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닫혔던 문이 열리고 살아남은 마인들과 처용이 새로운 장소로 빠져나오자.
-화아아!
시야를 가리는 빛이 사방을 덮쳤고 뒤에 있던 미궁이 점점 멀어지며 사라졌다.
-슈우우…….
섬광탄처럼 강렬히 덮쳐오던 빛이 점점 사그라지고 시야가 밝아지자.
“여긴 뭐야? 제단?”
마녀가 눈앞에 드러난 광경을 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방이 막혀있는 둥근 형태의 드넓은 돔과 같은 공간.
그 중앙에는 일정 간격으로 위로 솟아 있는 피라미드 형태의 네모난 제단이 있었다.
“여긴 뭐 하는 곳입니까?”
주변을 둘러보던 닥터가 표정을 굳히고 있는 처용에게 묻자.
“지금부터 기도하는 게 좋을 거야.”
처용이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재수 오지게 없으면 이 자리에서 전부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이번엔 도대체 뭐가 나오길래?”
닥터가 처용의 말에 제단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때.
[세 번째 악몽이 시작됩니다.]
시스템이 울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악몽은 ‘악몽의 화신’입니다.]
[대상을 탐색합니다.]
시스템의 말이 끝나자.
-삐리리리.
마치 무언가를 검색하는 듯한 기계음이 울렸다.
그리고.
[대상을 확정합니다.]
[악몽이 구현될 대상 참가자는 ‘한처용’입니다.]
대상을 찾았다는 말과 함께 시스템이 처용을 가리키자.
“이런, 젠장!”
처용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스르릉.
역천의 절을 뽑아 든 처용이 강기를 피워 올리며 크게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뭐, 뭐가 일어나는 겁니까?”
닥터가 그런 처용을 보며 긴장감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까지의 악몽 속에서도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던 이가 바로 처용이었다.
그런 처용이 눈에 띄게 긴장하고 있었고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으니까.
“악몽이 구현될 대상…… 혹시?”
닥터는 조금 전 시스템의 알람을 떠올리고는.
“혹시, 당신의 악몽이 구현되는 겁니까?”
처용을 향해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래.”
닥터의 말에 처용이 긍정했다.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전부 다 죽는다.”
처용이 제단 위를 노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두려움을 느꼈던 대상이 적으로 나올 테니까.”
“당신이…… 두려움을 느꼈던 적?”
닥터가 처용의 말을 듣고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큭, 네 녀석도 무서워하는 게 있을 줄이야.”
마녀가 처용을 향해 작은 비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그래, 내가 두려워할 정도면 뭐가 나올지 감은 잡히냐. 마녀?”
처용이 마녀의 말에 역으로 비웃음을 던지며 말했다.
“……젠장! 예상 가는 거라도 없는 거냐?”
처용의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마녀가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으며 물었다.
무려 성좌의 화신체조차 무력으로 제압하는 이가 바로 처용이었다.
그런 처용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적으로 나타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젠장.”
처용이 제단 위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나오는 거냐?’
머릿속으로 가장 최악의 적들을 나열해보았다.
당연히 가장 최악의 적은…….
‘설마 그럴 리는 없지만…… 크타니드가 나온다면?’
악의 종주.
그자가 구현되는 순간 모두 끝장이었다.
그 외에 최악들은 회귀 전 싸웠었던 강력한 적들.
예를 들면 대악마…… 그중에도 삼천마들.
상위 서열의 대악마라도 구현이 된다면, 역시 감당할 수 없었다.
처용이 긴장감을 보일 때.
[악몽이 확정되었습니다.]
시스템이 울려왔다.
[참가자 ‘한처용’의 악몽 중 하나가 구현됩니다.]
-쏴아아아!
시스템의 알림을 마지막으로 제단의 중앙으로 어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몰려든 어둠이 이리저리 뭉치고 꿈틀거리더니 점점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이윽고.
-스르르.
참가자들의 눈앞에 어떤 여성이 나타났다.
‘……이런!’
제단 위에 나타난 여성을 본 처용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붉게 흘러내리는 웨이브 머리.
붉은 판데모니움의 문자가 새겨진 검은 로브.
나타난 인물은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처용이 너무나도 잘 아는 여성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희망을 가지고 통찰의 눈을 사용했다.
그러자.
[이름 : 레나 르블랑]
[레벨 : 399]
[칭호 : 반마신(半魔神), 거대한 어둠의 신관]
[클래스 : 학살의 마녀]
[특징 : 수많은 생명을 흡수하고 어둠의 힘을 키운 마녀.]
[확인 불가…….]
[스킬 : 확인 불가……]
회귀 전의 숙적, ‘마녀’의 정보가 눈앞에 떠올랐다.
다름 아닌 ‘전성기’의 마녀가…….
[실체화된 악몽을 이기고 살아남으십시오.]
“이런 젠장!”
시스템 알림을 확인한 처용이 큰 경계심을 드러내며 뒤로 한 걸음 더 물러났다.
“……뭐야 저 년은.”
마녀가 인상을 크게 찌푸리며 제단 위에 나타난 여성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아무리 악몽 속이라지만…….”
제단 위에 나타난 전성기의 마녀가 감았던 눈을 뜨고는.
“악몽에 휘말리자마자 보이는 게 빌어먹을 ‘수호신’이라니.”
처용을 향해 흉흉한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건 또 뭐야?”
제단 위에 나타난 전성기의 마녀, 미래의 레나 르블랑이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악몽이 과거의 나를 가짜로 만들어낸 건가?”
그녀는 악몽 속에 갇힌 일행들처럼 자신 역시 악몽에 휘말렸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누가 가짜야 이 가짜 새끼가!?”
현재의 마녀가 미래의 자신을 보며 소리쳤다.
“저거 뭐야!? 왜 네놈 악몽에서 나랑 비슷한 년이 튀어나오는 건데!?”
“……말하는 싸가지 봐라.”
학살의 마녀가 현재의 마녀를 향해 싸늘하게 읊조리고는.
-쿠구구!
압도적으로 거대한 마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악몽이 구현 하나는 제대로 했군, 저 성질머리까지 똑같이 만들 줄이야.”
악몽이 구현한 학살의 마녀가 과거의 자신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이…… 무슨!?”
“이건…… 대악마?”
마녀와 닥터가 제단 위에 있는 학살의 마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에 침음을 흘렸다.
비단 그들뿐 아니라.
“아…… 으, 아.”
“아…… 안돼!”
B급 마인 중에는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는 이들도 있었다.
구현된 악몽이 아래를 둘러보며 제단 위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흐음? 악몽치고는 너무 싱거운데…… 음?”
아래를 느긋하게 내려오던 악몽의 시선이 닥터에게 닿자.
“……너, 넌?”
눈이 살짝 커지며 작은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하-.”
악몽이 닥터를 바라보며 뭐라 말하려는 순간.
‘천마신공-천마강림!’
-콰아아!!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처용이 천마의 의지를 불러내며 제단 위를 내려오던 마녀의 뒤를 기습했다.
‘검성류!’
-스릉!
역천의 절을 굳게 쥔 처용이 강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는.
‘검의 비상!’
-사아악!
악몽을 향해 칼끝을 내질렀다.
검성의 검술 중 가장 빠르고 날카로운 검술을 사용한 치명적인 기습.
그러나.
-차캉!!
천마의 의지와 처용이 동시에 발현한 검성의 검술이 검고 얇은 보호막에 손쉽게 가로막혔다.
“이 빌어먹을 수호신 녀석이.”
악몽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용을 향해 읊조렸다.
동시에.
-스-가악!
처용의 바로 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왔다.
“뢰신보.”
-파지직!
살기를 느낀 처용이 재빠르게 움직여 그 자리를 벗어나자.
-사각! 콰콰쾅!!
제단이 사선으로 갈라지며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갈라져라.”
악몽, 학살의 마녀가 한 번 더 조용히 읊조리자.
-키잉!
몸을 피한 처용의 주변에 검은 선이 그어졌다.
“풍신보.”
처용은 재빠르게 몸을 틀어 검은 선들을 피해내고 뒤로 빠졌다.
그러나.
-촤악! 주르르…….
팔과 다리, 복부와 등, 목 부근에 깊은 자상이 생기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빌어먹을…….”
처용이 인상을 거칠게 일그러뜨리고는.
-화르륵!
상처 부위에 백염을 피워내며 빠르게 회복했다.
“호오? 과거에는 그런 스킬도 가지고 있었던 건가? 수호신.”
악몽이 그런 처용을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어디 가루로 만들어도 재생하나 한 번 볼까?”
-화르르륵!
손아귀에 검녹색의 화염을 피워냈다.
“젠장!”
그 모습을 본 처용이 크게 긴장하고는.
“철벽부.”
만들 수 있는 최대 숫자의 철벽부를 만들어 흩뿌렸다.
“파멸의 지옥염.”
-화르륵!
악몽의 손아귀에서 피어난 검녹색의 작은 불꽃이 처용을 목표로 나아갔다.
그 모습을 본 처용은 흩뿌린 철벽부를 자신의 앞으로 모으고는.
“다중! 팔괘금강문!”
-쿠구구!
바로 앞에 거대한 팔괘금강문 다섯 개를 겹쳐서 세웠다.
이윽고 마녀가 쏘아 보낸 검녹색 불덩이가 가장 앞에 있는 팔괘금강문에 닿자.
-콰아아아아아!!
공동 전체에 녹색의 화염이 퍼지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지직! 콰직!
다섯 겹의 팔괘금강문이 순식간에 가루처럼 흩어지며 부수어졌다.
폭발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쿠구! 쿠구구!!
사방이 막힌 공동의 일부분을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공동의 일부분이 무너지자.
-화아아!
무너진 벽 외부에 새까만 우주가 펼쳐지며 나타났다.
빛 한 점 없는 검은 우주에서 무너진 공동의 파편과 검녹색의 불길이 떠다니며 돌아다녔다.
-화악!
악몽이 팔을 저으며 크게 손짓하자.
-화륵!
사방을 불태우던 녹색의 화마가 순식간에 꺼졌다.
파멸의 지옥염이 폭발했던 곳은 움푹 파인 흔적만 남았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악몽이 처용이 있던 자리를 유심히 관찰할 때.
“항마의 화신!”
그녀의 바로 위에서 항마의 화신을 불러낸 처용이 나타났다.
“명환신장(明奐神掌)!”
-우우웅!
항마의 화신이 악몽, 학살의 마녀를 향해 환하게 빛나는 오른손을 뻗어 내질렀다.
-콰아아!!
어둠을 몰아내는 명환의 힘과 검은 보호막이 충돌하자 사방이 흑백으로 나뉘며 재차 폭발을 일으켰다.
“이상하군? 200레벨도 되지 않은 시기에 수호신이 항마의 화신을 사용한다라?”
악몽이 처용의 공격을 막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결전기 - 팔괘 태극천체진.”
-스릉! 스릉! 스르릉!
항마의 화신 뒤에 숨겨져 있던 다양한 무구들이 나타나며 악몽을 포위했다.
“천체극섬!”
-스르르릉!!
학살의 마녀를 포위한 무기에 날카롭게 벼려진 강기가 일렁이고는.
-차캉!
악몽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데몬 디펜시브.”
침착하게 공격을 관찰한 학살의 마녀가 왼손을 뻗어 스킬을 발동하자.
-쿠궁!
악몽의 주변에 거대한 뿔이 돋아난 해골 형상의 방패가 소환되었다.
-차캉!!
검은 해골 방패에 처용의 공격이 모두 가로막혔다.
“고작 이건가?”
악몽, 학살의 마녀가 처용을 바라보며 비웃듯 입을 열 때.
-우워워!
악몽의 뒤, 그림자 속에서 천마의 의지가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튀어나왔다.
‘검성류 오의!’
천마의 의지가 사용하는 기술은 다름 아닌 검성의 검술 중 가장 위력이 강한 검술이었다.
‘단절!’
-스가악!!
날카롭게 벼려진 강기가 마녀의 정수리 위로 내리치려는 순간!
“……재밌네.”
악몽, 학살의 마녀가 싸늘한 미소를 보이며 웃었다.
동시에.
-콰드드득!
오른손에 마기가 뭉치며 마치 기사들의 장갑과 같은 형상이 씌워지고는.
-깡!
천마의 의지가 내리친 검을 잡아챘다.
“괴물 같은……!”
모든 공격이 막히자 처용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악몽은.
“이상한데? 보아하니 나도 네놈도 200레벨이 되지 않은 시기인 것 같은데…….”
처용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항마의 화신에 이어 그 망할 무림 세계 놈들의 기술을 쓰는 거지?”
“항마의-!”
처용이 악몽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는 순간!
“다크니스 버스트.”
-콰콰콰콰!!
악몽, 학살의 마녀가 몸 주변에 두른 해골 형상의 방패를 폭발시켰다.
“큭!”
항마의 화신이 보호하고 있음에도 처용이 폭발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크게 뒤로 밀려났다.
“태극천체진-방호!”
-스릉. 스르릉!
처용이 사방에 퍼진 무구들을 자신의 곁으로 회수하며 대비할 때.
“다크니스 썬더 스트로크!!”
폭발의 여파를 걷으며 나타난 악몽이 처용을 향해 검지를 들어 올리며 스킬을 발동했다.
-쿠구!!
눈을 깜빡하기도 전에 새까만 벼락 줄기가 처용을 향해 내리쳤다.
-쾅!! 차카깡!!
처용을 지켜주던 열 개의 무구가 단 한 줄기의 벼락을 버티지 못하고 사방으로 퍼지며 나가떨어졌다.
“컥!?”
처용 역시 데미지를 받은 몸을 굳히며 고통을 토했다.
빨리 몸을 움직여 다음 공격에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전성기의 마녀가 발휘한 마법은 다크니스 썬더 스트로크.
이 스킬은 상대에게 강력한 ‘마비’의 저주를 거는 흑마법이었다.
백염의 힘과 선인의 육체의 힘이 저주를 몰아내고 있었지만.
-쿠구구!!
이미 다음 벼락 줄기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
차마 피할 수 없었다.
-콰쾅!
다시 한번 검은 벼락 줄기가 처용에게 내리치자.
-쩌저적!
처용을 보호하던 항마의 화신에 금이 갔다.
게다가.
“크허억!?”
일부는 항마의 화신조차도 뚫고 처용의 복부와 어깨, 다리를 꿰뚫었다.
“그래…… 수호신이 고분고분 말을 쳐 듣는 놈은 아니었지.”
싸늘하게 눈빛을 빛낸 학살의 마녀가 손을 들어 올리고는.
“다크니스-.”
다시 한번 흑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헬 플레임 팬텀!”
-캬아아!
악몽의 뒤에서 검녹색으로 불타오르는 악령이 나타났다.
“헬 플레임 사이드!”
악령의 손에 검은 낫이 쥐어졌고.
-스가악!!
학살의 마녀, 악몽의 목을 향해 낫이 휘둘러졌다.
“흐음?”
악몽이 처용을 향해 뻗었던 오른손 검지를 뒤로 뻗고는.
-화르륵!
검지 끝에 검녹색의 화염을 일으켰다.
이윽고 검녹색 불길이 일렁이는 낫과 마녀의 검지가 충돌하자.
-차컁!! 콰아아!!
사방에 검녹색 불길이 번지며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한처용! 정신 차려!”
처용의 귓가에 마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홀로 계승자