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제단 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자, 악몽이 사용한 파멸의 지옥염이 폭발하고.
“어흑……!”
폭발의 여파를 피해 겨우 몸을 피신시켰던 마녀가 힘겹게 일어났다.
“저게…… 도대체!?”
마녀가 제단 위에서 싸우는 처용과 보스 몬스터로 나타난 붉은 머리의 여성을 보며 읊조렸다.
아무리 봐도 제단 위에서 나타난 여자는 자신과 너무 닮아 있었다.
아니, 자기 자신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이 빌어먹을 악몽이 과거의 나를 가짜로 만들어낸 건가?
잠깐의 대화로 상황을 유추해 볼 때, 아마도…… 미래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떠올랐다.
문제는 그 미래에서 온 자신이 왜 처용의 악몽으로 나타났는지가 의문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던전, 게다가 악몽이라는 특수한 던전이라고 해도 과연 특정 인물의 미래를 구현하는 건 말도 안 되었다.
게다가.
“과거의 너는 고작 이 정도였나? 수호신.”
미래의 자신은 처용을 ‘수호신’이라고 부르며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고.
“젠장!”
처용 역시 미래의 자신을 잘 아는 눈치였다.
‘다른 놈들은?’
마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이들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공동이 무너짐과 동시에 검은 우주 속으로 흩어진 것 같았다.
아니…… 살아있다고 보는 것도 희박했다.
자신조차도 가까스로 폭발을 막고 겨우 몸을 피신시킨 것이었으니까.
‘젠장! 어찌해야!’
마녀가 처용의 싸움을 바라보며 속으로 고민했다.
아직 정확하게 모든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
이대로 처용을 죽게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적’이니까.
문제는 그다음에 어쩔 것인가?
처용이 죽으면 대악마와 맞먹는 마기를 지닌 존재가 자신을 포함한 흩어진 이들을 모두 찾아 죽일 것이다.
미래의 자신으로 보이는 존재는 악몽으로 인해 탄생한 존재.
[실체화된 악몽을 이기고 살아남으십시오.]
시스템의 알람을 떠올려 볼 때 확실했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 없다!’
생각을 끝낸 마녀가 조용히 마기를 끌어모아 스킬을 준비했다.
처용과의 싸움에 집중한 적이 뒤를 보이는 순간.
“헬 플레임 팬텀!”
-캬아아!
은밀하게 준비한 악령을 소환시키고.
“헬 플레임 사이드!”
공격력이 강한 스킬을 즉각 발동했다.
-스가악!!
검녹색으로 불타오르는 악령이 낫을 움켜쥐고는 학살의 마녀에게 크게 휘둘렀다.
“흐음?”
기습을 알아차린 학살의 마녀가 곧장 손을 뻗자.
-차컁!! 콰아아!!
사방에 검녹색 불길이 번지며 폭발이 일어났다.
기습 공격에 성공한 듯 보였지만, 폭발의 여파가 걷히자 나타난 광경은.
“흐음? 이것도 신기하네?”
-캬아아…….
학살의 마녀가 검녹색으로 불타오르는 악령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파멸의 지옥염인데, 이걸 악령에 융합시킨 건가?”
파멸의 지옥염으로 만들어진 악령을 보며 악몽이 의문을 표할 때.
“터져라!”
-키이잉!
마녀의 말에 악령이 크게 뒤틀리더니.
-콰콰콰!!
검녹색의 화염을 퍼트리며 자폭했다.
평범한 악령이 아닌 무려 파멸의 지옥염으로 만들어진 악령.
그 악령을 자폭시키면 기존 파멸의 지옥염보다 두 배는 강한 위력의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악몽이 검녹색의 불길에 휘감겼을 때.
“한처용! 정신 차려!”
마녀가 움직이지 못하는 처용을 향해 크게 외쳤다.
“여기서 죽을 셈이냐!?”
“…….”
처용이 방금 소리친, 마녀를 향해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응시하자.
“이런 제기랄!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마녀가 처용이 묻고자 하는 말을 알고 있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살아남아라!
누군가의 목소리가 마녀의 머릿속에 울려왔다.
그리고.
“살고 싶으면 당장 움직여! 이 새끼야!!”
처용을 향해 거칠게 외쳤다.
‘절대로! 여기서 죽을 순 없다!’
마녀가 속으로 한 번 더 다짐하고는 화염에 휩싸인 적을 응시했다.
나름 강력한 공격을 먹이긴 했지만, 상대가 쉽게 당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화아아…….
이윽고 폭발의 여파가 점점 가라앉고 시야가 드러나자.
“정말…… 악몽이 따로 없군.”
멀쩡한 모습으로 중얼거리는 학살의 마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 자신이 저 망할 수호신과 협동을 하는 모습을 보다니…….”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마녀가 미래의 자신, 구현된 악몽을 향해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그때.
“섀도우 카펫.”
-화아아!
악몽이 스킬을 발동하자 그녀의 발밑에서 새까만 그림자가 퍼져나갔다.
동시에 검게 물든 바닥이 파도가 치듯 일렁이더니.
-꿀렁. 스르르.
악몽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젠장!”
마녀가 접근해오는 거대한 마기를 눈치채고는.
“팬텀 월!”
-캬아아!
악령을 소환해 벽을 세우며 대비했다.
그 순간.
-촤아아!
바로 눈앞에 나타난 악몽이 맨손으로 악령의 벽을 찢어발기고는.
“컥!”
순식간에 마녀의 목을 잡아챘다.
“이상한데? 과거에 내가 악령과 관련된 클래스로 변한 적이 있던가?”
악몽, 학살의 마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과거의 자신을 향해 말할 때.
“……섀도우 팬텀.”
목을 붙잡힌 마녀가 비웃음을 흘리며 스킬을 발동했다.
-스르르…… 캬아아!
마녀의 모습이 점점 흐려지더니 악령으로 변했다.
동시에.
“팬텀 사이드!”
-스르릉!
검게 일렁이는 기운이 넘실거리는 대낫을 움켜쥔 마녀가 악몽의 뒤에서 나타났다.
마녀가 낫을 휘두르려는 순간.
“다크 사이드.”
-채캉!
학살의 마녀가 오른손에 대낫을 소환하며 가볍게 막았다.
아니, 막는 것을 넘어서.
-차캉! 챙강!
잠깐 대치하던 마녀의 낫을 부러트려 버렸다.
학살의 마녀가 힘으로 밀어붙이며 그대로 마녀를 갈라버리려는 순간.
“명환 신장!”
-쿠구구!
바로 위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손바닥이 떨어져 내렸다.
“칫!”
학살의 마녀는 휘두르려던 낫의 궤도를 비틀어 위로 휘둘렀다.
-스가악! 화아아…….
위에서 떨어져 내리던 손바닥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사라졌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저주를 없애고 몸을 추스른 처용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내가 살다 살다 마녀한테 도움을 받을 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읊조린 처용이 두 손을 합장하자.
-쿵!
항마의 화신이 처용을 따라 합장했다.
-화아아!
처용이 사용할 수 있는 신력의 최대치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마의 화신-결전기.”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능을 발현했다.
“백수(百手)-태극천체장(太極天體掌).”
-화아아!
항마의 화신 뒤로 새하얀 손들이 마치 꽃처럼 피어나며 생성되었다.
-스르르…….
처용에게서 퍼지는 파마의 신력에 의해 악몽이 만들어냈던 새까만 그림자가 사그라졌다.
“……천수(千手)가 아니군.”
학살의 마녀가 처용이 발현한 권능을 보며 나지막하게 읊조리듯 말했다.
“지금의 너는 그게 한계인가?”
“……천마신공-백보신권(百步神拳), 개(改).”
처용은 마녀의 말을 무시하고 두 주먹을 쥐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자.
-쿠구구!
항마의 화신 뒤에 생성된 백 개의 손이 일제히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백보명환신권(百步明煥神拳)!”
-슈우!
일제히 학살의 마녀를 목표로 빠르게 쇄도했다.
학살의 마녀는 쇄도해오는 새하얀 주먹들을 진지하게 바라보고는.
“……데몬 디펜시브.”
새까만 해골 방패들을 소환하며 방어에 나섰다.
-쿠구! 콰콰쾅!!
백여 개의 새하얀 주먹이 일렬로 나열된 검은 해골 방패에 충돌한 순간.
‘마녀,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처용이 상황을 지켜보며 기회를 노리던 마녀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동시에 자세를 고치고 양손에 역천의 절을 뽑아 쥐었다.
“검성류.”
처용이 역천의 절을 쥐자.
-키이이!
공격을 마치고 뒤로 빠져 있던 열 개의 새하얀 손에 신력이 뭉치더니 검이 쥐어졌다.
동시에 학살의 마녀를 거칠게 몰아붙이던 손들이 뒤로 빠졌다.
그 순간.
“철벽 베기!”
-스르릉!
처용이 역천의 절을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내리긋자.
-쐐에엑!
검을 쥔 열 개의 손이 검은 해골 방패를 향해 일제히 검을 내리그었다.
-까강!!
백 개의 주먹이 가한 거센 타격에도 흠집 하나 없던 새까만 방패가 모두 갈라지며 떨어져 내렸다.
“이런.”
방패가 모두 부수어지자 학살의 마녀가 뒤로 물러났다.
“검성류-검의 비명, 개(改).”
처용은 물러나는 적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곧장 발도 자세를 취했다.
“명환의 비명검!”
처용이 역천의 절을 내지르자.
-촤자자자자!!
검을 쥔 열 개의 손이 처용과 같은 검격을 내지르며 새하얀 칼날들을 내뿜었다.
파마의 신력과 강기가 압축된 칼날이 쇄도하자.
“다크니스 실드, 다크 플레임 월.”
악몽, 학살의 마녀가 곧장 실드를 펼치고 검은 화염의 벽을 일으키며 방어했다.
“천마신공…….”
처용은 공격을 멈추지 않기 위해 곧장 다음 자세를 취하며 악몽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지금의 처용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능, 항마의 화신 상태에서 사용하는 결전기.
백수(百手)-태극천체장(太極天體掌).
이 능력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항마의 화신의 손을 백 개로 늘리는 것이었다.
늘어난 백 개의 손으로 처용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쓸 수 있었다.
비단 천마와 검성의 무공만이 아니었다.
“엘리멘탈 스트라이크.”
다른 열 개의 손이 각각 속성 마나를 피워내며 대마도사의 마법을 발현했고.
“화염부, 뇌격부, 염뢰옥!”
또 다른 손들은 처용의 명령에 따라 각각 자연부를 만들어 내었다.
가진 모든 스킬을 더욱 강하게 더 많이 발현할 수 있는 권능.
항마의 화신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능이니만큼.
‘10분 정도가 한계인가?’
그리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게다가 처용은 비장의 패를 꺼냈음에도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지금 상대하는 적은 다름 아닌 ‘전성기의 마녀’였으니까.
지금의 헌터들이 모조리 몰려들어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으아아!”
기합을 지른 처용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공격을 계속했다.
공격을 멈추는 순간 끝이었으니까.
처용이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음에도.
“데몬 디펜시브, 검은 대지의 방벽…….”
악몽, 학살의 마녀는 사방에서 몰아쳐 오는 공격들을 침착하게 모두 막고 있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처용의 공격을 악몽이 모두 막아낼 때.
“크헉?”
권능을 발휘하던 처용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옅은 피를 토해냈다.
그 찰나의 순간 몰아치던 공격들에 틈이 생겼다.
“무리했구나. 수호신.”
그 기회를 놓칠 악몽, 학살의 마녀가 아니었다.
“다크스웜 로드.”
-스륵!
학살의 마녀가 어두운 안개가 되며 사라졌고.
-샤아악!
순식간에 처용의 앞에 안개가 모여들며 나타났다.
그 순간.
“팔괘봉마진-영멸!”
처용이 자신의 발밑에 미리 깔아둔 진법을 발동했다.
학살의 마녀가 진법의 영향으로 움직임이 잠시 멈칫할 때.
“블러디아!”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현재의 마녀가 가디언을 불렀다.
-캬아아!
악몽의 뒤에 검게 타오르는 악령이 나타났다.
“죽음의 선고!”
뒤를 잡은 마녀의 가디언이 검게 불타오르는 낫을 움켜쥐고는.
-스가악!!
학살의 마녀를 가로로 그어버릴 기세로 휘둘렀다.
“이 깜찍한 것들 봐라?”
완벽하게 맞이한 기습에 악몽, 학살의 마녀가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블러디아.”
자신의 가디언을 불렀다.
-콰아아아!!
처용과 악몽, 검은 악령이 있는 자리에 폭발이 일어나며 거대한 무언가가 솟구쳤다.
“무슨!? 큭!”
폭발의 여파를 견디지 못한 마녀가 뒤로 날아감과 동시에.
-촤아악!!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뼈의 손톱이 마녀의 가디언, 악령을 찢어발겼고.
-콰직!! 콰드득!!
어떤 생물의 머리로 보이는 것들이 공중에 떠오른 새하얀 손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했다.
-쿠구구구!!
공동을 초토화하며 나타난 것은 여섯 개의 팔과 세 개의 머리가 달린 뼈만 남은 드래곤.
전성기의 마녀가 다루던 가디언, ‘본 드래곤 나이트’ 블러디아였다.
“망할…….”
기습에 실패한 처용이 침음을 흘렸다.
“끝이다. 수호신.”
학살의 마녀가 손짓하자.
-쿠화아아아!
본 드래곤 나이트의 세 개의 머리가 처용을 응시하고는 검은 브레스를 내뿜었다.
-쩌저적! 파창! 차창!
브레스를 버티지 못한 항마의 화신이 금이 가며 부수어졌고.
“잘 가라.”
-스릉! 샤아악!
마녀가 새까만 투창들을 소환하며 처용에게 내던졌다.
-푸우!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처용이 투창들에 의해 가슴이 뚫리고 팔다리를 스치며 베였다.
“커-!”
처용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지자.
-스르릉!
악몽, 학살의 마녀가 마무리를 위해 대낫을 꺼내 들고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흉악한 낫의 칼날이 처용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직전.
-탁!
처용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낫의 칼날을 맨손으로 잡아챘다.
“……뭐?”
완벽하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발생한 이변에 악몽이 의문을 토했고.
-화아아!
붉은 안광을 내뿜는 처용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