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이런 멍청한 놈이.]
처용의 입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은 중성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왜 또 날 깨우는 것이냐.]
-콰지지직!!
맨손으로 잡아챘던 낫의 칼날을 손에 힘을 주어 부숴버렸다.
“뭐!?”
악몽, 학살의 마녀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가디언의 머리 위로 물러났다.
처용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함이 느껴지는 붉은 기운.
“……이 기운은 수호신이 아니야.”
난데없이 처용에게서 흘러나오는 의문의 기운에 악몽이 의문을 표하자.
[고작 기억으로 만들어진 찌꺼기가…….]
처용을 잠식한 죄악의 파편이 악몽, 학살의 마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감히 누구에게 손을 대는 것이냐!]
-스르릉!
처용이 역천의 절을 뽑아 들며 외치자.
“블러디아.”
악몽, 학살의 마녀가 자신의 가디언에게 명령을 내렸다.
-푸화아아아!
세 개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불꽃이 처용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이 붉은 안광을 흉흉하게 빛내고는.
[갈라져라.]
-스르릉!
역천의 절을 아래에서 위로 거세게 휘둘렀다.
-콰아아!
그러자 쏟아져 내려오던 거대한 불길이 반으로 갈라졌다.
“무슨!?”
악몽, 학살의 마녀가 의문을 내뱉은 순간.
[뢰신보.]
-파지직!
역천의 절을 두 손으로 움켜쥔 처용이 마녀의 앞에 나타났다.
“블링크.”
학살의 마녀가 싸늘한 감각을 느끼고는 즉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봉우리 베기]
죄악의 파편이 처용이 주로 사용하던 검성의 검술을 재현하자.
-촤악! 촤악! 스가악!
칼날의 궤적에 따라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 결과.
-캬아아!!
본 드래곤 나이트의 머리 중 하나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며 잘려나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자신의 가디언이 머리가 잘려나가는 모습을 본 악몽, 학살의 마녀가 경악했다.
본 드래곤 나이트는 그냥 덩치만 큰 가디언이 아니었다.
온갖 방어 마법이 상시로 적용되어있는 말 그대로 ‘병기’였다.
특히 검과 같은 무기에 의해서는 피해조차 입히기 힘들었다.
그 잘난 무림 세계의 영웅들조차 자신의 가디언을 쓰러뜨리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단단한 가디언을 고작 칼 몇 번 휘둘러 머리를 쪼개고 베어 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넌 수호신이 아니야. 넌 뭐냐?”
악몽, 학살의 마녀가 표정을 굳히며 묻자.
[감히 내게 질문하지 마라, 거짓된 가짜 따위가.]
처용을 잠식한 죄악의 파편이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새끼가…….”
학살의 마녀는 그 말을 도발로 받아들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이 뭔지, 내가 힘으로 직접 알아내 주마.”
-콰아아!!
대악마에 버금가는 강렬한 마기가 학살의 마녀에게서 솟구쳤다.
[……힘이라고?]
그 모습을 본 죄악의 파편이 비웃음을 흘리고는.
[진짜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마. 어리석은 년.]
-푸화아아아!
붉은 신력을 거칠게 내뿜으며 낮게 읊조렸다.
-콰드드득!
처용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신력이 처용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윽고.
-철컹!
마치, 악마와 같은 형상을 한 검붉은 갑주가 처용의 몸을 뒤덮었다.
“……그 모습은-!?”
악몽, 학살의 마녀가 처용의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자신이 잘 아는 누군가와 비슷한 모습이었으니까.
“크-.”
악몽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스르릉!
검붉은 갑주를 입은 처용의 칼날이 순식간에 쇄도해왔다.
“다크스웜! 블링크!”
-푸화아아!
악몽, 학살의 마녀가 검은 안개 속에 몸을 숨기며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처용이 곧장 따라붙었다.
역천의 절이 악몽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질 때.
“블러디아.”
-크롸아아!!
본 드래곤 나이트의 손톱이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하찮은 것.]
-스르릉!
처용이 역천의 절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자.
-스릉! 콰지지직!!
붉은 신력이 위로 솟구치며 본 드래곤 나이트의 오른손 세 개를 모두 부수었다.
동시에.
-스릉!
처용이 역천의 절을 집어넣고 차륜 도끼를 꺼냈다.
[차륜격!]
-화르르륵!
차륜 도끼에 검붉은 화염이 휘몰아쳤고.
-콰콰쾅!!
처용이 본 드래곤 나이트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차륜 도끼에 본 드래곤 나이트가 정통으로 타격 당하자.
-캬르라라…….
본 드래곤 나이트가 불타오르며 산산이 조각났다.
그때.
“파멸의 지옥염.”
-화르륵.
악몽, 학살의 마녀가 처용을 향해 검녹색의 작은 불길을 재빠르게 쏘아 보냈다.
가디언을 끝장내던 처용의 틈을 노린 공격이라 피하기는 늦은 상황.
[차륜격.]
처용은 도끼날에 화염을 회전시키며 검녹색의 불덩이를 쳐내었다.
화염이 휘몰아치는 도끼날과 검녹색의 불덩이가 충돌한 순간.
-콰콰콰쾅!!
검녹색의 불길과 새빨간 불길이 세상을 반으로 나누며 폭발했다.
거센 폭발이 일어나며 사방을 불태울 때.
“일어나라.”
악몽, 학살의 마녀가 마기를 피워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쿠구구구!!
완전히 부수어졌던 본 드래곤 나이트가 빠르게 재생하며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그 순간.
[죽어라.]
화염을 뚫고 나타난 처용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악몽을 향해 쇄도해왔다.
“그레이터 데몬 디펜시브!”
처용의 앞에 10미터 크기의 거대한 해골 방패가 나타나며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스르릉! 쿠구구!
어느 세 역천의 절을 쥔 처용이 칼을 크게 휘두르자 방패가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사각.
방패를 펼치고 뒤로 물러나려던 악몽의 로브 자락이 조금 잘려나갔다.
-스르릉!
두 번째 검격이 무너지는 방패 사이로 악몽을 노리며 날아들 때.
-키이잉!!
몸을 모두 복구한 본 드래곤 나이트의 머리들이 브레스의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키며 나타났다.
“종언을 고하는 숨결”
회심의 미소를 지은 악몽, 학살의 마녀가 읊조린 순간.
-콰아아아아아!!
한 줄기의 검은 섬광이 처용을 향해 발사되었다.
[어딜!]
죄악의 파편이 붉은 신력을 거세게 끌어올리며 역천의 절을 휘둘렀다.
-지이이잉!!
강렬한 파괴력이 담긴 브레스가 역천의 절의 칼날에 반으로 갈라지며 퍼져나갔다.
-우우웅!
학살의 마녀가 마기를 더욱 끌어 올리며 브레스의 힘을 더하자.
-콰직!
처용을 감싸던 검붉은 갑주의 투구 부분이 금이 가며 조금 떨어져 내렸다.
[감히!]
-콰아아!
처용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신력이 질 수 없다는 듯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키이이!!
서로가 압도적인 힘과 힘의 대결이 펼쳐질 때.
“죽음의 선고!”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를 입은 현재의 마녀가 악몽의 뒤에서 검은 낫을 움켜쥔 채 나타났다.
-스르릉!
날카로운 낫의 칼날이 쇄도하자.
“이런!”
악몽, 학살의 마녀가 왼손을 뻗어 다가오는 낫을 저지했다.
그러나 그 결과로.
-키이이!!
처용과의 힘 싸움에서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했다.
“한처용!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서둘러라!”
“이런 영악한 년이!”
악몽, 학살의 마녀가 과거의 자신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말했다.
[죽어라.]
죄악의 파편은 이대로 힘으로 계속 밀고 나갔다.
-키이이이!
악몽의 힘이 점점 떨어지고 처용이 내지른 칼날이 점점 목을 향해 다가왔다.
칼날이 악몽, 학살의 마녀 목 지척에 다가간 순간.
-화아아!
돌연 처용에게서 붉은 신력이 아닌 황금빛 신력이 새어 나왔다.
[이런……!]
죄악의 파편이 낭패감 어린 목소리로 침음을 흘리고는.
[지금 방해하면 너도 죽는다.]
다급함을 숨긴 목소리로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그러자.
-꺼져라!
황금빛 신력이 거세지며 처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놈이-!]
죄악의 파편이 목소리를 높이며 거칠게 외친 순간.
-콰아아!!
처용에게서 황금빛과 붉은빛이 섞인 신력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기어코 날 방해-!]
-꺼져!
처용의 목소리가 한 번 더 크게 울리자.
-쿠구구!
공동, 아니 악몽 속이 크게 진동하며 울려왔다.
그리고.
-파아아!
대치를 이루던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며 쓰러졌다.
동시에.
-샤라라락.
처용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황금빛 신력의 일부가 실처럼 흩날리며 날아갔고.
-스르륵.
각각 두 마녀에게 닿았다.
그 순간.
-파아아!
처용의 신력에 반응한 듯, 각각 두 마녀에게서 검보랏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번쩍였다.
“으윽!”
파편을 쫓아내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처용이 역천의 절을 세워 지팡이처럼 짚으며 일어났다.
“…….”
마녀는 기절했는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악몽, 학살의 마녀가 머리를 짚고 일어나며 침음을 흘리고는.
“수호신…… 무슨 짓을 한 거냐?”
처용을 향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때.
“이거. 이거.”
무너진 공동의 위, 검은 우주 속에서 조커가 나타났다.
“악몽을 해킹하는 사이에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졌군?”
조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너…… 너는!?”
조커를 본 악몽, 학살의 마녀가 눈이 점점 커지며 당황하고는.
“……그렇군, 지금은 그럴 때인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본 조커는.
“…….”
학살의 마녀를 향해 입만을 움직여 어떤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자.
“……그럴 리가 없다.”
학살의 마녀가 조커의 말에 당황한 듯 말했다.
“조금 전의 반응으로 확인하지 않았나?”
“…….”
조커의 말에 악몽, 학살의 마녀가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눈을 감고는.
“그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어.”
-화아아.
순식간에 쓰러진 마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단 하나뿐인 그릇이 두 개 존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악몽, 학살의 마녀가 쓰러진 과거 자신의 멱살을 잡아 일으킴과 동시에.
-탁!
왼손을 뻗어 마녀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리고 무언가 집중하려는 듯 눈을 감으며 마기를 끌어 올렸다.
-스릉.
그 모습을 본 처용이 악몽을 기습하려는 순간.
“여, 여, Bro는 가만히 있어 줬으면 좋겠어.”
조커가 처용의 앞에 나타나며 길을 막아섰다.
“저 악몽이 다시 한번 날뛰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조커.”
처용이 조커를 향해 진지하게 경고하듯 말하자.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조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처용이 조금 전 조커가 학살의 마녀에게 건넨 말을 생각하며 물었다.
조커가 가면 아래 드러난 입만을 움직여 소리 없이 건넨 말.
학살의 마녀가 그 말을 알아듣고는 공격을 멈추었다.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미래에서 왔다고 해도 무방한 학살의 마녀가…….
“도대체 저 여자한테 뭐라고 말했길래-.”
처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군.”
악몽, 학살의 마녀가 눈을 뜨며 입을 열고는.
“내가…… 내가 가짜였구나.”
자신의 존재가 악몽 속에서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인정하듯 말했다.
그리고.
“어쩐지…… 빌어먹을 바알 새끼가 그릇에 새긴 낙인에서 아무 반응이 없더라니…….”
자신이 모시는 대악마를 향해 욕을 내뱉었다.
“……뭐?”
처용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람을 표했다.
학살의 마녀가 바알을 향해 욕을 내뱉는 건 회귀 전에도 보지 못했었으니까.
그녀는 바알을 신봉하고 주어진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신관.
그런 바알을 향해 학살의 마녀가 욕을 내뱉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 신기한가? 하긴…… 네놈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겠지.”
“…….”
처용이 학살의 마녀가 내뱉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릴 때.
“공간 정지.”
-화아아아!!
악몽에게서 강렬한 어둠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 일대의 공간을 휘감았다.
“젠장!”
어둠이 사방을 감싸기 전에 처용이 빠져나가려 했지만.
-스르르…….
이미 때는 늦었고 마치 석고상이 된 듯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악몽, 학살의 마녀가 내뱉은 말 그대로 모든 공간이 정지했다.
공간 정지.
이건 마녀의 스킬이 아니었다.
신화경 끝자락에 닿은 마녀가 스스로 깨우친 권능이었다.
마녀가 내뿜은 어둠 안에 갇힌 이들은 모든 움직임이 멈춘다.
그녀 자신의 육체 역시도…….
다만 정지된 공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게 있었다.
‘이런 젠장!’
시야가 완전히 암전된 처용이 속으로 외쳤다.
공간 정지에 갇힌 육체는 움직이지 못하지만, 생각은 할 수 있었고 시간 역시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우우웅!
긴장감을 끌어올린 처용이 강기를 뿜으며 육체에 호신강기를 둘렀다.
정지된 공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육체 내부에 돌고 있는 에너지, 마나와 신력이었다.
물론, 육체 내부의 에너지를 움직일 수 있다 해도 외부로 발현할 순 없다.
그저 육체에 두르는 것이 고작일 뿐.
문제는…… 권능을 발현한 마녀 역시 육체 내부의 에너지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이 권능을 만들어낸 이이니만큼, 아주 무서운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공간 정지가 풀리는 순간.
마녀가 미리 준비해둔 수백 가지의 마법이 소나기처럼 쏟아질 것이다.
전성기의 자신이라면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항마의 화신까지 사용한 상태라 신력도 상당히 소모된 상태.
그저 호신강기와 금강불괴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처용이 더 방법은 없는 것인지 머리를 세차게 굴릴 때.
“한처용.”
악몽, 학살의 마녀가 입을 열어 말했다.
동시에.
-쏴아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공간 속에서 처용과 학살의 마녀, 둘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 정지 속에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 격리시킨 건가?’
곧장 상황을 파악한 처용이 악몽을 노려보며 긴장했다.
하지만 학살의 마녀는 처용을 향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하나만 묻지.”
처용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어떻게 시간을 돌린 거냐?”
마녀의 질문이 공간을 울리자.
“……!”
처용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