드는 ‘병기’에 대해 들은 적은 있지만, 눈앞의 처용은…… 무언가 차원이 달랐다.

그런 강렬한 모습에 처용이 조금 전 뭐라고 질문했는지도 잊어버린 상태였다.

“이, 잊어버렸는데…….”

“하아…….”

레나의 솔직한 말에 처용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무슨 일이-.”

처용이 다시 레나에게 물으려는 때.

-쿠구구구! 투두두!

사방에서 요란한 소음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터에서나 들릴 법한, 전차와 같은 무거운 차량들이 움직이는 소리와.

-휘이이잉! 휘잉!

공기를 울리는 전투기의 소리도 들려왔다.

감각을 끌어올리고 시야를 넓힌 처용이 점점 다가오는 ‘군대’를 바라보자.

“……아 진짜.”

모든 이들이 조금 전 죽였었던 군인들과 같은 복장인 것을 확인하고는 짜증을 내었다.

그리고.

“다 죽여 버리고 대장 놈을 고문하면 뭐 좀 알아낼 수 있겠지.”

다가오는 군대를 향해 살기 어린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과거로 보이는 이 장소는 어차피 이곳은 악몽 속이었다.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하던, 처용에게 있어서 크게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마녀’와 연관이 있는 악몽이니만큼, 무언가 중요한 단서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처용의 기억으로 구현되었던 악몽.

-고마워서 어쩌나,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 싶은 새끼의 모습으로 나타나 줘서.

학살의 마녀가 바알을 향해 보인 적의를 떠올려 볼 때 확실했다.

어쩌면, 바알을 방해할 수 있는 단서를 이 악몽 속에서 찾을 수도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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